조르조네(Giorgio, 1477?~1510)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베르메르) 못지않게 베일에 싸인 화가이다. 조르조네는 짧은 생애동안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로 활동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삶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 [구판] 조르조 바자리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 (한명출판사, 2000)

* [개정판] 조르조 바자리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올재, 2017)

※ 두 책 모두 같은 역자(이근배)임.

 

 

 

 

조르조네의 생애를 소개한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에 따르면 피렌체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라는 거장이 활동하고 있었을 때, 조르조네가 베네치아를 주름잡고 있었다고 한다. 조르조네의 등장이 베네치아 회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르조네는 카스텔프랑코(Castelfranco)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인들의 이름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 이름이 들어가 있다. 빈치(Vinci)는 피렌체 근교에 있는 자치도시(Comune, 코무네) 이름이다. 이곳에 레오나르도가 태어나서 그의 이름이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알려졌다. 이렇듯 조르조네의 본명은 조르조 바바렐리 다 카스텔프랑코(Giorgio Barbarelli da Castelfranco)이다.

 

조르조네는 ‘젊고 유능한 예술가’로서의 레오나르도와 비슷한 행보를 걷었다. 레오나르도와 조르조네는 공통으로 류트(Lute)라는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조르조네는 사교계 모임에 자주 참석했고 베네치아 사교계 최고의 인기 예술가로 알려졌다. 바자리는 빛과 그늘을 다루는 조르조네의 표현력을 레오나르도와 비교했다. 조르조네도 레오나르도 특유의 화법인 스푸마토(Sfumato: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희미하게 그리는 명암법)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조르조네는 천부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못하고 33세(혹은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교계 연회에서 알게 된 여성과 사랑에 빠져 교제를 하게 됐는데, 이 여성이 흑사병(Plague, 페스트)에 걸렸다. 이 사실을 몰랐던 조르조네는 흑사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 마크 로스킬 《미술사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1990)

*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르네상스 미술 전공 미술사가인 마크 로스킬은 바자리가 조르조네의 생애에 관한 내용을 수집할 때 상당히 애먹었을 거로 추정한다. 이상하게도 조르조네의 생전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조르조네가 죽고 난 후 그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스킬은 조르조네의 죽음에 관련된 일화를 전설로 치부하고 있다. 《501 위대한 화가》 ‘조르조네’ 편에 보면 조르조 바사리가 조르조네를 ‘머리를 멋있게 기른 온화한 성격의 미남’이라고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바자리의 기록에 근거하면 조르조네가 뛰어난 외모와 성품을 지닌 미남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머리를 멋있게 길렀다’는 내용은 바자리의 책(그가 쓴 《예술가 열전》을 번역한 책)에 나오지 않는다. 바자리는 조르조네를 ‘몸집이 큰 남자’라고 묘사했다.[1] 이 내용이 조르조네의 외모를 짐작할 수 있는 바자리의 유일한 설명이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예경, 2003, 2013, 2017)

* 진중권 《교수대 위의 까치》 (휴머니스트, 2009)

 

 

 

 

조르조네의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가장 불가사의한 작품은 『폭풍우』이다. 아쉽게도 우린 그림 속에 서 있는 남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영원히 알아낼 수 없다. 그밖에도 관람자의 눈을 사로잡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또 있다.

 

 

 

 

 

남자 옆에 있는 부러진 원주(圓柱)와 회색빛 구름 사이에 번쩍거리면서 빛나는 번개. 이 그림 속 수수께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주장한 가설이 무려 스무 개나 넘는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미술사가 리오넬로 벤투리(Lionello Venturi)진중권은 『폭풍우』의 번개에 주목한다. 『폭풍우』는 ‘눈으로 보는 풍경화’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 그림에 숲, 하늘, 물, 도시 그리고 날씨 현상 등 눈으로 보는 소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풍우』는 자연현상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이 그림 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폭풍우』는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숨겨진 텍스트’이며 그림 속 대상은 알레고리(Allegory)이다. 진중권은 『폭풍우』에 묘사된 자연을 ‘신이 떠난 세상’, 즉 자연현상의 실체를 파악한 인간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알레고리 측면으로 바라보면 또 다른 해석이 튀어나온다. 그림 속 남녀가 신화 또는 기독교와 관련된 전설적인 인물을 상징한 것이라면, 번개는 신의 능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상징물이 된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아기가 장래에 영웅으로 성장하는 존재,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은 아기의 어머니(젖을 먹이는 여성이 ‘유모’일 수도 있다), 남성은 의지할 데 없는 어머니와 아기를 보살펴주는 친절한 목동으로 해석했다. 곰브리치의 해석과 연관 지어 부러진 원주와 번개를 설명하면 각각 ‘아기 영웅이 겪게 될 시련’, ‘영웅의 성장을 지켜보는 신’이다. 결국, 이 그림에 나타난 자연은 ‘여전히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관람자는 그림의 ‘진짜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도상학적 분석 방식을 동원할 수 있고, 자신만의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폭풍우』는 ‘마음으로 보는 풍경화’이다. 관람자의 감정이입은 ‘보이는 것(직접적 표현)’과 ‘보이지 않은 것(암시적 표현)’의 간극을 채운다.

