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대구 북클럽 레드스타킹 관련 소식을 전해 본다. 두 달 동안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하느라 글을 꾸준히 쓰지 못했다. 물론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었으며 독서 모임 활동(‘레드스타킹’, ‘우주지감’)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전혜은 선생님과 함께한 페미니즘 스쿨10월 말에 종강했다. 나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딱 하루만 결석했다. 복습을 꾸준히 하지 못했지만,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많아졌으니 언젠가는 그분들과 함께 다시 복습하는 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분들의 능력과 열정을 생각하면 페미니즘 스쿨 2’가 개강할 수 있다고 본다.

 

11월부터 레드스타킹 모임 요일이 변경되었다. 그동안 레드스타킹은 매주 월요일에 진행되었다. 사실 몇 달 전에 모임 요일 변경에 대한 논의가 나온 적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가 페미니즘 스쿨이 종강되고 난 후 나를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모임 요일을 바꾸기로 합의되었고, 이번 달부터 첫째, 셋째 주 금요일(2)에 모임이 진행되었다. 금요 모임의 장점은 모임을 길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임 종료 시간은 밤 10시다. 그러나 대화가 길어지게 되면 10시 조금 넘어서 모임이 종료될 때가 있다. 1020분부터 11시 사이의 시간은 대구 시내버스의 막차를 탈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먼저 자리에 일어서야 한다. 게다가 모임 다음 날이 출근하는 날이라서 모임 종료 이후에 가볍게 술자리를 가지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금요일은 모임하기에 딱 좋은 요일이다.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 11시까지 모임을 진행할 수 있고, 모임이 끝난 뒤에 술자리를 가질 수 있다. 아무튼 나는 금요 모임에 만족한다. 그런데 셋째 주 목요일에 우주지감 모임 날이 되는 달이 찾아온다. 그렇게 되면 이틀 연속 저녁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하지만 이틀 연속 독서 모임은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김보영, 김보화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서해문집, 2019)

    

 

 

2주 전 금요일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해일 앞에서>를 시청했다. 올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제8회 대구여성영화제에 공개된 전성연 감독의 작품이다. <해일 앞에서>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대학생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페미당당의 활동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모은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을 통해서 페미당당의 존재를 알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주의 정당을 만들고 싶어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페미당당은 여성주의 이슈와 관련된 퍼포먼스를 주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영화에서 나온 장면인데 가장 인상 깊은 퍼포먼스는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약물을 통한 임신 중절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낙태약 자판기였다. 자판기 속에는 젤리와 비타민, 먹는 임신 중절 약미프진(Mifegyne)을 설명하는 소책자가 들어 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일곱 달이 지났지만 미프진 도입에 대한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미프진은 국내에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다. 미프진 사용을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불법으로 유통되고 거래되는 미프진을 구매한다.

 

<해일 앞에서>는 페미당당이 퍼포먼스를 기획하는 과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모임 활동을 하면서 느낀 크고 작은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들려준다. 누구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외로움을, 또 어떤 이는 이성애 중심의 세상에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느끼는 고민을 안고 있다. 내 입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는 않지만(나는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호칭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 호칭을 비판하는 일부 페미니스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서 남들 앞에 내 자신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이라고 소개하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들이 느꼈을 외로움이 어떤 건지 이해한다.

 

내 여동생은 내 방을 가끔 드나드는데, 내가 구입했거나 도서관에 빌린 페미니즘 책을 보면 항상 오빠는 진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네라고 말한다. 그 말의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대견스러워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게(또는 신기하게) 느껴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부담스럽다. 다행히도 동생은 내가 어떤 이유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인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난감하다. 진지하게 설명하기도 귀찮고,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내 독서의 목적을 이해해줄리 만무하다. 나는 건성으로 요즘 같은 시대에 페미니즘을 모르면 안 되잖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외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페미니스트들과의 관계가 각별하면서도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고, 페미니스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생활을 선호하게 된다. 물론 페미니즘 공동체 생활에 항상 웃음 가득한 날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도 인간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하다가 얼굴이 붉혀질 수 있고, 다른 멤버의 활동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또 단합이 잘 되는 공동체 생활에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멤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해일 앞에서>는 페미니즘 공동체 생활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페미니즘 공동체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간에 멤버들이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거나 심각할 정도로 다함께 고민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 멤버 각자가 느꼈을 크고 작은 불만은 계속 누적될 수 있다가끔은 이런 불만들을 울다가 웃으면서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

