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무정한 세계 - 우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과학사
정인경 지음 / 돌베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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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죄악은 나날이 커지리라.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어리석게 살도록 그들을 내버려두자꾸나. 내가 주인임을 그들이 모르게 하라.”
 “주인님의 계획은 감미롭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 『모로 박사의 섬』에서, 문예출판사)

 

 

모로 박사는 자신이 만든 이상한 피조물을 지배하는 신이 되고 싶어 한다. 동물 인간들의 야생 본능을 억누르기 위해 법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은밀히 피 맛을 느껴버린 동물 인간들은 신이라고 여긴 모로 박사를 습격하여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 지옥 같은 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는 에드워드 프렌틱. 그 곁에는 자신을 따르는 개 인간만 있을 뿐이다. 개 인간은 프렌틱을 주인이라 믿고 따른다. 프렌틱을 돕는 개 인간도 언젠가는 동물 인간들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상황. 동물 인간들의 공격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프렌틱은 자신을 믿는 개 인간만 남겨두고 모조리 죽이겠다고 약속한다. 그가 동물 인간들을 향한 반격에 성공하면 모로 박사처럼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피조물의 신이 된 모로 박사를 비난했던 프렌틱도 개 인간 앞에서 신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수적 열세에 처한 프렌틱은 자신의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다. 아니, 절대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프렌틱은 이 섬에서 신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섬에서 탈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동물 인간과의 교섭이 가능한 개 인간을 이용했을 뿐이다. 개 인간은 인간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자신 같은 피조물을 만든 인간을 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렌틱은 비정하다. 개 인간을 방패막이로 하여 동물 인간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 동물 인간들에게 외면 받았고,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개 인간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에게 이 섬은 무정한 세계다.

 

웰스『모로 박사의 섬』을 집필하고 있을 당시 유럽은 눈부실 정도로 서양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새로운 이론들을 발견해내는 데 성공하는 유럽인들은 승승장구했다. 진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과학의 진보에 한껏 고무되어 자연을 지배하고 싶었다. 여기서 그들이 지배하고 싶었던 자연이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식민지를 말한다. 과학기술은 식민지를 무력화시켜 지배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로 변질한다. 유럽 열강은 자신들이 만든 증기선, 소총, 대포 등을 총동원하여 힘없는 식민지를 공격하고 교역을 맺도록 강요한다. 열강 유럽의 습격으로 식민지에 서양문화가 유입되었고, 강제적으로 이식되었다. 유럽인들은 어리석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것이 자신들이 이룩한 진보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 의해 ‘야만인’, ‘비문명인’으로 규정된 피식민지인은 과학기술을 두려워했다. 두려움에 떠는 피식민지인들 앞에서 유럽인들은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했다. 무기로 내세운 과학기술 앞에 처참히 짓밟힌 고국의 현실을 눈앞에서 지켜본 식민지 지식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과학기술을 수용하는 일이야말로 침체한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선결적 과제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서양 과학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다. 우리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강제적으로 서양 과학을 받아들였다. 과학만 확실하게 안다면 유럽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문명에 대한 열등감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감미로운 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약을 무조건 건강에 좋다고 믿고 한꺼번에 들이 삼키면 부작용이 생긴다. 체질에 맞지 않은 서양 과학을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잘못된 과학 지식을 터득하게 되었고, 지금도 과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여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과학 공부를 어렵게 생각하는 원인을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서 찾는다.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이 시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과학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 나오는 형식처럼  “과학! 과학!”하고 외쳐보지만, 정작 자신들이 알아야 할 과학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이 알고 있던 과학은 그저 자신들의 정신적 고통을 달래주는 아편에 불과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의도적으로 과학을 편집, 왜곡했다. 국력이 강한 나라가 되어야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는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은 다윈 진화론과 전혀 다른 사상이다. 순수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다윈 진화론을 알지 못한 채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지식인들은 진화론에 ‘적자생존’, ‘약육강식’ 개념을 결부했다. 과학적 다윈 이론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조선 지식인들의 오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다윈과 진화론, 둘 중 하나라도 언급하면 벌써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다. 강자의 힘을 정당화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을 전파한 조선 지식인들은 강자의 힘에 매료되어 강자 앞에서 굴복하는 의식에 젖어든다. 이는 곧 인종적 열악함을 자인하고, 패배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를 믿었던 이광수는 『무정』을 발표한 지 5년 뒤에 ‘민족개조론’이라는 논설을 써서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조선의 민족성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에 과학을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에 무지한 피식민지인들은 서양을 ‘주인'처럼 우러러 보게 된다.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진보의 힘을 믿고 식민지에서 똑똑한 주인으로 행세하며 자부심을 확인했다. 과학 중심의 왜곡된 계몽주의를 내세운 조선 지식인들은 미몽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서양 근대과학은 전 세계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진리로 굳어졌다. 이 진리를 터득하려면 그 속에 내포된 서양인의 사고방식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과학이라 할 수 없다. 과학이 세상을 계몽하는 데 유용하다고 믿는 것은 과학주의다. 여기에 진보와 야만, 문명인과 비문명인으로 규정하는 제국주의적 시선이 작용한다. 안타깝지만,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는 미몽에 가까운 애국적 계몽사상이 빚어낸 비극을 여전히 상연하고 있다.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별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양인들의 입맛에만 맞는 과학 아닌 과학을 배우면서 자랐다.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우리는 아이들에게 진짜 과학을 돌려주도록 도와줄 수 있는 자격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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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4-12-3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과학 현실이 서양 근대화에 불과하다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였네요. 저는 과학을 잘 아는 편도 아니고, 또 역사적인 부분도 부족하지만, 이 책안에는 역사와 정치 과학을 다루는것 같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글도 잘 쓰시고 독서량이 상당하시네요^^ 놀랍고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cyrus 2014-12-31 18:55   좋아요 0 | URL
이 책 추천하고 싶어요. `과학 상식(특히 뉴턴 물리학과 진화론) 한국문학(이광수, 염상섭, 이상) 한국근대사`가 적절히 조합된 책입니다. 저자가 글을 어렵지 않게 풀어썼어요.