 

나는 『폭풍우』가 종교적 알레고리가 들어간 풍경화라고 생각한다. 세 명의 인물은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 가족(Holy Family)’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폭풍우』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중세 시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마크 로스킬은 『폭풍우』와 『카스텔프랑코의 성모』(약칭 ‘성모’)에서 발견되는 유사점을 근거로 두 그림 모두 조르조네의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폭풍우』 그림 왼쪽에 있는 목동은 『성모』 그림 왼쪽에 있는 갑옷 입은 기사(율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로마 교황으로 축성된 성 리베리우스라고 한다)의 자세와 똑같다. 그리고 『폭풍우』 속 어머니와 아기는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닮았다. 그러면 『폭풍우』의 목동의 정체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Saint Joseph)이다. 기사 복장을 한 성인과 요셉. 이 두 사람은 성모와 아기 예수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 남성이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절망과 피폐해진 정신에 안식과 활력을 불어넣는 은혜로운 존재로 묘사했고, 성모는 ‘중세 남성들이 존경하는 여성상’으로 자리 잡았다.

 

 

 

 

 

 

 

 

 

 

 

 

 

 

 

 

 

 

 

* 크리스틴 드 피장 《여성들의 도시》 (아카넷, 2012)

* 프랑수아 라블레 《팡타그뤼엘 제3서》 (한길사, 2006)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은 ‘원죄 의식’을 근거로 여성을 ‘타락하고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바라봤다. 기독교 내 여성차별 인식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이데올로기로 형성됐고, 편협한 사고방식은 중세로 이어졌다.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은 펜을 무기 삼아 여성을 비하하는 풍조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르네상스가 도래했는데도 여성 차별적 편견은 여전했다. 중세의 낡은 관행을 풍자한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는 ‘남성보다 못한 여성’을 무시하는 구시대적 인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 아일린 파워 《중세의 여인들》 (즐거운상상, 2010)

*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연암서가, 2012)

* 카리 우트리오 《이브의 역사》 (도서출판 자작, 2000)

* 섀리 엘 서러 《어머니의 신화》 (까치, 1995)

 

 

 

 

중세 절정기에 성모 숭배와 기사도 정신이 하나가 되는 ‘어설픈 접목’이 이루어졌다. 중세 사람들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를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특히 기사들은 성모와 같은 여성을 숭배하고 수호하는 일이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조르조네의 『카스텔프랑코의 성모』는 성모 숭배와 ‘갑옷으로 무장한 성인’의 조합을 도상학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그림 속 성인은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성모를 지키기 위해서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전사’에 가깝다. 중세 시대가 무너지고 기사의 역할이 사라져도 남성들의 ‘성모 바라기’는 멈추지 않았다. 중세 말기부터 아기 예수에게 젖을 주는 성모를 묘사한 그림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남성 기독교인들은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성모의 모유 수유는 인정했다. 이때부터 그림 속 성모는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때론 헐벗은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자, 이제 당신이 여성을 이중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못된 시선을 이해했다면, 조르조네의 『폭풍우』를 볼 때마다 불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폭풍우』의 여성이 수유하는 자세가 어설프다. 그녀는 오른쪽 허벅지를 드러내 보인다. 남성 관람자의 시선은 그녀의 허벅지와 가슴으로 향한다. 따라서 『폭풍우』의 여성은 남성의 욕망이 반영된 ‘에로틱한 성모’를 상징한다. 성모를 지켜야 할 기사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한층 젊어진 요셉’이 등장했다. 요셉은 아기 예수를 양육하는 성모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 주변을 감시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은 ‘자녀 양육에 힘써야 하고,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가 된다.

 

『폭풍우』는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이어지는 편협한 여성 차별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불쾌한 그림’이다. 나의 그림 해석에 이견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림을 곰곰이 따져 보면 남성 중심적 세계를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읽힌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남성들이 열광한 성모 마리아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이다.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의 위력을 경험한 남성들은 암울한 현실이 주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성모를 예찬했다. 조르조네는 『폭풍우』와 『카스텔프랑코의 성모』를 그리는 내내 흑사병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불길한 예감을 감지했던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성모는 천부적인 능력을 갖춘 젊은 화가의 영혼을 지켜주지 못했다.