    

 

 

 

 

 

 

 

 

 

 

 

 

 

 

 

 

*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문학동네, 2014)

* [품절]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들녘, 2003)

*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이번 주 금요일부터 페미니즘 문학 작품을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읽는다. 그 작품은 바로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빌러비드. 언젠가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절호의 기회가 왔다. 오랜만에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들춰봤다. 이 책은 빌러비드를 포함한 토니 모리슨의 소설들을 언급하고 있다. 예전에 절판된 가장 푸른 눈을 알라딘 서점에 구입했다. 1970년에 발표된 가장 푸른 눈은 백인 문화 중심의 인종차별과 친족 성폭력에 의해 정서적으로 파괴되어가는 열한 살짜리 여주인공의 비극을 그린 토니 모리슨의 첫 번째 소설이다. 지난주에 빌러비드를 읽기 전에 가장 푸른 눈을 먼저 읽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토니 모리슨의 문학 세계에 서서히 적응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 절판된 점이 아쉽다. 내년이면 가장 푸른 눈출간 50주년이다. 이 책이 국내에 재출간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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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9-11-1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cyrus 2019-11-20 23: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blanca 2019-11-1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틀 연속 독서모임은 나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대목이 왜 이리 부럽고 근사한지... 흑인 여성의 페미니즘은 더 다층적이고 복합적일 것 같아요. 굉장히 의미 있는 독서모임이 될 것 같습니다.

cyrus 2019-11-20 23:30   좋아요 0 | URL
복습하는 차원에서 작년에 읽은 책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2019-11-19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1-20 23:32   좋아요 0 | URL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서 그 일과 관련된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저는 <가장 푸른 눈>에 슬픈 장면들이 많이 보였어요. 기회가 된다면 이 책으로 독서 토론을 하고 싶어요.

stella.K 2019-11-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야.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 어렵구나. 그렇다면 난 일단 보류...ㅋ
남자가 페미니즘에 관심있으면 멋져 보이던데 왜 그런 생각을 하나?
어깨 피라구.ㅎㅎ

cyrus 2019-11-20 23:34   좋아요 0 | URL
처음에 소설이 잘 읽혀지지 않아서 소설 속 인물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조금 힘들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주부터 읽을 걸 그랬어요. 내일 모레가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인데, 오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ㅎㅎㅎㅎ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철학자이다. 혹자는 그녀의 글이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녀의 이론을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한다. 하지만 버틀러가 글을 어렵게 쓰는 이유가 있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문학과지성사, 2015)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6)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한국학술정보, 2007)

* 사라 살리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앨피, 2007)

* 조현준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 2014)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 김은주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봄알람, 2017)

*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행성B, 2018)

 

 

 

버틀러는 명료하면서도 확정적인 문체에 느껴지는 권위성을 경계한다. 권위적인 문체는 진리를 뚜렷하게 드러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론도, 글도 간결하고 명료하게 쓸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는 철학 명언에 따르면 어떤 사실 또는 진리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설명은 면도날로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진리를 명확하게 선포한 권위적인 문체가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 또 다른 진리(를 설명하는 문체)가 나올 가능성을 방해한다.

