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만 볼 줄 밖에 모르는 바보에게 선물을 주신 해피북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번 가봐야지”하고 마음먹은 게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중학생 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읽었다. 언젠가 책 속에 나온 문화유산을 꼭 두 눈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유홍준 교수처럼 답사 코스 일정을 만들어서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친구 중에 ‘역사 덕후’가 있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 열심히 읽었고, 좋아했다. 한 번은 친구는 대학생이 되면 나와 함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여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원래는 여름방학 중 1주일만 잡아서 여행 일정을 편성하려고 했다. 당시 우리의 패기는 대학생 신입생 못지않았다. 우리가 구상한 여행은 단순히 노는 휴가가 아니라 교실 밖으로 나가 몸으로 자유롭게 느끼는 공부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름방학 보충수업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무조건 보충수업에 참여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방학 보충 수업을 피하고 싶은 학생들은 ‘가족 여행’, ‘아르바이트’ 등 각종 거짓말을 지어내었다. 몇몇 학생들이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휴가철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서 학교에 당분간 못 나오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보충 수업을 빠지려고 하니 선생님들의 눈에는 그들의 거짓말이 뻔히 보였다. 선의의 거짓말이 선생님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정면 승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우리의 여행을 솔직하게 말했다. 책 속에 나오는 문화유산을 딱 일주일만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청소년 추천도서인 유홍준 교수의 책을 절대로 모를 리가 없었기에 우리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여행의 목적을 들으면서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주면서도 끝내 허락해주지 않았다. 청소년이 단둘이서 일주일간 여행을 하다가 자칫 위험한 사고가 생길 수 있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여행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타이르셨다. 결국, 여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을 동반한 여행이라고 말할 걸 그랬다. 선생님에게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면서 말하고 보충 수업을 빠진 녀석들이 피시방에 눌러앉아 게임만 하거나 계곡에 가서 소주병 나발 불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조금 억울했다.

 

휴가를 답사여행을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럴 만도 하다. 시원한 계곡 물에 ‘풍덩’ 빠져보거나 바닷가에 물놀이하는 여름 휴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문화유산답사를 지루한 여행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답사의 의미가 공부와 비슷하게 연상이 되다 보니 사람들은 지루하게 느낀다. 왜냐하면 답사를 학교 다녔을 때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감독 하에 정해진 곳에만 가야 하고, 답사를 마치고 나면 감상문 비슷한 글 한 편 써야 한다. 답사기를 짧게 쓰면 선생님은 다시 써오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교실 밖으로 나가 자유를 만끽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본 것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는 일이 힘들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답사는 ‘교실 밖으로 나가 현장을 보고 느끼는 일’이 아니라, ‘현장을 보고 느끼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아이들은 답사기를 종이 한 면에 채우려고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대신에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찾아서 열심히 메모한다. 이게 과연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되는 답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답사기를 종이 한 면에 가득 채울 수는 있어도, 학생들의 만족감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문화유산이 있는 곳은 대개 경치가 좋다. 경치 좋은 곳에 가면 우리가 몰랐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곳은 자연히 알려지고 그 덕에 거기에는 사람이 모여들어 숨결이 남게 마련이다. 경치 좋은 곳을 찾고 싶다면 당연히 문화유산부터 찾는 편이 빠르다는 공식도 성립한다. 강원도 영월은 수려한 절경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절경 속에 단종의 슬픈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특별한 장소다.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 청렴포. 청렴포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 한 번이라도 가보게 된다면 다음부턴 영월 이야기가 나오면 단종애사가 떠오를 것이다.