읽고 쓰는 일이 그냥 좋아서 일기처럼 쓰는 편입니다. 놀라는 일이 아니에요. 저보다 많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들이 알라딘에 많으니까요. ^^

바람돌이 2015-01-0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의 침략이 과학을 앞세워 식민지인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식민지에서 단순한 열등감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관철되는 메카니즘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했는데 이 책이 그 궁금증을 어느정도 해소해줄 수 있을 듯하네요. 덕분에 좋은 책 담아갑니다. 다음에 읽을 책 리스트에 살짝 꽂아갑니다.

cyrus 2015-01-01 19:20   좋아요 0 | URL
저자의 주장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 문학 작품을 인용해서 설명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꼭 읽어보셔요. ^^

yamoo 2015-01-0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책이 땡기는군요~ㅎ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사이러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책 소개도 많이 많이 해 주시길~!

cyrus 2015-01-01 22:5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야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야무님께서 직접 추천하는 책 소개 페이지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절의 역사 - 조선 지식인의 성 담론
이숙인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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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숙  「신부」  2007년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알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알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잡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 ‘신부’)

 

 

여인이 불 켜진 방안에 혼자 앉아있고, 댓돌 위에 고무신이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있다. 문틈으로 나와 있는 옷자락은 첫날밤을 앞두는 아리따운 신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았다. 혼인 첫날밤에 생긴 오해로 신부는 평생을 그대로 앉아 있다. 먼 훗날 신랑의 손길이 닿자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이 시를 읽으면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한 편의 전설과 같은 시 속에 외롭고 슬픈 신부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기다리다 한 줌 재가 된다는 것. 이 시 속에는 우리나라 옛날 여인들의 한(恨)이 있다.

 

수절을 미덕으로 삼았던 한국 여인의 애틋한 삶을 서사적으로 표현한 이 시는 유교적 열녀의 이미지를 신화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조선 시대 여성의 정절(貞節)은 남성의 충절(忠節)과 더불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규범이자 인간적 덕목이었다.

 

농촌 마을을 지나다 보면 마을 어귀나 도로 주변에서 문 모양의 나무 건축물들이 보호 울타리 속에 서 있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일 것이다. 이런 건축물이 '정려'(旌閭)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세우는 문을 말한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에 대해 국가에서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삼국시대에도 나오지만, 이를 정려와 같은 사회제도로 정비한 것은 조선 시대였다. 태조는 조선을 세워 왕이 된 다음, 충신이나 효자, 열녀의 행실을 널리 권장하고, 정려를 세워 모범으로 삼도록 했다. 이후 조선의 조정에서는 각 고을 수령의 추천을 받아서 연초에 국가 차원에서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결정했다. 충신이나 효자, 열녀로 인정되면 그 집안사람들은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이를 ‘복호’(復戶)라고 한다.

