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변호하다 -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의 삶과 생각
박한희 지음 / 한티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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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큰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작은 무지개들이 희망을 만들러 큰 무지개를 따라갔었죠.

(※ 조규찬이 부른 「무지개」의 노랫말을 바꿔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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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마농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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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선언서』 

공약 3장의 첫 번째 장



 금일 오인(吾人) 의 차거(此擧)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현대어 풀이]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출처: 나무위키)






소극적인 자유주의자는 남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 만약 타인이 그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간섭한다면 자유를 침범한 것이다. 적극적인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강연문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분류한다. 그는 자유의 두 개념이 얼굴을 마주 보면서 같이 갈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벌린은 소극적 자유주의자를 지지한다. 적극적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자기 계발을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벌린은 적극적인 자유가 과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자유를 왜곡하거나 악용하면 개인의 자유를 죽이는 전체주의 사회가 등장한다.


벌린은 소극적 자유론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 자유론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적극적 자유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냉전 시대에 소극적 자유론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유주의의 근본은 소극적 자유’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적극적 자유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학계와 정계에 진출한 소극적 자유주의자 중 일부는 우파 자유 지상주의자(libertarianism)가 된다. 이들은 전체주의의 등장을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마르크스주의자(Marxism)와 사회주의자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과거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와 대적한 정부를 찬양하고, 전체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들은 냉전 시대 정부의 전체주의적 행보를 모르는 체한다. 오히려 우리가 공산주의에 점령당하지 않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살 수 있게 해준 위대한 업적으로 포장한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견해는 ‘종북 세력과 결탁한 적’으로 간주한다. 이런 그들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떠벌린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개별성(individuality)’을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자유의 다양한 의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우파가 자유를 독점하다시피 틀어쥐고 있으니, 자유의 ‘자’도 꺼내기 쉽지 않다. 자유를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시대일수록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을 곱씹어 읽어야 한다. 《자유론》을 꼼꼼하게 읽어 보면, 그의 자유주의에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어떤 사람의 물질적 또는 도덕적 이익을 위한다면서 그 사람을 간섭하는 것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32쪽). 소극적 자유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어서 밀은 개인이 절대적인 자유를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이유를 “자기 자신, 즉 자기의 몸과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이기 때문이라고 명시한다(32쪽). 주권자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이러한 밀의 견해는 적극적 자유로 볼 수 있다. 《자유론》을 번역한 서병훈 교수는 밀의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의 기본 원칙’을 주장하면서도(소극적 자유), ‘자기 발전’이라는 본원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한다(적극적 자유).


밀의 《자유론》은 자유주의 철학의 정석(定石)이면서도 회의주의(skepticism) 철학의 기본 원칙을 강조하는 교본(敎本)이다. 밀은 ‘자유주의자 이전의 회의주의자’ 또는 ‘회의적 자유주의자’다. 밀은 영국의 어떤 작가가 말한 “확정된 결론은 깊은 잠에 빠진다”라는 말을 인용한다(91쪽). 회의주의자는 확정된 결론 앞에서 꾸벅꾸벅 졸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로 확정된 결론을 절대 불변의 진리로 인식하지 않는다. 확정된 결론에 허점이 보이면 검증에 들어간다. 회의주의자 밀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믿는 것일수록 온 세상 앞에서 더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52쪽).


회의주의자는 냉소주의자가 아니다. 냉소주의자는 믿을 만한 진리가 없다는 이유로 숙고와 검토를 포기한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의 견해를 만나자마자 매정하게 마음을 닫고 배척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발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경청한다. 밀이 강조한 것처럼 회의주의자는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의 생각을 들어본다.” (51쪽) 밀은 소크라테스(Socrates)를 ‘모든 도덕 철학자의 원형’으로 평가한다(58쪽). 소크라테스는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주1]라고 말한 회의주의 철학의 원형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견해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쉽다. 여기에 권위까지 실리면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확정된 지식’으로 굳어진다. 회의주의자는 ‘전문가가 말했으면 사실이야’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적 독자는 《자유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밀은 지적 스승이자 아내인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를 만나면서부터 여성의 불평등을 지적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역설한 《여성의 종속》을 발표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어린이와 같은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수많은 남성 지식인은 정신적 ·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밀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보는 차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지식인이다. 


