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yui1397/221259351820>




띠 풀 엮어 지붕 헤일고

대나무 심어 울타리 했네

산중에 사는 맛

해마다 는다네

  

結茅仍補屋 결모잉보옥

種竹故爲籬 종죽고위리

多少山中味 다소산중미

年年獨自知 연년독자지


<류방선(柳方善, 1388-1443), 우제(偶題, 우연히 짓다)>

 

  

옛 시 비평은 인상비평으로, 다분히 주관적이다. 거기에다 부가 설명도 없다. 현대인이 옛 시 비평을 접하면서 느끼는 난감함은 어려운 퍼즐 문제를 푸는 것과 흡사하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허균은 이 시를 자신의 시선집 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 [閑適然未免儉]."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니, 무슨 근거로 이런 평을 한 것일까?

  

감히 군더더기 말을 덧붙여 본다. 허균은 시인이 제목으로 사용한 우연히 짓다 [偶題]와 내용이 상호 밀착하지 못하고 결렬이 있는데서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란 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연히 짓다''우연'이란 작위를 배제한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 내용에서도 이런 면모가 드러나야 시제와 어울리는데, 시 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띠풀을 엮는다거나, 대나무를 심는다거나 하는 행위는 다분히 인위적인 행위이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면 지붕이 새면 새는 대로, 울타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놓아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산중의 맛을 표현하는데 '다소(多少, 얼마간)'라는 말을 쓰고, 또 그 맛을 느끼는데 '연년(年年, 해마다)'이란 말을 쓴 것도 시인이 아직은 성근 상태임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시인은 자신의 산속 생활에 유유자적함을 느낀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아직은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자신도 모르게 위와 같이 노출시켰기에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라고 평한 것이 아닌가 한다.

  

허균이 이 군더더기 말을 읽는다면 무슨 말을 할까? 역시 군더더기일 뿐이라고 치부할까, 아니면 그런대로 애썼다고 격려할까? 옛 시 읽기도 힘들지만, 옛 시 비평 읽기도 그 못지않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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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cafe.daum.net/jungsan.com/>



시월 켜켜이 쌓인 얼음 위에

차가운 댓잎 자리 깔고 누워

차라리 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날만 새지 않기를

 

十月層氷上 시월층빙상

寒凝竹葉棲 한응죽엽서

與君寧凍死 여군녕동사

遮莫五更鷄 차막오경계

 

<김수온(金守溫, 1409~1481), 술악부사(述樂府辭, 민간의 노래를 적다)

 

번역은 반역이란 말이 있다. 번역의 한계와 어려움을 나타낸 것이다. 위 시는 고려가요 만전춘(滿殿春)의 일절을 번역한 것이다. 제대로 옮겼을까, 그렇지 않을까?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 만뎡

둔 오날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만전춘의 포인트는 님과 함께 있고 싶다는 소망이다. 하여 부디 날이 새지 않기를 반복해 말하고 있다. 날이 새면 님이 떠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술악부사는 이런 간절함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같은 시구를 반복해 쓸 수 없는 한시 작법의 한계 때문이다. 김수온도 이런 한계에서 오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시를 원작[만전춘]의 감흥을 살려 읽으려면 마지막 구를 원작처럼 반복해 읽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역시 한계가 있다. “둔 오날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의 감흥을 遮莫五更鷄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직역하면 닭아 새벽 울음 울지 말아라혹은 닭이야 새벽 울음 울건 말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복해 읽은들 원작이 감흥이 살아나겠는가.