 

정려가 오늘날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를 가문의 영예로 여겨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려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구실을 했다. 가족윤리가 강조되는 5월에 정려는 전통 윤리의 상징으로 되새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정려가 가지는 의미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려를 통해 지키고자 했던 윤리들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기도 했다. 정려가 세워진 집안의 후손들은 알게 모르게 그와 같은 삶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특히 이러한 압력을 강하게 받았던 것은 여성이었다. 정려가 내려진 인물 중 다수는 여성이었는데, 이는 남편에 대한 정절의 대가였다. 이는 평민이나 노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정절은 정려가 요구하는 여성이 지켜야 할 가장 우선적인 덕목이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사회적인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재혼한 여성의 자식은 벼슬길에 오르는데 제한을 받았다.

 

남녀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상호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되었다. 소복을 입고 언제든 가슴에 찬 은장도를 꺼내 들 준비가 된 여인. 서정주의 시에 나오는 신부처럼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기는 여인. 전란 통에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 그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잔혹한 역사를 탄생시킨 내밀한 국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즉 정절은 국법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부부 사이의 개인적 도덕인 정절을 국가가 관리했다는 뜻이다. 이 시기 정절을 지킨 아내에게는 국가 차원의 보상이 이뤄졌고, 반대로 개가한 과부 등 ‘정절을 해친’ 아내는 국가가 나서서 분노하고 응징하기까지 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정절을 어긴 이른바 실행녀(失行女)의 남성 가족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관직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자녀안'(姿女案)이라 하여 양반 출신으로 부정한 짓을 하거나 세 번 이상 개가한 여성의 소행을 적어 그 자손의 관직 등용을 제한했다. 이러한 정절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국가 차원에서 정절 여성을 발굴하는 동시에 여성의 음란행위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정절 이데올로기’는 순수혈통을 지켜내기 위해 여성들의 성을 구속하였고, 이 범주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는 유·무형의 가혹한 처벌이 주어졌다. 가부장적 사회의 잣대로 이분화한 순결한 여성과 타락한 여성으로 재단한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는 여성에 대한 경멸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뭔가 당할 만했겠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심지어 가슴이 파인 상의에, 허벅지가 훤하게 드러나는 짧은 치마 같은 야한 느낌이 드는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성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의 여성책임론이 나온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오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열녀라는 타이틀을 받으면 그 여성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에도 영광이었다. 하지만,  한 여성이 여성으로 사는 삶을 희생하는 조건으로만 사회적 출세를, 그것도 다 늙은 다음에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여성 개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조선 시대를 절대적으로 지배한 유교라는 사상과 잦은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수난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조선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장벽 ‘정절 이데올로기’에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선 시대 여인들은 수천수만 명이 훨씬 넘게 존재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열녀의 죽음이 과연 그 시대에 타인에 의해 정당하게 칭송될 수 있는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역사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에 희생된 이름 없는 여인들의 넋을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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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엘레지 -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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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중고교를 다녔다면 영어사전을 씹어 먹는 친구가 한 명쯤은 있었을 것이다. 영어 단어를 다 외운 페이지를 쭉 찢어 입에 넣는 장면은 당시 청소년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영어단어를 외울 때 사전을 씹어 먹기 위해서 종이를 찢을  수가 없다. 전자사전의 보급으로 이 우스갯소리는 옛 말이 되어버렸다. 영어 사전을 찢어 먹는 풍경이 사라진 요즘 교실에서는 전자사전 어플리케이션이 있는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자습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종이로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다. 브리태니커 종이사전은 1768년 첫 선을 보인 지 244년 만인 2012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등 인터넷 혁명에 밀려난 결과다. 1년에 70달러만 내면 각종 정보와 휴대전화용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상징적 유산이었던 브리태니커 종이사전의 쓸쓸한 퇴장은 모바일 시대의 빅뱅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종이신문 시대도 종말을 맞았다고 말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실제 대다수 젊은 세대는 인터넷,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의 기기를 통해 각종 정보를 습득하고 소통한다. 그 결과 출판 산업과 신문 산업은 어려움에 처해 있고, 저마다 전자책과 인터넷신문 발행 등의 신사업으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종이는 인류가 기록을 남기고 정보를 전달하며 문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발명한 최고(最古)의 기록 재료이다. 종이의 역사는 매우 길다. 중국의 갑골문자나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의 점토문자 같은 종이 발명 이전의 기록매체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현대 종이의 원형은 5000년 전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시작 하였으며 종이는 기원전 108년에 중국의 채륜에 의해 발명된 이후, 2000년 동안 인류문명과 문화의 꽃을 피워왔다.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 종이없는(paperless) 사회가 올 것이다.” 1990년대 초 앨빈 토플러를 비롯한 미래학자들이 미래 인류사회의 변화상 가운데 가장 큰 특징으로 예견한 말이다. 과연 종이책이 사라진다면 종이의 시대도 종말을 고할까?

