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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를 드릴까요, 아니면 포도주를 드릴까요?”

수잔나가 웃으며 물었다.

 

(안톤 체호프, <진창> 중에서, 사랑에 관하여37)




만약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술과 책을 파는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이라면 처음 온 손님을 향해 방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보드카(vodka)를 드릴까요, 아니면 보드빌(vaudeville)을 드릴까요?”



보드카는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만들어지는 술이다. 보드빌은 술 이름이 아니다. 보드빌은 코믹한 연극 장르를 뜻한다. 소극(笑劇)과 비슷하다


체호프가 따라주는 보드카는 그의 중기 작품에 해당한다. 이때 작품 분위기는 대체로 어두운 편이다. 체호프의 중기 작품 속 인물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친다. 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 안톤 체호프, 하비에르 사빌라 그림, 이현우 옮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문학동네, 2016)

 

* 안톤 체호프, 오종우 옮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 안톤 체호프, 안지영 옮김 사랑에 관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체호프의 단편소설과 희곡을 즐겨 읽는 독자는 보드카에 익숙하다체호프가 직접 종이에 증류한 보드카는 스테디셀러다독자들이 즐겨 마시는 체호프의 보드카는 1898년산 중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 안톤 체호프, 이영범 옮김 체호프 유머 단편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 오종우 체호프의 코미디와 진실(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체호프의 보드빌은 젊은 시절 체호프가 쓴 코믹한 단편 소설, 그리고 체호프가 코미디 극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쓴 극 작품들이다체호프는 죽기 전에 코믹한 희곡을 썼다. 하지만 연출가와 비평가들은 체호프가 쓴 코믹한 희곡을 단순하게 ‘드라마(drama)’로 이해했다. 체호프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불만을 표출했다. 아니, 내가 쓴 작품은 분명 코미디인데 극장 포스터와 신문 광고에서는 왜 자꾸만 ‘드라마라고 부르는가? 아마도 연출가들은 내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김규종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 (시공사, 2010)

 

안톤 체호프이주영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 1: 단막극》 (연극과인간, 2002)




이번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참가작인 창작 집단 진창 <청혼 소동>체호프의 보드빌 <청혼>을 각색한 공연작이다원작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늙은 지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지주의 딸, 그리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소심한 지주. 










연극은 원작과 다르다. 연극 속 지주는 고인이고, 허영심이 강한 지주의 아내가 나온다. 소심한 지주는 몸이 허약한 총각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는 너무 소심해서 지주의 아내에게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지 못한다. 다행히 지주의 아내는 소심한 지주와 딸의 결혼을 허락한다. 그런데 소심한 지주와 지주의 딸은 크게 다투는 관계가 돼버린다. 두 사람은 영지가 자신의 가문이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지 소유권을 둘러싼 두 사람의 분쟁에 지주의 아내까지 합세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주의 아내는 딸의 편을 든다. 하지만 딸은 소심한 지주가 자신에게 청혼하러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다. 그녀는 지주에게 화해하고,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소심한 지주와 딸은 아무것도 아닌 문제 때문에 또 한 번 싸운다. 이번에는 각자가 소유한 개가 얼마나 좋은 품종인지 서로 비교하면서 따진다. 두 남녀의 설전은 집안싸움으로 크게 번진다.


모녀와 소심한 지주를 연기한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은 과장되어 있고 우스꽝스럽다. 그들은 대화 도중에 은어(隱語)와 비속어를 내뱉는다. 지주의 딸은 자신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한다. 체호프의 코미디가 생소한 관객은 웃음을 유발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관객이 있다면 체호프의 보드카맛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청혼 소동>보드빌이다. 체호프의 보드빌은 오로지 코믹한 상황을 보여준다. 보드빌은 거리에 공연되는 오락적 성격을 띤 소극이다. 민중의 입말은 배우들의 대사가 되고, 배우들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른. 따라서 보드빌은 민중 친화적인 통속극이다. 실제로 체호프는 이런 보드빌을 쓰려고 했다. <청혼 소동>을 만든 연출자와 배우들은 체호프의 보드빌을 제대로 이해했다.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는 관객들을 웃게 했다.