 

한시는 우리에게 암호와 같은 시가 돼버렸다. 번역을 통해 감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번역도 자칫 반역이 될 수 있기에 감상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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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pixabay.com/ko/images/search/배롱나무/>



사륜각에 있을 때 해마다

글씨 쓰며 자미화(배롱나무 꽃) 마주했었지

오늘 꽃그늘 아래 취했나니

이르는 곳마다 꽃 찾아와 피어나는 듯

 

歲歲絲綸閣 세세사륜각

抽毫對紫薇 추호대자미

今來花下醉 금래화하취

到處似相隨 도처사상수


<성삼문(成三問, 1418~1456),자미화(紫薇花)>


 

환골탈태란 말이 있다. 면모를 일신했을 때 쓰는 말인데, 본래 한시작법에서 사용하던 말이다. 타인의 시상이나 시구를 빌려 쓰되 흔적 없이 사용한 경우를 일컫는다. 위 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직중서성(直中書省, 중서성에서 숙직하며)을 환골탈태시킨 작품이다. 백거이의 원시는 이렇다.

 

絲綸閣下文章靜 사륜각하문장정    사륜각 문서 작성 한가로우니

鍾鼓樓中刻漏長 종고루중각루장    종고루 물시계 소리 한없이 길게만

獨坐黃昏誰是伴 독좌황혼수시반    황혼녘 홀로 앉았나니

紫薇花對紫薇郎 자미화대자미랑    자미랑 짝은 자미화 뿐

 

자미화(紫薇花)1, 2구는 백거이의 시 전편(全篇)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원시가 갖는 시정(詩情)무료함과 답답함을 무리없이 담아냈다. 특히 해마다[歲歲]’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무료함과 답답함의 시정을 간결하게 잘 담아냈다.

 

그런데자미화(紫薇花)가 여기서 그쳤다면 다소 부족함이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야 진정 환골탈태란 말을 들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감은 무엇일까? 바로 무료함과 답답함에서 벗어난 것을 그리는 것이다. 백거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료함과 답답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자미화(紫薇花)는 그러한 원작자의 마음을 3, 4구에서 드러내고 있다. 질펀하게 취하여 처처에 난만한 자미화를 감상하는 풍류객의 모습은 바로 무료함과 답답함을 벗어난 상태를 그린 것이다. 진정한 환골탈태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이 시는, 말할 나위 없이, 성삼문 본인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지만 이면에는 백거이에게 바치는 진혼의 성격도 함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백거이가 느낀 무료함과 답답함은 자신의 능력이 사장되는데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나 시구를 원용(援用)하되 표면적 시정을 넘어 심연의 시정까지 표현해 냈을 때, 이는 모방이 아닌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허균은 이 시를 평하여 정이 있다[有情]”고 했는데, 단순히 정감있는 시라는 의미이기보다는 원작자의 심연에 있는 마음까지 표현해낸 작품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륜각은 당대(唐代) 중서성(中書省, 왕과 관련된 문서를 작성하던 곳)의 별칭이다. 조선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기관이 승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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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가곡으로 더 잘 알려진 이은상(1903-1982)의 봄처녀이다. 새봄의 미감을 싱그러운 모습의 아가씨로 환치하여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확실히 봄은 그런 면모가 있다. 그런데 싱그러운 아가씨가 간직한 아름다움은 멀리서 바라볼 때의 아름다움이지 가까이 바라보며 손에 닿는 아름다움은 아니다. 봄에는 그런 면모도 있다. 그것을 막연한 아름다움이라 이름 붙여 본다.

 

사진의 시는 이제현(李齊賢, 1288-1367)용야심춘(龍野尋春, 용야에서 봄을 찾다)이다.

 

偶到溪邊藉碧蕪(우도계변자벽무) 시냇가 이르러 봄풀 위에 앉았더니

春禽好事勸提壺(춘금호사권제호) 좋은 일 있다며 새들이 술 가져오라 하네

起來欲覓花開處(기래욕멱화개처) 일어나 꽃 핀 곳 찾으렸더니

度水幽香近却無(도수유향근각무) 물 건너온 그윽한 향 문득 사라지네

 

따스한 봄 날씨가 시인을 유혹했다. 집 밖을 나와 이리저리 거닐다 시냇가 풀밭 위에 앉았다. 그때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그런데 시인의 귀에는 그 소리가 또 유혹의 소리로 들린다. “저를 따라오세요. 술 마시기 좋은 곳이 있어요. 꽃이 활짝 피었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시인은 그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꽃을 찾을수록 꽃은 보이지 않았다.