 

임금님도 보고 싶어서 전속화가를 보내 그려오게 했던 단양 8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수백 년 후에 사는 우리는 단양 8경을 조금 우습게 본다. 이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로와 충주호 유람선 덕분에 마음껏 경치를 감상할 수 있지만, 예전엔 몇 날 며칠을 걸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단양 8경은 유람선 타고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용 관광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양 8경의 진가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특히 단양 8경 중 하나인 사인암은 선비들의 안식처로 알려진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고려 말 학자 우탁이 벼슬에 있을 때 이곳에 휴양하기도 했다. 70m 높이에 이르는 기암절벽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고 떠난 선비들은 바위에 자신의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가면 수백 년 전 선비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문화유산답사는 단순한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 ‘문화가 있는 휴가’가 된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실태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행 중에라도 문화재 파괴의 현실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되고, 문화재를 훼손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전역에 많이 남아있는 폐사지에 가면 불교문화의 옛 정취와 기가 막힌 전망을 볼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마음이 울적하면 폐사지에 가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더 울적할 것 같다. 수풀만 무성하게 남아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폐사지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뒹구는 석불 일부가 빛을 보지 못한 채 방치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과거에 1만 평에 이를 정도로 대찰이었던 흥법사가 있던 곳은 논밭으로 변했다. 한쪽에서는 보존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대로 방치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세계유산의 등재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존 관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 이 책에 눈여겨 볼 점이 신경림 시인이 쓴 시가 무려 네 편이나 소개된다. 그리고 시인은 유홍준 교수가 이끄는 문화유산답사단에 합류하여 책에 카메오로 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답사코스 중에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배경인 ‘목계나루’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에 대한 유홍준 교수의 애정(?)은 각별하다. 중원 고구려비 답사를 하는 도중, 고구려비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신경림 시인의 생가를 보고 왔던 시절을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인이 쓴 「다시 느티나무가」전문을 소개하고, 충주가 낳은 시인을 문화적으로 큰 복이라고 예찬한다. (319~321쪽 참조) 이 시는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에 수록되어 있다. 신경림 시인의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를 소개하면서까지 시인을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교수의 문장을 보면 자신들이 만든 책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 출판사의 개입이 다분히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을수록 ‘창비스러운’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342쪽에 교수는 폐사지를 언급하는 내용에서 정호승 시인의 「폐사지처럼 산다」를 부분 인용한다. 이 시의 출전은 《밥값》(창비, 2010)이다.

 

기가 막힌 우연일까, 아니면 저자와의 돈독한 (출판) 의리가 만들어 낸 출판사 PPL일까?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는 걸로.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5-10-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알아가는 것...

내가 서 있는 곳을 모르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요...

cyrus 2015-10-01 20:00   좋아요 0 | URL
가고 싶은 장소라고 해서 무턱대고 가는 것보다는 그 장소가 어떤지 알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10-0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만에 Cyrus님 글 읽으니 왜 이리 반가운지... ^^ 추석 잘 보내셨죠? ^^

cyrus 2015-10-01 20:05   좋아요 0 | URL
다이제스터님도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이번 연휴는 집에서 혼자 보냈는데, 분위기가 조용해서 좋은 반면에 밤이 되니까 외롭더군요. 그래도 지낼만했습니다. 5일 동안 알라딘 접속을 멀리하니까 글 쓰는 것조차 귀찮아졌어요. 당분간 접속을 안해서 제 존재감이 잊힐 줄 알았는데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10-0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ppl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cyrus 2015-10-01 20:07   좋아요 0 | URL
전 요즘 신 모 작가 표절 논란 때문에 창비를 안 좋게 보고 있어서 창비 책을 알리는 듯한 문장이 별로였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신경림, 정호승 시인의 글을 좋아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10-0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소용없어요 ^^;;; 이 시리즈 제주편을 보고 제주도 여행갈때 그렇게 일정 짜야겠다는 꿈을 가졌었는데 막상 갈 때 되니.....죄다 아이들 위주로 일정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ㅠㅠㅠ 초딩 유딩 아이들에게 추사 유배지 가자는 말이 차마 안 나와요 ㅋㅋ

cyrus 2015-10-01 20:09   좋아요 0 | URL
1인 여행,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그리고 가족 여행 중에 그나마 제일 편한 게 혼자 가는 여행인 것 같아요.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으니까요. 결혼하기 전에 1인 여행을 자주 해야겠어요. ㅎㅎㅎ

돌궐 2015-10-0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홍준 선생이 답사기에 이런저런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긴 합니다. 시를 참 많이 읽은 분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유산답사기의 유려한 문체가 저자의 이런 독서이력에서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허망한 글도 있어서 걸러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5-10-02 23:39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창비시집에서 나온 시가 언급되어서 제가 예민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ㅎㅎㅎ

