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인권으로 한 걸음 -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성교육을 향하여
엄주하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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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부모는 자녀와 ()을 터놓고 대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을 가르치는 일을 내키지 않아 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가 성교육을 받으면 벌써 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콘돔의 용도를 알려주는 나름 진취적인 부모도 있겠지만, 과연 이들이 사용법이나 주의사항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일반 콘돔을 살 수 있다(여성가족부는 돌출형 콘돔과 사정지연 콘돔을 남성용 여성 성기 자극 기구로 분류하여 청소년 유해 물품으로 지정했다). 청소년도 성적 존재이므로 성관계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골라야 몸에 해롭지 않은지 등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만연하다. 어른들은 콘돔이 술이나 담배처럼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팔면 안 되는 물품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콘돔을 쓰기에는 아직 어려’, ‘사리분별 못하는 나이라서 안 돼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청소년의 성관계에 대한 반감일 테고, 설사 그게 아니었더라도 콘돔이 청소년 유해 물품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청소년의 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 있다. 이렇다 보니 청소년을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성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위험하게 생각하는 인식은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교사나 학부모는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순결을 강조하는 명목상의 성교육이었다. 성교육 교사들은 여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을 가르쳐주었다. 구시대적인 성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은 성적 의사 결정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며 자신이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반면 남학생들은 성교육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포르노에 익숙한 남학생들은 성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교육을 받지 못한 남학생은 자신의 성적 행동이 타인을 위한 존중인지 아니면 타인을 파괴하는 폭력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성교육에 대한 남학생들의 저조한 반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성교육 교사들은 가해자 되지 않기교육, 즉 성폭력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은 부실한 성교육의 실태와 성교육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성 인권 교육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보건 교사다. 성 인권에는 성적으로 보장받을 권리성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성적으로 보장받을 권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하고, 자신의 성적 느낌과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권리이다. ‘성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적으로 괴롭힘을 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과 성매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 등을 아우른다. 성 인권 교육은 남녀가 서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배워야 할 윤리 교육이자 사회성 교육이다. 성 인권 교육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성을 존중하는 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청소년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는 성 인권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저자는 청소년의 성이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아름답고 유쾌한 것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때 아이들은 부끄럽고 은밀한 성이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성을 배울 수 있다.

 

성 인권 교육은 문란한 성 문화를 조장하는 교육이 아니다. 실제로 누군가가 겪고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교육이다. 이제 아이들은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성관계는 어떻게 해요?’라는 그런 뻔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가 콘돔을 어떻게 써요?’, ‘남자친구가 자꾸 내 몸을 만지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성교육 전문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성에 대해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성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자체로 비뚤어진 성 개념만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먼저 자신의 성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를 점검해본 뒤에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는 노력부터 선행해야 한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포르노를 보기 때문에 괜찮아’, ‘혼전 성관계는 무조건 안 된다’, ‘이성 친구는 나중에 사귀어도 된다는 식의 어설픈 교육은 성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뿐이다. 사실 성 인권 교육을 배워야 할 사람은 어설프게 성교육을 받고 자란 어른들이다. 성 인권 교육을 배워야 하는 적당한 시기는 따로 있지 않다. 성 인권 교육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성을 소중히 여기도록 해주는 교육이기 때문에 누구나 배워야 한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은 나와 타인의 성을 올바르게 사랑하고 싶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다.

 

 

 

 

 

Trivia

 

 

*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성적 존재에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요구되는 성도덕적 규범들을 제대로 알려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며 좌절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31)

 

성적 존재로라고 고쳐 쓰면 문장이 어색하지 않다.

 

    

 

*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 종교에서도 여자가 신이 된 경우는 없었고 오히려 여성은 불경의 존재에 가까워 배척받고 천대받았다. (130)

 

힌두교에 여신이 있다. 이들을 데비(Devi)라고 부른다. 힌두교 남신은 데바(Deva)라고 한다.

