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BBC 라디오 드라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약칭 히치하이커’)의 대본을 쓰면서 처음부터 세상이 멸망하는 결말을 구상했다. 애덤스가 생각한 드라마 제목은 세상의 종말(The Ends of the Earth)’이었다. 그때 당시 세상에 좀 불만이 있었던 애덤스는 어떤 식으로든 세상이 끝장 나는, 끝내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다.

















* 더글러스 애덤스 · 마크 카워다인 함께 썼음, 강수정 옮김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히치하이커와 동물학자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 프로젝트(현대문학, 2024)


* [절판] 더글러스 애덤스 · 마크 카워다인 함께 썼음, 강수정 옮김 마지막 기회라니?더글러스 애덤스와 마크 카워다인, 두 남자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홍시, 2014)


* [절판] 더글러스 애덤스 · 마크 카워다인 함께 썼음, 강수정 옮김 마지막 기회라니?두 남자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홍시, 2010)




하지만 애덤스는 냉소주의자가 아니었고, 비관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애덤스는 과학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여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도킨스는 애덤스에게 과학의 어떤 점이 당신의 피를 끓게 하느냐?”라고 질문했다.


애덤스는 대단히 복잡하고 풍요롭고 이상한 세상을 과학의 관점으로 알아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근사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삶이 70년이나 80년까지 지속된다면 자신에게는 보람된 시간이라고 했다안타깝게도 애덤스의 시계에 보람된 시간은 오지 않았다. 애덤스는 운동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졌고,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50세를 넘기지 못한 이른 죽음이었다.


애덤스와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Mark Carwardine)이 함께 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게정판의 서문은 리처드 도킨스가 썼다. 도킨스는 다큐멘터리 촬영 때 애덤스와 주고받은 대화를 회상하면서, 그의 답변은 액자에 담아 전국의 모든 과학 교실에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옮김 만들어진 신: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김영사, 2007)

 

* 리처드 도킨스, 김명주 옮김 , 만들어진 위험: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김영사, 2021)


* 리처드 도킨스, 김명주 옮김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 열정적인 합리주의자의 이성 예찬(김영사, 2021)


* 리처드 도킨스, 김명남 옮김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어느 과학자의 탄생(김영사, 2016)


* 리처드 도킨스, 김명남 옮김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나의 과학 인생(김영사, 2016)




두 사람은 과학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으며 무신론자라서 대화가 잘 통했다애덤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종교를 주제로 연설했다. 이 연설에서 애덤스는 종교의 무오류성을 신성하게 여기는 경향이 특권화되면 종교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교에 도전하는 도킨스를 지지했다. 도킨스는 애덤스의 연설문(지면에 발표된 연설문의 제목은 인위적인 신은 있는가?) 일부를 자신의 책 만들어진 신에 인용했다.

















[대구 책방 독서 모임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18년 10월 도서(67번째 지정 도서)]

* 리처드 도킨스, 홍영남 · 이상임 함께 옮김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18)

 

* 리처드 도킨스, 홍영남 · 장대익 · 권오현 함께 옮김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 2022)

 

* 리처드 도킨스, 이용철 옮김 눈먼 시계공: 진화론은 세계가 설계되지 않았음을 어떻게 밝혀내는가(사이언스북스, 2004)




애덤스는 처음에는 불가지론자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30대 초반의 애덤스는 우연히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눈먼 시계공을 읽은 이후로, 무신론자로 전향했다. 애덤스는 불가지론자로 오해받기 싫어서 스스로 급진적 무신론자라고 강조했다그래도 애덤스는 도킨스처럼 전투적인 무신론자, 반종교주의자는 아니었다. 애덤스의 종교관을 정리한 위키피디아(Wikipedia) 영문판에 따르면 그가 교회 예배당 성가대 성인 회원으로 활동했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즐겨 불렀다고 한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718번째 책]


[대구 독서 모임 <고라니 울고> ‘초여름 밤 SF’ 7월의 SF, 추천 독자 겸 모임장: 김성현]


* 더글러스 애덤스, 김선형 · 권진아 함께 옮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세상, 2005, 합본)


* 더글러스 애덤스, 김선형 · 권진아 함께 옮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책세상, 2004)


* 더글러스 애덤스, 김선형 · 권진아 함께 옮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책세상, 2004)




도킨스는 자서전에 애덤스를 처음 만난 날, 애덤스에게 직접 팬레터를 보낸 일, 애덤스의 42번째 생일(42히치하이커에서 언급된 중요한 숫자다)에 있었던 특별한 추억을 언급했다.