AgalmA 2015-10-0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도 운문사 새벽 예불보다 책 속에 나온 ˝율무차˝에 더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지금도 그 율무차는 여전한지ㅎ

cyrus 2015-10-02 23:43   좋아요 0 | URL
`청도 운문사` 이야기라면 답사기 2권에 나오는 것 맞죠?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

페크pek0501 2015-10-0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3권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지적 흥미를 주죠.
그런데 8권까지 나왔다니...

cyrus 2015-10-07 18:53   좋아요 0 | URL
유 교수님이 벌써 다음 책 출간 준비를 염두하고 있더라고요. 잘 하면 10권으로 마무리될 것 같아요. ^^
 
파리의 풍경 1 파리의 풍경 1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런데도 사회적으로는 절대군주제와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등 봉건 잔재가 온존했다. 이런 와중에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도 세금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독점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다.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 평민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사회적 모순이 팽배해 혁명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불평등은 문명 자체, 범위를 좁히면 잘못된 체제에 주된 원인이 있다. 구조화한 불평등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장 자크 루소는 1755년에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발표했다. 루소가 생각한 불평등 원인은 문명 그 자체였고, 그것을 정당화할 자연법은 없었다. 이는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당시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함을 내포했다. 한 세대 뒤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루소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진리를 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끌어내려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마련했다. 이런 와중에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라는 작가 겸 언론인은 혁명의 기운이 닿지 않는 파리의 땅을 한가롭게 밝으면서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글로 기록했다. 책 제목은 《파리의 풍경》. 1781년부터 1788년까지 총 12권으로 출판한 책(국내 번역본은 총 6권)은 위조본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책 때문에 메르시에는 파리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사실 위조본은 경찰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출판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인기를 식을 줄 몰랐다. 출간 당시 《파리의 풍경》의 인기는 볼테르와 루소의 책과 맞먹을 정도였다. 이 책은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이 피어오르기 전 나름대로 평화로웠던 파리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파리를 찾는 다른 유럽 관광객이나 파리에 진출하려는 지방 사람들을 위한 신변잡기 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는 화려하고 평화로운 파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메르시에는 감상에 현혹됨이 없이 파리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정면으로 읽어낸다. 그는 파리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전체를 돌며 “파리는 어떠한 곳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구한다. 관찰과 사유를 통해서 얻은 결과물은 천여 개가 넘은 단상으로 정리했다. 메르시에의 글쓰기 방식은 20세기 초 근대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관찰했던 것을 짧게 메모한 발터 벤야민보다 훨씬 앞선다. 메르시에가 바라본 파리는 종잡을 수 없는 곳이다. 계몽주의 사상의 나라답게 자유와 평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고, 지배의 타성에 젖어 무기력한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전제 군주시대의 색채가 너무나도 짙다. 책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귀족들, 신분 상승을 위해서 파리 중심부로 모여든 지방의 젊은이들, 그리고 가난에 허덕이는 시민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메르시에는 점점 사람들이 모여 넘쳐나는 파리를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를 가진 존재로 비유한다.

 

파리는 나라라는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 혹을 잘라내기보다는 내버려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번 뿌리가 내리면 근절이 불가능한 잘못된 일들이 있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파리는 인류를 집어삼키는 구렁텅이라고 볼 수 있다. (10쪽, 발췌 인용)

 

그가 걱정하는 ‘잘못된 일’이란 게 무엇일까. 메르시에는 물질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파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부자와 빈자와의 경제적 격차는 점점 커지고, 빈자를 도와주어야 할 종교인들마저도 마몬의 유혹에 사로잡혔다. 이제 파리에는 검소, 절제, 미덕을 찬양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잘못된 일’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다. 전제정치와 불평등은 파리지앵들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조차 보이지도 않는다.

