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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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고 난 후에 서평을 쓰지 않으면 허전하다. 그때 그 느낌은 밥을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독서 후 글쓰기 활동은 아주 중요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책을 보면서 얻은 지식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서평 쓰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 서평은 독후감보다 좀 더 체계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독서 활동 이후에 나온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 쓰는 글이라면 서평은 책을 평가해 다른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다. 서평을 쓰려면 책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책의 내용을 의심하면서 읽어야 한다. 독후감 쓰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자신들이 책을 평가할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서평 쓰기를 주저한다. 어떤 사람은 서평의 형식과 비슷한 글을 쓰고 있으면서 자신의 글을 독후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에 대한 내용을 비판하면서 서평을 쓰는 일에 자격이 필요하나? 서평은 지식인이나 전문 서평가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또 책을 평가하는 글쓴이의 입장이 논리적으로 정리된 서평이 독후감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후감도 서평처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또는 책을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글이 될 수 있다.

 

서평 쓰기의 목적을 잘 이해한다면 서평 쓰는 일이 어렵지 않다. 철학, 역사, 사회과학 분야의 책의 서평을 써온 강유원의 서평 모음집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서평의 기본적인 기능과 쓰는 방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 읽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속 내용을 공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강유원은 독서를 지식을 얻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획득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일이 바로 서평 쓰기다.

 

서평은 책을 대하는 사람들 또는 그 책을 읽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 서평 쓰는 일은 사적인 독서에 해당한다. 글쓴이는 자신이 쓴 서평을 읽으면서 책 내용을 복습할 수 있다. 서평을 쓴 과거의 는 몇 년 후의 본인이 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때 넌 이 책을 이렇게 읽었는데, 알고 있지?” 다른 사람이 내가 쓴 서평을 읽고 책을 구매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사적인 독서는 공적인 독서로 확대된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예요.” “이 책은 별로예요. 책을 사기 전에 잘 생각해보세요.” 서평 쓰기와 서평 읽기는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행위다. 강유원은 책 읽기-서평 쓰기-서평 읽기-책 읽기가 반복되는 과정이 이루어지면 지식도 쌓이고,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한다.

 

서평 작성의 8할은 책을 요약한 내용이다.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서평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책을 요약할 때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책을 읽은 동기나 책에 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나도 서평을 쓰다 보면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평은 책 전체 내용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고작 몇 줄의 문장만으로 책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평을 잘 쓰려면 책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서평 모음집이 책 읽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책 읽는 방법이 잘못되면(저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좋은 서평이 나오기 힘들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책 읽는 방법이, 2부는 서평 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3부는 강유원이 쓴 서평으로 채워져 있다. 서평을 잘 쓰고 싶은 독자들은 당연히 2부를 먼저 볼 것이다. 책을 읽는 순서는 독자들의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1부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 서평 쓰기의 시작은 책 읽기다.

 

이 책의 부록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번역본에 대한 비평적 서평인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2004) 전문이다. 장미의 이름 읽기는 이미 절판된 책이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강유원의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원 플러스 원(one plus one)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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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5-05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쓰기는 항상 어려워요~

cyrus 2020-05-05 11:38   좋아요 0 | URL
철학책은 좀 어려운 주제의 책이라서 저도 철학책 서평 쓰기는 어려워요. ^^;;

페넬로페 2020-05-05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서평은 항상 훌륭해요^^
책을 선택하고 비교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0-05-05 19:59   좋아요 1 | URL
글을 잘 쓴다는 칭찬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썼다는 말을 듣는 게 더 좋아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

stella.K 2020-05-0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은 읽고 싶긴한데 너의 평점이 높진않군.

cyrus 2020-05-05 20:03   좋아요 0 | URL
제 기준으로 볼 땐 ‘보통’이었습니다. 저자의 직업상 책에 실린 서평이 인문학, 역사 분야에 치우쳐 있고, 저자가 소개한 서평 쓰는 방식은 예전에 전문 서평가들이 한 번쯤 언급했던 내용이라서 전체적으로 책에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내용은 없었어요. 철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독자라면 저자의 서평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저도 서평을 다 읽지 않았어요. syo님처럼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의 글이에요. ^^

syo 2020-05-05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이 서평 책 한 권 내도 된다고 봐요, 나는.