 

버틀러는 권위적인 문체가 반복과 인용을 통해서 규범이 되고, 더 나아가 규범은 권력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글로 표현된 자신의 입장이 규범과 권력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문장을 어렵게 쓴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쥔 사람들은 버틀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의 글을 잘라내려고(무시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오컴의 면도날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진리의 문체를 이론이나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명료한 글이나 진리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면도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그들의 행보는 권위적이면서도 폭력적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쥔 자들은 버틀러의 글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녀의 글에 어디부터가 불필요한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틀러의 글쓰기 방식은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는 오컴의 면도날을 조롱하고 저항하는 탈권위적인 글쓰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녀의 글이 읽기 어렵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읽기 힘들고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힘든 글은 버틀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들도 난감하게 만든다. 버틀러는 지금도 학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칼럼과 책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버틀러의 책 몇 권이 있다. ‘레드스타킹 페미니즘 스쿨전임 강사로 초빙된 전혜은 선생님의 증언에 따르면 어떤 역자가 번역을 착수했으나 끝내 출판하지 못한 버틀러의 책이 있다고 한다.

 

 

 

 

 

 

 

 

 

 

 

 

 

 

 

 

* [품절] 주디스 버틀러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 2003)

 

 

 

버틀러의 글과 책은 젠더와 퀴어를 연구한 사람이 번역해야 한다. 젠더와 퀴어에 문외한 역자가 버틀러의 글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 최악의 사례를 보여준 책이 있으니 그 책은 바로 절판된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이다. 원제는 <Bodies That Matter>이다. 이 책은 젠더 트러블(문학동네)젠더 허물기(문학과지성사)를 이어주는 중요한 버틀러의 전기 저작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섹스와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버틀러의 논의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전혜은 선생님은 이 책을 최악의 번역본이라고 언급했다. 버틀러 전공자가 확인 사살’을 했으니 번역본을 읽을 필요가 없고, 중고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조현준 교수가 쓴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성문화이론연구소),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한국학술정보),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를 사서 읽었다. 이것 말고도 버틀러의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들 몇 권이 나와 있으나 그 책들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버틀러의 문장을 오독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과 버틀러가 책에서 언급한 개념을 잘못 설명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 내용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수업 내용을 지식재산권을 가진 전혜은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내가 함부로 인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페미니즘 스쿨에서 배운 버틀러와 관련된 내용은 전혜은 선생님이 쓰고 있는 책에 나올 예정이다.

 

주디스 버틀러에 대한 개론서 중에 읽을 만한 것을 추천하라고 하면, 나는 그 부탁을 정중히 거부할 것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책을 여러 번 봐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론서도 어렵다. 개론서는 버틀러에 입문한 독자와 버틀러를 많이 공부한 독자들이 잠깐 기댈 수 있는 임시 보조대일 뿐, 영원히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든든한 지지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개론서가 읽기 어렵다고 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일단 시도해봐라. ‘버틀러 혼자 읽기버틀러 독학보다는 버틀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전공자라든가 버틀러를 공부한 대학원생과 함께 읽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버틀러의 책은 혼자서 맨땅에 헤딩을 하는 심정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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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9-09-24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어려운 문장이라도 그 속에 다채로운 사상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거겠죠. 중언부언으로 번잡하고 애매함만 있는 거면 결국 사상이 빈곤한 거고요.

cyrus 2019-09-25 16: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채로운 사상이 들어있는 문장은 어려워 보여도 계속 읽어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9-09-25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유로 어렵게 쓰는 사람도 있군요. 저는 확신할 수 없거나 자신 없는 글을 쓸 때 ~~ 한 것 같다, 라든지 ~~ 라고 생각한다, 로 씁니다. 내 생각이 맞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죠.
어떤 때는 ‘사견‘이라고 덧붙이기도 하죠. ㅋ

cyrus 2019-09-25 16:1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어떤 의견을 말할거나 글로 쓰기 전에 신중해야 돼요. 정말로 애매한 내용은 언급을 안 하려고 해요. ^^;;
 

 

 

 

지난달 마지막 주 월요일(826)페미니즘 스쿨이 휴강하는 날이었다. 특별히 이날에 레드스타킹이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되어 청년인문상상프로젝트 기자단과 인터뷰를 했다.