 

파리인들은 계속적인 성찰과 노력에 의해 자유를 조금 더 얻어보았자 별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같다. 파리인은 도시의 불행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린다. 그들은 고통을 기록해 두지 않는다. (52쪽)

 

다행히도 메르시에가 걱정했던 매너리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파리의 풍경》이 출간하고 나서 일 년 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서 《파리의 풍경》은 자유와 평등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려던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책이다.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지 않고, 부의 균등분배가 이루지 못한 파리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기록했기에 당연히 정부는 이 책의 인기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메르시에의 책이 불티나게 팔린 사건은 사회적 모순을 감지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후부터 메르시에의 책은 파리 시민들의 기억 속에 잊혔다. 인기 작가 대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사람은 루소와 볼테르였다. 메르시에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의 글은 풍속과 각종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간략하게 적은 칼럼을 연상시킨다. 그의 글은 다소 지루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파리의 풍경》이 혁명 이후에 잊힌 책이라고 해서 단순히 프랑스 혁명의 등장을 예고하는 텍스트 정도로만 평가한다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한다. 메르시에는 우리의 도덕관과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율배반과 변화무쌍한 파리를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했을 뿐이다.

 

어떤 기술을 완전히 익힌다는 구실로 지방을 떠나서 멘토도 친구도 없이 이 유혹의 도시를 찾아온 순진한 풋내기는 화를 당할지어다! 뻔뻔스럽게 쾌락이라는 이름을 도용하는 방탕의 덫들이 사방에서 그를 둘러싼다. 그는 부드러운 사랑이 아니라 그 모조품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교태의 거짓말과 탐욕의 간계가 진심의 토로와 감정의 불꽃을 대신한다. 쾌락은 돈을 주고 사는 기만적인 것이다. (25쪽)

 

공교롭게도 프랑스 혁명 이후의 파리는 다시 유턴을 시작했다. 구체제보다 훨씬 빨리 부활한 것이 향락이었다. 단두대의 공포가 사라지기 무섭게 무도회장이 파리 곳곳에서 문을 열었고, 사기꾼, 투기꾼, 부패 정치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의회 의원들의 부패행위는 공공연해졌으며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세인의 부러움을 샀다. 메르시에는 프랑스의 최초 공화정을 무력하게 만든 나폴레옹 제정의 몰락(1814년)까지 지켜보고 눈을 감는다. 만약에 그가 십 년을 더 살았으면 물질주의에 지배된 파리를 더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대도시는 끝없이 타락할 것임을. 그래서 파리를 꿈과 성공의 도시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신기하게도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순진한 라스티냐크의 등장을 예고한다. 메르시에는 ‘인류를 집어삼키는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파리지앵이다. 이 위대한 생존자는 타락한 도시의 영혼들이 사는 시대의 천태만상을 기록하는 데 성공한다. 발자크가 생전에 해내지 못한 <인간 희극> 작업을 12권으로 정리했다. 12권의 《파리의 풍경》은 90여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발자크의 <인간 희극> 전체와 맞먹는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5-08-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역사적 책도 있었군요. 국내에서도 12권으로 출간된 책 중 이것이 첫 권인가요?

cyrus 2015-08-26 10:05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국내 번역본 권수를 언급하지 않았군요. 총 6권으로 완역본입니다. ^^;;

프레이야 2015-08-2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이군요. 완전히 새롭게 발견하게 된 책입니다. 리뷰 감사해요^^

cyrus 2015-08-26 10:07   좋아요 1 | URL
최근 프랑스 역사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이 서울대학교가 주관하는 문화연구기관 이름으로 출판되었어요. 이런 좋은 책이 알려지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국내 번역본 권수는 6권입니다. 제가 깜빡 잊고 국내 번역본 권수를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08-2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12권이라니~ 다 읽으려면 몇년이 걸릴까요? ㅎㅎ
좋은 책 감사해요~^^

cyrus 2015-08-26 10:09   좋아요 0 | URL
글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12권은 처음에 나왔을 때 권수고요, 국내 번역본은 6권으로 나왔습니다. ^^;; 한 권당 400쪽 조금 넘습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사회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알아야 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8-26 15:50   좋아요 0 | URL
확 끌립니다. 일단 책값이 후덜덜하군요 ㅎㅎ
소장가치는 있겠어요., 제가 힘들면 도서관에라도 소장하도록 하든지 해야겠어요 ~^^

cyrus 2015-08-26 15:58   좋아요 0 | URL
공공도서관에 찾기 어려운 책일지도 모릅니다. 스무 개 넘는 대구 도서관 중에 6권 모두 소장되어 있는 곳이 딱 한 군데뿐이었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08-26 16:02   좋아요 0 | URL
정말요? 이런 책이야말로 도서관에 소장해줘야 하는데요~~ 희망도서로 일단 신청을 해봐야겠어요 ~ ^^