    

 

 

* 어떤 여성은 미러링 방법으로 만약 남성이 생리를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남성이 월경을 했다면 지금과는 반대로 월경이 신성시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154)

 

어떤 여성의 정체는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다. 그녀가 주장한 내용은 저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현실문화연구, 2002)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정윤사랑한다는 것으로에는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여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라는 문장이 나온다. 존재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또 사랑 못지않게 이별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이별 또한 자신에게 맞는 상태를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225)

 

서정윤은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 홀로서기를 쓴 시인이다. 2008년에 대구 영신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 중에 남학생을 골프채로 체벌했다가 징계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영신중학교로 전근했는데 2013년에 해당 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해임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서 씨는 교단을 떠났다. 저자가 성 인지 감수성이 없는 서 씨의 시구를 인용하는 것은 책의 주제에 맞지 않다. 중쇄를 찍을 때 서 씨의 시구를 뺐으면 한다.

    

 

 

*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은 전쟁의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인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1916년 공창제를 선포하였으며, 이것이 점차 확대되어 부작용의 하나로 생긴 것이 일본군 위안부. (286)

 

위안부를 적을 때 작은따옴표(예시: 일본군 위안부’)를 붙여 써야 한다. ‘위안이라는 단어는 일본군을 위한 자발적인 참여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거부하는 국내 및 일본 극우 세력의 입장과 유사하다). 그래서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주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쓴다.

    

 

 

* 291쪽 오자: 네델란드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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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7-01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cyrus님이 말하는 성인권부분까지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교육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내용도 많이 좋아졌죠. 딱 하나 아직까지 안되는 부분은 실제로 콘돔을 어떻게 쓰는가하는 실용적인 부분인데 학교 성교육이 여기까지 하기에는 아직 용기도 학부모의 인식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cyrus 2020-07-02 10:03   좋아요 0 | URL
성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인식의 범위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넓어지고 있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반응에 못 따라오고 있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성교육을 예전에 자신들이 배운 그 내용과 같다고 생각해요. 성교육은 매번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른들이 교육 방식의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에요.
 
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일라이 클레어 지음, 전혜은.제이 옮김 / 현실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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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낙서를 하려고 크레파스를 쥐었던 손은 왼손이다. 그 후로 나는 왼손잡이가 되었다. 하지만 왼손의 임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그때부터 부모님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야 하는 거야.” 누구도 왼손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와 오른손만을 써야 할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오른손을 쓰는 것이 올바르며 왼손을 쓰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런 원인 없는 편견과 이유 없는 억압이 어디 왼손잡이에게만 해당할까? 세상은 귀가 따갑도록 배워온 올바른 상식과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면 여지없이 낙오자’, ‘패배자’,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으며 배척한다. 차별과 혐오는 차이에서 시작한다. 나와 다른 존재는 낯설고, 낯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혐오와 수치심에서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 분석한 것처럼, 혐오와 수치심은 공통점이 있다. 수치심은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수치심 문제의 핵심에는 정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정상으로 정의하고 자신의 약점에서 생겨난 수치심을 타자에 투여하여 그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수치심은 타인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주는 공격적인 행위로 표출된다. 자녀에게 오른손을 쓰라고 알려준 부모도 처음에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을 것이다. 왼손잡이를 향해 눈으로 욕하는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시작하면 왼손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체의 일부가 된다. 왼손잡이는 혹독한 교정 끝에 오른손잡이가 된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편한 자식을 혼낸다. 부모는 오른손을 활용할 수 있는 정상적인 존재라는 기만 위에 있으므로 왼손잡이 자식을 통제한다. 왼손잡이라는 수치심은 자신의 약점을 부정하는 동시에 자신이 믿고 있는 삶의 방식(“오른손을 쓰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다”)을 방어하기 위해 타자를 공격한다.