cyrus 2020-05-06 08:05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소수의 독자’가 다섯 명 이상이라면 독립 출판물 형식으로 서평 모음집을 내보겠습니다. ㅎㅎㅎㅎ

syo 2020-05-06 19:18   좋아요 0 | URL
11111

cyrus 2020-05-06 23:40   좋아요 0 | URL
syo님이 책 다섯 권을 주문하는 건 무효입니다. 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20-05-0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올해는 안 사기로(사놓고 안 읽은 책들이 많아서) 마음 먹었지만 cyrus님 서평 읽고 나면 어느새 책들을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넣고 결재하려는 저를 발견하지요. 잘 읽었습니다~

cyrus 2020-05-08 17:02   좋아요 1 | URL
그래도 책을 주문하기 전에 꼭 실물을 확인하고,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

transient-guest 2020-05-1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 있네요 아마도...
 

 

 

우리 사회에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외로움은 치유돼야 할 질병처럼 인식된다. 많은 사람이 타인과의 정서적 거리에서 비롯된 괴로움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 라르스 스벤젠 외로움의 철학(청미, 2019)

* 올리비에 르모 자발적 고독(돌베개, 2019)

 

    

 

외로움의 철학(청미)의 저자는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한다. ‘외로움은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괴로운 감정 상태다. 그러나 고독은 개인이 혼자 무언가를 하려고 타인과의 거리를 두면서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고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외롭지 않다. 외로움과 고독의 의미를 구분한 저자의 입장은 새로운 건 아니다. 자발적 고독》(돌베개)의 저자는 고립과 고독을 구분했다. 고립은 외부적 요인들로 의해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다. 고립된 사람은 외로움을 잘 느낀다.

    

 

 

 

 

 

 

 

 

 

 

 

 

 

 

 

* 노명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책, 2013)

 

    

 

외로움의 철학자발적 고독원서는 2017년에 나왔고, 번역본도 작년에 같이 나왔다. 그러나 둘 중 먼저 나온 책은 자발적 고독이다. 이 두 권의 책이 나오기 훨씬 전에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책)를 쓴 노명우 교수는 혼자 산다는 것은둔을 구분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자전적 사회학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혼자 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혼자 살면서 느꼈던 일상을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혼자 사는 것을 독신 풍조의 확산이나 가족 공동체 몰락의 징조로 여기는 사회의 시선을 비판한다.

 

이 글에 언급된 세 권의 책 이외에도 고독의 장점을 설명한 책들이 더 있다.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고독을 주제로 한 책들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처음에 저자는 고독과 외로움(고립)의 의미를 구분한다. 고독에 대한 정의를 내린 다음 고독의 장점을 몇 가지 설명한다. 그리고 스스로 고독을 선택해 사유와 성찰을 적극적으로 한 철학자나 작가의 사례를 든다. 고독을 예찬한 저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은 몽테뉴(Montaigne)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앞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 혼자 살기의 장점을 설명한 책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사실 글 좀 쓰는 사람이라면 고독에 대한 책 한 권을 충분히 쓸 수 있다. 이런 책들은 아직도 혼자 사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고독에 익숙한 사람들은 책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나도 이제 고독에 대한 책을 그만 읽으련다. (라고 말해놓고선 또 읽을 것 같다‥….)

 

 

 

 

 

 

Trivia

 

 

*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204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몽테뉴, 아버지라는 역할까지 일시 정지시킨 몽테뉴, 남편이기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몽테뉴는 절대적인 자신만의 공간, 자신의 질문에만 몰두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괴테에게 영향을 받아 치타델레(Zitadelle)라 불렀다.

 

 

책 뒤에 치타델레의 의미를 설명한 주석이 있다(288). 주석 내용은 이렇다. 몽테뉴가 괴테의 자아 개념을 따서 탑에 붙인 이름으로 요새 안에 독립된 별채 성()을 뜻한다.” 몽테뉴는 괴테보다 먼저 태어났다(몽테뉴는 1533년 생, 괴테는 1749년 생). 그런데 어째서 몽테뉴는 괴테의 자아 개념을 자신이 거주하는 탑의 이름으로 정할 수 있었을까. 내가 봐도 이 내용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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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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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심해 죽겠어요.”