 

이 시는 봄날의 따스함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묘한 아름다움을 그린 시이다. 앞서 말한 막연한 아름다움을 그린 시라고 할 수 있다. 딱딱한 정형시 속에 이토록 섬세한 미감을 담아냈다는 것이 놀랍다.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보자.

 

(걸을 착)(부터 자)(방위 방)의 합자이다. 자신이 있는데서[] 걸어가[] 어렵지 않게 이를 수 있는 곳[]이란 의미이다. 가 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川邊(천변), 周邊(주변) 등을 들 수 있겠다.

 

는 병의 모양을 그린 것이다. 윗부분은 뚜껑, 아랫부분은 몸체이다. 병 호.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投壺(투호), 壺中物(호중물, ) 등을 들 수 있겠다.

 

(손톱 조)(볼 견)의 합자이다.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파본다[]는 뜻이다. 구할 멱.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覓索(멱색, 찾음), 覓得(멱득, 구해 얻음) 등을 들 수 있겠다.

 

의 속자이다. (무릎 꿇을 절)(골 곡)의 합자이다. 뼈마디 사이의 간극이란 뜻이다. 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두 산 사이의 간극이란 의미로 본뜻인 뼈마디 사이의 간극이란 의미를 보충한다. 틈 각. 본뜻보다 물리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물리칠 각. 본 시에서는 도리어란 뜻으로 사용됐는데, 동음을 빌미로 뜻을 빌어 쓴 것이다. 도리어 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退却(퇴각), 却下(각하) 등을 들 수 있겠다.

 

봄날을 노래한 것 중엔 희망 섞인 것도 많지만 아쉬움을 토로한 것도 많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익숙한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이다. 봄날이 아쉬운 것은 봄날이 갖는 저 막연한 아름다움과 상관성이 깊은 것 같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막연한 아름다움'은 얼마나 아쉬운, 아니 허망한 것인가! 봄날이 주는 그 아쉬움과 허망함의 아름다움 때문에 봄날의 인간사도 그러한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사진은 아내가 받아놓은 어떤 분의 명함 후면에 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낙관에 있는 내용은 오른쪽의 전서체를 행서체로 바꾸어 다시 쓰고 쓴 분의 호와 이름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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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어요!”

먹고 살기 바빠서

 

너무 바쁘고 복잡한 상황일 때와 뒤늦은 후회를 피력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두 말의 공통점은 속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여 이 말이 전하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도 있겠다. 빠르게 살면, 제정신에 못살고 후회하게 된다! 개인적 경험에 기댄 말이지만, 기업이나 사회로 환치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은일신월이(日新月異)’라고 읽는다. ‘날로 새롭고 달로 다르다란 뜻이다. 익히 알려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모 기업체 로비의 거울에 쓰여있는 문구인데, 사원들의 혁신 마인드를 북돋기 위해 써놓은 것 같았다. 문구를 보며, 기업의 생존이 빠른 변화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과연 그것이 꼭 옳은 방향이기만 할까, 하는 기우(杞憂)를 살짝 해봤다.

 

가 낯설다. 자세히 살펴보자.

 

(도끼 근)(나무 목)(의 약자, 매울 신)의 합자이다. 나무를 베어 땔감을 장만했다는 의미이다. 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한다. ‘새롭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새 땔감을 장만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땔감 신, 새 신.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新舊(신구), 新聞(신문) 등을 들 수 있겠다.

 

는 얼굴에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다르다기이하다라는 뜻을 나타냈다. 다를 이, 기이할 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異人(이인), 驚異(경이) 등을 들 수 있겠다.

 


목하 우리는 속도 전쟁 속에 살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강박감에 사로잡혀 산다. 그런데 그 종착점은 과연 어떠할까? 분명 잘살아 보자고 한 것인데 외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역설적이게도 바쁘고 빠를수록 더더욱 자신개인이 될 수도 있고 기업이나 사회가 될 수도 있다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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