그런데 밀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자유의 기본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성년인 어린이를 자유 원칙의 적용 대상에 제외한다(32쪽). 영국 산업혁명 시대에 살았던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탄광이나 공장에서 열 시간 넘게 일했다. 1833년에 어린이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9살 미만의 어린이는 노동을 금지하는 일명 ‘노동법’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아동 노동은 여전했다. 밀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했다면 어린이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킨 사업주가 ‘어린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밀은 《자유론》을 “시민의 자유를 다룬 책”이라고 말한다(17쪽). 모든 시민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있는 시민에 어린이는 없다. 


밀은 비유럽권 국가의 발전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아시아를 ‘관습의 전횡이 극에 달한’ 대륙이라고 규정한다(138~139쪽).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밀이 백 세 넘게 장수해서 ‘자유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자주적인 민족임을 세계만방에 알린 1919년 3월 1일 조선을 알았다면, 아시아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을까?







냉소주의자는 타인의 의견을 불신한다. 이들과 대면해서 자유로운 토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냉소주의자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줄 모른다. 밀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토론의 자유가 이루어지려면 상대방을 향해 인신공격과 언어 폭력을 쓰는 사람을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배척하지 않고,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밀의 자유주의 또는 회의주의는 ‘다정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밀은 다정다감한 ‘희망찬 회의주의자’다. 진보, 보수, 좌우를 떠나서 우리는 희망찬 회의론자가 되어야 한다.







<(밀리터리 덕후가 아닌) 

‘밀’ 덕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서평 제목이 있는 배경 사진에 관한 주석]

사진 속 남성은 밀, 

여성은 해리엇 테일러의 친딸이자 밀의 의붓딸

헬렌 테일러(Helen Taylor)다.

어머니의 외모와 정신을 빼닮은 헬렌은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페미니스트다.




[독서 모임 날짜에 관한 주석]

 <고라니 울고>의 《자유론》 모임은 107주년이 된 3·1절인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했다. 모임 장소는 ‘인더가든’이다. 이곳은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고라니 울고>를 이끄는 분은 김성현 님이다. 작년부터 만난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독자님이다.

『기미독립선언서』는 1919년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처음으로 낭독되었다.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과 일치했다. 어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성현 님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 시간을 정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성현 님도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한 시간을 모르고 있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시간과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주1]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38a,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년






* 33쪽, 옮긴이 주





Akbar, 1524~1605 [주2]



[주2] 인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의 출생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그는 1542년에 태어났다.





* 113쪽




   

 다른 사람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하도록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견의 자유도 무제한 허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곡물 중개상이 가난한 사람들을 배곯게 한다거나 사유재산은 강도질이나 다름없다는 의견[주3]을 신문에 발표하는 경우는 누구도 제재해서는 안 된다.



[주3] 사유재산을 부정한 프랑스의 아나키스트(Anarchist)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견해다. 그의 사상이 담긴 책이 《소유란 무엇인가》(이용재 옮김, 아카넷, 2013년, 절판)다.













[주4] ‘첨밀밀(甜蜜蜜, 달콤하다, 다정하다)’은 등려군(鄧麗君)이 부른 유명한 노래 제목이자 1996년 홍콩에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영화 <첨밀밀>(Comrades: Almost a Love Story)이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한 날은 1997년 3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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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6-03-0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웬 영화 리뷰인가 했더니 그러면 그렇지.ㅋㅋㅋ
저 영화 보긴 했는데 내용은 기억에 없다. 그런 뜻이었군.
뜻도 모르고 봤네. ㅠ

cyrus 2026-03-08 23:06   좋아요 0 | URL
이번 달 25일에 <첨밀밀> 재개봉한대요. 이 영화, 제가 초딩 3학년 때 나왔어요. 한 번도 안 봤는데, 극장에서 보려고 해요. ^^