 

아는 동생이 매일 나한테 전화한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서평의 서두에 언급된 그 동생이다. 대구에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나면서 나와 동생은 3주째 집에서 지내고 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동생은 혼자 산다. 동생이 사는 곳은 번화가 근처다. 그러나 지난 달 말에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된 이후부터 동생은 외출을 못 하고 집안에만 있다. 이 녀석은 커피를 좋아하고 애연가다. 커피와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 빼고는 바깥 공기를 오래 마신 적이 없다. 그는 햇볕을 쬐러 밖에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밖에 있어도 허전할 것이다. 요즘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분위기라서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은 항상 나랑 전화 통화할 때마다 한숨 푹푹 쉬거나 심심해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한다. 이제는 그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스마트폰 화면에 녀석의 이름이 뜨면 일부러 전화를 안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전화를 자주 하는 그 녀석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혼자서 살고 있는 데다가 3주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며칠 전에 통화했을 때 동생이 , 나올래요? 같이 밥 먹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장 만나서 녀석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었지만, 내가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이 녀석에게는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그는 분명 친구가 많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대구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동생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매일 외로움에 시달린다.

 

외로움의 철학이라는 책에 보면 혼자 있음(aloneness)외로움의 정의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 있음외로움을 별개의 현상으로 본다. ‘혼자 있음은 말 그대로 사람이 혼자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선호하면서도 때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있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타인과의 연결 욕구, 즉 타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감정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때론 괴롭게 한다. 주변에 친구가 많은데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내 동생처럼 부득이하게 외출하지 못해 타인과의 연결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외로움을 사회적 위축(social withdrawal)또는 사회적 고통(social pain)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전파되면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생활하는 혼족들이 있다. 혼자 살아온 그 사람들의 생존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외로움 참는 일을 힘들어할 것이다. 혼족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혼족들이 외로움을 참으면서 생활하는 것은 사회적 고통에 가깝다. 코로나19 전파력이 장기적으로 높아질수록 혼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고통도 더욱 커진다.

 

외로움을 사회적 고통이라고 해서 이 감정 상태를 마음의 병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따라서 외로움 자체는 병이 아니다. 다만 사람을 피하려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사실 외로운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을 피하면서도 타인과의 애착을 갈망한다. 저자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고통을 줄이려면, 타인을 신뢰하는 법과 타인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생활 습관이나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인간에게 외로운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원인에는 외부 원인과 내부 원인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의존하는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지만 친밀도가 높지 않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맺어준 인간관계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한 가닥의 실과 같다. 우리는 이런 실들이 무수히 엉켜 있는 것을 인맥이라고 부르며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애쓴다. 이럴수록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우리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중심의 세상은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외부 원인이다. 하지만 저자는 외로움의 원인을 무조건 외부에서만 찾는 관점을 옹호하지 않는다. 내부 원인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를 제일로 아는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와 타인에 대한 불신이 너무 강한 사람은 외로움을 잘 느낀다. 그런 사람은 외로움을 일으킨 내부 원인을 파악하여 스스로 고쳐 나가야 한다. 또 자신이 만나는 타인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아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친구가 많아도 매번 외롭다면서 투덜거린다. 외로움이라는 이 부정적 감정도 불편해도 결국 내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각자의 감정에 책임 있는 우리는 외로움을 덜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또 외로움을 어느 정도 안고 살아가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나만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토지라면, 적당한 외로움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비료다. 외로움의 철학은 건강한 고독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런 고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예찬하지 않는다. 타인과 만나는 외향적 활동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Trivia

 

 

* 10

사회적 동물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와 유대가 없는 사회적 공간에 서식하기를 심히 외로워한다. 알렉시 드 토크빌도 일찍이 1930년대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면서 같은 지적을 했다.

 

‘1830년대로 고쳐야 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Tocqueville)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18315월에서 18322월까지 아홉 달 동안 미국을 여행했고, 프랑스로 돌아와서 미국 사회의 모든 면을 분석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표했다.

 

 

 

* 14

이런 유의 외로움을 영화에서 찾아보자면, 마틴 스코세이스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이 떠오른다.