체호프는 희곡과 소설을 쓸 때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관객과 독자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애썼다. 체호프에게 연극은 우리 삶의 진실을 묘사한 이야기다. 그의 보드빌은 희로애락이 농축되어 있다










<청혼 소동>인생의 희로애락과 (연출가) ‘천정락을 모두 담아낸 연극이다무대 한가운데에 죽은 지주의 얼굴이 나온 사진이 걸려 있다사진 속 얼굴의 정체는 연출가 천정락이다사진은 올해 1월 중순에 공연된 <진창>에 사용된 소품이다연출가 천정락은 <진창>에 열연했다. 천정락도 락()이다웃음을 좋아한다면 체호프가 따라주는 보드빌 한 잔, 맛보길 권한다.







Trivia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검은 옷을 입은 수도승 두 명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혹시 창작 집단 진창이 다음에 선보이게 될 공연작을 예고한 것일까? 












 




* 안톤 체호프, 석영중 옮김 지루한 이야기(창비, 2016)



체호프의 중편 소설 <검은 수사>(검은 옷의 수도사)는 연극으로 자주 각색되는 작품이다. <검은 수사>검은색보드카라고 할 수 있는,숨은 걸작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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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6-16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처럼 연극에도 숨은 그림, 단서를 심어 놓나봐요. ^^ 수도사 두 분이 예고편이라니 재미난 해석인데요

cyrus 2024-06-17 07:02   좋아요 1 | URL
연극이 시작되는 부분이 아무리 생각해도 <청혼 소동>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고, 그 장면을 보자마자 검은 수도사가 먼저 생각났어요. 제 견해가 틀릴 수 있어요. 연극 도입부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해요. ^^
 





가까이서 보면 희곡멀리서 보면 연극


No. 4








원작 고연옥

연출 정창윤

제작 열혈단

 

<출연진>

청년: 강대현

여자: 전소영

알리: 이영찬 [주]

수나: 김주은

남자: 임도연

오마르: 성창제

시린: 유이수

아만다: 이주현

라일라: 곽수민 [주]

무함마드, 이브라힘: 박지훈 [주]







바로 그때 젊은 왕 길가메쉬가 깨어났다‥…. 그의 눈‥… ‥…! ‥…!


‥…‥…


내가 다시 예전의 나처럼 내 어머니 닌순의 무릎 위에 

앉을 수 있을까?‥…

 

누딤무드 신이 그에게 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중에서, 김산해 옮김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321~322)




고대 그리스 신화에 묘사된 죽음의 신잠의 신은 쌍둥이. 둘 중 먼저 태어난 형이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 고대 그리스인들은 잠을 죽음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잠의 신 히프노스(Hypnos)작은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재미있게도 고대인들은 히프노스를 형보다 늙은 모습으로 묘사했다노인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요, 죽음의 신과 가장 가까이에 서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김산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국내 최초 수메르어 · 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휴머니스트, 2020)




큰 죽음과 작은 죽음을 가깝게 맞닿은 관계로 인식했던 고대인들의 생각은 서아시아 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이야기들보다 더 오래된 고대 수메르(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근원지, 이라크의 남부 지역에 해당한다) 신화. 주인공 길가메시(Gilgamesh)는 필멸의 운명을 맞게 되는 영웅이다. ‘길가메시수메르어로 늙은 영웅을 뜻한다. 영원한 젊음을 얻지 못해 결국 늙어서 죽게 되는 영웅의 최후를 암시한다.


길가메시의 아버지는 수메르의 도시 국가 우르크(Uruk)를 다스린 왕이었으며 어머니는 들소의 여신 닌순(Ninsun)이다.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3분의 2는 신, 3분의 1은 인간이다. 죽음이 두려운 영웅은 불로초를 얻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낸 불로초를 끝내 놓쳐버리면서 길가메시의 모험은 실패로 끝난다. ‘탄식의 침상에 누운 길가메시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작은 죽음을 느낀 길가메시는 절망에 빠진 채 큰 죽음을 받아들인다.