 

 

 

 

 

[1] 이근배 역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2》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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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07 09:00   좋아요 1 | URL
지금도 흑사병의 원인, 전파 경로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어요. 여전히 풀리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서니데이 2017-11-0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에 바람이 많이 불어요.
cyrus님 좋은 오후 보내세요.^^

cyrus 2017-11-08 16:34   좋아요 1 | URL
오늘 미세먼지가 엄청 많이 날렸겠죠? 이럴 때 퇴근 생각이 간절합니다. ^^

임모르텔 2017-11-1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일간 대전 대청호수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는데, 금새 단풍이 누렇게 떨어지더군요.
짧네요 가을이..환절기 비염 조심하세요..^^

cyrus 2017-11-12 20:04   좋아요 0 | URL
내일부터 기온이 떨어진다고 해요. 이렇게 겨울이 오는가 봐요. 올빼미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
 

 

 

신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모나리자』(Monna Lisa). 이 그림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Francesco de Gioconda)의 세 번째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동성애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벌거벗은 두 여인이 욕조에 들어가서 묘한 행동을 한다. 왼쪽 여인이 오른쪽 여인의 유두를 쥐고 있다. 왼쪽 여인은 마치 뜨거운 것이라도 잡는 양 왼손가락으로 아슬아슬하게 반지를 잡고 있다. 가슴의 유두를 잡은 왼쪽 여인의 자세는 이름 모를 남성 화가가 의도한 연출이다. 저기요, 아재! 당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자, 가슴은 그만 보고, 욕조가 있는 방의 구조를 살펴보자. 불이 타오르는 난로 옆에 바느질하는 여인이 있다. 여인의 머리 위에 작은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런데 액자 크기가 너무 작다. 아무리 두 눈을 크게 떠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난로 위에도 그림 액자가 있는데, 절반이 가려져 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델의 다리만 보일 뿐이다.

 

 

 

 

 

 

 

 

 

 

 

 

 

 

 

 

 

 

 

 

 

 

 

 

 

 

 

 

 

 

* 김복래 《프랑스 왕과 왕비, 왕의 총비들의 불꽃같은 생애》 (북코리아, 2006)

* 나가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세미콜론, 2009)

* 엘리아 보슈롱 《수수께끼에 싸인 미술관》 (시그마북스, 2014)

* 유경희 《가만히 가까이》 (아트북스, 2016)

 

 

 

작자 미상의 그림을 보는 사람보다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그림 제목이 알려져서 관람객은 벌거벗은 두 여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반지를 쥔 오른쪽 여인이 프랑스의 왕 앙리 4세(Henri IV)의 애첩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다. 왼쪽 여인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동생 빌라르 공작부인(duchesse de villars)이다. 공작부인은 왜 언니의 유두를 쥐고 있을까?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관람객들은 저 두 사람을 '수수께끼 자매'라고 불렸을 것이다.

 

이 그림이 제작된 16세기 당시에 가슴의 유두 상태로 여성의 임신 여부를 판단했다. 따라서 동생의 행위는 가브리엘의 임신 사실을 암시하며 바느질하는 여인은 장차 태어날 아기(왕의 자식)가 입게 될 배냇저고리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앙리 4세의 전처는 여왕 마고(La Reine Margot)’로 알려진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였다. 마르그리트는 왕의 아이를 낳지 못했고, 왕은 매력적이고 자식까지 낳아줄 수 있는 가브리엘과 어울려 다녔다. 왕은 한때 58명의 애첩을 거느린 호색가였다고 한다.

 

 

 

 

 

 

 

 

 

 

 

 

 

 

 

 

 

 

* 다카시 하마모토 《반지의 문화사》 (에디터, 2002)

* 원종옥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이다미디어, 2009)

 

 

 

가브리엘의 손에 쥔 반지는 앙리 4세와의 약혼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반지에 박힌 보석은 사파이어(sapphire)다. 이때 당시 앙리 4세가 교황으로부터 왕비와의 결혼무효 판결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브리엘은 ‘왕과 약혼한 애첩’이었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왕이 준 귀중한 증표를 손가락에 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의 반지는 단순한 약혼반지가 아니다. 왕권의 존엄성과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에 가브리엘의 정치적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브리엘은 왕의 조언자가 되었고, 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했다. 따라서 그림 속 반지는 왕과의 약혼을 알리는 증표임 동시에 ‘여왕을 넘어선 애첩’이었던 가브리엘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어트리뷰트(속성, attribute)다.

 

 

 

 

 

 

 

 

 

 

 

 

 

 

 

* 진중권 《성의 미학》 (세종서적, 2005)

 

 

 

진중권은 반지를 색다르게 해석했는데, ‘여성의 성기’를 암시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매의 근친상간 관계를 상상하기도 하는데,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왕과 가브리엘 사이에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1599년에 왕은 가브리엘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마르그리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혼식이 거행되기 일주일 전에 가브리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임신 6개월이었다. 가브리엘이 사산아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지만, 그녀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있다.