 

그러나 현재까진 이 예언이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종이에 글을 쓰는 소설가가 직업인 저자는 인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종이의 존재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발달로 종이의 사용이 줄고 있지만, 종이는 여전히 지식 전달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책 맛’이라는 게 있다. 검지에 침을 약간 묻혀 책장을 넘길 때 느껴지는 종이 질감. 밑줄이나 낙서, 접힌 부분 등 각 장의 여백에 남겨 있는 여러 순간의 다양했던 삶의 모양새들. 면지에 적힌 책에 얽힌 짤막한 메모 등은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별도의 선물이다. 여전히 책 맛을 느낄 수 있기에 ‘종이책 종말론’에 대한 비블리오필(bibliophil)의 걱정은 조금 사라졌다. 종이책의 종말을 재촉할 것으로 예상되던 전자책의 등장은 오히려 종이책이 지닌 매력을 극대화해주는 계기가 됐다.

 

종이책의 진화에서 결정적이지만, 유독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바로 종이다. 종이는 책의 얼굴이자 1차 광고라 할 수 있는 표지 이미지를 담는 그릇이며 질감과 색감, 두께와 무게 등으로 책의 기본 내용과 컨셉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흔히 연상되는 종이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서류문서나 책 혹은 신문지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종이는 상상 이상으로 일상의 훨씬 더 많은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돈거래에서 가장 환영받는 현금 지폐. 재료는 당연히 종이다. 그 밖에도 영화 필름, 포스트잇 메모지, 복권, 영수증 둥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은 대부분 종이로 만들었다. 

 

『페이퍼 엘레지』에서 보여주는 종이의 존재는 단순한 물질이나 기록의 도구를 넘어 인류 문명과 역사 그 자체다. 저자 이언 샌섬은 종이를 ‘궁극의 인공물’이라고 부르며, 종이와 인간 문명의 관계를 넓고 깊게 파 들어갔다. 그의 책은 종이 자체의 역사만 다루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종이가 만들어 낸 문명에서 탄생된 물건들의 박물관이다.

 

과거의 세계경제는 실물의 가치에 기반을 두어 모든 거래가 이뤄졌다. 그러다가 경제가 커지면서 종이 돈, 즉 지폐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가상의 지폐를 중앙은행의 컴퓨터가 창조해 내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종이는 여전히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 문명과 문명 간의 교류, 각종 탐험과 교역, 전쟁을 가능케 한 지도 역시 ‘종이’가 있었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보급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런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사실과 문헌 속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씨줄 날줄로 엮어가며 종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끝없이 감탄한다. 장인이 기술과 정성으로 만들어낸 종이 제품들에 대한 깊은 애정도 곳곳에서 드러낸다.