만약 죽기 직전에 꾸는 생애 마지막 꿈은 어떤 내용일까? 꿈속에 과연 누가 나타날까? 길가메시처럼 큰 죽음을 맞기 전에 작은 죽음을 꿈꾸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 피터 브룩, 이민아 옮김 《빈 공간》 (걷는책, 2019)




영국의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Peter Brook)일상에서 만약은 허구이자 회피라고 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상상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일은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하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다그렇지만 연극에서 만약은 대단히 좋은 의미. 피터 브룩은 만약’이 허용된 연극이 실험적이며 진실에 가깝다고 했다. 진실이 담긴 연극을 보는 관객은 무대 위에 펼쳐진 이야기가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다. 관객은 연극 속에 있는 진실을 확인한 순간, 그것을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연극과 삶은 하나(피터 브룩, 《빈 공간》 중에서, 277쪽)가 된다.






 












* [절판] 고연옥 《고연옥 희곡집 3》 (연극과인간, 2020)




만약 테러 집단 IS 대원이 자신의 품속에 있는 폭탄을 스스로 터뜨리기 전에 최후의 꿈을 꾼다면 그 꿈은 어떤 내용일까? 고연옥의 희곡 <인간이든 신이든>테러 집단 IS 대원이 된 청년이 죽기 전에 꾸는 꿈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인간이든 신이든>이 수록된 고연옥 희곡집 3은 2020년에 출간되었다이때까지만 해도 <인간이든 신이든>은 아직 공연된 적이 없는 희곡이었다. 2021년에 연출가 김정과 ‘극단 프로젝트 내친김에가 만든 <인간이든 신이든>이 서울 대학로 선돌 극장에 초연되었다이듬해에 선돌 극장에서 두 번째로 무대에 올랐으며 이번 달 17일부터 19일까지 대구 극단 열혈단이 올해 첫 공연작인 <인간이든 신이든>을 한울림 소극장에 선보였다.







<인간이든 신이든>꿈속의 집에 혼자 있는 청년의 대사로 시작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청년 역을 맡은 강대현 배우가 

무대 위에서 잠자는 연기를 하고 있다.




청년(강대현 역)은 엄마(전소영 역)를 증오한다. 그는 스스로 실패한 인간으로 여긴다. 현실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열등감과 좌절감을 씻어내려고 답답한 현실에서 도피한다. 청년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을 가진 초인이 되는 꿈을 꾼다.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어서 위대한 신에게 선택받은 IS 전사가 된다. 엄마는 집을 떠난 아들을 찾으러 위험천만한 분쟁 지역으로 향한다. 분쟁 지역의 하늘 위에 폭탄 비가 내리고, 지상에 지뢰밭이 무수히 깔려 있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은 죽음에 너무 가까이에 있다. 엄마는 죽음을 무릅쓰면서 인간 폭탄이 된 아들을 다시 만나려고 한다.


고연옥의 희곡은 신화라는 허구와 현실이 만나면서 포개진다<인간이든 신이든>의 청년은 완벽한 영웅이 되려고 했으나 인간으로 죽게 되는 현대판 길가메시. 청년은 꿈속의 집에서 엄마를 만나지만, 자신을 만나러 온 엄마의 진심을 거부한다청년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와 같이 살아야 하는 집이 아니다청년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반사회적 인물로 지목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비난이다그렇지만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청년을 너그러이 안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엄마다. 죽음 직전의 꿈에서 깬 길가메시가 어머니 닌순의 포근한 무릎을 그리워했듯이 청년은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모든 말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엄마의 포근한 진심을 그리워한다. 꿈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알지 못해 계속 멀어져야만 했던 모자는 인간적인 죽음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마주 본다서로를 찾아 나선 모자의 위태로운 모험은 조용한 포옹으로 마무리된다. <인간이든 신이든>은 관객에게 (을 믿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연극의 질문에 화답하는 관객은 극이 전달하려는 소중한 진실즉 나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 이영찬, 곽수민, 박지훈은 극단 폼소속 배우들이다. 세 사람 모두 3월 말에 공연된 대구 더파란 연극제 공연작 <죽음의 집>에 출연했다.


