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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 경이로운 생명의 나비효과
박재용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10월
평점 :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은 참으로 놀랍다. 정밀과학 개념이 없던 시절에 고대인들은 자연의 흐름을 관찰하여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생상극으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풀이한다. 하늘(양)과 땅(음)은 서로 대등하게 대립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태극으로 발현한다. 태극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원형의 구조인데 이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이다. 여기에 '무위자연'이나 '태허귀원 만류귀종 대도무형 현현무종(太虛歸元萬流歸宗大道無形玄玄無終)'의 생각을 더하면 무한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영특함이 느껴진다.
자연 속에서 독야청청이란 건 없을 거다.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유명한 '마오쩌둥과 참새'의 일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마오쩌둥이 참새들이 벼를 쪼아 먹는걸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지적한 후, 참새 박멸운동이 벌어진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참새 씨가 마르자 해충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큰 흉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아로 4,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죽었다고 하니, 모든 만물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서로 떼어 낼 수 없다는 태극과 무극의 사상이 무색하기만 하다.
잡설이 길었는데,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 경이로운 생명의 나비효과>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어봤을 뿐이다. 공진화란 함께 진화한다는 말이다. 생태계의 어는 한 곳에서 시작된 진화는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생물들에게 연달아 진화를 요구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진화는 한 생물에겐 결과이지만 동시에 관련 있는 다른 생물에겐 진화의 시작인 것이다. 마치 북경 나비가 너풀거리는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우를 불러온다는 말처럼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는 거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서로 균형을 잡고 있는 듯 하지만 이는 동적 평행일 뿐이다. 알고 보면 수시로 이 균형은 깨지고 변태와 노화를 통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잎꾼개미와 4자 동맹이 흥미로웠는데, 지구 최초의 농사꾼이라는 잎꾼개미(가위개미)는 나뭇잎을 수집해 쌓은 뒤 주름버섯균으로 버섯을 재배해서 먹는다. 그러데 싱싱한 잎은 분해가 잘 안되므로 식물의 뿌리나 토양에 있는 제 3의 협업자 '질소고정세균'이 등장한다. 버섯은 이들에게 당분을 주고, 이들은 버섯에게 질산염을 제공한다. 이 때 개미는 버섯에 기생하는 곰팡이 균을 막기 위해 항생제 역할을 하는 박테리아를 키워 이들을 보호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생태계는 서로 얽히고설키는 공진화의 관계라는 것이다.
진딧물이 개미가 사육하는 젖소라면, 부전나비 애벌레와 개미는 마약으로 경비를 서게 만드는 마녀와 경비병의 관계와 흡사하다. 182쪽
이 책의 키워드는 '공진화'이지만, 읽다보면 이 출판사의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시리즈의 『멸종』, 『짝짓기』, 『경계』의 모든 것을 '관계 속에서의 진화'로 녹여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균부터 동식물 및 기생 생물에 이르기까지 포식과 피식 및 경쟁, 기생과 공생 등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이 서로 공진화하여 생태계의 균형을 맞춘다는 거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인간의 길을 쫒아간다. 최고 포식자가 된 인간의 눈부신 진화에 뒤쳐진 다른 생물들의 현실을 지적하는데, '인간과 경쟁하면 모두 멸종'하는 위기 앞에 공진화란 어림도 없다는 거다. 과연 인간만 남은 생태계가 존속할 수 있을까? 이즈음에서 조화에 바탕을 둔 동양사상이 다시 와 닿는다.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여섯 번째 대멸종기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