 

사회에 정상성 신화가 작동하게 되면 비정상적인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 모두가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존재이지만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 취약함을 덧씌울 수 있는 타자가 필요하게 된다. 타자라는 단어의 자리에 항상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가 있다. 이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자신을 비정상적인 존재와 비교하려는 욕구에서 온다. 이러한 반응은 곧 몸에 대한 혐오이기도 하다. 우리 몸은 질병과 바이러스에 취약하고, 냄새나는 불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일라이 클레어(Eli Clair)는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이다. 그는 장애, 환경, 성소수자 운동 등에 참여하는 젠더 퀴어 페미니스트. 뇌병변 장애인은 손 떨림 증상을 보인다. 클레어의 오른손은 떨림 증상을 보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그는 오른손 때문에 놀림감을 받았다. 그러나 클레어의 연인이자 트랜스젠더 활동가인 새뮤얼 루리(Samuel Lurie)는 클레어의 떠는 오른손이 자신의 몸에 닿을 때 느껴지는 촉감을 관능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클레어는 자신의 오른손이 항상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신체적인 약점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개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클레어의 대표작 망명과 자긍심은 지금까지 3판이 나올 정도로 장애학, 퀴어 이론, 페미니즘의 고전이 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계급 차별, 성차별이 교차하면서 관통한 자신의 삶과 몸을 분석한다. 그가 책 2판 서문에서 밝히기를 (뇌성마비를 안고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 비탄, 부담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열어젖힌다.” 그의 분석 방식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활동한 흑인,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의 다중 쟁점(multi-issue) 정치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중 쟁점 정치는 단일 쟁점(single-issue) 정치의 반대말이다.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다중 쟁점 정치는 가부장제와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강화되는 관계에 주목한다. 다중 쟁점 정치는 젠더, 인종, 사회계급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다중 쟁점 정치는 여성/남성’, ‘피해자/가해자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분석하는 방식의 한계를 넘어 억압과 특권이 복잡하게 뒤얽힌 경험과 관점을 이해하는 사회분석 전략이다.

 

이 책은 크게 장소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이루어졌다. 클레어가 말하는 장소다중 쟁점 정치가 가능한 세상을 의미한다. 그는 노동계급을 자연 파괴에 일삼는 나쁜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환경운동가들, 시골에 거주하는 퀴어들의 활동과 존재감을 배제하는 도시의 퀴어 활동가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클레어의 글은 우리가 환경문제,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보일 때 흔히 놓칠 수 있는 세부 사항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벌목 노동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법적으로 막으면 다 해결될까? 일자리를 잃은 벌목 노동자들의 생계는 누가 보장해주는가? 생태계 보호라는 단일 쟁점에 치우치면 벌목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경제권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들과의 연대가 어려워진다. 클레어는 위기의 지구를 구하려면 환경 파괴에 일조하는 그릇된 신념과 정책만 개선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자란 클레어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중산층 퀴어 활동가의 활동이 시골의 퀴어 공동체를 고립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삶, 정체성, 공동체, 정치가 공존하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사회를 갈망한다. 그는 이러한 사회를 누구나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으로 비유한다.

 

반면에 차별과 혐오, 그리고 수치심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에 무단 침입하는 도둑이다. 도둑은 타인의 몸에 거짓말을 심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제하고 그 사람들의 욕망을 파괴해버린다. 클레어는 어린 시절에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뻔한 도둑과 함께 살았는데, 그 도둑은 바로 자신을 강간한 친아버지다. 클레어의 떠는 오른손을 비웃으면서 그의 장애를 멸시하던 친구들도 클레어의 몸에 침입하여 짓밟는 도둑들이다. 클레어는 도둑들이 판을 치는 지역에 벗어나 자신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을 찾기 위해 이주한다. 그는 자신의 이주 생활을 망명이라고 말한다.

 

만약 클레어가 수치심을 받아들이면서 고립을 선택했다면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에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자긍심으로 바꾸는 일이야말로 혐오와 폭력의 말들에 저항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망명과 자긍심은 퀴어, 장애, 페미니즘, 환경, 계급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도록 만든다.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위치를 끝없이 돌아본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클레어가 자신의 몸을 열어젖혀 사유하면서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사회운동에 동참하는 내가 변화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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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5-10 0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 선생님은 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왼손으로 글씨 쓰는 아이한테 고치라 하고... 왼손으로 쓰든 오른손으로 쓰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데, 오른손만 쓰게 해서 오른손잡이가 많아지고 세상은 오른손잡이를 더 생각하기도 하는군요 지금은 예전보다 덜한 듯합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건 쉽게 바뀌지 않는군요 그렇다 해도 자신과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희선

cyrus 2020-06-01 15:54   좋아요 0 | URL
‘다양성’에 ‘포용’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데, 누군가를 ‘차별’하려고 ‘다양성’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특히, 성소수자)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도 자유이며 이 또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일이다’라고 생각해요.

transient-guest 2020-05-1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른손을 늘 바른손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한국은 더 심했지만 어디나 규정에 맞춰 사람을 재단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걸 보면 사회와 인식의 변혁은 늘 꾸준히 가져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20-06-01 16:02   좋아요 1 | URL
요즘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억누르려고 가짜 뉴스를 동원해요. 이러면 변화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을 더 커져요.

