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책]방
EP. 23
환상 문학
마르틴 베크 시리즈 완간 기념 ‘굿바이 북토크’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오후 2시~4시
일하다가 작업복 안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을 몰래 꺼냈다. 집중력은 단 1초 만에 내 엄지손가락을 지나서 인스타그램 앱을 가리켰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장르 소설 서점 <환상 문학> 계정의 게시글이었다. 그 글은 <환상 문학>에서 진행되는 ‘북토크’ 홍보물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할 텐데, 하고 봤다. 엄지손가락에 머무르던 내 집중력이 홍보물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김명남. 김명남…? 김명남! 아니, 이분이 <환상 문학>에 오신다고! OMG!
김명남 님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번역했다. 과학 도서, 에세이,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번역했다. 이분이 번역한 책들의 저자는 다음과 같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진화론에 관해서 도킨스와 치열하게 논쟁했던 스티븐 제이 굴드(《여덟 마리 새끼 돼지》), 글 잘 쓰는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고맙습니다》), 미셸 오바마(《비커밍》), 페미니스트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역자님은 《마이 버자이너》, 《질의응답》 등 여성 의학 관련 책들도 번역했다.
[내가 읽고 서평을 쓴 김명남 역자의 책들]
*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창비, 2018년)
* [절판] 에릭 셰리 《일곱 원소 이야기: 주기율표의 마지막 빈칸을 둘러싼 인간의 과학사》 (궁리, 2018년)
* 옐토 드렌스 《마이 버자이너: 세상의 기원, 내 몸 안의 우주》 (동아시아, 2018년)
*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열린책들, 2016년)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외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2016년)
* 조 슈워츠 《똑똑한 음식책: 귀 얇은 사람을 위한》 (바다출판사, 2016년)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창비, 2016년)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창비, 2015년)
* [절판] 베른트 하인리히 《생명에서 생명으로: 인간과 자연, 생명 존재의 순환을 관찰한 생물학자의 기록》 (궁리, 2015년)
* 리처드 C. 프랜시스 《쉽게 쓴 후성유전학: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 (시공사, 2013년)
* 닐 슈빈 《내 안의 물고기: 물고기에서 인간까지, 35억 년 진화의 비밀》 (김영사, 2009년)
*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김영사, 2007년)
역자님의 책들을 읽었고, 서평과 에세이를 썼다. 서평을 쓰지 않았지만, 완독했거나 읽다가 만 역자님의 책들도 가지고 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함께 씀, 김명남 옮김 《테러리스트》 (엘릭시르, 2023년)
그런데 역자님이 범죄소설을 번역한 사실을 <환상 문학> 공지글을 보고 알았다. 더 놀라운 건 범죄소설 한 권이 아니라 시리즈로 된 열 권을 전부 번역했다! 스웨덴 출신의 마이 셰발(Maj Sjowall)과 페르 발뢰(Per Wahlöö)라는 두 작가가 쓴 <마르틴 베크>(Martin Beck) 시리즈다.
마르틴 베크는 범죄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인 형사 이름이다. 셰발과 발뢰는 연인 관계다. 두 사람을 이어준 건 글쓰기와 마르크스주의였다. 두 사람이 함께 쓴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부르주아 사회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회파 범죄소설’이다. 작년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 마지막 작품 《테러리스트》가 출간되었다.
‘사회파’로 분류되는 범죄소설과 추리소설 주인공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명탐정이 아닌 발로 뛰어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다. 사회파 범죄 · 추리소설에 나오는 범인 역시 주인공이다. 사회파 범죄 ·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범인이 죄를 저지르는 동기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죄를 저지른 범인에게 무조건 욕하면서 손가락질해야만 하는가? 사회파 범죄 · 추리소설은 독자들의 분노를 유도하기 위해 범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드는 사회 문제를 제대로 보라고 가리킨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함께 씀, 김명남 옮김 《웃는 경관》 (엘릭시르, 2017년)
<환상 문학> 책방 주인장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웃는 경관》을 내게 추천했다. 그러면서 북토크에 오라고 권유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랑해지는 나는 북토크에 참석하기로 했다.
* [절판] 장경현, 김봉석, 윤영천 《탐정 사전: 역사상 중요한 탐정의 목록과 해설》 (프로파간다, 2014년)
솔직히 말하자면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었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웃는 경관》을 읽는 것보다 역자 님의 친필 사인을 받고 싶었다. 비록 책을 읽지 않았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했다.
전 세계 범죄 · 추리소설에 등장했던 탐정과 형사들을 소개한 《탐정 사전》을 참고했다. 이 책에 마르틴 베크를 소개한 항목이 있다.
북토크는 추리소설가 김세화 님이 진행했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분답게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작품성이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북유럽 범죄소설의 시초다. 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알려지자, 헨닝 만켈(<쿠르트 발란데르 경감> 시리즈)과 스티그 라르손(<밀레니엄> 시리즈)이 나올 수 있었다.
* 김세화 《기억의 저편》 (몽실북스, 2021년)
방송 기자로 일한 적이 있는 작가님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 속 형사들의 성격 및 말투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 역시 사회파로 분류할 수 있는 장편 《기억의 저편》을 썼으며, 올해 여름에 새 장편소설을 발표할 거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역자님도 추리소설 마니아다. 그래서 역자님은 중년 형사가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사건과 인물을 냉정하게 묘사한 소설.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문학 유파이며 가장 유명한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레이먼드 챈들러다)을 좋아한다고 했다.
두 시간 동안 작가님과 역자님의 대화를 가까이서 듣고 나니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 권을 다 안 사도 되겠‥…. 다 살 수 없어도 시리즈 첫 번째 책부터 읽어봐야지. Hej, Martin Beck!
※ ‘Hej’는 스웨덴어로 ‘안녕하세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