 

오식인가, 아니면 번역자가 나름 생각이 있어서 저렇게 표기한 것인가? 예전에는 마틴 스콜세지로 표기했는데, 요즘은 마틴 스코세이지로 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 164

  크리스티안 가르베는 두 권짜리 저작 사회와 고독에 대하여(1979~1800)에서 균형 잡힌 시선을 제시하려 했지만 실상은 사회의 중요성에 좀 더 치우치는 감이 있다.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크리스티안 가르베(Christian Garve, 1742~1798)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사회와 고독에 대하여(Über Gesellschaft und Einsamkeit)1797에 처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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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3-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안타깝네요. 지금은 다들 사회적 거리 두기 시점이라 저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랑 만나고 얘기하고 함께 밥먹고 이게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이 사는 데에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cyrus 2020-03-12 11:37   좋아요 0 | URL
나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코로나19에 전염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괴로워도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해요.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2020-03-12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12 11:40   좋아요 0 | URL
집에 책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아요. 책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책 보면 되잖아요. 요즘 저는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집에서 운동을 해요. 제 입으로 운동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살찌지 않으려고 자주 움직여요.

프레이야 2020-03-1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서 할 일이 많아 심심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많이 먹고 살은 확 찌고 있어요.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구나라기보다 사회적 동물이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요즘 기저질환자, 사회적 거리두기 등 신조어도 있어 처음 듣는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도 봐요. 왜 꼭 어려운 말로 쓰나고 흥분하더군요 ㅎㅎ 이와중에도 유머 잃지 않는 사람들로 한번씩 웃고 넘어갑니다. 힘든 분들 많은 이 재난상황에 그런 외로움 정도는 좀 견뎌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20-03-12 19:53   좋아요 0 | URL
솔직히 ‘기저질환자’라는 말을 최근에 알았어요.. ㅎㅎㅎㅎ
사람 만나는 일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외롭지 않게 혼자서 지내는 법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요.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일이나 취미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stella.K 2020-03-1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알라딘에서 너를 볼 수가 없어 너야말로 알라딘과 거리두기를 한건가
했는데 봇물이 터졌나? 그동안 글 안 쓰고 어떻게 살았니?ㅋ
남자도 외롭다고 하는구나. 나 같이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도
요즘엔 좀 답답한데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오죽할까 싶어.
근데 웃긴 건 답답한데 하루는 너무 빨리 가고 있다는 거야.
나는 이러다 코로나19가 소멸됐다는 소식은 언제 어떻게 전해질지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좀 궁금해진다.ㅋ

cyrus 2020-03-12 20:00   좋아요 0 | URL
그냥 책만 읽으면서 지냈어요. 저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 익숙해서 크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삼일 지나면 한 달의 반이에요. 정말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네요.. ㅎㅎㅎ

저는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난 후가 걱정 되요. 대구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시선이 벌써부터 두려워요. 대구에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대구를 떠나 타 지역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도 타 지역에서 직장을 구하고 생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먼저 ‘신천지’인지 아닌지 확인할 걸요. 좀 과장된 우스갯소리지만, 대구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타 지역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stella.K 2020-03-13 13: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 불행한 일이 있으면 안 되지.
그런 일 있을까봐 코로나19가 다른 지역까지
퍼뜨리고 돌아다녀 주시잖니. 특히 서울.
전염병은 정말 연대하지 않으면 물리치기 어려울 거야.
요즘처럼 지구촌이란 말이 실감 나는 때도 없지.ㅠ
 
왜 지금 고전인가 - 서양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네빌 몰리 지음, 박홍경 옮김 / 프롬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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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책. 장구한 세월 속에서도 오래도록 많은 사람에게 좋게 평가받아 읽히는 책. 우리는 그런 책을 고전(古典)이라고 부른다. 고전은 시대를 넘어 필독 도서 목록에 자주 이름이 올라가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생활 속에서 고전의 의미는 어른들조차 잘 읽지 않고 그저 이름만 아는 책이다. 이런 실정인데도 고전과 친하지 않은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고전을 꼭 읽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문제는 학생들이 읽고 싶어도 고전을 읽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서양 고전 번역본들이 대부분 성인에게도 만만찮은 분량과 내용이다.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펴낸 축약본이나 개론서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논술 시험 문제로 출제할 가능성이 높은 고전에 대한 중요 정보만 요약하여 알려준다. 결국, 학생들은 단 몇 줄로 요약된 고전의 심오한 내용을 외우기만 한다. 단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암기한 내용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못한다.