<죽음의 집> 공연 감상문

[죽은 자는 말이 많다(Dead man talking)] 

2024년 325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5407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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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이 5월 중턱을 훌쩍 넘어섰다. 미리 다음 달 주말 일정을 짠다. 한 달에 관람하는 연극 공연은 많아야 두 편이다. 평일 저녁 공연보다 주말 공연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6월에 어떤 연극 공연을 하는지 두루두루 살펴봤는데, 주말에 봐야 할 연극 공연이 세 편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많은데‥…. 연극 한 편 다 보고 난 후에 연극 감상문을 쓰는 것이 아직은 벅차다. 작년에 본 연극 중에 감상문을 남기지 못한 연극은 총 네 편이었다. 연극 감상문은 최대한 빨리 써야 한다. 차일피일하면서 미루면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이 희미해진다. 망각이 연극을 봤던 날에 대한 모든 기억을 다 집어삼키면 글을 쓰지 못한다. 다음 달에 네 편의 연극을 다 보고 네 편의 감상문을 쓰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내가 짠 ‘6월의 플레이리스트(Playlist, 연극 리스트)’는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 솔직히 욕심이 난다. 연극을 제대로 보는 안목을 키우려면 공연을 많이 보고, 공연을 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1막


 철학극장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5월 30일 ~ 6월 9일, 을지극장

68일 토요일 공연 예매했음







철학극장연극으로 철학 하기라는 신조를 표방하는 서울의 연극 창작 단체. 202211월에 첫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올해에 두 번째 연극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을 선보인다






* 한일연극교류협회 엮음 

현대 일본 희곡집 10(연극과인간, 2022)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은 일본의 극작가 요코야마 다쿠야(横山拓也)2018년에 발표한 희곡이다. 희곡 텍스트는 현대 일본 희곡집 10에 수록되어 있다. 2022년에 낭독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으며 철학극장공연은 국내 초연이다. 이 연극에 여러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데 이중에 내가 아는 배우희곡 가게(전문 서점)’ <인스트립트>을 운영하는 권주영, 박세인 배우다.






2막


창작 집단 진창

<청혼 소동>

2024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공연작 

613~ 615, 한울림 소극장

615일 토요일 공연 예매했음

   





* 안톤 체호프, 안지영 옮김 

사랑에 관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올해는 체호프 서거 120주년이다. 그래서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체호프의 연극 공연 작품을 보는 것이다. 진창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진창>이 수록된 체호프의 단편 선집은 사랑에 관하여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열린 한울림 골목 연극제폐막작창작 집단 진창<진창> 공연을 봤는데, 감상문을 쓰지 못했다













* 안톤 체호프, 김규종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시공사, 2010)

 

* 안톤 체호프, 이주영 옮김 

체호프 희곡 전집 1: 단막극(연극과인간, 2000)



다음 달에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이 개최된다올해 6월이 연극의 달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때문이다이번 소극장 페스티벌 공연작인 <청혼 소동>의 원작은 체호프의 초기 단막극 <청혼>이다.






3막 


극단 처용

<비평가>

2024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공연작

614~ 616일, 소극장 우전

6월 16일 일요일 공연 예매 예정

 


극단 처용<비평가>는 올해 2월에 공연된 적이 있다. 공연은 26일과 27, 단 두 번뿐이었는데, 두 날 모두 평일이었고 각각 월요일과 화요일이었다. <비평가>를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공연작으로 선정되었고 드디어 주말 공연을 볼 수 있게 됐다.






* 후안 마요르가, 김재선 옮김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지만지드라마, 2019)


 


원작은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의 동명 희곡이다. <비평가>2인극으로연극 비평가와 극작가가 등장해서 말다툼한다. 이 작품은 희곡을 창작하는 일과 희곡을 비평하는 일이 어떤 면에서 다른지 보여준다.