AgalmA 2015-08-26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보면 참 부러워요. 그에 비해 한국은 참 여러모로 안타까운...왜곡하려는 자들은 득실하고...

cyrus 2015-08-26 10:14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가면 갈수록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고발하는 사람들을 자꾸 거짓으로 모함하는 세력이 있어요.

transient-guest 2015-08-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가 테마가 되는 책이군요. 이런 책이 나오기 힘든 한국의 풍토가 아쉽습니다.

cyrus 2015-08-26 10:15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번역되지 못하는 풍토도 아쉽습니다.

stella.K 2015-08-2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작에 무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고 싶어. 발자크도 그렇고.
현재는 6권만 번역된 거고, 앞으로 6권이 더 번역되어 완역한다는
목표겠지?
뭐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처럼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읽을지는 장담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 탐나는 책임엔 틀림없어.

cyrus 2015-08-26 15:26   좋아요 0 | URL
우리말로 번역해서 나온 책이 총 6권이에요. 이 책 번역에 참여한 사람이 7명이나 됩니다. 그만큼 국내에 덜 알려진 책을 번역한 분들이 대단해요. 그런데 책값이 대학교재 가격이랑 비슷해요. ^^;;
 
조선시대사 1 - 국가와 세계 조선시대사 1
홍순민 외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중 역사서는 역사에 대한 지적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를 재발견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지나치게 가공하고,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현실과 유리시키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검증이 안 된 역사서는 독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소장 역사학자들이 모인 ‘한국역사연구회’가 공들인 《조선시대사》 1, 2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전반에 걸쳐 새로운 역사 서술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대사 편찬위원회’의 첫 결과물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명의 역사학자가 조선의 시대상을 주제별로 엮은 점이다. 1권에서는 사림파, 훈구파, 서인, 동인 등을 중심으로 조선 정치사를 개관하는 한편 재정, 신분제도, 시장의 발달, 국제관계 등 조선 시대가 형성돼가는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2권에서는 농업을 기초로 한 경제체제 및 조선 시대 사상의 근간을 이룬 성리학 등을 소개하며 조선시대 생활문화의 특징도 놓치지 않고 살핀다.

 

검으면 희다 하고 희면 검다 하네

검거나 희거나 옳다 할 이 전혀 없다

차라리 귀 막고 눈 감아 듣지도 보지도 말리라.

 

조선 경종 때 김수장이 왕위 계승문제를 놓고 노론과 소론이 벌인 당쟁을 개탄하며 읊은 글이다. 조선 시대 정치사는 짧게 한 단어로 요약해서 말하면, ‘당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쟁은 정치의 중심과제가 되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고 때로는 피바람을 일으켰다.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세조는 기존 권력층을 견제하기 위해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나간 젊은 사림파를 정계로 끌어들였다. 이들은 훈구파와의 대립에서 승리함으로써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다. 선조 때 이르러 사림파는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권력을 놓고 다투기 시작했고 동인은 남인과 북인,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각각 나뉘어 치열한 당파 싸움을 벌였다.

 