마힐 2026-03-0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첩밀밀의 밀의 큰글자를 보고 빵 터졌버렸요. ㅎㅎ 자유를 갇힌 제도안에서 사유의 자유로 끌어올리신 듯합니다. 그러고보니 첨밀밀의 남여 주인공의 엇갈리는 사랑이 마지막에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장만옥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아마 지금도 제겐 첨밀밀 최고의 명장면 입니다. 우연이겠지만 이 영화내용도 자유를 찾아 떠난 대륙 젊은이들의 사랑으로 이해했었는데 이제 보니 전부 우연이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cyrus 2026-03-08 23:08   좋아요 1 | URL
롯데시네마 극장에서 <첨밀밀>이 재개봉해요. 극장에 가서 보려고 합니다. ^^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퀜틴 스키너 지음, 조승래 옮김 / 교유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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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슨 소원을 빌 건지 말해줄게. 우선 모험을 하고 싶다고 할 거야.” 헉(Huck, 허클베리 핀)이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에, 네가 나처럼 자유인이 되면 좋겠다고 할 거야.”

 “고마어여.”

 “고맙긴 뭘. 아예 모든 노예가 자유로워지면 좋겠다고 하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거 아냐?” 헉이 물었다.

 “권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뭐라고?”



(퍼시벌 에버렛, 《제임스》 중에서, 99~100쪽)

 




허클베리 핀(Huckleberry “Huck” finn)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다. 그는 순진한 자유인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인 소년은 절친한 흑인 노예 짐(Jim)도 자유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짐은 순진하지 않다. 그는 자유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제임스(James)’다. 그는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임스는 주인인 대처 판사(Judge Thatcher)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서재에서 볼테르(Voltaire)와 몽테스키외(Montesquieu)를 만난다. 두 사상가는 언어와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제임스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라고 강조한 유럽 지식인들의 생각을 가슴속에 깊이 품는다. 자유에 목마른 제임스는 꿈속에서 볼테르를 만난다. 볼테르는 짐을 위로한다. “나는 자네와 같네. 자네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네.” [주1]


하지만 제임스는 신중하다. 지식인들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를 회의적으로 숙고한다. 생각하는 제임스는 백인들 앞에서 어리숙하게 행동하는 짐이 아니다. 백인 지식인들을 주인처럼 대하지 않는다. 유럽 지식인들의 자유론은 순진하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려면 유럽인처럼 교육을 받고,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제임스는 현실에 동떨어진 순진한 자유론을 거부한다. 자유인이 되려고 백인처럼 행동하는 흑인은 절대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백인이 흑인을 관대하게 대한다고 해도, 흑인은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친구이지만, 다른 백인들 앞에서 굽신거리면서 살아야 하는 노예 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소설가 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Bulgakov)는 창작과 출판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온 작가다. 그는 스탈린(Joseph Stalin)이 좋아하는 극작가로 전성기를 누리지만, 소비에트 체제의 모순을 풍자하는 희곡을 쓴 이후로 마음대로 글을 쓰지 못한다. 스탈린과 검열관들은 불가코프의 모든 희곡이 극장에 상연하지 못하게 하고, 소설의 출판을 금지한다. 창작의 자유를 박탈당한 불가코프는 스탈린에게 망명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를 완전히 떠날 생각이 없다. 스탈린이 망명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스크바에 남을 것이다. 소극적인 불가코프는 망명을 포기한다. 스탈린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불가코프에게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조연출로 일할 수 있게 해준다. 반 소비에트 작가로 비난받은 불가코프는 숙청과 수용소 생활을 피할 수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창작의 자유를 끝내 되찾지 못한다.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마지막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상연 금지된 희곡들은 불가코프와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해금된다.


허클베리 핀에 간섭받지 않는 제임스는 자유로운 인간인가? 스탈린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감시와 검열에 시달린 불가코프는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자유를 누린 작가인가? 두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제임스는 백인들의 자유가 우선되는 미국 사회에, 불가코프는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하는 소비에트 체제에 예속된 상태다.  













순진한 자유주의자는 타인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삶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유의 형태를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라고 한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소극적 자유를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정립한 철학자다. 밀은 《자유론》에서 각자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벌린은 자유를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소극적 자유, 또 다른 하나는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다. 적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개인은 자아실현을 중시하며 공동체적 가치와 평등을 강조한다.









순진한 자유주의자는 소극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그들은 적극적 자유를 비판한다. 적극적 자유를 지나치게 허용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결국 전체주의 사회로 이르게 된다고 우려한다. 소극적인 자유주의자는 허클베리 핀이 생각한 것처럼 인간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하려는 의지가 발현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자유’다.