 

 

[인문상상 인터뷰] 대구 청년들의 페미인문스쿨! ‘레드스타킹인터뷰!

https://blog.naver.com/korea-humanist/221636576950

 

 

나는 일부러 늦게 인터뷰에 참여하려고 생각했었다. 나보다 먼저 인터뷰 진행 장소(카페 스몰토크)에 도착한 멤버들이 인터뷰어의 (수준 높은) 질문들에 잘 응해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인터뷰 진행 장소에 도착해보니 인터뷰가 시작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자기소개를 했다.

 

인터뷰에 응하기 전에 기자단이 만들어서 보내준 예상 질문들을 확인했다. 그 중에 제일 마지막 질문이 압권이었다.

 

 

레드스타킹팀에게 인문이란 무엇인가요?

 

 

멤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온 분들이 있었다. 혹시나 내게 이 질문이 올까 봐 대답할 말을 생각해봤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블로그(위에 있는 링크를 참조할 것)“‘레드스타킹팀에게 인문이란 무엇인가요?”에 답변한 레드스타킹 멤버 1’은 나다. 기자단 중에 인터뷰 내용을 노트북으로 속기한 분이 있었는데, 내가 한 말을 정확하게 잘 썼다.

 

 

 

 

 

 

 

 

 

 

 

 

 

 

 

 

* 마틴 푸크너 글이 만든 세계(까치, 2019)

 

 

 

인문학의 인문(人文)은 인간()과 글()이 합쳐진 단어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인문의 뜻은 인류의 문화. 문화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오래된 문화는 기록 문화.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 마틴 푸크너(Martin Puchner)는 이야기를 하는 행위(storytelling)와 글쓰기(writing)가 교차하는 문화가 탄생하면서 문학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이렇듯 인문학의 역사가 글쓰기라는 문화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글쓰기에 중점을 둔 인문의 의미를 제고해보고 싶었다. 책을 읽은 다음에 곰곰이 생각해서, 생각한 것을 글로 기록하면 나의 내면을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까? 그게 바로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기록에 초점을 맞춘 인문학은 나 혼자 묻고 답하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이런 인문학은 자신의 삶에만 몰두하는 고상한 개인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나와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나는 인문(人文)인문(人問)으로 바꿔서 써보고 싶다. 인문의 은 기존의 인문학에서 요구하던 자성과 성찰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는 행위를 뜻한다. 기존의 인문학은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쓰는 행위가 있는 학문이라면, 인문학(人問學)은 내가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상식과 진리를 의심하고 점검하는 학문이다. 대부분 글은 내가 생각한 것은 이렇다’, ‘나는 ~을 이해했으며 충분히 ~을 알고 있다라는 식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질문을 할 수 있다. 질문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정직한 질문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진리를 부드럽게 하거나 산산조각 나게 만든다.

 

 

 

 

 

 

 

 

 

 

 

 

 

 

 

* 김보영, 김보화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서해문집, 2019)

 

 

 

페미니즘이 인문학(人問學)이라고 하면 섣부른 확신을 배제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 절대 부동의 진리는 없다. 진리에 반기를 들고 비판하는(받는) 과정도 공부다. 다만 즐거운 공부가 되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만 하는 공부는 따분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페미니즘을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까?

 

국내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그들의 진솔한 생각을 담은 책인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서해문집)에 퀴어 페미니즘 운동 그룹 페미몬스터즈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인터뷰에 응한 페미몬스터즈 멤버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뷰어 질문) 같이 살아가고 있는 페미니스트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요?

 

이 운동이 우리에게 즐거운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페미니즘을 만나는 건 자기가 깨지는 경험이기도 하잖아요.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인데, 그게 자신을 병들거나 낙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즐겁게 하는 거였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38,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임)

 

 

 

자기가 깨지는 경험은 어떠한 진리와 상식을 머리와 가슴속에 품고 살아온 를 깨뜨리는 경험이다. ‘를 조금씩 깨뜨리기 시작할 땐 아프다. 그러나 한번 깨지고 나면 머리와 가슴속에 있던 오래된 진리와 상식이 말끔하게 비워지기 때문에 상쾌하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자기가 깨지는 경험은 나 혼자서 할 수 없다. 반성의 글을 쓴다고 해서 그 마음이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글 쓰는 행위만 가지고는 나를 깨뜨리기 힘들다. 남의 손을 빌려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 모임에 참여해서 여러 사람과 함께 즐거운 공부를 해야 한다. ‘즐거운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활발한 모임 분위기와 크고 작은 질문과 다른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는 훌륭한 멤버들이 있어서 나는 2년 동안 레드스타킹 독서 모임에 참석해왔고, 페미니즘 스쿨을 시작할 수 있었다.