Angela 2020-05-1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어떠신가요 왼손글씨 아니면 오른손으로 바꾸셨어요?

cyrus 2020-06-01 16:04   좋아요 0 | URL
글을 쓸 땐 오른손을 사용해요. 이제는 왼손으로 글씨를 못 써요. 왼손으로 쓴 글씨체는 마치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할 때 나온 글씨체와 비슷해요.. ㅎㅎㅎ
 
TV뉴스 어떻게 봐야 하나?
닐 포스트만 / 참미디어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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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문화평론가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생각했다. 말과 글은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고 확장하기 위한 미디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TV 방송은 인간의 시각 능력을 확장한 미디어. 우리는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세상의 모든 소식을 접한다. 우리는 미디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미디어는 우리 삶의 일부다.

 

영국 밴드 버글스(The Buggles)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외친 게 1979.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버글스와 MTV[]는 틀렸다. 한물간 매체로 여겼던 라디오는 지금도 버젓이 살아 있다. 혹시 누군가가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패러디해 “유튜버TV 스타를 죽였다”라고 말했어도 틀렸다. TV와 종이를 뛰어넘은 유튜브의 영향력은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TV 스타들은 유튜브로 넘어와 1인 미디어가 되어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한다. 반대로 유튜버는 TV에 출연하여 자신을 영향력 있는 개인(influencer)’으로 소개한다. 유튜브는 TV보다 압도적인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TV의 영향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현재 올드 미디어의 패왕 TV와 뉴 미디어의 신흥 군주 유튜브는 서로의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스타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TV는 세상을 들여다보고, 때로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과 같다.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거울에 비친 모습과 무관하게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거울 속의 나를 관찰한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거울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TV에 의도치 않게 빠져드는 대중의 모습과 흡사하다. TV 시청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행위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수동성 속에서 감각적 자극을 통해 몰입하게 만드는 게 TV의 장점이다. 맥루언이 미디어는 마사지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는 우리의 일상을 조물조물 마사지하듯 지배한다. 상업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로서 TV가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문화평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맥루언의 영향을 받아 미디어의 영향력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파급력에 주목한 맥루언과 달리 미디어의 부정적 파급력에 비판적인 시선을 준다. 포스트먼은 미디어 중에서도 특히 TV의 문제점에 주목했다. 그는 1985년에 발표한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TV가 중심이 된 시대를 성찰 없는 가벼운 세계로 본다. 뉴스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 광고 등 모든 것들은 상업성을 띠고 있으며 거기서 교육적이라든지 성찰할 수 있는 어떤 장점도 찾아낼 수 없다는 얘기다.

 

 

 

 

 

 

90년대 아날로그를 느낄 수 있는 책 앞표지.

KBS를 제외한 나머지 방송국 로고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TV 화면에 있는 사진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대다.

이때 성화가 타오를 때 개막식을 위해 풀어놓은 비둘기 떼 중 한 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왼쪽에 김정일 사진이 있고, 그 뒤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을 찍은 사진이 있다.

 

 

 

 

 

 

 