 

 

 

 

 

 

 

 

 

 

 

 

 

 

 

 

 

* 박경성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라는 책은 가브리엘 자매를 그린 그림에 ‘두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는 여인을 봤을 때 에로틱의 대명사 ‘비너스(Venus)’를 떠올렸던 걸까. 그렇지만 16세기 후반 작자 미상의 프랑스 화가가 그린 그림이 1519년에 세상을 떠난 다 빈치의 작품으로 소개된 내용은 잘못된 정보다.

 

 

 

 

 

 

 

 

 

 

 

 

 

 

 

* 에이민 E. 허먼 《우아한 관찰주의자》 (청림출판, 2017)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벌거벗은 자매를 쳐다보는데 집중한 나머지 ‘그림 속 그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자매 뒤에 또 다른 그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뜻밖의 사실을 잘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에 빠지게 된다. 모델의 하반신만 보이는 그림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자유롭게 추정할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이 남자라면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Ares)’), 아름다운 소년으로 알려진 아도니스(Adonis)일 수 있다. 아도니스는 사냥하는 도중 멧돼지의 엄니에 찔려 죽고 마는데, 땅바닥에 누워 죽어가는 아도니스의 모습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다.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비너스가 홀딱 반한 남자들이다. 모델이 여자라면 누워 있는 비너스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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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림 한번 얄궃구만.ㅋ

cyrus 2017-09-13 16:5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왕을 위해서 야릇하게 그렸을 거예요. ^^;;

sprenown 2017-09-1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군요...미술사학자들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요

cyrus 2017-09-14 13:48   좋아요 0 | URL
미술사학자들이 발견하고, 확인한 내용 중에는 추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을 공부하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7-09-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 중에는 동성애자가 많은 것 같아요. 예술과 동성애,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cyrus 2017-09-14 15:21   좋아요 0 | URL
정말 어려운 질문이군요. 동성애자 예술가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주류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도전 정신이 있었을 겁니다. ^^

2017-09-13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13:50   좋아요 0 | URL
그림 속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미술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꼬마요정 2017-09-1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의 미학‘이랑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재밌게 봤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데, 아직도 저는 그림이 어려워요 ^^

cyrus 2017-09-14 13:52   좋아요 0 | URL
제가 책으로만 미술을 공부했는데요, 저도 아직 그림 보는 것을 몰라요. ^^

2017-09-14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21:01   좋아요 0 | URL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미술 전문가라고 해서 그의 해석이 무조건 볼 수 없죠. ^^
 

 

 

 

 

 

 

 

 

 

 

 

 

 

 

 

 

* 《드가 : 무희의 화가》 앙리 루아레트, 시공사, 1998

* 《에드가 드가》 베른트 그로베, 마로니에북스, 2005

 

 

흔히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를 인상파 화가로 분류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주의에 가깝다. 춤추는 여인들, 리허설 등에서 발레리나의 순간 동작과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의 작품들은 섬세하고도 치밀한 관찰과 묘사는 마치 현장을 보는 듯한 감동을 전해 준다. 그렇지만 드가의 그림을 비판하는 연구가들은 그의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이 그림 속에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제임스 H. 루빈(James H. Rubin)은 드가의 그림을 비판적으로 보는 미술사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책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마로니에북스, 2017)에 드가의 작품 몇 점을 소개하면서 그림에서 드러난 드가의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을 언급하고 있다.

 

 

 

 

 

 

드가의 『개의 노래』는 드가가 즐겨 찾았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엠마 발라동(Emma Valado)을 묘사한 작품이다. 드가는 그녀의 노래에 열광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엠마가 취하고 있는 동작은 양쪽 앞다리를 내민 개를 흉내 낸 자세이다. 드가는 개를 흉내 내고 있는 엠마의 자세를 여러 번 스케치한 습작을 남겼다. 루빈은 이 습작을 근거로 드가가 인간의 몸짓과 표정을 동물의 속성과 흡사하게 그리려는 작업에 몰두했다고 주장한다.

 

 

 

 

 

 

 

 

 

 

 

 

 

 

* 《추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8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 진화론에서는 유사성의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을 비교했다. 그 결과, 그들은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다윈을 추종하는 일부 사람들은 진화의 개념을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기능적으로 점차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봤다.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자연 선택설(natural selection)은 사회에 적용되어 사회진화론을 낳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간 사회에서도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믿기 때문에 사회의 불평등이나 계급 차이는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이나 심적 특성, 운명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구별 지었다.

 

 

 

 

 

 

불행하게도 사회진화론과 골상학은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과격한 반유대주의로 악명 높은 드가는 그림 속 유대인을 매부리코를 가진 인물로 묘사했다. 루빈은 드가를 ‘골상학자’라고 대놓고 말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유대인의 못생긴 매부리코가 그들의 사악함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세미콜론, 2008

 

 

 

드가의 여성 혐오를 생각한다면, 그는 엠마를 ‘개보다 못한 여자’로 그렸을 수 있다. 나는 『개의 노래』가 드가의 여성 혐오가 반영된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에 밝혔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루빈의 해석도 일리가 있다. 드가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발레리나와 매춘부를 사회적으로 낮은 하층 계급으로 이해했다.