 

레드스타킹인터뷰는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이 어떠한 모임인지 잘 보여주는 기록이다. 레드스타킹이 궁금한 분이라면 이 인터뷰를 참고하셔도 좋다. 이 인터뷰에 참여한 분들은 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열혈 멤버이고, 나보다 더 오랫동안 여성학을 공부한 페미니스트다.

 

인터뷰 내용에 글을 작성한 기자단의 실수로 보이는 오류가 있다. 레드스타킹을 소개하는 내용 중에 지난해 10 팀 이름을 레드스타킹으로 지었다라는 문장이 있다. 모임 명인 레드스타킹은 지난해 10월이 아니라 201710부터 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Trivia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의 인터뷰이로 참여한 페미니즘 모임 중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모임이 있다. 줄여서 나페라고 부른다. 대구에서 레드스타킹보다 오랫동안 활동한 페미니즘 모임이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다 보니 페미니즘 강연이나 행사에 참석하면 나페멤버들을 자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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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6 18:03   좋아요 0 | URL
그럼요. 집에서 푹 쉬었습니다.. ㅎㅎㅎ 유레카님은 추석 잘 보내셨어요? ^^
 

 

 

 

7월 22일 월요일

세 번째 강의. 퀴어와 장애의 교차

 

 

 

 

 

[레드스타킹 페미 스쿨] https://cafe.naver.com/redstocking

 

 

 

‘병리화’는 참으로 생소한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단어이기도 해요. 예전에 책을 읽다가 ‘병리화’라는 단어를 몇 번 보곤 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전혜은 선생님은 병리화의 정의를 ‘정상성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제’라고 말했습니다.

 

정상성을 생산하고 강조하는 병리화는 건강을 ‘정상’으로, 질병과 장애를 ‘비정상’으로 구분 짓게 만듭니다. 건강한 몸이 정상성의 기준이 되는 순간, 아픈 몸과 장애인의 몸은 각각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몸’, ‘결핍된 몸’으로 취급받습니다. 병리화는 환자와 장애인을 ‘불행의 아이콘’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병리화는 그들에 대한 결함, 오류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하는 혐오를 재생산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병리화, 즉 정상성을 해체하는 작업은 결국 ‘정상적인 몸’과 ‘병리적인 몸’을 구분하게 만드는 위계 체계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병리적인 몸’으로 규정된 몸은 그 몸의 실제 경험과 관련 있는 섹슈얼리티도 병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리화된 장애 여성은 섹슈얼리티를 탐색하고 실험할 계기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혜은 선생님이 번역한 앨리슨 케이퍼(Alison Kafer)의 글 『욕망과 혐오: 추종주의 안에서 내가 겪은 양가적 모험』은 일종의 금기가 되어버린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앨리슨 케이퍼는 장애학과 퀴어를 연구하는 여성학자이며 장애인입니다. 이 글의 제목에 나오는 추종주의“신체 절단 장애 여성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비장애인은 추종주의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된 순간 “뭐야? 이상해. 변태 아니야?”라는 반응할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케이퍼는 추종주의자를 ‘변태’라고 규정하는 반응을 의심합니다. 만약 절단 장애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을 ‘병리화’하여 부정하게 된다면, 절단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마저도 부정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장애 여성은 무성적 존재로 간주되고 맙니다. 케이퍼는 절단 장애 여성들의 동의 없이 그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공개하고, 심지어 스토킹하는 일부 추종주의자들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추종주의자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가 절단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케이퍼는 이 『욕망과 혐오』라는 글에서 추종주의에 대한 자신의 양가적 반응을 솔직하게 밝힙니다. 그녀는 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추종주의와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으로 비유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비유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유래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아시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더(Alexandros) 대왕은 이 매듭을 푸는 대신에 칼로 매듭을 잘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케이퍼는 추종주의라는 매듭을 자르지 않습니다. 추종주의에 대한 양가적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천천히 매듭을 풀어나갑니다.