<거인의 정원>

2024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공연작

1회 숲별 가족극 축제: 동요 그림자극

620~ 622일, 소금창고

 





* 오스카 와일드, 김전유경 옮김 

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1회 숲별 가족극 축제 공연작은 총 두 편이다. 그중 한 편이 <거인의 정원>이다. 공연작 관련 정보가 찾아봐도 나오지 않아서 이 공연을 만든 극단을 확인하지 못했다. 원작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동화이다. <거인의 정원>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이 있으며 <자기만 아는 거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극단 예린

<소풍>

2024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 달빛 소극장 공연 교류전 

621~ 622, 예술극장 엑터스토리

 

극단 토박이

<! 금남식당>

2024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 - 달빛 소극장 공연 교류전 

623, 소극장 길







대구와 광주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달빛 동맹을 맺었다. ‘달빛은 대구의 옛 지명 달구벌의 과 광주의 옛 지명 빛고을을 합친 이름이다. <소풍><! 금남식당>달빛 소극장 공연 교류전으로 광주에 활동하는 극단이 제작했다. 특히 <! 금남식당>을 만든 극단 토박이5 · 18 광주민주화항쟁을 알리는 창작극들을 무대 위에 올렸다. <! 금남식당>2016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100회 이상 공연되었다.



(사이)



‘6월의 플레이리스트를 쓸 때 대구 소극장 페스티벌을 홍보한 팸플릿을 참고했다. 그런데 팸플릿에 공연작을 만든 극단 이름이 없다. ‘달빛 소극장 공연 교류전에 참여하는 광주 극단 이름은 있다. 왜 대구의 극단 이름을 쓰지 않았을까? 대구에 활동하는 연극인들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소극장을 널리 알리기 위한 연극 축제라고 해도 연극인들이 모여서 함께 꾸리는 공동체인 극단의 역할과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연극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극장 이름을 아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을 더 잘 알고 있고, 그 극단에 소속된 몇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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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2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연극은 직접 가서 보는 게 젤 좋지. 근데 못 지않게 희곡을 일상에서 소설만큼이나 가까이 읽는거라는데 그게 참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나저나 너 연극 보러 가는 날은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ㅋㅋ

cyrus 2024-05-27 06:44   좋아요 1 | URL
서울 연극 공연 보러 가는 날에는 정말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2주 전 토요일에 체호프의 <갈매기> 공연을 보러 서울에 갔어요. 하필 그날 오후에 비가 내려서 대구에 못 돌아올 뻔 했어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24-05-2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은 대학교동아리연극이랑 예전에 대학로에서 몇 편 봤어요. 영화와 다른 현장감, 뮤직컬처럼 멀리서가 아닌 정말 가까이서 보는 재미가 달라서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도 다 있는데 요즘 같은 시대엔 접근성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쉽지가 않네요. 좋은 건 SF에 다 있는데 주차도 어렵고 치안은 더 엉망이라서...

cyrus 2024-05-27 06:47   좋아요 1 | URL
대학로에서 한 연극 공연은 딱 한 번 봤어요. 극단 소속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작품 홍보용 팸플릿을 주면서 연극 작품을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
 




가까이서 보면 희곡멀리서 보면 연극


No. 3












고도를 기다리며

2023년 12월 19일 ~ 2024년 2월 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24년 1월 6일 토요일 오후 2시 공연 관람




대구 공연

2024년 3월 29일 ~ 3월 31일

아양아트센터 아양홀

3월 30일 토요일 오후 2시 공연 관람









[원작]

사무엘 베케트, 오증자 옮김 고도를 기다리며(민음사, 2000)



연출 오경택

조연출/무대 감독 최현서

 

[출연진]

신구 (에스트라공/고고 역)

박근형 (블라디미르/디디 역)

박정자 (럭키 역)

김학철 (포조 역)

김리안 (소년 역)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소설 율리시스(Ulysses)를 쓰면서 수많은 수수께끼를 심었다고 공언했다.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율리시스에 묻힌 수수께끼들을 발굴해서 정답을 알아내느라 끙끙댈 것이고, 그 사이에 자신의 불멸이 보장되리라 생각했다.


















* 제임스 조이스, 이종일 옮김 율리시스(2, 문학동네, 2023)

* [4 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김종건 옮김 율리시스(어문학사, 2016)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젊은 시절 파리에서 2년 동안 영어 교사로 일했다. 타지에서 같은 고향 사람인 조이스를 만났다조이스의 문학에 매료된 베케트는 그의 비서가 되었다. 베케트는 시력이 좋지 않은 조이스를 위해 글을 읽어주거나 원고를 대신 써줬다.

