영국의 정치 철학자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는 소극적 자유를 자유주의의 근본으로 추켜세우는 벌린을 비판한다. 스키너는 허클베리 핀의 친구가 된 제임스와 같이 ‘착한 백인을 만난 노예’를 예시로 언급하면서 소극적 자유의 한계를 지적한다. 허클베리 핀이 제임스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를 가족처럼 대한다면 제임스는 자유인이 된 것일까? 스키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 허클베리 핀이 모든 노예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진심을 유지하고 있다면 노예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해도 제임스의 우정이 변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허클베리 핀이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성세대에 공감하고, 그대로 답습한다면 노예제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착한 백인을 주인으로 섬기거나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노예는 다른 노예들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다. 그렇지만 주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노예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착했던 주인이 마음이 바뀌어 노예의 삶을 간섭하고, 활용 가치가 떨어진 노예를 팔 수도 있다. 스키너는 당장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개인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힘을 가진 세력이나 집단이 있으면 완전한 자유인이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노예가 자유를 누리려면 그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고, 더 나아가 사회 또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론의 강점에만 주목한 자유주의의 역사에 도전한 책이다. 스키너는 편향적인 자유주의의 역사를 톺아보면서 소극적 자유론자들이 외면하고 비판한 ‘공화주의적 자유론’을 발굴한다. 스키너가 주목한 자유주의자는 군주정을 폐지하고 의회를 도입하려고 했던 17세기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지적인 뿌리는 고대 로마법에 새긴 공화주의다. 군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권리를 가진 민중은 공화주의적인 자유인이다.













군주정의 폐단을 막을 수 있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장점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사상가가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다. 그의 또 다른 저서, 《군주론》보다 제일 먼저 읽어야 하는 《로마사 논고》는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에 영향을 준 책이다. 스키너는 로마 공화정의 부활을 꿈꾼 공화주의적인 자유론을 가리켜 ‘신 로마적 자유론(Neo-Roman liberty)’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보수적인 자유론자들은 공화정의 등장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간섭받거나 억압받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공화주의적 자유론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든 철학자가 《리바이어던》의 저자인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다. 홉스는 민중이 주도한 혁명에 반대하고, 간섭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공화주의자들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홉스의 소극적 자유론은 정치 철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공화주의적 자유론은 잊히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사적 자유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국가와 스탈린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항하는 무기가 된다.


소극적 자유론자들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를 강조했으면서도 비유럽인들의 자유를 침해한 제국주의에 침묵했다. 밀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세운 동인도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의 자유에 무관심했고, 유럽 제국주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개인을 위한 자유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진다. 이기심과 집단 이기주의가 뭉쳐진 자유주의는 타인과 다른 공동체를 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자유를 누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경쟁 상대로 인식한다.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는 자유주의는 삭막하다.


소극적 자유를 잘못 배운 자유주의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꽉 쥐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유의 다양한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토론하는 방법을 모른다. 밀은 ‘생각과 토론의 자유’가 있으면 개인의 오류를 스스로 검토하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독선을 피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생각과 토론의 자유’는 다르게 생각하는 타인의 권리를 방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독단적인 주도권을 경계한다. 우리가 진짜로 되찾아야 할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는 민주적인 대화가 익숙한 ‘생각과 토론의 자유’다.







<마키아벨리와 밀을 좋아하는 cyrus가 쓴 주석>




[서평 제목과 ‘너는 이미 죽어 있다’ 사진에 관한 주석]


 “너는 이미 죽어 있다”는 일본 만화 <북두의 권> 주인공 켄시로(ケンシロウ)의 명대사다. <북두의 권> TV 만화는 1984년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TV 만화 1기 여는 곡(OP)의 제목은 ‘愛をとりもどせ!!’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랑을 되찾아라!!’다. 서평 제목은 여는 곡 제목에서 따왔다.




[주1] 《제임스》, 71쪽.




[주2] 제임스의 꿈에서 나타난 사상가는 볼테르와 존 로크(John Locke)다. 볼테르와 마찬가지로 제임스는 노예제를 분석한 로크의 관점을 비판한다.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개정판에 역자가 쓴 논문 「로크의 자유론」이 보론으로 추가되었다. 