 

결국 우리는 지금까지 종이의 시대 속에 살고 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종이가 이 세상에 완전히 사라진다면 기계처럼 작동되는 문명이라는 기계에 중요한 나사 하나가 풀려서 빠진 것과 같다. 그만큼 종이는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생활, 아니 문명의 필수품이다. 앞으로 종이의 시대는 저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좀 슬프다. ‘엘레지(Elegy)’는 죽음 사람에 대한 애도의 시를 의미한다. 종이에 대한 저자의 낙관적 전망과 정반대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랫말처럼 종이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종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종이는 분명 우리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종이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수록 푸르른 나무들이 한 그루씩 쓰러져 간다. 종이책은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던 시대적 분위기와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산림을 파괴시켰다. 세계 종이 소비량은 점점 늘어난다. 하루에 전 세계 사람들은 100만 톤 정도의 종이를 사용한다. A4 용지 한 장을 만드는 과정에 전구 하나를 한 시간 동안 켤 때만큼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물 한 컵이 필요하다. 환경 파괴 문제가 대두되면서 제지업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높아지고, 종이의 위상 또한 흔들린다. 저자는 숲과 종이가 함께 공존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이러한 근심이 깊어질수록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들은 종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 우리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것을 한 번 쓰고 버린다. 저자의 생각대로 종이가 정말 영원할 것 같은가?만약에 종이 생산에 필요한 나무가 지구상에 사라진다면, 종이의 운명도 멈추게 된다. 종이의 가치를 확실하게 알게 된 이상, 지금부터라도 종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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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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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일이다. 역사책을 읽을 것 같으면 기쁨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곳이 또한 즐거운 곳이다. (장조 『유몽영』중에서, 정민 『마음을 비우는 지혜』에서 인용, 181쪽)

 

 

오늘의 정치는 내일의 역사가 되고, 어제의 역사는 오늘의 정치를 지배한다. 요즘에는 이 말을 특히 실감한다. 내일의 역사를 자기편으로 서술하기 위한 정치싸움은 진행 중이다. 한쪽에선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60년 만에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라고 외친다. 나아가 이런 대한민국이 어찌 반쪽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대한민국 그 자체를 무(無)에서 창조한 기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단독정부 수립으로 분단을 고착화하며 태어난 대한민국이 태생적으로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국가이며, 38선 혹은 휴전선으로 갈라진 그 나머지 반쪽인 북한과 '민족통일'을 이루기 전에는 어떠한 경제적 성공도 완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 개의 마주할 수 없는 극단적 시각이 엄존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양극단 사이에는 회색지대와도 같은 무수한 시각이 존재한다.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한 이런 시각은 비단 건국뿐만 아니라 한국근현대사 곳곳에서 충돌한다. ‘분단’의 시각에 선 쪽에서는 김구를 추앙하는 데 비해, ‘건국’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이승만을 ‘국부’로 간주한다. 전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태어나서는 안 될 ‘절대악의 축’이지만, 후자에겐 ‘허리띠를 졸라매며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산업화를 이룬 위대한 지도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대립은 급기야 대한민국 그 자체의 정통성 시비를 불러 일으켜, 그것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민국사를 ‘뒤틀린 역사’로 간주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이승만 정부가 친일인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친일파 청산으로 대표되는 과거사 청산 운동이 거세게 분 것도 이런 대한민국 건국관이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독사신론』에서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없는 민족을 낳으며, 정신없는 국가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오,”라고 하여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고교 역사교과서 파동은 다수의 국민에게 심각한 우려의 눈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본질은 현재 역사학계의 편향적이고, 왜곡적인 역사시각을 감히 나서서 자정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역사기술을 통해 왜곡집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고 할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유관순을 고교역사교과서에서 의도적으로 ‘실종’된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은 기가 막힌 역사학계의 수치다.

 

더욱이 문제투성이 역사교과서를 고등학생들이 읽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안 생길 수가 없다. 청소년 역사의식을 혼돈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 역사 교육은 미래를 이끌어 나갈 학생들에게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 내용에서 단어나 문구를 가지고 역사학계에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다투는 일이 벌어졌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 가운데서도 현대사는 가장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킨다.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와 달리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피해자 또는 수혜자 등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정치에 참여했던 이가 펴낸 현대사라면 논쟁은 더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 프롤로그에서 역사는 본질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역사 서술에서 핵심인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은 주관적 기록이 된다. 한마디로 책은 굵직한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나열했다기보다 그 속에 이와 관련된 저자의 일상 체험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문제투성이 역사교과서처럼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비록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아울러 삶의 기본적 욕구조차 해결할 수 없게 만든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실려 있지만, 그 속에 오랜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국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기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인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을 통해 한국현대사 55년을 분석한다. 욕구단계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욕망이다. 인간은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하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생리적인 욕구 단계부터 출발하여 존경에 대한 욕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에까지 갈망하게 된다. 인간이 의식주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이 욕구가 충족되면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게 되며 내적인 성장을 실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욕망은 너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왔다. 단군 이래 이렇게 잘 산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부정적인 폐해도 적지 않았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사건,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사고,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0년 천안함 사건,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참사까지. 물질적 욕망의 질주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정의를 외면하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외면하고 털어내려고 한다.