 

왜 지금 고전인가는 서양 고전을 읽고 싶으나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또는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독자들에게 단비가 되는 책이다. 이 책은 적어도 기존의 서양 고전 독서 입문서와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 책은 서양 고전이 어떻게 상류층을 위한 정전으로써 특권적 지위를 얻게 됐고, 그 후로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의 교양서로 지금까지 살아남게 되었는지 살핀다. 이 책에서 언급된 고전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생산된 지식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서양 문명의 정점으로 평가받았고, 고대 고전은 유럽 엘리트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교육으로 인식되었다. 고전학자들은 지중해 문명이 남긴 문화적 유산에 감탄했고, 일부분만 알려진 고대 문헌들까지 번역하면서 널리 전파하는 일에 힘썼다. 그러나 고전 지식은 서양 문명의 우월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로 전락했으며 특정 계급(상류층과 식자층), 특정 인종(백인), 특정한 성별(남성)만 소유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저자는 과거에 고전이 지배계층의 권위 유지를 정당화시키는 이념적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둘째, 이 책은 서양 고전의 가치와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유독 고전 읽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고전 속에 현재를 사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또 고전을 읽으면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고전 속에 있는 과거를 탐색하면 만 리 길을 내다볼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과거의 고전을 공부한다? 얼핏 이런 말을 들으면 고전을 읽고 싶어지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리라. 하지만 저자는 고전이 우리에게 미래를 예언하는 지혜나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언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전에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얻기를 바라지 마시라. 정말로 고전을 읽으면서 통찰력을 얻고 싶다면 고전 속 지식을 그저 흡입하기만 하는 기존의 독서 방식을 버려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고전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고전은 다음 세대의 독자들에게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면서 살아남았다. 과거 사람들이 고전을 읽으면서 알게 된 지혜와 교훈은 다음 세대에게 공유되더라도 끊임없이 변하고 혁신이 일어나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면 쓸모없어진다. 고전의 가치는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진다. 우리는 전문가가 강조하는 고전의 가치를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진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저자는 서양 고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고전에서 긍정적인 영감을 이끌어내도록 길을 모색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언급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중대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고전학자 같은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전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판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독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고전을 잘 활용하는 것은 그것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독자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고전은 고전학자들의 보호를 받는 고귀한 정전(正典)이 아니라 우리 독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아야 할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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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12-0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에 대한 과대평가에 공감해요.
고전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독서의 효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데 일정 부분 반감도 생기더라구요. 그건 마치 자기계발서에서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할 때 독서가 무언가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구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ㅎ

cyrus 2019-12-02 20:23   좋아요 1 | URL
예전에 독서모임에 참석했던 분이었는데 마치 고전학자처럼 고전을 분석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 분은 고전의 자유로운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어요. 아마도 그 분은 고전을 정확하게 분석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그런 방식으로 읽으려면 고전 스터디 모임에 가는 게 맞아요. 독서 모임은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모임은 아니에요..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공감의 두 얼굴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 지음, 두행숙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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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나도 너처럼 그렇게 생각해라고 느끼는 감정이자 타자로 향하는 통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진화의 유산으로, 영장류의 공감 능력은 여타 포유류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나다고 한다. 특히 다수가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인 인간은 그중 가장 크고 깊은 공감 능력을 갖췄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공감이다. 공감은 인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정서이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해주는 상호소통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기꺼이 도로 중앙을 비워주는 운전자의 행위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처한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꺼이 도와주는 것은 공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흔히 이타적 행동이라고 말하는 이 행동들은 공존의 토양이 되는 인간 특유의 도덕성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덕 감정론에서 도덕적 행위는 이해관계를 떠난 관찰자의 위치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타인의 행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그 처지를 공감(sympathy)하는 능력이 선행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책을 보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띄는 제목이나 부제는 책에 대해 강한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의 부제는 공감의 두 얼굴이다. 책의 제목은 부제의 의미와 대비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이다. “생각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데카르트(Descartes)의 말을 비틀어서 공감 능력이 있는 주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공감(하면서 존재)한다.” 만일 라는 존재가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공감 능력과 도덕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종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하는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감정을 잘 인식하지만, 타인의 고통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타인의 삶을 거리낌 없이 파괴해버리는 게 가능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공감할 줄 아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좋은 것으로 생각해왔던 공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공감의 의미가 무엇이며 공감이 너무 많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공감을 과도하게 활용하면서 생긴 불행한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양한 사례와 저자의 경험에 근거해 설명한다. 우리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 친화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크고, 나아가 모두를 더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은 공감 능력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다시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튼 다음, 여기에 말대꾸까지 하면 공감 능력을 지닌 인간의 한계를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공감한다. 그런데 널 도와주고 싶지 않아.”