 

 

 

 

 

 

19세기 파리의 발레리나와 매춘부 들은 대부분은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다. 발레리나들은 생계를 위해서 화가의 모델이 되거나 부유층 남자들의 정부(情婦)가 되는 것은 물론, 매춘부로 몸을 팔아야 했다. 발레리나가 춤추는 모습을 묘사한 드가의 그림들을 잘 살펴보면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가 멀찌감치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신사가 바로 발레리나의 후원자이다.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화가의 수익을 높여주는 인기 소재였고,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들을 장난스럽게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발레리나는 무용이라는 예술 관련 분야의 일에 종사하면서도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직업이었다.

 

 

 

 

 

 

 

 

 

 

드가는 판화의 한 종류인 모노타이프(monotype) 기법으로 매춘부들의 모습을 시리즈로 제작했다. 그는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신사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만들었다. 드가가 세상을 떠난 후, 드가 유족들은 모노타이프 일부를 파기했다. 이 작품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면, 우린 드가가 매춘부를 그렸다는 사실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드가의 매춘부 그림은 ‘엿보기’에 가깝다. 생전의 드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었다. 드가가 여성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를 무성애자(無性愛者)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당연히 매춘부 그림이 화가의 성적 취향과 관음증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드가의 엿 보는 행위를 상상한 작품들을 남겼다. 피카소의 그림에 묘사된 드가는 창문으로 벌거벗은 매춘부들을 몰래 엿보거나 그녀들을 관찰하는 신사로 등장한다. 드가는 그림 밖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그를 존경하는(?) 피카소는 대선배를 그림 안에서 여성을 엿보는 관찰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피카소도 드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1]

 

 

 

 

 

 

 

 

 

 

 

 

 

 

 

 

*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파스칼 보나푸, 이봄, 2013

 

 

 

남성 화가들은 시각적 쾌락을 위해 여성을 그렸다. 다시 말해 그림 속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 의해 수동적으로 드러나는 존재에 불과했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신비화는 수많은 다양한 여성들을 ‘매춘부’와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의 두 부류로 분류했다.

 

 

 

 

 

 

 

 

드가는 말년에 신체 일부를 씻거나 목욕하는 여성을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여성의 목욕하는 행위는 여성의 정결함을 유지해주는 행위인 반면, 에로틱한 엿보기의 대상이 된다. 드가가 ‘관찰한’ 목욕하는 여성은 에로틱한 ‘매춘부’와 정결한 ‘동정녀 마리아’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드가는 ‘관찰자’가 되어 남성이 보고 싶어 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리듬에 온몸을 맡긴 발레리나를 지켜보는 후원자, 몸으로 유혹하는 매춘부를 바라보는 매음굴 손님은 드가의 분신이다. 드가의 그림에 그가 생전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고개 숙인 욕망’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1]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림은 언제나 욕망과 맞물려 있었다.” (파스칼 보나푸,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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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04 10:25   좋아요 0 | URL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해요. 이런 문제를 논하면 끝이 없습니다. ^^;;

AgalmA 2017-04-03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관음증적 시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난과 지탄 받을 걸 알면서도 인간의 그런 욕망을 당당히 표현하는 예술가들을 저는 옹호도 비난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최강으로 적응하는 ˝물곰˝의 존재가 참 특이하더군요. 지구에 존재하지도 않는 절대온도 속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죠. 외계에서 유입된 생명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던데, 그렇다면 진화론도 상당히 달라질 지점이 생기죠.

cyrus 2017-04-04 10:2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비판은 할 수 있어도 비난은 하면 안 됩니다.

물곰 같은 동물이 신기해요. 정말로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존재입니다. ^^

레삭매냐 2017-04-0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가의 그림을 단순하게 dancer on the stage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에투알이라는 제목이 있었군요.

고호의 해바라기랑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그전에 무서운 그림을 읽었는데, 사실은 이 멋진
그림 당대 스폰서십에 대한 비화가 숨겨 있는진
미처 몰랐네요. 씁쓸합니다.

cyrus 2017-04-04 12:19   좋아요 1 | URL
에투알이 가장 인기 있는 발레리나를 부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해서 ‘춤추는 무희’로 알려졌어요.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은 여성만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 형식의 문헌이다. 《데카메론》의 작가 보카치오가 썼다. 보카치오의 여성관은 아직 중세의 때를 벗지 못했지만, 이전보다 근대적인 관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성논쟁’을 주도한 크리스틴 드 피장은 이 책을 원본으로 삼아 《여성들의 도시》를 집필했다.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효녀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이 책을 참고해서 만들어진 《여성들의 도시》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여성들의 도시》 211~212쪽 참조)