* [절판] 사무엘 베케트, 이원기 옮김 사무엘 베케트 희곡 전집(2, 예니, 1993)




40대 중후반의 베케트는 중견 작가임에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쓴 소설들이 난해한 데다가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은 성격이라서 일반 독자들은 베케트를 어려워했다이때 당시 베케트는 조이스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은 명예를 듬뿍 마시는 불멸의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중년의 위기를 느낄 만한 나이에 접어든 베케트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아래 고도)를 발표한다.
















고도(Godot)’는 희곡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극 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들 모두 하나가 되어 고도의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린다고도끝이 있는데도, 제대로 끝났다고 할 수 없는 희곡(play)이다. 왜냐하면 이제 고도는 실체가 없는 인물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알아야 하는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가 되었기 때문이다따라서 고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은 정답 없는 수수께끼를 푸는 놀이(play)와 같다. 연극이 끝나도 관객들은 이 놀이는 끝내려고 하지 않는다. 관객들의 머릿속에 자꾸만 고도가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권으로 된 사무엘 베케트 희곡 전집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장막극뿐만 아니라 단만극도 수록되어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외(용경식 옮김, 하서, 1995)은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라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포함한 열두 편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다제일 밑에 있는 얇은 책은 국립극장이 발간한 고도를 기다리며프로그램 북이다. 작품 분석, 연출 정도, 배우들의 인터뷰 등을 볼 수 있는 자료다. 



생전에 베케트는 고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근거를 대면서 고도가 누군지 추측했다. 그렇지만 베케트는 독자와 관객들이 스스로 풀어야 하는 고도라는 수수께끼를 남겼으면서도 다양한 해석을 반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새로운 해석들이 줄줄이 나오면 작품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고, 연출가들에게 대본에 적힌 대사나 지시 사항을 충실히 지킬 것을 요구했다. 수수께끼를 만든 사람이 수수께끼를 푸는 놀이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도록 규제를 가한 셈이다.

















* 그레고리 번스, 홍우진 옮김 라는 착각: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흐름출판, 2024)




고도를 두세 번 읽어도, 서울에서 한 연극 고도를 봤는데도, 고도가 무엇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십여 년 전에 고도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을 시도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누군가가 먼저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한 고도를 드디어 찾았다면서 우쭐거린 그때 내 모습이 부끄럽다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Gregory Berns)는 자신의 책 라는 착각에서 우리 뇌가 타인의 생각을 너무 쉽게 흡수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믿는 생각, 내 견해가 온전히 내 머릿속에 나온 것이라고 착각한다.

 








수수께끼가 된 고도를 기다리는 게임도,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푸는 놀이를 지금부터 중단한다. 고도가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자길 보러 오라면서 나댄다. 나는 더 이상 고도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만나고 싶은 고도가 아니라 타인이 만났던 고도. 고도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기 힘들다. 대구에서 하는 연극 고도을 볼 땐 고도를 찾지 않을 것이다



잘 가라, 고도. 오늘은 배우들의 목소리, 숨소리, 몸짓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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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3-3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시절에 고도를 기다리며, 의 연극을 보고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cyrus 2024-04-03 06:30   좋아요 1 | URL
저는 원작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인물들의 대사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

햇살과함께 2024-03-3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네요! 재밌게(?) 보세요~ 저는 몇년전에 정동환 배우로 봤네요

cyrus 2024-04-03 06:33   좋아요 1 | URL
<고도를 기다리며> 프로그램 북에 국내 <고도> 공연 역사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햇살과함께님이 보신 공연은 2019년에 했군요. 정동환 님이 디디를, 안석환 님이 고고를 연기했어요. ^^

햇살과함께 2024-04-03 08:55   좋아요 0 | URL
아, 19년이었군요. 맞아요 안석환님~
제가 지난 주 본 연극 <욘> 커튼콜에서 구두를 무대 위에 놓고 끝나는데,
<고도를 기다리며> 오마주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페넬로페 2024-03-3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연극 보고 싶었는데 놓쳤어요.