 

도킨스는 히치하이커2부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어두운 유머와 심오한 철학이 담긴 글이라고 했다. 1991년에 도킨스는 BBC에서 방영된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Royal Institution Christmas Lectures)의 강연자로 초빙되었다. 강연 중에 그는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의 문장을 읽어줄 어린 청중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여러 명의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낭독을 원하는 어린이 청중 사이에 키가 2미터 넘는 성인 남성도 있었다. 도킨스는 그 남성을 지목했고, 이름을 물었다. 본인이 어린이라고 생각한 남성의 이름은 더글러스 애덤스’였. 도킨스는 예상하지 못한 만남에 놀라워했고, 도킨스와 어린 청중들은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을 재미있게 연기하면서 낭독하는 원작자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 P. G. 우드하우스, 김승욱 옮김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편집자는 후회한다 외 38(현대문학, 2018)




도킨스는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의 서문에 애덤스의 익살스러운 문장을 인용하면서 ‘P. G. 우드하우스(P. G. Wodehouse) 이후로 맛깔스러운 유머 감각을 발휘한 작가는 없었다고 찬사를 보냈다.[주] 우드하우스는 영국식 유머의 대가, 그의 대표작 지브스(Jeeves) 시리즈BBC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도킨스가 애덤스를 알기 전부터 엄청 좋아한 작가가 우드하우스다. 도킨스는 우드하우스의 유머 감각을 흉내 낸 글을 썼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자서전 1권에 우드하우스의 이야기를 즐겨 읽었던 유년 시절이 나온다. 도킨스가 가장 좋아하는 우드하우스의 작품은 지브스 시리즈에 속한 설교 핸디캡 소동(The Great Sermon Handicap)이다. 이 단편 소설은 1,000쪽이 넘는 우드하우스의 작품 선집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에 수록되었고, 번역된 제목은 설교 대회.

















* [절판]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옮김 《악마의 사도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바다출판사, 2015)




도킨스는 애덤스의 이른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했던 과학자. 그는 자신의 칼럼과 강연문을 모아 놓은 리처드 도킨스의 영혼이 숨 쉬는 과학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의 서문을 포함하면서 애덤스를 다시 한번 추모했다도킨스는 애덤스가 세상을 떠난 날에 조문(弔文)을 썼고,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도 실렸다이 글은 더글러스 애덤스를 추억하며(Lament for Douglas Adams)라는 제목으로 악마의 사도에 수록되었다.


대부분 독자는 애덤스를 코믹 SF를 쓴 작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애덤스의 참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도킨스는 그런 평범한 문장 한 줄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도킨스가 만난 애덤스는 매력이 풍성하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 과학을 과학자보다 재미있게 표현하는 작가,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는데도 과학에 해박한 작가, 진화론을 잘 아는 작가, 생물다양성을 강조한 동물권 운동가, 우주로 간 우드하우스, 어린이의 호기심을 가진 어른.









[]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홍시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것을 다시 출간한 책이다. 그래서 두 출판사 번역본의 역자가 같은데, 역자는 ‘P. G. 오드하우스로 표기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의 출판사는 현대문학이다. 전자의 책은 2024년에, 국내 유일의 우드하우스 단편 선집은 2018년에 출간되었다. 현대문학 출판사 소속 편집자는 ‘P. G. 오드하우스를 ‘P. G. 우드하우스’로 고치지 않았을까? 


편집자가 역자의 표기를 존중한 것일까, 아니면 재출간하면서 교정을 안 한 것일까? 