 

자랑스러운 것만을 드러내려는 쪽, 부끄러운 것을 기억하려는 쪽,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을 역사라는 ‘집단기억’에 기초한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역사관에는 차이가 없다. 현대의 역사 이론들이 합창하는 것처럼, 역사서술은 근본적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이다. 이는 동일한 사료를 근거로 하더라도,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취합하여 서술하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극명할 수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해석이든 너의 해석이든 어느 것도 ‘객관적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성찰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유시민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으로 읽는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두 세력을 거의 50대 50으로 인정해왔고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 모두 우리의 과거이며 따라서 둘 중 하나만을 인정하는 자세는 온전한 역사인식·현실인식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역사논쟁이 뜨거운 지금, 서로 다른 경험과 이해관계, 인생관을 가졌다 해도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그 간극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문제였다.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관계에 대한 집착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상반된 역사관에 비방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대화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역사교과서는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지혜로운 정치의 산물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으로 꼽히는 ‘공감’, 정치적으로는 세대별 전쟁 수준까지 갈라진 상황에 대해 싸우지 말고 현실 직시부터 해야 한다. 모든 역사엔 빛과 어둠이 있다. 역사 교과서에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최고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우리를 분노케하는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도 공존한다. 연구자와 학습자는 모두 역사 해석의 독단을 경계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교류를 역사 이해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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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광기 - 왜 예루살렘이 문제인가?
제임스 캐럴 지음, 박경선 옮김 / 동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Scene #1  평화롭기보다는 살벌한 예루살렘

 

인간은 늘 무언가를 갈망하고 소원하며, 신을 향해 애절하게 울부짖는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가슴 아린 현실을 내 안의 그분만은 알아주길 간절히 원하면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유대교인이 되고, 불자가 되는 길을 찾아 나선다. 예루살렘은 가슴 아픈 역사와 분열의 중심인 동시에 구원과 희망의 성지다.

 

갈릴리에 살던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죽기 전날 홀로 기도한 겟세마네 동산이 있고, 부활한 지 40일 만에 승천했다는 곳이 모두 감람산이다. 감람산 밑엔 유대인들이 최고 명당으로 꼽는 공동묘지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직접 문을 열 것이라고 믿는 성벽이 굳게 닫혀 있다. 그 성벽 위엔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아들 이사악을 바치려 한 성전산이 있다. 이곳엔 무슬림의 황금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나란히 서 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탈무드』에 "아름다움의 척도 열 가지가 세상에 주어졌는데, 그중 아홉 가지를 예루살렘이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보다는 번득이는 총구가 먼저 눈에 띈다. 더욱 성스러워야 할 이곳은 평화롭기보다는 살벌하다. 평화가 너무도 간절하기에 예루살렘인 것일까.

 

예루살렘에서 여전히 평화는 멀고 저주는 가깝다. 예루살렘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선지자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종교와 신화가 서린 이런 도시를 누가 지배하느냐였다. 정복자는 피지배자들의 신전을 허물고, 그 폐허 위에 그들이 믿는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다. 피지배자들은 허물어진 신전을 언젠가 다시 세우겠다고 맹세했고, 피가 피를 부르는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2천년 동안의 고난을 잊은 듯 보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고사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유대인과 아랍의 갈등이 지구상 최고의 ‘뜨거운 감자’라 하더라도 유대인과 기독교의 역사적 갈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예수는 2천년 이래 유대인이 낳은 지상 최고의 슈퍼스타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만은 ‘지상 최악의 인물’이다. 예수에 대한 지구상 최고의 환호와 저주가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직과 수평의 십자가처럼 예루살렘에서 상극을 연출하고 있다.

 

 


 Scene #2  군인으로 변한 종교인 

 

야만적인 전쟁 행위에 흔히 신성(神聖)을 부여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원시 부족들이 사냥이나 전투에 앞서 희생물을 바치는 종교의식에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피 흘리며 죽이고 죽는 것을 무릅쓰도록 부추기고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나오는 죄의식을 씻어주는 집단 최면 효과를 얻는 셈이다.