 역자는 이 논문에서 로크의 자유론을 소극적 자유론으로 분류하고 비판한 스키너의 견해를 반박한다. 그러면서 로크의 자유론이 자유주의자의 소극적 자유론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자의 적극적 자유론도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 《제임스》 중에서, 382쪽

 

 “당신은 이 책이 없어져도 아쉬워하지 않을 거예요. 애초에 당신이 이 책을 왜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캉디드』. 볼테르가 쓴 또 다른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책[주3]이에요.”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진보라고 하시면 돼요.” 내가 말했다.



[주3] 제목은 나오지 않지만, 제임스가 대처 판사의 서재에서 읽은 책 중에 밀의 책도 포함되어 있다. 밀의 아버지는 열 살도 안 된 아들을 엄격하게 교육한 것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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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24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 오는데, 자유도 일종의 힘이라고 봐도 될까요? 제도권 자유는 힘의 구조에 따라 자유가 분배되는데 힘이 없다면 자유를 누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럼 외적 자유는 힘에 의해 좌우 되지만 내적 자유는 스스로 메이냐 메이지 않느냐는 얽매임의 문제로 넘어 갈 것 같네요. Cyrus님의 좋은 글 감사드리고,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6-03-02 08:22   좋아요 1 | URL
지금도 ‘자유’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는데, 자유라는 단어가 한두 가지 정의로 설명될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독서와 공부의 끝이 없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해봐야겠어요. 어느덧 3월이네요. 마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퀜틴 스키너 지음, 조승래 옮김 / 교유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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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재장전: 신자유주의에 갇힌 자유 구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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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 장애인 신탁 예언자가 전하는 지구 행성 이야기
앨리스 웡 지음, 김승진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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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일곱 번째 선정 도서

(모임 날짜: 2025년 9월 27일 토요일)






잘 만든 자서전에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자서전의 주인공은 자서전을 쓰는 글쓴이다. 소설을 쓰고 남는 시간에 서평과 에세이를 써온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한 편의 스트립쇼와 같은 어느 예술가의 자서전을 만났다. 오웰이 읽은 자서전의 주인공은 자아도취가 심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다. 오웰은 달리의 자서전을 비판적으로 비평한 글에서 ‘잘 만든 자서전’의 중요한 요소를 강조했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일을 들추어낼 때만 신뢰할 수 있다. 자기 마음속에서 바라본 삶은 누구에게나 그저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에 자기 모습을 보기 좋게 설명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조지 오웰, 『성직자의 특권: 살바도르 달리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중에서, 오웰의 에세이 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279쪽)

 


 

자신을 보기 좋게 꾸미는 자서전의 주인공은 남들보다 잘살고 있다고 거들먹거린다. 하찮은 자서전은 같잖은 거짓말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다. 진솔하지 않은 자서전은 독자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회고록(memoir)은 자서전(autobiography)을 조금 닮았다. 회고록은 자서전과 다르게 글의 주인공이 여러 명이다. 회고록의 글쓴이는 자신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종이에 불러들인다. 회고록(reminiscence)을 쓰는 내내 글쓴이는 친애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절의 추억에 잠긴다(reminisce).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 모두가 회고록의 주인공이 된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은 잘 만든 회고록이다. 회고록의 주인공 앨리스 웡(Alice Wong)은 장애 인권 활동가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근육이 점점 수축하는 희귀 질환을 앓았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휠체어와 호흡기는 삶을 연장해 주는 의료 보조 기기가 아니다. 삶과 결합한 몸의 일부다. 앨리스는 기계와 한 몸이 된 자신을 ‘사이보그적 존재’라고 부른다. 사이보그적 존재는 SF에 나오는 허구의 피조물이 아니다. 유기체와 기계의 잡종이다. 사이보그적 존재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쓴 『사이보그 선언문』[주1]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개념이다. 해러웨이가 새롭게 정의한 사이보그는 정신과 육체, 유기체와 기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사회 현실 속의 피조물이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잡종의 책’이다. 에세이, 시, 일기, 인터뷰 기록, 사진과 음식 조리법까지 어우러져 있다. 여러 종류의 글과 그림이 섞인 책을 읽어나갈수록 책의 매력은 하나둘씩 늘어난다. 저자의 인터뷰는 정상성과 비장애성의 문제점을 정확히 찌르는 창이 되어주기도 하고, 일기는 즐겁게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앨범이 된다.