아무튼 오드하우스표기가 너무나 신경이 쓰여서(bother) 애덤스, 도킨스, 우드하우스, 이 BBC 3S의 연결 고리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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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6-07-1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히치하이커 사 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올해 도전해봐야겠네요.
 




인간의 학명(學名)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s)’이다이 학명은 인간만 쓸 수 있는 별명이 되었다호기로운 인간은 동물들 앞에서 꺼드럭거린다. 넌 동물이고, 난 인간이야.” 우리는 지구상 유일한 이성적 존재이며 언어를 쓰고 있어서 동물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학명이 어울리지 않는 헛똑똑이종종 어리석은 판단을 내려서 화를 자초한다. 가짜 정보에 잘 속는다. 우리는 항상 착각하면서 살아간다슬기로운 사람은 동물이 아니라는 착각. 이런 착각을 학술 용어로 종차(種差)’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외계 생명체를 외계인으로 가정한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외계인은 인간의 모습과 흡사하며 우리처럼 비슷하게 생활한다.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똑똑한 외계인을 우러러본다. 그래서 아득한 옛날에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고대 사람들에게 현대 문명에 걸맞은 엄청난 기술을 전수했다고 주장한다. 초고대 문명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땅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들)가 외계인과 고대 사람들의 합작품으로 보인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718번째 책]


[대구 독서 모임 <고라니 울고> ‘초여름 밤 SF’ 7월의 SF, 추천 독자 겸 모임장: 김성현]


* 더글러스 애덤스, 김선형 · 권진아 함께 옮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세상, 2005, 합본)


* 더글러스 애덤스, 김선형 · 권진아 함께 옮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책세상, 2004)


* 더글러스 애덤스, 김선형 · 권진아 함께 옮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4(책세상, 2004)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동물보다 똑똑하다고 거만하게 굴면서 외계인을 우주의 슬기로운 사람으로 추앙하는 인간의 착오를 풍자한다애덤스의 대표작인 코믹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약칭 히치하이커’) 1권의 23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우화(寓話).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돌고래보다 지능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돌고래가 인간보다 지능이 높다. 돌고래들은 지구가 보곤(Vogon)’이라는 외계 종족에 의해 파괴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착한 돌고래들은 인간들에게 경고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언어가 없는 돌고래의 의사소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돌고래들은 지구인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구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남긴다돌고래들은 뒤로 두 번 공중제비를 돌면서 고리를 통과하고, 행진곡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 and Stripes Forever)>를 휘파람으로 분다. 돌고래의 마지막 메시지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하면 이렇다.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돌고래의 마지막 메시지는 히치하이커4권의 부제가 된다.


히치하이커라디오 드라마로 처음으로 공개된 1970년대 중후반에 살았던 사람들은 고래가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렇지만 고래를 오랫동안 관찰한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칼 세이건 · 앤 드루얀 · 린다 살츠먼 세이건 외, 김명남 옮김 지구의 속삭임(사이언스북스, 2016)




라디오 드라마 버전 히치하이커가 방송되기 일 년 전인 1977에 고래의 뛰어난 지능이 처음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해에 미국은 우주 탐사선 보이저(Voyager) 1호와 2를 발사했다. 두 대의 탐사선에 지구의 소리(The sounds of earth)’라는 이름이 붙여진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가 실려 있었다.







골든 레코드는 우주 어딘가에 살고 있을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지구인들의 마지막 메시지. 골든 레코드에 지구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한국어 안녕하세요를 포함한 55가지 언어의 인사말, 지구에 살면 들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소리, 지능이 높은 외계 생명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녹음되었다.




