대학때 단과대 학생들이 공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보며 지루해 미치는 줄 알았어요 ㅋㅋ
근데 노배우들의 공연은 깊이가 있을 듯 하네요. 즐거운 관람 되시길요^^

cyrus 2024-04-03 06:35   좋아요 0 | URL
같은 공연을 두 번 보면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다를 줄 알았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솔직히 공연을 보다가 졸음이 왔어요.. ^^;;

stella.K 2024-03-3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오래 전 이 연극 봤지.
알 수 없는 4차원의 언어를 쓰지만 그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
와, 근데 입장료가 장난 아니네.ㅠ

cyrus 2024-04-03 06:36   좋아요 0 | URL
두 번 공연 모두 맨 앞줄에 앉았어요. 서울 공연 예매할 때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모두 쏟아부었어요... ㅋㅋㅋㅋ

blanca 2024-03-3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 감상평 듣고 싶어요. 서울에서 할 때 볼걸 아쉬워요.

cyrus 2024-04-03 06:40   좋아요 0 | URL
조만간 2차 연극 감상에 대한 평을 남길게요. 사실 같은 공연을 봐서 그런지 조금은 지루했어요. ^^;;
 





가까이서 보면 희곡멀리서 보면 연극


No. 2











죽음의 집

극단 폼(form) - 2024 제3회 더파란 연극제(대구, 322~29) 참가작



윤영선, 윤성호 지음

김소희 연출

김민우 조연출

액팅 코치 조영근

홍보 정명훈 [주]


 

[출연진]

이영찬 (황상호 역)

이혜림 (이은희 역, 원작자가 쓴 대본에 나온 이름은 이동욱’)

박지훈 (박영권 역)

곽수민 (강문실 역)

 


우전 소극장

322일 금요일 저녁 740분경 관람






잠깐만, 이 글을 보는 사람(단 한 사람도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은 본인 스스로 누군지 잘 생각해 본 후에 글을 끝까지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세요.

 

당신은 죽음을 두렵지 않다거나, 본인이 현재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이 글을 안 봐도 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만족스러운 당신이 이 글을 보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이 글을 보는 것보다 본인이 우선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사세요.


! 이런 사람들도 내 글을 안 봐도 돼요.또 책 얘기야? 이번엔 뭘 읽었다고 잘난척하는 거지? 혼자서 책만 보고 글 쓰면서 사는 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라고 생각한 사람들. , 저도 알아요. 제 삶이 화려하지 않다는 거요.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제 연극과 책에 대한 글을 써야 해서요.다들 좋아하는 일들 하면서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긴 사이.










<죽음의 집>2007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윤영선 극작가의 미발표 희곡이다. 2012년에 낭독 공연에서 대본 일부가 낭독되면서 <죽음의 집> 초고가 처음으로 극장 무대의 조명을 받았다. <죽음의 집> 초고를 확인한 극작가 겸 연출가 윤성호가 작가 노트를 단서 삼아 쓰이지 않은 이야기를 새로 썼다. <죽음의 집> 대본의 1부는 고인의 초고이며 2부는 윤성호가 쓴 것이다. 죽은 자가 쓴 글‘살아있는 자가 쓴 글이 포개진 희곡, 즉 미완성과 완성이 뒤엉킨 <죽음의 집>2017년 윤영선 극작가의 10주기 추모 페스티벌에 초연되었다. 2020년 제41회 서울연극제에 공연된 <죽음의 집>은 희곡상(윤영선, 윤성호)과 연출상(윤성호)을 받았다.





















* 윤영선, 윤영호 죽음의 집(이안재, 2020) [주2]

* 2020 서울연극제 희곡집(서울연극협회, 2020)

* [절판] 윤영선 윤영선 희곡집: 키스(지안, 2008)





극단 폼이 만든 <죽음의 집>은 윤성호와 윤영선이 쓴 대본을 무대 위에 올린 것이다. 황상호는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인물이다. 상호는 살아있는친구 이은희를 자기 집에 초대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기이한 상황을 고백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접한 은희는 혼란스럽다. 상호는 친구 박영권과 그의 아내 강문실도 초대한다. 그런데 부부 또한 상호처럼 이상한 말을 한다. 두 사람은 상호의 집에 오면서 말다툼했고, 홧김에 자살했다고 고백한다. 은희는 졸지에 집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자가 되는데…‥ 상호의 집에 점점 이상한 상황이 일어나자, 은희의 머릿속에 불현듯 궁금증이 일어난다. ‘나도 죽었나?’