흔히 조선의 역사를 당쟁으로 얼룩진 부패한 역사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식민주의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역사관이다. 식민사관은 정치적 전통을 왜곡시켜 당파 싸움의 폐단을 과장해 민족의 역량을 부정한다. 비록 정치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벌인 탓에 파벌이 형성되었지만, 공론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상호 견제가 이루어졌다. 붕당정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영조는 ‘환국’이라는 정치적 폐해를 극복하고자 탕평 정치를 내세웠다. 사실 붕당정치가 본래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상호 견제하는 장점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당쟁의 중심축인 노론과 소론 양대 세력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인재 기용으로 난국을 타개하려는 시도였다. 당시로써는 일종의 고육지계 인사였다. 왕권을 이어받은 정조 또한 선왕의 숙원을 계승하고자 탕평 정치를 폈다. 하지만 탕평 정치는 ‘미완의 개혁’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비판 정치가 사라지게 되자 붕당을 넘어 몇몇 가문이 정권을 쥐락펴락하는 세도정치로 발전되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의 시기는 조선왕조의 변혁기이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대외적으로는 조선과는 전통적 존화주의 관계인 명의 국력이 쇠약해졌고, 17세기 전반 만주에서 일어난 청에 중국의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국제정세의 변화는 탄력적 외교정책을 요구했지만, 조선은 명 중심의 구질서에 안주하는 쪽을 택했다. 국익을 먼저 챙기는 실리 외교를 외면하고 명분만 고집하던 조선은 전혀 대비태세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두 차례에 걸친 청의 침략을 받고 치욕의 항복을 하고 말았다. 동양적 질서에 안주하던 조선 사회는 이제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가공할 군사력으로 무장한 서구 열강의 도전을 받게 됐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며 서구 열강의 힘을 경험한 조선은 서양 여러 나라에 대한 경험을 일본에 전해주겠다고 나설 만큼 주변국 정세에 무지했다. 서양에 대비해 더욱 굳건한 쇄국정책을 천명하면서 조선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파악하고 변화를 읽는 일에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말았다.

 

조선 시대 정치사를 한 마디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붕당정치를 부정적인 당쟁으로만 볼 수 없다. 당쟁이 꼭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아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권력에 눈이 멀어 민심을 저버린 당쟁이다. 결국, 정치를 하는 사람의 문제다. 가치를 중심에 놓는 정파 간 경쟁이 되면 당파 간 대립이 정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명-청 교체기의 역사는 오늘날의 동아시아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되는 지금 상황과 유사하다. 지정학적 조건상 한국이 감당해야 할 국제정치적 상황이 과거나 현재나 유사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조선 시대 외교사에 지속적인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시대에 따라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냐는 사회적 요구가 변하기 때문이다. 날로 흐려져 가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  “그는 1650년 정계 진출과 낙향을 반복한 뒤 1958년 51세에 다시 조정에 나와 북벌 계획을 추친하고...” (1권 33쪽) → ‘1958년’을 ‘1658년’으로 고쳐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이슬람과 중동 문제의 모든 것
서정민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의 나라를 보면 이슬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특히 대구북부정류장 인근에 가면 방글라데시,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 온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유동 외국인만 해도 하루에 수백 명에 달한다. 염색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북부정류장에 들어선 식당 또는 식료품 가게를 많이 찾는다. 이곳이 이들의 주된 생활공간. 어려운 현실이지만 강한 유대감으로 대구의 한쪽에서 터전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정작 돈이 아니다.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이 더 크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슬람’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부정적 이미지다. '테러 집단'과 거의 유사한 뜻으로 이해한다.

 

이슬람이란 아랍어는 원래 ‘평화’의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이 알라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종교적 의미를 포함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나오는 화면은 늘 화약 냄새가 가득하고, 사람들의 비명이 넘친다. 우리는 화면에 비친 이슬람을 자주 보면서 저곳은 테러리스트가 판치는 아수라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 IS(이슬람 국가)의 위협과 공격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IS를 비롯한 테러 단체와 전면전에 나선 이후로 전 세계 곳곳에서 반 무슬림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손에 칼, 한 손에는 꾸란’, 이슬람의 폭력성을 말할 때 흔히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이슬람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13세기 기독교의 십자군이 중동 원정에서 이슬람군에 패배하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을 심어주기 위해 처음 한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왜곡된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지금껏 이슬람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현재의 중동 분쟁을 만든 이슬람과 적대적 이해국인 서구의 시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는 ‘이슬람=테러’라는 생각을 전 세계 사람들이 갖게 하였다.