*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06)

 

* 앤 드루얀, 김명남 옮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사이언스북스, 2020)

 

* 칼 세이건 · 앤 드루얀 함께 썼음, 이상헌 옮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사이언스북스, 2022)

 

* 칼 세이건 · 앤 드루얀 함께 썼음, 김혜원 옮김 혜성(사이언스북스, 2016)




골든 레코드 개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칼 세이건(Carl Sagan)이다. 기술 감독은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외계 생명체(외계 문명)의 수를 계산한 드레이크 방정식을 제안한 프랭크 도널드 드레이크(Frank Donald Drake). 창작 감독은 세이건과 함께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Cosmos)를 제작한 앤 드루얀(Ann Druyan), 레코드에 실릴 인사말을 구성하는 작업은 린다 살츠먼 세이건(Linda Salzman Sagan)이 맡았다







1981년에 세이건과 린다는 이혼했고, 세이건은 이미 오래된 연인앤 드루얀과 재혼했다드루얀과 세이건은 혜성(Comet, 1985),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1992, 국역본: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8),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 1995)을 함께 썼다2014, 드루얀은 다큐멘터리의 후속작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Cosmos: Possibl Worlds)을 만들었다. 진행자는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이다. 


















*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노승영 옮김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경이로운 소리들, 진화의 창조성, 감각의 멸종 위기(에이도스, 2023)




고래의 소리를 레코드에 포함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드루얀이다. 그녀는 고래를 동물이 아닌 인간과 함께 지구를 공유하는 지적인 이웃들이라고 생각했다. 드루얀은 고래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고래의 인사말을 정치가들과 외교관들의 인사말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루얀의 생각에 공감한 해양생물학자 로저 페인(Roger Payne)은 자신이 버뮤다 앞바다에서 녹음한 혹등고래의 소리가 아름답다면서 추천했다








로저 페인은 아내 캐서린 페인(Katharine ‘Katy’ Payne)과 함께 버뮤다에서 혹등고래의 소리를 녹음했다. 부부는 혹등고래의 소리에 인간의 소리처럼 반복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혹등고래의 소리를 노래라고 주장했다로저 페인은 고래잡이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 혹등고래의 소리를 모아서 편집한 음반을 발표했다. 음반 제목은 <혹등고래의 노래>(Songs of the Humpback Whale).







세이건도 드류얀의 생각에 동의했다. 골든 레코드에 실린 혹등고래의 노래는 UN 대표들의 인사말 다음에 나온다. 세이건의 표현대로 혹등고래는 지구에서 우주로 인사말을 보낸 지적인 종이 되었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107번째 책]

* 허먼 멜빌, 김석희 옮김 모비 딕(작가정신, 2024)


* 허먼 멜빌, 강수정 옮김 모비 딕(열린책들, 2013)




애덤스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다음으로 고래에 관심이 많은 작가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흰고래 모비 딕은 실제로 포경선을 침몰시킨 모카 딕(Mocha Dick)’이라는 향유고래를 모티프로 했다. 히치하이커118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향유고래가 등장한다히치하이커의 향유고래는 자신의 몸을 관찰하면서 신체 부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인다(‘이걸 내 배라고 부르자’, ‘이건 꼬리라고 부르자.’). 향유고래가 생각하면서 하는 말은 모비 딕의 유명한 첫 문장이자 작중 화자 이스마엘의 대사 첫 마디(‘Call me Ishmael.’)를 패러디한 것이다.

















* 더글러스 애덤스 · 마크 카워다인 함께 썼음, 강수정 옮김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히치하이커와 동물학자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 프로젝트(현대문학, 2024)




애덤스는 멸종위기 동물들을 보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환경 운동가였다. 그는 고래 도감을 만든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Mark Carwardine)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멸종위기 동물들을 만나는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두 사람의 여행기는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라는 제목의 책이 되었다. 이 책에 중국에 간 애덤스와 카워다인이 양쯔강돌고래의 소리를 녹음하면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을 처음 방문한 애덤스는 온갖 소음에 엄청나게 괴로워하는데, 그는 청각이 유독 발달한 양쯔강돌고래도 중국인들이 만든 소음에 괴로워할까 봐 우려한다.


















