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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지 않는 칫솔
서민 지음 / 장문산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2016년은 특별하다. 2016년은 셰익스피어 사후 400주년이다. 다시 한 번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난 《돈 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근대문학의 문을 열어젖힌 두 거장을 향한 관심의 열기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우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2016년은 ‘우리의 스타’가 이 세상에 등장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의 스타’가 누구냐고? ‘마침내 태어난 우리의 스타’를 잊으셨는가? 슬프다.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음으로 위대한 작가를 모르시다니. 이제부터 1996년 9월 15일을 기억하시라. 엄청난 소설이 나왔던 날이다.
《소설 마태우스》. 이 소설은 놀라운 힘을 가졌다. 《소설 마태우스》 3대 의혹을 아시는가. 그중 하나가 《소설 마태우스》의 저주와 관련되어 있다. 《소설 마태우스》를 읽은 사람 대부분 서민 교수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서민 교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소설 마태우스》의 실패,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관계 단절, 스타를 알아보지 않는 사회에 대한 실망감. 저주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인생의 쓴맛을 본 서민 교수는 《소설 마태우스》 2권을 출간하기로 한다. 아들의 글쓰기를 응원했던 어머니가 극구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 교수는 재기를 노린다. 이때 나온 책이 바로 ‘삐삐소설’ 두 번째 이야기로 알려진 《닳지 않는 칫솔》이다.
《닳지 않는 칫솔》은 《소설 마태우스》보다 구하기 힘들다. 서민 교수는 《소설 마태우스》가 자신의 아들이면, 《닳지 않는 칫솔》은 둘째 아들이라고 말했다. 서민 교수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아들을 직접 만나고 싶은 독자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면서 숨기려고 한다. 《닳지 않는 칫솔》은 형과 닮았다. 작가의 경험담, 재미있는 이야기, 사회 현상을 소재로 한 칼럼 그리고 소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전작보다 못한 후속작’의 저주를 《닳지 않는 칫솔》도 피하지 못했다. 《닳지 않는 칫솔》은 형보다 못한 아우다.
서민 교수는 소설 창작에 대한 쓰라린 실패가 두려웠던 것일까? 《닳지 않는 칫솔》에 수록된 소설의 수가 많지 않다. 고작 네 편에 불과하다. 썰렁한 개그로 무장한 ‘형사 마태우스’가 등장하는 소설도 없다. 《소설 마태우스》 2권답지 않다. 《닳지 않는 칫솔》에 삐삐소설 두 편(‘성탄절 밤의 고등어’, ‘외다리 정육점의 비밀’), 가상소설(‘올챙이의 꿈’), 음모소설(‘호랑이는 무얼 알고 있었을까?’) 한 편씩 수록되었다. 그래도 가상소설 「올챙이의 꿈」은 읽어볼 만하다. 무정자증 남자들이 증가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공상과학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정자무(精子無)’다. 정자무의 아내 이름은 ‘난소유(卵巢有)’다. 마태우스는 무정자증 치료법을 개발한 박사로 언급된다. 서민 교수는 세계 최초로 정자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소재가 황당하지만, 「올챙이의 꿈」은 남성 불임 환자가 급증하는 사회를 예언한 소설이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늦은 결혼과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30대 후반 남성 불임 치료 환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출산율이 하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무정자증 환자 급증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할 수 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26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1996년 베스트셀러였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를 패러디한 것이다. 그런데 26가지 이야기를 한꺼번에 모은 편집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글 읽는 재미가 떨어진다. 서민 교수의 글은 간결한 분량을 유지하면서, 재치 있는 유머가 독자 앞에서 번쩍 드러날 때가 매력이 있다.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다가도, 그 다음에 나온 이야기가 생각보다 재미없을 때가 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26가지 이야기」는 ‘재미’와 ‘노잼’을 반복하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빵 터지면서 웃다가도 진지한 내용의 글이 나오면 웃음이 싹 사라진다. 이렇다 보니 독자는 작가가 무얼 말하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책의 정체에 혼란스러워한다. 《닮지 않는 칫솔》의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서민 교수는 책의 관심을 끌려고 ‘닳지 않는 칫솔’이라는 특이한 제목을 정했다고 밝혔다. 원래 제목은 ‘눈 비비다 눈 빠진 사나이’였다고 한다. ‘닳지 않는 칫솔’도 범상치 않은 제목인데, ‘눈 비비다 눈 빠진 사나이’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아무튼,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닳지 않는 칫솔’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목이다. ‘닳지 않는 칫솔’의 정체가 궁금해서 이 책을 고르는 독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책의 내용에 실망한 독자가 많았다.
서민 교수의 글은 재미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기생충, 더러운 화장실 내부, 방귀 등 우리가 평소 불결하게 생각하는 대상을 소재로 쓴 글이 있다. 서민 교수는 《닮지 않는 칫솔》에 ‘유령선’이라는 삐삐소설을 실을 생각이었다. 이 소설 내용 역시 독특하다. 사람이 벽을 본 채 가부좌를 튼다. 침을 몇 시간 동안 모은 뒤에 한꺼번에 삼켜 배고픔을 잊는다는 설정이다. 침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독자가 있을까 봐 아쉽게도 책에 수록되지 못했다. 서민 교수는 침과 방귀로 소재로 한 이야기를 저급 유머로 여기는 교양주의의 ‘꼰대’를 지적한다. 그의 저항심에 동의한다. 저급 유머에 눈살 찌푸리는 사람 중에 과연 내실이 청결한 이가 얼마나 될까? 여전히 우리는 편협하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대상을 판단한다. 기생충을 더럽기만 하고,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로 생각한다.
‘닳지 않는 칫솔’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칫솔이 뭔지 알 것 같다. ‘닳지 않는 칫솔’은 서민이다. 두 명의 아들이 쫄딱 망한 이후로 서민 교수는 긴 세월 동안 글쓰기 훈련에 매진했다. 어려운 세파에 시달렸어도 그의 마음은 약해지지 않았다. 집념과 끊임없는 노력의 세월 끝에 서민은 마침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서민은 닳지 않은 인간이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