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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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면서 폭탄선언을 한다. 여러분, 저는 차별주의자입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배우의 고백에 기자회견장은 잠시 술렁거리지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이 바빠진다. 기자석에 앉아 있던 어느 기자는 생각해보니 나도 누군가를 차별한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라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자 배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죠?”라고 말한다.

 

방금 나온 배우와 기자의 발언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치질 치료제 광고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우리는 차별주의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상대방에게 차별을 한 적이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은 살면서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존경의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차별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렇다면 그들을 차별한 사람은 누군데? 차별을 당한 사람들은 많은데 자신이 차별을 한 적이 있다고 반성하는 사람을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심각하지만,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차별의 의미에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서로 반대되는 느낌의 단어를 조합하는 표현 방식인 역설법이 생각나는 제목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표현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사람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나 자신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왔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차별하는 가해자차별받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가지고 차별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누군가를 차별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차별받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살면서 차별을 한 적이 없어요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분명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선량한 마음을 가진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별을 저지른다. 또 가해자의 위치에 서서 차별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속한다. 또 선량하면서도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차별 구조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도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와 사례를 통해 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결정 장애라는 은어를 사용했다가 잘못을 시인한 경험을 들러준다. 결정 장애란 행동이나 태도를 정해야 할 때에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런데 이 결정 장애라는 말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혐오 표현이다.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대상이나 남들이 모르는 사적인 취미를 고백할 때 커밍아웃(coming out)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하자. 커밍아웃은 벽장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일을 뜻한다. 대부분 비 성소수자(non-sexual minority)는 무언가를 공개하거나 고백할 때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부모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고 싶은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성소수자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비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너무나 편안하게 말한다. 그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상대방이 선량한 차별주의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목적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가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했을 차별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자기 성찰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자기 성찰을 하지 않고 차별 가해자를 찾아내 돌을 던지는 사회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구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우리는 허점이 많은 인간이다. 착하고 똑똑하다고 해도 누구나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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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혀 차별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인식과 성찰의 중요성. 동감합니다.

cyrus 2019-11-18 21:56   좋아요 0 | URL
혼자 공부하면 내 행동과 발언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아보기 힘들어요. 독서모임을 장기간 참석하면서 느낀 건데 성찰에도 한계가 있어요. 여러 사람과 함께 공부하면서 그들의 비판적인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시민들의 생각법 - 대세를 따르지 않는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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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집단에 소속되려고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어서 무리 지어 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인간은 철저하게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으며 타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모방 본능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에서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만약 상대방의 표정, 행동, 자세, 말투를 모방하지 않는다면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남들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본능은 큰 재앙을 불러오기도 한다. 조직이론에서 종종 사용되는 용어 중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집단의 의사 결정 상황에서 집단 구성원들이 집단의 응집력과 획일성을 강조하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왜곡된 의사결정 방식을 말한다. 폐쇄적인 집단이나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정보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되고, 다수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우리가 옳다그들만의 신념은 거대한 오류를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다.

 

이를 막으려면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가 있어야 한다. 가톨릭에서 성인(聖人)을 추대할 때 해당 인물의 행적과 품성을 검증하기 위해 비판을 하도록 한 인물을 가리킨다. 선의와 확신, 만장일치가 결과의 성공이나 정의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건전한 공적 논의를 담보하기 위해 이런 의도적이고 의무적인 악역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대 의견은 다수 의견에 동조하는 군중에게는 성가시고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정의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악마의 변호사로 자처하여 나서게 된다면 군중으로부터 트집쟁이’, ‘악마의 선동꾼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비난을 덜 받으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잘 설명하는 방법이 있을까?

 

일본 사회 내에 확산되고 있는 반지성주의를 경계하고 비판해온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대시민이 되자고 제안한다. 이번에 나온 그의 책 대세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의 생각법2008년부터 6년간 연재한 900자 칼럼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우치다 타츠루의 대시민 강좌이다. ‘대시민1966NHK 방송국에서 방영한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목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평소 정치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샐러리맨인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게 된다.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고 안정적인 삶을 선호하는 사람을 소시민이라고 한다면, 대시민은 사회 문제의 옳고 그름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대시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시사 쟁점에 대해 자기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다수 의견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사회의 위기 징후를 감지하고 군중의 각성을 촉구한다.