* 톰 머스틸, 박래선 옮김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과 이야기하는 과학적인 방법(에이도스, 2023)

 


그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고래가 소리를 내면서 주변에 있는 동족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고래는 청각이 유독 뛰어나서 메아리 형태로 나타나는 바닷속의 소리를 감지한다. 고래를 잘 모르는 인간은 모든 고래의 소리가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귀는 고래 소리의 높낮이를 느끼지 못한다. 고래 소리의 높낮이는 사투리와 비슷하다. 고래 박사들은 소리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고래소리 종족(vocal clan)’이라고 부른다. 바다 위를 지나가는 배와 바닷속을 돌아다니는 잠수함에서 나는 소리는 고래들의 대화를 방해하는 소음이다. 청각이 예민한 고래는 배가 지나가면서 생기는 소리를 동족이 내는 소리로 착각한다. 고래는 대화를 시도하려고 배에 접근한다. 고래를 잘 모르는 우리는 고래가 배만 보면 공격성을 드러내는 난폭하고 무식한 동물이라고 오해한다.







고래도 인간처럼 말한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볼 정도로 똑똑하다. 고래는 지구에 사는 동물이 아니다. 우리보다 영리한 지구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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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방문객도 많은 서울국제도서전(약칭 국도’)에 갔다. 이 글은 출판사 부스가 있는 곳에 입장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렸을 때 썼다.















* 이창현 · 유희(그림)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사계절, 2018)

 

* 이창현 · 유희(그림)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사계절, 2023)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책보다 굿즈를 판매하는 출판사들이 많아진 국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누군가는 국도에 간 사람들을 진정한 독서인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기자는 국도를 겨냥해서 돈맛에 매몰된 도서전이라고 표현했다.


국도의 운영 방식을 살펴보면 출판인과 독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점이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도에 참여한 출판인을 돈맛에 빠진 사람인 것처럼 매도하는 비난은 틀렸다. 도서전 예매에 성공한 사람들을 굿즈 마니아라고 비아냥거리는 시선 또한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국도에 책(의) 맛을 보러 오는 독자들이 찾아온다. ‘책 맛을 아는 독자는 자기가 특별히 관심 있는 출판사가 만든 책들을 구매하거나 읽는다이런 독자들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나 전집을 사서 모은다.


올해 국도에 참가한 출판사 중에 내가 주목한 출판사는 까치(까치글방)’워크룸프레스. 까치는 1977년에 설립된 인문 ·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다. 철학, 과학, 역사,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팔리는 스테디셀러도 여러 권이다. 올해 49세인 까치가 국도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까치 출판사의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과거의 책들은 까치글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까치 출판사의 책들은 주로 서평을 쓰기 위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그래서 아주 조금만 읽은 책들이 많다.















* [결정판] 스티븐 호킹, 김동광 옮김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 2021)

 

* [개정판]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2.0(까치, 2026)

 

[4] 토머스 새뮤얼 쿤, 김명자 ·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21)




까치 출판사는 스테디셀러가 된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빌 브라이슨(Bill Bryson)거의 모든 것의 역사, 토머스 S. 쿤(Thomas S. Kuhn)과학혁명의 구조 등을 펴냈다.















* 브라이언 클레그, 제효영 옮김 책을 쓰는 과학자들: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을유문화사, 2025년)




과학자들이 쓴 과학 도서들의 역사를 정리한 브라이언 클레그(Brian Clegg)책을 쓰는 과학자들까치 출판사가 자랑하는 스테디셀러 과학 도서 3이 언급된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는 물리학 개념의 배경 설명이 부족하고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닌데도 가장 많이 팔린 대중 과학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을 깬 과학책이 2003년에 나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는 과학 도서를 꾸준히, 잘 만드는 출판사. 과학 주제가 다양하다. 물리학(아인슈타인, 양자역학), 화학(로얼드 호프만), 수학, 우주론(킵 손), 생물학(닉 레인), 동물학(데이비드 애튼버러, 데즈먼드 모리스), 의학(싯다르타 무케르지) 분야의 책들을 펴냈다
















* 아닐 아난타스와미, 노승영 옮김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AI를 움직이는 우아한 수학(까치, 2025)

 

* 댄 레빗, 이덕환 옮김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까치, 2024)

 

* 데이비드 애튼버러, 이한음 옮김 경이로운 지구의 생명들(까치, 2023)
