 

만약 제가 케이퍼의 글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추종주의를 알게 되었다면, 저는 알렉산더 대왕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추종주의는 장애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거야. 그건 문제가 있어’라고 부정적으로 단정 지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떤 복잡한 문제를 단순 명쾌하게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린 저 알렉산더 대왕처럼 말이죠. 하지만 케이퍼가 생각했듯이 추종주의가 얽힌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아주 복잡하며,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쉴라 제프리스 《코르셋》 (열다북스, 2018)

 

 

 

사실 제가 추종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도록 영향을 준 책이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코르셋》(열다북스)입니다. 트랜스 여성을 배제하는 제프리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남성의 눈요기를 위해 여성의 몸이 훼손되는 행위(SM, 피어싱)‘유해 문화’라고 보는 입장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케이퍼의 글을 읽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절단된 몸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마저 ‘유해 문화’로 단순하게 규정해버린다면 추종주의도 유해 문화가 되고, 절단한 몸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병리적인 욕망’으로 남게 됩니다. 결국 신체 절단 행위를 비판하는 제프리스의 주장은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오류를 피하지 못합니다.

 

 

 

 

 

 

 

 

 

 

 

 

 

 

 

 

 

* 전혜은, 루인, 도균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여/성이론 통권 제39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서로 상반된 입장으로 나누어지는 페미니즘 논제에 접근할 때 알렉산더 대왕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되지 않으려면 양쪽 입장 중에 한쪽을 선택해서 (그 입장이 옳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양쪽 손을 동시에 잡아’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고민하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부 방식이 혜은 선생님이 말한 ‘교차성을 사유하기 위한 기본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후기를 빌어서 케이퍼의 글을 번역하신 혜은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번역한 케이퍼의 글 일부는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 수록된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글쓴이: 전혜은)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전문은 《여/성이론》 제3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페미 스쿨 커리큘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케이퍼의 글을 꼭 읽어보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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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어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의 말을 했었죠.

 

 

“신체 장애인들보다도 더 한심한 사람들은…‥ 아,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더 우리가 그 깊이 생각해야 될 사람들은 정신 장애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말 하는 것 보면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 장애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까지 우리가 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처]

 

 

이 대표가 ‘정신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정신 장애인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구분 지어서 정치인을 비판하는 발언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 장애인을 ‘포용하기 쉽지 않은 존재’로 규정한 이 대표의 생각은 장애인을 배제하는 인식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두 달 전에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로 비유했습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의 행보(자기 생각과 다른 국민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가 문제 있다면 의학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을 놓고 정치권에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만, 그녀의 발언을 두둔하는 네티즌들도 있었습니다.

 

이 대표와 김 의원은 각각 장애인과 환자를 ‘정상과 거리가 먼 사람’, ‘무능력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 설정하여 정치인을 비판했습니다. 두 사람의 발언은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과 만성 질환 환자를 ‘병리화(pathologizing)하여 그들의 비정상성, 결함, 오류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하는 ‘장애 혐오’를 재생산하게 만듭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진행된 페미니즘 스쿨 세 번째 강의 주제 중 하나가 ‘병리화’였습니다. 병리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 단어를 종종 보곤 합니다만, 이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전혜은 선생님은 병리화의 의미를 아주 쉽게 설명했습니다. ‘정상성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제’라고요.

 

과거에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습니다. 1990년에 동성애를 질병 분류 목록에 제외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동성애를 ‘정신 질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은 동성애를 질병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성애 혐오를 부추깁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받은 동성애자는 탈동성애자로 ‘치유’될 수 있다면서 ‘전환치료’를 주장합니다. 동성애자를 질병으로 병리화하게 되면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l: 이성애)이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사랑’으로 낙인찍히는 거죠. 장애 문제를 병리화하는 것은 성소수자 배제의 논리와 비슷합니다.

