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고통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 알면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본능적일 수밖에 없다. 의학의 발전은 환자의 고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하여, 아픈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인류 초기의 의학은 우리 몸의 각 부분에 추상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영적의 힘으로 질병을 치유하려고 했다. 몸속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근대 의학의 문이 열렸다. 죽은 사람의 몸을 열어보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해부학이 정립된다.

 

 

 

 

 

 

 

 

 

 

 

 

 

 

 

 

 

 

인체의 구조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서인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는 1,000년이 넘는 의학의 한계를 극복했다. 고대 로마의 의사 갈레노스가 동물 해부를 바탕으로 만든 해부학을 넘어섰다. 베살리우스는 해부학 연구를 위해선 시체를 훔쳐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정열적인 의학도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사람의 몸을 신의 영역으로 여겨 인체가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걸 용납하지 않던 기독교 시대였다. 베살리우스는 해부 실습이 허용된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의학교수로 임명되었다. 베살리우스는 파격적인 해부학 수업을 시도했다. 자신이 직접 시체를 해부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풍부한 해부 경험이 쌓인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의 해부학에 문제점을 발견했다. 교회 권력의 힘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자 갈레노스의 해부학은 유일한 정통학설로 인정되었다. 이를 비판하는 학자는 교회의 이름으로 불이익을 받았다.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를 발표한 이후 베살리우스는 종교 권위에 도전한 대가로 교수직을 그만둔다.

 

 

 

 

 

 

 

 

 

 

 

 

 

 

 

 

 

 

종교의 힘이 무너지면서 의사들은 해부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들은 메스를 쥐고 베살리우스의 후예가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해부학 수업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해부학 실습 학교가 많이 세워졌다. 하지만 해부용 시체, 특히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사형수의 시체만이 해부가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범죄자들의 시체만으로는 부족했다. 의사들은 낮에 메스를 들고, 밤에는 삽을 들었다. 돈이 없는 의사는 시체 도굴꾼이 되었다. 재력이 있는 의사는 전문 시체 도굴꾼을 고용했다. 시체 도굴과 해부 실습이 빈번해지면서 비윤리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발생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오물 구덩이에 시체 토막이 발견되었다. 해부하다가 남은 시체 토막이 몰래 버려진 것이다. 파리의 작가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는 시체 토막이 발견되는 파리의 오물 구덩이를 《파리의 풍경》에 기록했다. 그는 구덩이 안에 묻힌 시체 토막을 보면, ‘끔찍한 중범죄’가 떠오른다고 썼다. 불행하게도 메르시에의 예감은 수십 년이 지나서 현실이 된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시체 도굴꾼이 성행했다. 에든버러의 작은 여관을 운영하는 윌리엄 버크와 윌리엄 헤어는 시체 도굴이 돈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방세를 밀린 채 사망한 투숙객의 시체를 해부학교에 팔아 방세를 회수했다. 버크와 헤어는 시체를 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병든 투숙객, 노숙자들을 유인해 목 졸라 살해하고 시체를 팔았다. 버크와 헤어의 범행이 발각되기 전까지 17명의 사람이 희생당했다(문헌마다 희생자의 수가 다르다. 어떤 책은 15명이라고 썼다). 버크와 헤어가 공급한 시체는 에든버러 의과대학 강사인 로버트 녹스가 매입했다. 헤어는 자신의 죄를 면하기 위해서 버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결국 버크는 1829년에 교수형에 처했다. 석방된 헤어는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버크의 시체는 법의 규정대로 해부 실습소로 향했다. 지금도 에든버러 대학 박물관에 가면 버크의 골격 표본을 볼 수 있다. 살인자의 성(姓) 버크(burke) ‘목 졸라 죽이다’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발견’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흔히 최초의 발견자가 되면 돈방석에 앉고, 역사교과서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은 처음에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잘못 걸리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미친 짓’이라는 비난 속에도 새로운 발견에 매달렸다. 그 과정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사자들은 혼자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눈부시게 보이는 과학의 역사를 더 자세히 보면 낭만적이지 않다. 특히 해부학의 역사가 그렇다. 당시 시대적 상황 때문에 베살리우스는 어쩔 수 없이 허락 없이 시체에 손을 대야 했다. 그 일이 악의적으로 변질하여 버크와 헤어 같은 진짜 ‘미친놈’들이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미친 척한 학자들 덕분에 지금의 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제 의사들은 해부용 시체를 훔치지 않아도 된다. 버크와 헤어 연쇄 살인 사건 이후로 의사들은 합법적인 과정으로 해부용 시체를 얻을 수 있다. 해부학 실습을 시뮬레이터로 대신하는 의과 대학이 있다고 한다. 시체의 배를 갈라서 내부 기관을 손으로 만지는 일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의대생들은 해부학 실습날이 다가오면 많이 긴장한다더라. 그러나 보는 것과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아는 것’에만 의존하는 집단적 태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과학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의대생들이 베살리우스의 후예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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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1-07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사들뿐 아니라 화가들도 해부를 엄청 많이 했다고 하더라구요. ^^