* 빌 브라이슨, 이한음 옮김 바디: 우리 몸 안내서(까치, 2020)

 

* [개역판] 로얼드 호프만, 이덕환 옮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까치, 2018)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 옌 웡 함께 썼음, 이한음 옮김 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까치, 2018)

 















* [절판] 데이비드 보더니스, 이덕환 옮김 아인슈타인의 일생 최대 실수(까치, 2017)

 

* 케네스 W. 포드, 이덕환 옮김 양자: 101가지 질문과 답변(까치, 2015)

 

* 킵 손, 전대호 옮김 인더스텔라의 과학(까치, 2015)

 













* [절판] 데이비드 애튼버러 · 에롤 풀러 함께 썼음, 이한음 옮김 낙원의 새를 그리다: 극락조의 발견, 예술, 자연사(까치, 2013)

 

* [절판] 빌 브라이슨 엮음, 이덕환 옮김 거인들의 생각과 힘: 과학과 왕립 학회 이야기 (까치, 2010)

 

* [절판] 리처드 포티, 박중서 옮김 런던 자연사 박물관(까치, 2009)



김동광, 김명남, 노승영, 이덕환, 이한음, 전대호, 홍성욱과 같은 번역 경험이 많은 번역자들이 까치 출판사의 과학책들을 만들었다. 물론, 번역자들도 사람인지라 오역하거나 오탈자를 못 고칠 때가 있다.















* 그레이엄 핸콕, 이경덕 옮김 신의 지문: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까치, 2017)

 

* 그레이엄 핸콕, 이종인 옮김 신의 사람들: 사라진 문명의 전달자들, “신의 지문의 속편(까치, 2016)




그런데 까치 출판사는 외계인이 고대 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그레이엄 핸콕(Graham Hancock)의 책들도 펴냈다. 현재 판매 중인 핸콕의 책은 그의 대표작 신의 지문속편 신의 사람들이다. 나머지 책들은 절판되었다. 신의 사람들의 번역자는 이종인이다. 핸콕의 초고대 문명설은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하고, 근거가 빈약하다. 핸콕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 재미있는 SF 소설로 인식하면서 읽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핸콕의 견해를 너무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은 과학적 사실과 역사를 모조리 부정한다국도 부스에 있는 까치 출판사 관계자를 만난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핸콕의 책이 지금도 잘 팔리냐고.







워크룸프레스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함께 만든 출판사. 그래서 전시 포스터와 다른 출판사의 책 표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 이 출판사가 기획한 제안들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문학 작품들을 모아 놓은 세계 문학 총서.
















* D. A. F. 사드, 성귀수 옮김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 사드 전집 1)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50번째 책]

* D. A. F. 사드, 성귀수 옮김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워크룸프레스, 2018, 사드 전집 2)

 

* D. A. F. 사드, 성귀수 옮김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 소설(워크룸프레스, 2025, 사드 전집 3)




워크룸프레스는 국내 유일의 사드(Sade) 전집을 출간하고 있다인류애를 망가뜨리는 극단적인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사드의 문학 작품은 여전히 금서로 취급된다. ‘괴도 아르센 뤼뺑(Arsene Lupin) 시리즈번역으로 유명한 번역자 성귀수가 혼자서 사드 전집 번역을 하고 있다








출판사가 계획한 사드 전집은 총 1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3권이 번역되었다사드 사후 200주년이었던 2014에 처음 1권이 출간되었는데, 출간 속도가 더딘 편이다.