<죽음의 집>은 희곡으로 표현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집은 편안히 쉴 수 있는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이다. 하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내 집이라고 해도 저승사자가 슬쩍 내미는 손길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17세기에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는 그림이 유행했다. 당시 부유한 사람들의 집에 가면 두개골과 촛불이 그려진 그림 한 점 걸려 있었다. 두개골은 죽음을, 촛불은 덧없는 인생을 뜻하는 상징물이다. 그림에서 이빨을 드러내면서 실실 웃고 있는 해골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 귀띔한다잊지 마! 당신 바로 옆에 내가 있어.


메멘토 모리가 된 배우들이 연기하는 연극이 관객들에게 말한다무대 위에 서 있는 나를 앉아서 바라보는 여러분, 죽음의 집이 실제로 없을 것 같죠여기 있어요.



















*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김수정 옮김 죽어가는 자의 고독(문학동네, 2012)




하지만 살아있는 자는 여유만만하다. 여전히 죽음은 내 일이 아니니까. 독일의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인간은 본격적으로 위생의 중요성을 알기 시작하면서 일상 가까이에 있다고 믿었던 죽음을 멀리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노화와 질병은 사람을 노쇠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추하게 만든다. 노화와 질병이라는 직격탄을 제대로 맞아버리면 죽는다. 살아가는 힘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낡고 추레한 존재가 돼버린다. 노화를 부끄러워하는 감정이 생기면서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마저도 집 밖으로 쫓아낸다. 하지만 엘리아스는 그들이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죽음을 외면한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곧 죽음을 맞이한다거나 함께 사는 사람의 죽음을 직면하면 두려워하고 당혹스러워한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착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커지게 만든다.


메멘토 모리의 교훈을 잊지 않은 옛사람들은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무덤 주변에서 덩실덩실 춤추는 그림도 좋아했다. 이 그림도 유행하면서 죽음의 춤(Danse Macabre)’이라는 회화 양식이 생겼다. ‘죽음의 춤은 죽음을 대비하는 살아있는 자의 몸짓이면서도 먼저 떠나간 자들과 함께하는 축제이다. 따라서 내가 죽는 것뿐만 아니라 먼저 죽은 자들도 기억하며 살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극 중간에 상호, 은희, 영권은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잊으려고 춤을 춘다. 그렇지만 즐거운 축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살아있는 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죽은 자들을 하나씩 내보낸다. 진짜로 ‘죽은영권과 문실은 잠시 밖으로 나간 뒤에 상호의 집으로 다시 들어오지만, 그들과 함께 술을 마셨던 살아있는은희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살아있는 자는 죽은 자를 잊어버리거나 때로는 야박하게 쫓아낸다.


<죽음의 집>에 묘사된 죽은 자들(상호, 영권, 문실)은 말이 많고, 감정이 있다. 이들은 자신을 완전히 잊은 사람들이 섭섭하게 느끼지만, 이내 자신이 죽어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생전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떠난다. 극작가는 이미 떠나고 없지만, 텍스트에 나온 <죽음의 집>은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존재이다. 살아 있음과 죽음에 사이는 없다. 살아 있음과 죽음은 철저히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내 인생에 착 달라붙은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 아득바득 억지로 떼어낼 필요가 없다. 그럴 시간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





[주1] 2월 중순에 처음으로 공개된 포스터()3월에 공개된 두 번째 포스터(아래)의 도안이 다르다. 첫 번째 포스터에 적힌 출연진 이름에 정명훈 님이 있다. 원래 박영권을 연기하는 배우가 정명훈 님으로 정해졌으나 박지훈 님으로 교체되었다.


[2] 책에 윤영선 극작가의 <죽음의 집> 초고, 윤성호 극작가가 새로 쓴 <죽음의 집> 대본, 윤영선 극작가의 작가 노트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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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3-26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사회가 죽음을 삶과 철저히 분리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병적인 이상심리가 여러 방식으로 발현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이러스님 글 많이들 읽을텐데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집>연극 줄거리도 흥미롭네요^^

cyrus 2024-03-29 06:27   좋아요 1 | URL
인간이 죽음을 기피하는 이유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거예요. 가까운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이후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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