TV 뉴스, 어떻게 봐야 하나?(How to Watch TV News)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포스트먼의 저서이다. 1992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스티븐 파워즈(Steve Powers)는 라디오 및 TV 뉴스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저널리스트다. 두 저자는 미국의 뉴스 제작 과정을 설명하면서 TV 뉴스가 어떻게 돈벌이를 우선하는 영리 기관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청자를 최대한 끌어들일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 그 상품이 바로 뉴스다. 뉴스 앵커는 다양한 표정을 짓고, 과장된 어조로 뉴스를 알린다. ‘배우 앵커(actor anchor)의 모습에 푹 빠진 시청자는 뉴스가 진실한 정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대다수 시청자는 뉴스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지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배우 앵커에게서 나온 말들을 사건 그 자체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두 저자는 TV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광범위한 독서를 하라고 강조한다. 책은 뉴스에서 볼 수 없는 복잡성과 사실들에 대한 정보로 가득하다. 물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 보는 편식 독서는 분별있는 독자 또는 뉴스 시청자가 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TV 뉴스, 어떻게 봐야 하나?단편적이고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와 가짜 뉴스같은 오물들이 넘쳐나는 미디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는 삶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나온 지 꽤 오래된 책이지만 비판적으로 뉴스 보기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 MTV는 미국의 음악 방송 채널로 1981년 개국 당시 처음 방송한 뮤직비디오가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귀로 듣는 음악을 눈으로 보는 음악으로 변화시킨 MTV의 개국 취지에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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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20-03-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식 독서가 찔려요. 대학 시절에 읽었던 책 지금 마주하니까 신기해. 나이든 거겠지, 쿨럭.

cyrus 2020-03-25 22:31   좋아요 0 | URL
요즘 저도 읽기 편안한 분야의 책만 읽고 있어요. 도서관에 가지 못하게 되니까 편식 독서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

페크(pek0501) 2020-03-2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루언.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인간의 확장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맸던 경험이 있습니다.

cyrus 2020-04-01 08:06   좋아요 0 | URL
이름 쓰기도 어려워요. ‘맥루한’이라고 써야 하는지 아니면 ‘매클루언’이라고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
칼 베네딕트 프레이 지음,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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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발전의 역사는 기술 발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인류는 기술을 습득할 줄 알며 기술과 관련된 정보를 사회 속에서 전달하여 축적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항상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추세는 분명하지만, 기술 발전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1811년에서 1817년 사이에 걸쳐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Luddite Movement)는 방적 기계의 도입을 막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었다. 요즘은 인공지능(AI) 기술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인간 존재 자체에 도전할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기술은 사회에 정착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술을 막으려는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기존의 정치 세력과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저항은 이제 막 발전하려는 기술의 발목을 잡는 으로 작용한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수천 년간 기술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했음에도 경제 성장이 더딘 이유를 주목한다. 그 이유는 새로운 기술의 힘이 두려운 세력들의 지속적인 활동이다. 정치적 힘을 가진 러다이트는 민중주의자(populist)가 되어 혁신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민중주의자로 변신한 러다이트는 새로운 기술 확산으로 인해 사회에 혼란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정략적 의도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민중주의자들이다.

 

우리는 러다이트를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생각한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우리의 편견을 깨뜨린 책이다. 지배계급이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늦춰왔다. 그들이 노동 대체 기술을 도입하면 이득보다는 손실이 더 크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노동 대체 기술 도입으로 급부상한 신흥 산업 계급을 반기지 않는다.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18세기 산업화 시대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신흥 산업 계급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기계화가 경제 성장과 정치적인 헤게모니(hegemony)의 중대한 변수가 된다. 신흥 산업 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 경제적 기반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기술을 보급하는 일에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세대의 지배계층도 영국 사회의 대세가 된 신흥 산업 계급의 편이 된다. 기계가 있는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가내 공업 노동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기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기계화의 경제적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생산성이 향상하면서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었다. 정치적 힘이 없던 러다이트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공장에 일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대중의 기계 기피증은 사라졌다.

 