※ TMI: 성귀수 번역의 아르센 뤼뺑 시리즈를 처음 만든 출판사가 까치. 까치 출판사 부스 바로 옆에 워크룸프레스 출판사 부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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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06-2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크룸프레스 책 디자인 너무 좋아하는데 그래픽디자이너가 함께 책을 만들고 있었군요. 과학 쪽 책에 관심이 많아 번역자 관심 있게 보는데 까치 출판사도 과학 쪽 서적에 특화되어 있었다는 것 알아갑니다. 도서전 다녀오셨다니, 부럽습니다. 저는 엄두가 안 나던데 거기에서 사고 싶은 책들이 있어 부러워만 합니다.

cyrus 2026-07-05 22:15   좋아요 0 | URL
도서전에 처음 공개된 책들은 도서전이 끝나면 알라딘에 판매돼서 나중에 사도 되는데, 도서전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책들은 특별 한정판이라서 저는 이런 책들만 삽니다. 이번 도서전에는 딱 다섯 권만 샀어요. 이 정도면 적게 산 편입니다. ^^;;
 






M. B-V의 죽음


안나 아흐마토바

1940년



향로의 향 대신에, 무덤 위 장미꽃 대신에

여기 당신께 보내는 내 선물이 있다.

당신은 거칠게 살았고, 끝까지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장엄하게 살았다.

당신은 술을 마셨고, 아무도 못 할 농담을 즐기고,

영혼의 벽 속에서 괴로워했다.

그리고 당신은 무서운 손님을 마음속에 들이고

함께 외롭게 남아 있었다.

 

지금 당신은 가고, 당신의 숭고한 슬픈 삶에 대해

주변의 모든 이가 침묵한다.

플루트 같은 내 목소리만

당신의 조용한 장례식에서 노래 부르리라.

내가 미쳐, 죽어 버린 날들의 애도가이며,

내가 느리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연기만 나게 하는 것을

, 누가 감히 믿겠는가,

모든 것을 상실하고 모든 이를 잊어버린 나는

힘과 의지와 찬란한 생각으로 가득 찬,

마치 어제 죽기 전에 고통의 떨림을 감추고

나와 잡담하는 듯했던 인간을 기억해야만 한다.

 






















* [절판] 안나 아흐마토바, 조주관 옮김 주인공 없는 서사시(새미, 2003)


* [절판, No Image] 안나 아흐마또바, 조주관 옮김 자살하고픈 슬픔: 안나 아흐마또바 시선집(열린책들, 1996)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는 러시아의 시인이다. 스탈린(Joseph Stalin)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시집 출판이 금지당한다. 스탈린에 복종한 작가와 비평가들은 아흐마토바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 설상가상 전 남편은 반혁명 분자로 처형당하고, 아들은 수용소에 갇힌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년 2월의 세계 문학]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609번째 책]

* 미하일 불가코프, 정보라 옮김 거장과 마르가리타(민음사, 2010)

 

* 미하일 불가코프, 홍대화 옮김 거장과 마르가리따(열린책들, 2009)




혹독한 시련을 겪은 아흐마토바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Bulgakov)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불가코프도 스탈린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작가라서 소설을 출판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는 출판할 수 없는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아내 옐레나(Elena)와 함께 쓰고 있었다. 그래도 불가코프는 스탈린에게 완전히 버림받은 상황이 아니었고, 스탈린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불가코프는 아흐마토바의 아들의 석방을 바라는 탄원서를 보낸다.













아들은 스탈린이 죽은 1953년에 석방되고, 아흐마토바는 다시 시집을 출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흐마토바를 도와준 불가코프는 19403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흐마토바는 불가코프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그를 애도하는 마음을 담은 M. B-V의 죽음이라는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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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이 저물고 월()요일이 조용히 뜨기 시작하는 밤. 잠을 자야 할 시간인데도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일요일이 끝날 때만 생기는 불면증이다. 자꾸만 미룬 책들을 뒤늦게 펼쳐본다. 온종일 가만히 있었던 집중력이 되살아난다. 눈꺼풀에 매달린 졸음이 달아난다거뜬히 책을 읽고 나면 새벽 한 시. 집중력이 평소보다 높아지는 날이면 새벽 두 시까지 읽는다.

















* 파스칼 드튀랑, 김희라 옮김 우주를 품은 미술관: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미술문화, 2025)

 




지난주 일요일(97)우주를 품은 미술관을 완독했다.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쉬엄쉬엄 다른 책을 보면서 서평을 썼다.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월요일(98) 새벽이 될 때까지 썼다


월요일 새벽에 붉은 달(blood moon)’이 뜬다는 뉴스를 알고 있었다. 달이 붉게 변하는 현상은 개기월식이다. 달은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진 상태다. 우주를 품은 미술관에 일식과 월식 현상을 묘사한 그림들이 나온다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일식과 월식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시대가 변하면서 일식과 월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기독교 미술에서 묘사된 일식과 월식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신의 메시지를 의미했다.