 

악마의 변호사대시민모두 사회나 집단에 향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인물이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악마의 변호사는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서 고의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라면, 대시민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표현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사람이다. 우치다는 대시민을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비록 나와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말이어도 그 말의 내용이 알차고 이해하기 쉽다면 경청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대시민이 되려면 말을 잘해야 되는군요.”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상대에게 전달하는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치다는 그것을 의사소통 능력의 부차적인 일부로 보고 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사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능력이다. 우치다는 진정한 의사소통 능력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가 알면서도 자꾸 잊는 경청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사소통 능력이란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자신과 타자를 맺어주는 통신의 회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몇몇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 내 목소리가 들립니까?” 이런 발화가 바로 그것이다. 또는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동안 귀를 기울일 만한 대목에 은근히 힘을 준 순간을 알아채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진정한 의사소통 능력중에서, 172)

 

 

성숙한 발신자는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말속에 들어있는 동기(動機)나 정서까지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의사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또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간과하기도 한다. 말을 잘하든 못하든 간에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려고 한다. 지금도 익명의 수신자들은 자기 생각을 밝히면서 인터넷 공간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남겨진 수많은 말들은 익명의 발신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수많은 수신자가 발신자가 되지 않는 한 인터넷 공간에 남겨진 말들은 공적 논의를 위한 자원으로 사용해보지 못한 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침전물로 남게 된다.

 

설명을 잘하는 대시민은 듣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 우치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 능력을 대시민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로 보고 있지만, 나는 듣는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는 것은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상한 이야기에 귀담아 들어주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시민이다.[]

 

 

      

[] 한국어판 서문의 8쪽에 있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시민입니다.”라는 문장을 빌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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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4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5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10-16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치 제 이야기처럼 읽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편이었고,
심지어 선생님들 마저도 저 아이는 좀 이상한 아이,
너무 생각이 많은 아이 라는 얘길 했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저의 성향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회의 자리 같은 곳에서 오히려 저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보여주더라구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제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늘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이죠.
아무리 제가 말을 잘하고, 아무리 논리적이라해도,
항상 제 의견이 존중 받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한 편으로는 그런 점 때문에 인정 받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런 점 때문에 상처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세를 따르지 않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숙명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cyrus 2019-10-17 18:04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에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은데, 반대로 그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낯설게 느끼거나 아예 듣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 느끼는 게 뭐냐면 말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저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싶어요. 이러면 서로 대화가 통하겠죠? ^^
 
경계 없는 페미니즘 - 제주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
김선혜 외 지음 / 와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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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자연재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을 난민이라고 한다. 1951년에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은 난민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國籍國: 배나 비행기 따위의 국적이 등록되어 있는 나라)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

 

지난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난민수용 거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약 17만 명의 동의를 받았으나 공개된 지 사흘 만에 갑자기 삭제됐다. 한번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은 작성자가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없으며 관리자의 삭제만 가능하다. 청와대 측에서 별다른 언급 없이 글을 삭제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는데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계속 나왔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난민은 가짜 난민(難民)이고 미래의 난민(亂民)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난민이 무리 지어 다니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난민을 둘러싼 가짜 뉴스까지 확산하면서 난민 문제에 대한 국내 여론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에서 불거진 이슬람 공포증(Islam phobia)과 이슬람 혐오를 그대로 따라갔다.

 

당시 사람들이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했던 가짜 뉴스는 이슬람은 여성을 혐오하는 최악의 종교다여성 차별과 여성 혐오 문화에 익숙한 무슬림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다라는 내용이다. 여성억압을 이슬람과 동일시하는 가짜 뉴스는 난민수용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무슬림 남성 난민이 한국 여성을 성폭행할 것이라는 주장도 퍼졌다.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 중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여성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무슬림이란 단어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과 그 피해자인 여성의 구도로 난민 문제를 바라봤다. 과연 여성 혐오는 이슬람만의 특징인가? 무슬림 남성이 가해자라면 무슬림 여성은 남성에게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인가? 그렇다면 예멘 난민은 잠재적 가해자인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난민(難民)난민(亂民)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은가? 1992년 세계 난민 협약에 가입한 이후로 난민 보호국이 된 우리나라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난민 수용 반대 여론과 가짜 뉴스가 이어지는 동안 한쪽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페미니스트와 인권 운동가들이 모여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만들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Chandra Talpade Mohanty)의 동명 저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37명의 필자가 참여한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 없는 페미니즘에 연재된 글과 언론에 게재된 칼럼을 포함해서 총 40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페미니즘의 난민 혐오 담론을 줄기차게 비판해온 여성학 연구자 김보명, 성과재생산포럼 소속 활동가 나영, 퀴어 활동가 나영정, 여성학자 정희진, 문화평론가 손희정,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등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그동안 남의 집 불구경 보듯 다뤘던 무슬림 혐오와 난민 혐오 담론이 우리의 문제임을 환기한다. 동시에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갇혀 있는 페미니즘을 경계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 사회가 이슬람에 가진 오해와 편견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이슬람 혐오와 페미니즘이라는 글을 쓴 대학생 페미니스트는 실제로 무슬림을 만나면서 자신이 무슬림을 바라보는 눈이 지나치게 서구적이라는 사실을 지각한다. 그녀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여성 혐오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페미니즘을 근거 없는 오만이라고 비판한다. 수상한 페미니스트 투사들은 여성 인권을 위한다는 핑계로 난민 반대를 외치는 수사를 비판한 글이다. 여성을 국민으로 소환해서 여성 인권을 앞세운 난민 반대 수사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재생산한다.