기계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대중의 기계 기피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저자는 기계화 같은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가 많아져서 혁신에 대한 거부 반응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된 시기가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20세기다. 미국에서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가정의 기계화다. 이 시기에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전제품이 등장했다.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미국인들은 급료가 나쁘지 않고, 덜 힘든 작업장이 있는 공장 일을 선호했다. 미국인들에게 기계화는 공포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그래서 20세기에 러다이트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과 로봇 보급에 주목하는 자동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당신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환영하는가, 아니면 기술의 등장을 두려워하는가. 언젠가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에 다시 주목한다면 분명 러다이트가 나타날 것이다. 21세기의 러다이트는 18세기의 러다이트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중주의자로 변신한 러다이트의 존재를 가볍게 볼 수 없다. 정부가 러다이트의 편에 서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자동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인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을 언급한다. 우리 정부는 고용 우려 때문에 로봇공학 및 자동화 투자에 대한 세금 우대 정책을 축소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에서도 자동화 기술 도입을 지연하거나 아예 막기 위해서 정치적 의제로 내세운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자동화 기술에 열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동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되게 선전하는 민중주의자들의 등장을 경계한다. 그들의 행보로 인해 잘못된 경제 정책이 나올 수 있고, 너무 방관하면 경제 발전을 더디게 하는 치명적인 덫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이 노동자보다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면 분명 고용에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저자는 자동화 기술의 경제적 효과와 그에 따른 혜택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자동화 기술의 경제성에 주목하는 저자의 입장은 기업가들의 편에 선 정치인들이 엄청 좋아하는 낙수 효과(Trickle Down)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정말 끝까지 읽지 않으면 저자의 주장을 오해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두꺼운 책이다. 읽는 내내 지루하다고 해서 책을 덮으면 안 된다. 완독을 못 하더라도 이 책 474쪽의 마지막 문장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사실 이 책의 서론과 결론만 잘 읽어도 책의 핵심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저자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 부만 늘리는 기술이 등장하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분배 문제를 언급한다. 소득 분배가 나빠지면 불평등도 심해진다. 과연 현재 인류는 기술 혁신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분배 불평등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가 너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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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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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한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의해서 생긴 마음의 상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분류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과거에 학대와 생명의 위협을 겪으며 나타나는 정신장애의 일종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몸은 회복됐어도 평생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정신 질환이 아니다.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전쟁, 학대, 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빈곤, 차별을 겪은 사람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따라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고통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정식 병명으로 확정되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마음의 병만 걸리는 게 아니라 몸 상태를 악화시키는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반박하는 의학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질병을 일으킬 만한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처음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정신적 고통이었다. 지금 의학자들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아동의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의 저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조사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네이딘 버크 해리스(Nadine Burke Harris)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 연구)의 권위자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겪는 부정적 경험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만난 어린이들은 신체 건강이 심하게 좋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육체를 손상하는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한다. 조사 과정에서 그녀는 부정적 아동기 경험을 다룬 학술 논문을 발견한다. 그 논문에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신체 건강의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내용이 있었다. 이 논문에 감명을 받은 해리스는 아픈 아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한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심각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저자의 연구 과정이 담겨 있다. 부정적 경험을 반복해서 겪은 아동은 성인이 돼서 심장병과 뇌졸중,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높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면 마음과 몸에 병이 생긴다. 저자는 이를 유독성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단순히 어른들만의 문제로 한정해서 생각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성장하는 아동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독성 스트레스에 민감한 아동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지속되어야 한다. 아동이 가장 많이 겪는 부정적 경험은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모는 자녀가 스트레스에 혼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점점 회복된다고 해도 부정적 경험에 대한 수치심을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이 나빠진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나 스스로 극복해야 할 역경으로 미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는 더 큰 피해를 발생하게 만든다.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에 부정적 경험을 겪어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심각성에 둔한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일로 다루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중보건 차원에서 아동의 정신 건강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동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한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부정적 경험이 우리 몸과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곳저곳 몸이 아픈데 왜 아픈지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마음의 고통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왜 우리가 그동안 의 아픈 경험을 낯설게 느끼면서 살아왔는지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아픔에 둔감해서 마음의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모르는 게 아니다. 마음과 몸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믿어주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는 개인의 부정적 경험을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낯선 문제로 보게 만든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의료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고통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와 지속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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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11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 마음 아픈 얘기네요. 꼭 어린 시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겠죠. 결국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 대한 배려겠죠. 상처 받지 않도록, 기분 상하지 않도록 배려.
자식한테도 그런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리다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부모의 자식 차별로 가슴속에 멍이 든 경우도 봤어요.

cyrus 2020-03-11 18:14   좋아요 0 | URL
부모는 가끔 나쁜 의도가 없어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사소한 말은 아이의 인생에 계속 따라옵니다. 아이가 혼자서 그걸 감당하면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병이 생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