cyrus 2016-01-08 11:4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원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바스키아 이야기도 쓸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지고, 주제와 상관이 없어서 안 썼습니다. ^^

AgalmA 2016-01-07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험정신에 주목한 본문과 조금 어긋난 글이라 죄송한데; 이 글에서의 범죄들에 대해 더 감정이입에 되어 말을 해 보면...
오늘 오로라님이 투구게에 대한 잔인한 실험에 대해 글도 올리셨다시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잔인하게 가행되는 동물실험과 학살도 참 문제가 많죠. 상아를 위해 코끼리를 죽이고, 가방을 위해 악어를 죽이고, 멋을 위해 털을 빼앗고, 장식을 위해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냥하고 곰의 머릴 자르고, 실험에 이용되는 쥐가 제일 고생이 많고...인간에 대한 인간 행위가 다를 바도 없는 게 보험금을 노린 범죄도 점점 더 극성이고...
데미안 허스트의 충격적인 작품들은 혐오감도 주지만 그런 각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험정신들이 금방 상업, 범죄에 이용된다는 게 또 딜레마...

cyrus 2016-01-08 11:54   좋아요 0 | URL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옳은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소개한《역사책에도 없는...》 책에 시험관 아기 실험 논란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불법으로 자신의 정자로 정자은행을 운영한 의사가 적발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지금도 시험관 아기 연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Agalma님 말씀대로 과학자들은 어떤 연구에 참여하기 전에 윤리적 보편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 결과에 대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해피북 2016-01-0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으론 어제 이발사들의 해부학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의사들의 해부와 시체도굴꾼 이야기까지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재밌고 좋아요 ㅎ

cyrus 2016-01-08 11:56   좋아요 0 | URL
제가 사소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

살리미 2016-01-07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창기 의사들의 해부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들은 항상 흥미롭기도 하고,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의학의 발전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습니다.
제대로 해부를 해보지도 않고 시뮬레이터로 대신하는 의사들에게 내 수술을 맡긴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Agalma님 말씀처럼 어디까지를 인간을 위해 허용할 범위인가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인것 같네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닥치는대로 막 보곤 하는데 요즘엔 정말 너무 혐오감을 주는 내용들이 많아서 (장기매매를 위한 납치나 불법 시술같은...) 이게 정말 현실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니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지는건가 싶어서 끔찍해질 때가 많아요.
음.... 갑자기 cyrus님 의도와 멀어져가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ㅎㅎ

cyrus 2016-01-08 12:10   좋아요 1 | URL
과학 발전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보다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원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발견 소식이 나오면 대중은 열광합니다. 과거에 황우석 교수에게 기대를 했던 것처럼요. 대중의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학자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합니다.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져서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릅니다. 이런 사례는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