 

이슬람주의의 요체는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 샤리아(이슬람법)로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것이다. 대표적 이슬람주의 단체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창시자 하산 알 반나는 서구의 가치들이 무슬림들에게 조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초기엔 온건한 사회운동을 펼쳤으나, 주요 이론가였던 사이드 쿠틉 등 많은 조직원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급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이드 쿠틉은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성전을 옹호한 과격 이슬람주의의 아버지다.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와 과격 이슬람주의, 두 개념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무슬림들을 모조리 과격한 사람으로 봐선 안 된다. 이슬람교는 무슬림의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규정하는 문화적, 종교적 제도를 의미하지만, 과격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IS는 자신들의 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해 쿠란의 일부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테러 행위를 위대한 ‘성전(聖戰, 지하드)’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성전을 원래 적에게 향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의미가 아니다. 알라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불신자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알라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의로운 전쟁이다. 또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자살은 금기사항이다. 무장 세력들이 무슬림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지하드를 선포하고 자살테러를 시키는데, 정치적 수단일 뿐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IS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 테러를 감행해 존재감을 확산시키고 수니파 과격세력을 결집한다. 그러므로 중동이 혼란에 빠진 원인을 그저 종파적 갈등으로만 보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종파 갈등 이면엔 정치적 목적과 이득을 위해 종파 간 대립을 조장한 집단이 있다. 서방국도 중파 갈등을 부추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미국과 러시아도 냉전 시대부터 중동과 아랍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 간 갈등을 이용했고,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 미국이 지원한 무장 세력 단체가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알 카에다였다. 이런 사실로 비춰볼 때, 수니와 시아의 반목은, 서구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 조장이 원인이며, 지금의 유혈충돌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과격 세력들이 행하는 테러를 ‘테러리즘미즈(Terrorism+ism)’와 ‘알 카에디즘(Al-Qaeda + ism)’의 대결 구도로 보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테러리즘미즈’는 미국이나 서방국이 중동의 테러를 ‘적의 소행’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뜻한다면(예를 들면, 이란과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인식), ‘알 카에디즘’은 IS처럼 자생적으로 세력을 확산하고, 테러를 꾸미는 무장단체를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아마도 이 두 단어는 저자가 직접 만들었을 것이다. 이슬람을 무조건 적대적으로 보는 편견을 표현하기 위해서 굳이 ‘테러리즘’에 ‘ism’이 더 붙는 단어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의미상 이런 단어는 성립할 수 없다. 학계에서 공인된 단어가 아니라 저자가 만든 것이라면 이 사실을 본문에 명시해줘야 한다. IS 관련 소식 이후로 이슬람 관련 서적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도 출판 열풍 속에 나온 신간이다. 분량이 제법 두꺼운 책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과격 이슬람주의 형성의 역사에서 오늘날 IS에 관한 최신 정보까지 소개하고 있다. 다만, 중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아랍인들은 이슬람 이전의 시대를 자힐리야(Jahiliyya), 즉 무지의 시대라고 말한다. 알라에게 복종하지 않는 중동의 상황은 자힐리야다.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이용된 종파 분쟁이 이제는 목적과 이유는 사라진 채 오로지 반목과 갈등, 대립을 위한 존재로 남아 있다. 그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이슬람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한 손에 폭탄을, 한 손에는 총’이 더 어울린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수니와 시아파는 지금 자신들이 왜 서로를 죽이려 하는 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들이 믿는 신은 잘 알고 있을 텐데.

 

 

 

 

“결국 당시 수상이었던 마흐무드 알 누크라시 파샤가 무슬림형제단 조직원에 의해 됐다” (86쪽) → ‘살해’가 빠진 채 인쇄되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서치 2015-07-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팔레스타인 원혜진 저..책이 아주 쉽고 명확하게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서구의 프레임으로 중동의 문제를 인식해왔다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편견을 깨려면 한발.. 앞으로 나가고 손을 내미는.. 일들을 계속해나가야겠어요. 읽고 싶은 책입니다 리뷰 감사해요

cyrus 2015-07-26 15:46   좋아요 0 | URL
중동 문제에 관한 책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 사코의 만화 <팔레스타인>과 같이 읽어보고 싶군요.