 

단지 한국 여성들만 위하려 한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축소된다. 난민 문제는 너무나 많은 형태(성차별, 인종 차별, 종교 차별, 성소수자 차별)의 억압의 교차 지점에 있다. 그러므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은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국적, 종교, 세대 등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 범주들이 서로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위계적으로 얽혀 있는 현실을 해석하기 위해 등장했다. 여성혐오자 이슬람 난민을 추방하자고 외치는 당신에게-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여섯 가지 반론인종, 젠더, 교차적 페미니즘은 난민 문제를 무슬림 남성 대 한국 여성으로 단순화하여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난민 인권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을 같이 하면 힘들다고. 그리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페미니즘 운동에 매진할 거라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페미니스트가 있다면 지금 필요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권하고 싶다. 그러면 타자를 구분 짓고 배척하게 만드는 내 안의 경계(境界)를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정말 경계(警戒)해야 할 것은 페미니즘이 타자를 절멸하고 부정하고 추방하는 혐오 담론의 근거로 변질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사회를 바꾸는 이론이자 주변화된 타자와 연대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가는 실천이지 적을 생산하는 혐오 담론을 합리화하는 폭력이 아니다.

 

 

진부하고 당연하며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교훈일 수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해 보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말하고 살아가는 시대적 조건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의 이름으로 타자의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모순과 폭력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김보명, 젠더 폭력과 인종주의중에서, 67)

 

 

 

 

 

[] 전국지리교사연합회, 살아 있는 지리 교과서, 휴머니스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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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손 - 살아있지만 인격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에 대한 법적 탐구
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 이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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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개그콘서트에 방영되었던 같기도()라는 코너를 기억하시는가. ‘같기도는 무술도 아니고, 춤도 아닌 뭐라고 부르기 애매모호한 퍼포먼스다. 이 코너에 김준호가 같기도를 연마한 사부로 출연했다. 김준호가 분한 캐릭터는 이건 A도 아니고, B도 아니여라는 말을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선보인다.

 

 

이건 내 몸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여.”

 

 

분명히 내 몸의 일부인데, 그게 물건으로 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 안 되지만, 우리는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내 몸이 물건이라는 주장 자체에 불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건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몸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인간의 몸은 물건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종 이식이다. 질병이나 사고로 훼손된 장기를 타인에게서 받은 장기로 대체하는 시술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기증받아서 이식하는 것은 생체 이식이라고 한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상관없이 기증자의 장기가 수혜자(장기 이식을 받는 사람)에게 기증되면 기증자는 장기의 소유권이 사라진다. 기증자의 몸 밖으로 나온 장기는 물건이 되고, 이식 수술이 성공하면 장기의 소유권은 기증자에서 수혜자로 넘어간다.

 

1992년 프랑스에서 몸의 소유권에 대한 상식을 뒤흔드는 판결이 나왔다. A는 실수로 한쪽 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는다. 충격을 받은 A는 기절하고, 그 사이에 A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B가 절단된 손을 가져간다. B는 절단된 손을 소각장에 버린다. 그렇다면 B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프랑스 법에 따르면 B무죄. 그 당시 프랑스 법은 몸을 인격(사람: person)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했다. 온전한 몸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물건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잘려 나간 몸의 일부는 인격과 동일시한 몸이 아니므로 주인 없는 물건(무주물)이 된다. A는 잘려 나간 손을 소유할 권리가 없으며 B가 잘려 나간 손의 주인이 된다. 따라서 B는 절도죄도, 중상해죄도 아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도둑맞은 손인간(인격)을 동일시하게 생각하는 통념의 한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이고 궁극적 가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존재 가치가 있으며 그 인격을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몸은 물건으로서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앞서 언급한 동종 이식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는 물건으로서의 몸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은 인간의 몸을 물건으로 간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몸과 인격을 동일시하는 입장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찾는다.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고대 로마법은 주체와 인격을 동일시했다. 그러나 노예제는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인간의 몸을 물건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법적 효력을 발휘했다. 기독교가 막강한 권위를 떨치고 있던 시대에 죽은 성인(聖人)의 시신은 성물(聖物)이 되었다. 죽은 성인은 인격이 사라졌어도 성스러움은 여전히 유지된다. 왜냐하면 죽은 성인의 시신은 말 그대로 성물, 성스러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는 몸을 사람으로부터 분리하여 물건의 범주 속에 넣으려는 시도이다.