 

 

귀족 출신의 젊은 여성이 있었다. 이 젊은 여성의 어머니는 부모로부터 고귀한 혈통을 물려받았지만, 팔자가 사나웠다. 하여튼 알려지지 않은 어떤 죄목으로 그녀는 집정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마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행정관은 그녀를 세 집정관 중 한 사람에게 이미 내려진 판결대로 형을 집행하도록 넘겼다. 집정관은 그럴 목적으로 간수에게 그녀를 넘겼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밤에 처형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간수는 인정에 이끌려서인지 아니면 귀족 여성에 대한 동정심에서였는지 모르지만, 그녀를 즉시 죽이기보다는 굶어서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딸이 면회 왔을 때 간수는 혹시 음식을 들여가지 않나 샅샅이 몸을 조사한 뒤 감방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근에 출산했기 때문에 굶주린 어머니에게 줄 수 있는 젖이 충분했다. 이 일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다. 간수는 형을 언도받은 여성이 그처럼 오랫동안 굶어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래서 몰래 이 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는 딸이 가슴을 드러내고 자기 어머니에게 젖꼭지를 물리는 모습을 보았다. 간수는 딸의 효심과 딸이 어머니에게 젖을 먹이는 희한한 광경에 놀라서는 집정관에게 이 사실을 곧바로 보고했다. 집정관은 행정관에게 보고했고, 그는 시의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 결과 딸의 효심을 높이 사 어머니의 처벌을 무효로 하자는 데 전부 동의하게 되었다.

 

(조반니 보카치오,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자들》 310~311쪽)

 

 

 

이 이야기를 읽으며 루벤스의 그림 「시몬과 페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손발이 묶인 늙은 죄수가 젊은 여성의 가슴을 빨고 있고, 철창 바깥에선 간수들이 희한한 광경을 훔쳐보고 있다. 처음 보면 춘화로 오해를 하게 되는 그림이다.

 

 

 

 

 

 

 

 

 

 

남자가 시몬이고, 여자는 그의 딸 페로이다. 시몬은 처형되는 날까지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딸이 몰래 감방에 들어와 아버지에게 젖을 먹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마 당국은 그녀의 숭고한 사랑에 감동해 시몬을 석방했다고 한다. 시몬과 페로 이야기는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전해져왔다. 자식이 부모를 젖으로 공양한 이 사례를 그린 그림은 이후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 ‘로마인의 자비’라고 불렸다. 여러 화가가 이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시몬과 페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화가는 루벤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루벤스가 묘사한 부녀의 행각을 퇴폐적인 성행위로 해석했다. 루벤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루벤스가 이 그림에 성적 욕망을 투영했다고 봤다. 실제로 그림 속 노인과 여인의 모습은 루벤스와 루벤스의 아내와 비슷했다.

 

 

 

 

 

 

 

 

53세의 루벤스는 첫 부인과 사별한 뒤 4년을 홀로 지내다 자신보다 16세의 아내 엘렌 푸르망과 재혼했다. 루벤스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였다. 그는 벨기에 외교관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은 엘리트였지만 가난한 집안 출신의 새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를 둘 만큼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루벤스의 가정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시몬과 페로」를 불편하게 여겼다. 루벤스는 「시몬과 페로」 그림에 딸의 헌신적인 사랑, 거기에 아내를 향한 숭고한 사랑의 감정까지 더해져 여성의 아름다움을 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천상의 것으로 끌어올리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벤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몬과 페로」는 ‘음란한 그림’으로 오해받았다. 당대에 문제작 혹은 저속한 예술로 평가를 받았던 그림이 현대에 와서 극찬의 대상이 된 경우가 많다. 「시몬과 페로」처럼 한 작품에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루벤스의 그림이 오해받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기독교의 영향이다. 여성의 가슴이 성욕을 불러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누드화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찬반이 있었다. 인간의 고상하고 세련된 취미 속에 에로티시즘의 욕망은 숨어 있고, 그것이 곧 대중의 취향임을 옹호하는 측과 엉터리 미술이니 하는 혹평이 바로 그것이다. 남성 화가들은 비현실적이고 비인격화한 알몸에 신화나 성경의 옷을 걸쳐 여체를 탐하는 남성의 욕망을 미화했다. 그래서 누드는 교화의 의미가 담긴 종교화에서조차 교묘히 구사됐다. 남성 화가들은 그림 자체에 성적 뉘앙스를 풍겨야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여성의 누드를 보면 필요 이상 풍만하게 강조된 몸을 느낄 수 있다. 여성의 몸은 전적으로 남성 화가의 눈을 통해 걸러진 채 강조와 생략을 통해 재탄생된다. 일부는 젖가슴이나 엉덩이를 극단으로 강조해 관능미를 부각하기도 한다.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참다운 여성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루벤스가 묘사한 페로 역시 남성의 시선에 잡힌 여성상에 가깝다.