 

이 책의 저자가 생각하는 공감의 의미는 함께 체험하는 것(co-experience)이다. 우리는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상상력이 가능하다. 다른 사람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태도는 좋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만 그치고, 타인을 위해서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제대로 공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감 능력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타인의 삶에 대입한 뒤에 타인이 처한 상황을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네 말에 공감해라고 말을 하기는 쉬워도 몸이 반응하여 그 사람을 위해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공감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위험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공감은 자아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공감을 너무 쉽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잘 수용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관점을 수용하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과 관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공감은 이분법적 사고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누군가를 지지하면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 지지하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게 된다. 눈에 콩깍지가 씌면 남들이 볼 때 영 아니다 싶은 사람이 좋게 보인다. 특정 인물을 편애하는 공감은 특정 인물과 반대되는 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공감에 너무 과도하게 몰입하면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의 결점까지 흡수해버리고, 그 결점을 비판하는 사람을 으로 인식한다.

 

공감 능력을 지닌 사람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잘 도와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사회적 약자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생각하고, 그와 동일시한다. 이러면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공감 능력을 발휘하려면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단지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사람의 태도를 공감적인 사디즘(sadism)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남의 불행을 기뻐한다. 그래야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위험한 공감을 흡혈귀 행위(vampirism)에 비유한다.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는 마치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위를 빙빙 맴돌며 모든 일에 간섭하는 부모를 말한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식이 잘 커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신의 소망을 자식에게 강제로 주입한다. 자식은 부모의 말에 순순히 따르게 되는데 부모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자식을 뿌듯하게 여긴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소망에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부모의 강압적인 권위에 의해서 강제로 작동하는 공감이다. 헬리콥터 부모 밑에 자란 자식은 앞서 공감의 첫 번째 위험으로 언급했던 자아 상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공감의 위험성을 안고 가는 동시에 공감 능력을 함양하여서 사회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공감의 위험성을 지적한다고 해서 저자가 공감 능력 자체를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공감 능력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감정이며 교육을 통해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공감 능력이 도덕성을 형성해주고 회복해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 공감을 타인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 특정 인물 또는 특정 세력을 지지하도록 요구하는 공감은 소리만 요란한 공감(空感: 내실 없는 감정)이다. 그것은 공감(共感)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공감(共感)공감(空感)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종종 살펴보자. 내가 정말 공감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Trivia

 

* 185쪽 오자: 루브비히 티크 루드비히 티크(Ludwig Ti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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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28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 사람일 것 같아서 상대방한테 ‘공감 능력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아니라고 부정을 해요... ㅎ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19-10-22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들은 팟캐스트에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사람을 정말 정말 골라서 잘 사귀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언급하신 자아상실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공감만 하고 행동할 줄 모르는 인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 생각났습니다. 언제나처럼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9-10-28 17:45   좋아요 1 | URL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저도 생각을 참 많이 하지 그 생각들을 행동으로 실천한 게 많지 않아요. ^^;;

fledgling 2019-10-2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나네요. 평소에 제자신이 다른 능력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행동으로 옮긴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저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네요. 읽고 싶게 만드는 명품 리뷰 잘보고 갑니다.

cyrus 2019-10-28 17:4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이 책을 읽고 제가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한 건 아닌지 반성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