 

 

 

 

 

이 책의 역자는 도둑맞은 손》을 기발하고 엉뚱하며 심오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내가 보기에 도둑맞은 손도발적인 책이다. 저자는 몸을 물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물건으로 간주한 몸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각자에게 자신 신체를 소유하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몸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 따라서 저자가 생각하는 몸은 인격 개념과 물건의 속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물건으로 보는 몸의 법적 지위에 더 관심이 많다. 도둑맞은 손을 읽고 나면 생각할 것이 많아져서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는 온전한 몸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까 왜 이게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 , 혼란하다, 혼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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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01 17:30   좋아요 0 | URL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극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설정이지만요. ^^;;

2019-09-30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10-01 17:32   좋아요 0 | URL
서양 법률과 관련된 내용이 나와서 사실 저는 조금 지루했어요. 역자 서문만 읽어도 책 내용의 80%를 이해할 수 있어요. ^^
 
보통이 아닌 몸 - 미국 문화에서 장애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4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지음, 손홍일 옮김 / 그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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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기형(畸形)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기이한 몸을 떠올리는 기형대신 이형(異形)이라는 단어를 쓸려고 했다. 이형은 완전한 몸’, ‘건강한 몸’, ‘정상적인 몸을 뜻하는 전형(全形)의 반대말이다. 이형은 말 그대로 (전형과) 다른 몸이다. 그러나 이 단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차이(다름)다양성이 아닌 차별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면 이형도 비정상적인 몸을 떠올리게 하는 기형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형을 대체할만한 단어는 과연 있을까? 새로운 대안 언어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단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기형이형을 대신할 만한 단어를 발견했다. 장애학 이론으로 미국 문학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한 영문학과 교수 로즈마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이다. 그녀가 쓴 보통이 아닌 몸장애학에 여성주의 이론을 접목한 책이다.

 

extraordinary’기이한’, ‘놀라운’, ‘보기 드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extra’‘ordinary’의 합성어인데 ‘ordinary’보통’, ‘평범한을 뜻한다. ‘ordinary’평범하고 건강한 몸을 가진 비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라면, extraordinary’는 기이한 몸을 가진 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다. 그런데 ‘ordinary’의 반대말은 ‘unordinary’. 톰슨은 왜 ‘unordinary’ 대신에 ‘extraordinary’에 썼을까. 보통이 아닌 몸의 역자는 톰슨이 평범하지 않은(unordinary) 장애인의 몸에 함축된 부정적 의미를 극복하고, 장애인의 몸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단어‘extraordinary’을 선택했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역자는 저자의 의도가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extraordinary’보통이 아닌 몸으로 의역했다. 보통이 아닌 몸기형의 몸’, ‘불구’, ‘결핍된 몸으로 보이고 설명되는 타자화된 몸이 아니다.

 

보통이 아닌 몸은 비장애인의 몸과 비교당하는 장애인의 몸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책이다. 프릭 쇼(freak show)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기형 인간 쇼는 1800년대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이어져 왔다. 저자는 프릭 쇼를 장애인의 몸을 구경거리로 만든 문화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프릭 쇼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몸을 열등한 상태 그리고 개인적인 불행으로 간주하면서도 그것을 신기한 몸으로 의식한다.

 

저자는 미국 문학작품 텍스트 속에 장애인의 몸과 삶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분석한다. 그녀가 언급한 미국 문학작품에서 장애인은 주로 주변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이 역할 안에서 기이하면서도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타자로 그려졌다. 장애인을 문화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내러티브(narrative)는 그들을 있지만 없는 존재로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인식을 생산한다.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대표작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의 비장애인 여성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장애 여성은 무력하고 절망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특정한 정체성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그림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은 그 정체성에 대한 매우 제한된 정보만으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이 편견으로 굳어져 버리면 차별과 배제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장애인은 건강하지 못해서 불행하다라든가 장애인은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의 삶을 축소하게 만드는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보통이 아닌 몸은 장애인의 몸과 삶에 투과되는 여러 가지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장애인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장애를 재현하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시선, 그리고 장애를 간과해온 비장애인 중심의 여성주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Trivia

 

수용의 논리는 장애란 그저 사람들 사이의 많은 다름 중의 하나일 뿐라고, 사회는 이 점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환경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9)

 

뿐이라고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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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9-2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코가 말했듯 모든 것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잘못된 에피스테메를 다시 심도있게 포스팅 해주셔서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9-09-22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이 아닌 몸」에 푸코의 이론이 나와요. 제가 리뷰에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쿠키님이 잘 파악하셨어요. 엄지 척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