 

 

 

 

 

 

 

 

 

 

 

 

 

 

 

 

 

 

독일의 문화사 연구가인 한스 페터 뒤르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의 가슴 또한 남성들의 에로틱한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루벤스가 보카치오나 크리스틴 드 피장이 소개한 효녀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어도 남성 관객들의 눈에는 야릇한 이미지만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루벤스의 그림에서 숭고한 효심을 발견할 것인지 아니면 성적 뉘앙스를 찾을 것인지 결국 보는 이들의 몫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술 혹은 외설에 대한 논쟁에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치기보다 정답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이다. 이 논란은 끝이 없을 것이고, 정답도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림을 보기 전에 확실히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남성 화가들의 단골 소재는 단연 여성, 그중에서도 벌거벗은 여성이다. 우리는 남성의 그림에 의존해 여성을 읽고 이해하고 있다. 결국, 완벽한 여성의 아름다움은 허상이며 환상이다.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wikiart)’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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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1-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저께 서양미술사 바로크편 동영상 강의를 들었는데 마침 루벤스를 소개해줘서 반가움에 댓글 남겨요ㅎㅎ
로마인의 자비 .. 가슴 아픈 그림입니다ㅠ.ㅠ

cyrus 2016-11-10 21:24   좋아요 2 | URL
여자가 남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정절녀‘, ‘효녀‘가 돼서 이름을 알리는 것입니다. 유교 사회의 조선 시대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yureka01 2016-11-1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싫어 하는 스타일의 남자...마누라 하나 건사 못시키고 술처먹고 쥐 패는 찌질남....경멸하는데..심심찮게 봤으니..아흐...

cyrus 2016-11-10 21:28   좋아요 0 | URL
특이하게 그런 남자를 옹호해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에 출연하는 문제 많은 남자들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더군요. 남들은 그 사람의 문제점을 압니다. 그가 함께 사는 가족들도요. 그런데 의리 때문인지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

종이달 2022-05-09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슬람교를 따르는 중동에서는 발바닥과 신발 밑바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행위다. 과거 서양에도 발과 관련된 금기가 있었다. 여인의 맨발은 동침의 의미로 간주하여 금기시했다. 그래서 발을 그리고 싶은 화가들은 초월적 존재인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맨발을 그려 예술적 욕구를 대신 채웠다. 전설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이 무대 위에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춤을 추자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그때까지도 맨발은 금기였고 맨발을 보여주는 것은 스스로 창녀라고 선언하는 격이라 덩컨은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렸다.

 

 

 

 

 

 

 

 

 

 

 

 

 

 

 

 

 

 

 

 

 

 

 

 

 

 

 

 

 

 

맨발 한 번 그려서 곤혹을 치른 예술가들도 있었다. 카라바조는 길거리에서 만난 집시나 부랑자, 창녀의 초라한 모습을 성자나 예수의 모델로 삼았다.

 

 

 

 

교회 제단의 장식화인 『성 마태오와 천사』를 마감 기한 내에 완성했지만, 교회 측 인사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교회 측 인사들은 카라바조가 묘사한 성인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대머리 농부처럼 생긴 성인이 한쪽 발을 드러내놓은 자세가 불경스럽게 느꼈다. 하는 수없이 카라바조는 그림을 다시 그려야 했다. 카라바조는 항상 품 안에 칼을 지니면서 다녔고, 싸움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의 괴팍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거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교회는 수정된 그림을 받아들였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거절당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카라바조 이전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예수나 성인들의 맨발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예수』는 과감한 원근법을 이용하여 예수의 죽음을 묘사했다. 만테냐는 예수의 죽음을 종교적으로 미화하는 대신에 예수의 시체의 추함과 비통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예수의 양손과 양발에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이 보인다. 상흔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비극적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 만테냐의 원근법은 렘브란트의 『데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에서 재현된다. 해부된 시체의 모습이 만테냐의 죽은 예수를 닮았다. 다만 렘브란트는 해부용 시체의 양발을 크게 그렸다. 이때 당시 해부용 시체는 교수당한 죄인들의 몸만 가능했다. 데이만 박사가 해부한 시체 역시 살아있을 때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의 하찮은 몸은 예수의 죽은 몸과 흡사하게 표현되는 영광을 누렸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는 탕아 앞에 잔뜩 허리 굽힌 아버지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 표정에는 온화함이 묻어난다. 낮은 자에게 허리를 굽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세상을 향해 은혜를 베푸는 예수의 사랑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자세가 인상 깊어서 그런지,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탕아의 맨발을 유심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재산을 탕진한 채 돌아온 아들은 너덜너덜한 누더기에다 밑창이 다 터진 신발하며, 행색이 남루하기 이를 데 없다. 이 그림에 영감을 얻어 책을 쓴 헨리 나우웬은 탕아의 망가진 신발이 가난에 찌들어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보게 되면, 만테냐의 『죽은 예수』의 묘사가 덜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제단화 가운데 그림은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왼쪽에는 마리아가 실신하여 요한의 품에 안겨 있고,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오른편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긴 손가락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세례 요한의 손가락에 주목한 관람객들은 충격적인 묘사를 확인한다.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시체처럼 예수의 몸은 처참하다. 특히 커다란 못이 관통한 예수의 양발을 볼 것.