 

 

 

 

 

 

 

 

 

 

 

 

 

 

 

 

 

 

*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동녘, 2019)

 

 

 

 

정상성을 강조하는 병리화는 건강과 질병을 각각 ‘정상 대 비정상’으로 구분 짓게 만듭니다. 건강한 몸이 정상성의 기준이 되면, 아픈 몸은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면 일어날 수 있는’ 몸으로 취급받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지속되면 우리는 질병 문제의 원인을 사회가 아닌 개인에서 찾게 됩니다. 그리고 병리화는 환자를 ‘불행의 아이콘’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라는 부제가 달린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는 건강이 ‘성공적인 자기 관리’의 기준이 된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아픈 몸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나는 삶의 방식을 제안합니다. 몸이 아픈 것이 곧 불행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며, 아픈 사람은 그 불행을 극복할 힘을 가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피터 콘래드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후마니타스, 2018)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문화는 정상, 건강에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 사람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기준을 내세운다는 명분상의 우위를 점하면서 자신과 타자를 구분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타자에게 무언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성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비정상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치료적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인간의 유형, 습관, 행동, 특성, 성향들을 ‘병리화’하여 수많은 진단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후마니타스)는 기존에는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들이 치료받아야 하는 의학적 문제로 규정 받는 ‘의료화(medicalization) 현상을 다룬 책입니다. 과잉 병리화와 과잉 의료화를 별다른 생각 없이 수용하게 되면, 장애인과 환자, 성소수자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남아 비인간화됩니다. 병리화는 타자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 개인의 삶을 제대로 보고, 각각 개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그/그녀들을 타자화하지 않게 만듭니다.

 

 

 

 

[출처] [이해찬, 장애인 앞에서 ‘장애 비하’ 발언 논란] (프레시안, 2018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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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9-07-25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때 아프다고 할 때마다 안 받아들여지거나 심하게 혼나기도 해서 ‘아픈 것‘ 자체가 나쁜 줄 알고 아파도 참고, 친구들이 아파서 학교를 조퇴하거나 양호실을 가면 그래도 되나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픈 건 나쁘기 때문에 어떤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 했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아니더라구요.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픈 건 당연하고, 아프면 쉬어야 하고 그렇더라구요. 아픈 것 역시 정상인거죠. 사실 정상, 비정상 개념 자체가 무섭긴 하지만요.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많은데, 그 각각의 존재 자체가 다 특별하고 다름을 어떻게 한 두가지 잣대로 범주화 할 수 있을까요.

cyrus 2019-07-27 10:35   좋아요 0 | URL
아픈 몸은 ‘노동을 할 수 없는 몸’, ‘나태한 몸’으로 연상되기 때문에 부정적 낙인으로 찍히기 쉬워요.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은 조퇴, 결근, 생리 공결, 출산 휴가 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죠. 아프다는 핑계를 내세워 일을 적게 하면서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정말 비양심적인 사람들도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이유만 가지고 휴식 차원에서 일을 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9-07-2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이 발달하면서 개인은 몸의 주체성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나처럼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9-07-27 10:38   좋아요 1 | URL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의사들이 ‘질병’으로 분류하게 되고, 여기에 제약 회사들이 가세해서 약을 만들어 팔아요. 이런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아픈 사람들은 병원 치료나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됩니다.

Conan 2019-07-27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주째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으며 휴가와 복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 스스로에대한 무력감과 동료에대한 죄의식이 생기더군요... 주변의 부정적 인식도 있구요...

cyrus 2019-07-29 16:46   좋아요 1 | URL
Conan님이 느낀 그 심정, 저도 이해합니다. 우리나라는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작업 환경과 근로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몸이 아프면 무조건 일을 그만두어야 하죠. ㅠㅠ

2019-07-27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9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9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