저자는 욕망에 충실하다. 음식을 먹는 일에 진심이다. 식탐이 많은 것을 인정한다. 군것질은 인생의 낙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이다. 음식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각자에게 주어진 음식을 다 같이 먹는 행위는 우호 관계를 더욱 돈독해지게 만든다. 해러웨이는 식탁에 함께 앉은 식사 동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려(companion)’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반려는 종(種)의 경계를 없애고 서로 돌보면서 관계를 맺는다.[주2]


저자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침을 자주 뱉지 않으면 그녀는 숨을 쉴 수 없다. 타구(唾具) 컵은 그녀의 호흡을 도와주는 친구다. 책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 『타구에 바치는 송가』는 지저분해 보이는 침을 다시 보게 만든다. 더러운 분비물로 여기는 침은 우리 몸의 일부다. 침은 첫 번째로 음식물 소화에 관여한다. 저자는 침을 ‘함께 사는 적’으로 인식한다. 호흡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침은 인간의 취약성을 떠올려준다. 침은 소중하다. 그래서 저자는 침의 분비를 줄이는 약을 먹기보다는 타구 컵에 침을 뱉는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장애인에 대한 삶의 지식이 부족하면 장애인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투명한 괴물이 된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두려워한다. 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장애는 건강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불편함을 수반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을 계속 피하게 만드는 부당한 편견이다. 장애인은 항상 그늘 속에 지내지 않는다. 장애인은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이 어딘지 잘 안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자립성’이다. 장애인은 행복을 그러모으기 위해 꾸준히 움직인다.







<안경 쓴 사이보그 cyrus가 만든 주석>








[주1] 원제는 『사이보그 선언문: 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다. 이 글의 전문은 해러웨이의 저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황희선 · 임옥희 함께 옮김, arte, 2023년)과 《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년)에 수록되어 있다.



[주2] 도나 해러웨이, 최유미 옮김, 《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갈무리, 2022년), 1장 「종과 종이 만날 때: 서문」, 29쪽과 48쪽.


《종과 종이 만날 때》 서평

<모순 속에서 함께 번영하는 법>, 2022년 9월 22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3923077





* 74쪽




 

수전 웬델 [주3]



[주3] 수전 웬델(Susan Wendell)은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강지영 · 김은정 · 황지성 함께 옮김, 그린비, 2013년)을 쓴 미국의 여성학자다. 


《거부당한 몸》 서평 <정상을 거부한다>, 2018년 12월 5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514815






* 417쪽




 

스테이시 파크 밀번,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주4]

 

 


* 420쪽





 

 2019년 3월 10일 <내 조상들의 지평에서: 크립의 전승과 우리 운동의 유산>(On the Ancestral Plane: Crip Hand Me Downs and the Legacy of our Movements)이라는 제목으로 스테이시의 글이 게재되었다. (중략)

 나는 스테이시의 예지력 있는 글을 내가 편찬한 에세이집 《급진적으로 존재하기》에 수록했다. 책이 나오기 불과 1~2주 전인 6월에, 스테이시는 세상을 떠났다. [주4]



[주4] 앨리스 웡이 엮은 에세이집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장애, 상호 교차성, 삶과 정의에 관한 최전선의 이야기들》(박우진 옮김, 가망서사, 2023년)에 스테이시 파크 밀번(Stacey Park Milbern)과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Leah Lakshmi Piepzna-Samarasinha)가 쓴 글이 실려 있다.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번역본에 표기된 밀번의 글 제목은 <양말의 계보: 내가 물려받은 장애 운동의 유산>이다.

 

《급진적으로 존재하기》의 원제는 ‘Disability Visibility’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장애 가시성’이다. 이 용어는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에 수록된 저자의 인터뷰 「미국장애인법」에 언급된다.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의 저서 《가장 느린 정의: 돌봄과 장애 정의가 만드는 세계》(전혜은 · 제이 함께 옮김, 오월의봄, 2024년)도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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