 

 

 

 

 

 

 

 

 

 

 

 

 

 

 

 

 

컴퓨터 모니터에 그림을 확대해서 보는 것보다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 1》의 도판을 보는 것이 좋다. 그 책에 예수의 양발을 확대한 도판이 있다. 그뤼네발트는 피를 흘리는 양발의 상처를 극대화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에로틱한 발》의 저자 윌리엄 로시는 발이 남근을 상징하는 이유가 생명의 원천인 대지, 즉 어머니와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쿠르베의 『목욕하는 여인』은 마네의 『올랭피아』만큼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비평가들에게 비난을 받은 그림이다. 그들은 목욕하는 여인이 여신이나 요정이 아니라 평범한 여자라는 점, 그리고 옷을 입은 여자가 음란하게 묘사되었다고 지적했다. 옷을 입은 여자는 한쪽 발만 버선을 신었다. 버선을 신지 않은 맨발에는 흙이 묻어 있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맨발을 사실적으로 그린 쿠르베가 의도적으로 에로티시즘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들 눈에는 흙이 묻은 여인의 발이 상당히 에로틱하게 느꼈던가 보다. 흙이 묻은 맨발을 그린 쿠르베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쿠르베는 자연을 ‘어머니의 대지’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의도가 담겨 있다면, 『목욕하는 여인』은 음란한 그림이라고 볼 수 없다. 쿠르베는 자신의 신념대로 목욕하는 천사가 아닌 목욕하는 여인을 사실적으로 그렸을 뿐이다.

 

 

 

 

 

 

 

 

 

 

 

 

 

 

 

 

 

 

요즘은 남녀노소 샌들을 신고 다닌다. 이제 샌들은 여름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샌들의 계절이 다가오기 전부터 피부 각질이나 무좀 흔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바닥 각질이 전체적으로 두꺼워져 허연 가루처럼 떨어진다. 발바닥이나 발가락 사이에 물집 형태의 무좀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발에서 나타나는 이런 신호들이 단지 청결하지 않아서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어머니들의 갈라진 발바닥은 한평생을 가족들의 바닥으로 살아온 거룩한 삶의 흔적이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다. 그들은 물집이 생기고, 발바닥이 갈라져도 아픔을 꾹 참은 채 생존의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 발은 에로틱하지 않다. 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숭고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곰곰 생각해서 발을 보시라.

 

 

 

※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s://www.wikiart.org/)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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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0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발바닥에 실 꼬맨 발보니..움찔했습니다.ㄷㄷㄷ

cyrus 2016-11-04 11:57   좋아요 1 | URL
그럴 수밖에요. ㅎㅎㅎ

표맥(漂麥) 2016-11-0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을 보여주는 것이 스스로를 창녀라... 이 비슷한게 길거리에서 머리를 풀고 있는 여인을 매춘부로 보는 문화도 있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cyrus 2016-11-04 11:58   좋아요 0 | URL
부정적인 금기와 관련된 대상을 살펴보면, 제일 많은 게 ‘여자’입니다. 여자에는 이렇게 하지 마라는 식의 금기는 남자들이 만든 거죠. ^^;;

stella.K 2016-11-04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유레카님 책에 저 사진이 있던가...? 잊고 있었다.ㅋ
알고보면 발이 참 많은 것들을 말해주긴 하지.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대벌이란 책에서
전족을 한 부인 발을 주인공이 좋아해서 밤이면
에로틱하게 만지곤 했다는 말이 생각났어.
그런데 실제로 전족한 발 보니 작아서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에로틱하다는 느낌은 못 받겠던데. 기형이잖아.


어렸을 땐 발이 나름 괜찮았는데 나이드니까 못 생겨지더라.
각질도 많고. 무좀도 좀 생기고.
에고, 불쌍한 내 발. 아껴줘야 하는데...ㅠ

cyrus 2016-11-04 15:50   좋아요 0 | URL
저는 발바닥에 땀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도 피부가 벗겨지고, 가려움이 심한 무좀에 걸리진 않아요. 하지만 겨울만 되면 각질이 잘 생겨요.

전족은 제 취향(?)은 아니에요. ㅎㅎㅎ 전족 때문에 작아진 발 사진을 보면
그저 아플 것 같다는 느낌만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