달이 붉게 변할 때가 개기식 최대로 볼 수 있는 시간대다. 그런데 붉은 달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개기식 최대 시간이 새벽 311이다새벽 3시를 넘긴 채 월요일 새벽을 맞이한 적이 없다. 아침에 깨어날 때 막 몰려오는 피로감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자투리 잠을 잘 걸 그랬나. 하지만 서평 쓰는 데 몰입하느라 눈을 잠깐 붙일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서평을 다 쓰고 나니 새벽 2시였다잠이 오지 않아서 옥상에 갔다. 230분부터 개기식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밤하늘에 구름이 많았다. 구름은 서서히 붉어지는 달을 가렸다.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다. 구름 뒤로 숨은 붉은 달이 있는 곳을 쳐다보기만 했다. 구름이 지나가길 바랐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은 붉은 달을 감쌌다.



















* 블레즈 파스칼, 이환 옮김 팡세(민음사, 2003)

 

* 칼 세이건, 현정준 옮김 창백한 푸른 점(사이언스북스, 2001)





한 시간 남짓 불빛 한 점 없는 옥상 한가운데 서서 밤하늘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으니 살짝 두려움을 느꼈다파스칼(Blaise Pascal)이 두려워하던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내 눈앞에 펼쳐진 구름 낀 밤하늘은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파스칼은 어린 나이에 계산기를 발명했고, 젊은 시절에 수학과 물리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학자다. 게다가 그는 팡세를 쓴 철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천문학에 관심을 드러나지 않았지만, 무한한 어둠의 우주 속에 있는 인간을 티끌로 비유한 칼 세이건(Carl Sagan)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이다파스칼은 무한을 두려워했지만, 사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기였다.








새벽 3시가 될 무렵에 구름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지나가는 구름의 틈 사이로 붉은 달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붉은 달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설프게 고화질로 설정해서 찍은 건데 생각보다 붉은 달빛이 진하게 나왔다. 달 표면이 뚜렷하게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맨눈으로 붉은 달을 봤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325. 붉은 달 관측 종료.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날따라 눈 속의 어둠이 무한한 우주의 어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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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10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생각보다 달이 잘 찍혔네요.요즘 스마트 폰의 사진 촬영능력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스마트 폰이 이리 좋아지니 카메라 회사들이 자꾸 힘들어 지는 것 같네요^^

cyrus 2025-09-14 23:33   좋아요 0 | URL
흐릿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사진 보정 기능을 아무거나 해보니까 진하게 나왔어요. ^^;;

꼬마요정 2025-09-1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말씀처럼 여름밤에 무서운 건 모기죠!! 올해는 그나마 모기가 적다지만 독하더라구요ㅠㅠ 근데 사진이 정말 잘 찍혔네요. 가끔 달 찍어보면 저는 흐릿하거나 뭔가 잘 안 나오던데 멋집니다. 파스칼과 칼 세이건.... 똑똑한 사람들의 만남이로군요^^

cyrus 2025-09-14 23:35   좋아요 1 | URL
올해 여름은 신기하게도 집안에 모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역시나 새벽에 나가보니까 모기들이 돌아다니네요.. ^^;;

transient-guest 2025-09-1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잠이 안 올때 책을 펼치면 아침까지 잠을 못자게 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잠이 안 와도 책은 안 읽어요.ㅎㅎ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구요.ㅎ 글이 좋네요. 책과 우주와 미술과 생활과...낭만적입니다

cyrus 2025-09-14 23:38   좋아요 1 | URL
지금도 잠이 오지 않아요. 오늘 해야 할 일은 독서 모임 발제를 만드는 것인데, 다 만들었어요. 읽다 만 책 조금 보다가 자야겠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