 

전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종교’로 인해 일어난 전쟁 역시 수없이 많다. 종교 간 대립으로 인한 전쟁,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한 전쟁 등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전쟁 속에서 군인으로 변모한 종교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0년 전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 서유럽이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11∼13세기 200년간 8차례에 걸쳐 감행한 십자군 성전(聖戰)은 잔혹한 살육과 약탈로 얼룩진 추악한 전쟁이다. 그 이면에 교황권 확대와 유럽인의 대외 팽창 욕구 등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역사의 흐름에서 십자군 전쟁이 끼친 긍정적 파급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신앙을 가장한 인간의 탐욕이 빚은 부끄러운 만행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 정권이 자행했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위해 미국이 팔레스타인 땅 심장부에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했는데 이는 많은 무슬림의 가슴에 반미 감정을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더욱이 미국의 막대한 군사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4차례의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철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웃 아랍 국가들의 영토를 불법으로 점령하자 하마스, 헤즈볼라, 이슬람 지하드 같은 조직적인 무장저항단체가 생겨나 반 이스라엘 투쟁을 본격화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아랍어로 ‘알 쿠즈’라 부른다. 앞으로 언젠가는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가 바로 알 쿠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을 선언할 당시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였으나, 1950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다고 선포했다.

 

예루살렘 성지문제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사이에 벌어진 유혈 충돌이 ‘눈에는 눈’식의 보복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도 불안해 보이기 짝이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평화는 깨졌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서로를 향해 펀치를 가하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어린이 놀이터에 폭격을 가해 9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죽는 잔혹한 일이 발생했다.

 

 

 

 Scene #3  ‘예루살렘 열병’을 치료해줄 ‘좋은 종교’ 어디 없나?

 

요즘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지구 공격 사태로 대체로 이스라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이 부정적이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팔레스타인이나 이슬람이 늘 피해자였던 것도 아니다. 팔레스타인은 일방적인 피해자도 아닐뿐더러, 이스라엘도 일방적인 폭력의 가해자도 아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 모두가 종교에 의해 열병이 걸려 폭력을 정당화한다. '신의 계시'란 이름 아래 종교적 욕망, 군사적 욕망이 더해져 타 민족과 종교집단을 괴롭혔다. 그들의 시각에서 타 종교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다.

 

니체는 "기독교는 피정복자와 피압박자의 본능이 전면에 나타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는 권력자에 대한 감동이 늘 생생하게 살아난다"며 기독교 권력화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종교가 정치 권력화 되면서 나타나는 병폐는 기독교뿐만이 아니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자임하는 유대인들은 성스러운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위해 그곳에서 수천 년간 거주했던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지금도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은 알라신의 계시라는 이름하에 타 종교와 대립하고 또한 자신의 육체를 신에게 맡기는 인간폭탄 테러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이 열병은 지독하다. 병명은 ‘예루살렘 열병’. 그 종교의 열병은 곧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타적인 적대감으로 이어지고, 그 적대감은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무자비한 살육을 가능케 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고 타자를 희생물로 신에게 바치지 않으면 자신이 제물이 된다는 인식은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열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성스러움과 폭력이 양립하는 종교의 모순을 목격한 제임스 캐럴은 ‘좋은 종교’로 발전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종교’는 죽음 대신 삶을 찬미하고,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신이 이 땅에 임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로 규정한다. 그리고 종교는 구원이 아닌 계시에 관한 것이며 강요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역설적이게도 종교는 세속적 성격을 띨 수 있다.

 

종교의 근본주의 사상에서 가장 문제점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다양성이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세계관을 가졌다. 흑백논리에 점철된 그들의 주장은 타 민족을 학살하거나 억압할 때 정당화 하는 논리로 사용됐다. 희생양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합리화를 택한다. 종교는 전쟁에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 주었다. 종교적 광기가 정치권력을 장악할 경우 예루살렘은 절대로 ‘평화의 도시’가 될 수 없다.

 

“역사가 되풀이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가 남긴 말은 ‘예루살렘 열병’의 환각 상태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종교’를 조롱하는 듯하다. 이들의 끝없는 전쟁은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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