csp 2015-07-2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읽은 your fatwa does not apply here 이란 책이 생각나는군요. 알제리 출신의 미국 법학교수인 저자가 수년간 이슬람 국가들을 오고가며 이슬람 근본주의와 싸우는 무슬림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책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슬림 근본주의의 대두와 연이은 테러행위를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문명 내부의 충돌이라고 설명했는데 눈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cyrus 님이 소개하신 이 책의 `테러리즘미즈` vs. `알 케에디즘` 프레임과는 전혀 대치되네요. (둘 다 좀 괴상한 조어라 느껴지는군요-_-;;)반-무슬림 어젠다를 생산해내는 미국 우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여성할례나 부르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리버럴한 서구 인텔리들에 대한 쓴소리도 가득 담겨져 있었는데 요즘과 같은 시대에 여러가지로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국내 저자가 쓴 양질의 이슬람 관련 서적이 부족하다고 늘 느끼는데 소개하신 책을 언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cyrus 2015-07-26 15:50   좋아요 0 | URL
슈퍼맨님이 읽으셨던 책은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거지요? 혹시 책의 저자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일단 저자의 이름이라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저는 처음에 테러리즘미즈와 알 카에디즘이 학계에 공인된 용어인 줄 알았어요. 사실 이 책을 중동에 모르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책입니다. 아마도 슈퍼맨님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csp 2015-07-26 19:47   좋아요 1 | URL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것 같지 않습니다. 저자 이름은 Karima Bennoune 고 테드에서 강연도 했어요. 관심이 가시면 한번 영상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터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한다. 터키는 유럽에 속하지만 터키어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어족으로 어순이 같다. 터키 군인들이 6·25전쟁 때 참전했기 때문에 터키에서는 한국을 아주 친밀한 형제의 나라로 여기고 있다. 식사 때 가장 웃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는 것, 나이 많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또한 같다. 그런데 한국을 친밀하게 여기는 터키에서 최근 한국인 여행객들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중국의 위구르 족 무슬림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한국인 관광객들을 중국인으로 오인하여 벌어진 일이다. 위그르 족은 중국 서북부 신장위구르 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다. 터키와 신장위구르 자치주는 지역상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터키는 왜 중국에 반감을 품게 된 것일까?

 

터키는 무슬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인 데다 위구르족 공동체와 언어적, 종교적 연계를 공유하고 있다. 터키 내 민족주의자들은 중국 측이 위구르족들의 라마단 준수를 금지했다는 터키 언론 보도가 나오자 항의 시위를 벌였다.  중국 측에서는 무슬림들이 이슬람교의 가치를 따르는 것보다는 ‘중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갖춰야한다고 맞대응했다. 아직 한국인의 인명 피해는 나오지 않았지만, 주요 관광 지역 곳곳에서 시위가 잇따르면서 터키를 찾는 동양인 관광객들의 안전이 우려된다. 이슬람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터키에서 일어나는 반중 시위의 원인이 중국 소수 민족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터키의 반중 시위를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하게 된다.

 

이제 곧 100세를 코앞에 둔 중동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자서전 《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터키의 반중 시위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소식으로 봤을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이슬람교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고, 위구르 족을 둘러싼 터키와 중국 간의 대립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를 민족의 정체성이나 애국심보다 더 우위에 둔다. 무슬림들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낯선 개념이다. 이러한 무슬림들의 인식은 반중 감정을 가진 터키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아예 위구르족을 강제로 중국 국민으로 포섭하려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터키 무슬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비무슬림(중국)이 무슬림(위구르족)을 지배하는 상황은 이슬람 율법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비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터키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과격한 시위대가 형성되었다.

 

《100년의 기록》은 학자로서의 업적과 그동안 살아온 과정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치열하게 펼쳐진 중동의 역사까지 소개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번역된 루이스의 책은 중동의 역사를 공부하는 독자들이 많이 찾는 역사서로 알려졌다. 중동 역사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루이스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가 《100년의 기록》을 먼저 읽는다면 중동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과 유대인 및 중동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루이스는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참여한 여러 가지 중동문제들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이에 대한 비평을 곁들였다. 반면 루이스의 책을 좀 읽어본 독자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비판하는 대목에 흥미를 더 느낄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책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 서양의 동양학자(orientalist)들이 동양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학계를 뒤흔들었던 오리엔탈리즘 논쟁에 루이스도 비껴갈 수 없었다. 그러자 루이스는 《100년의 기록》에서 자신과 관련된 오명에 반박한다. 사이드를 '중동의 역사뿐만 아니라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지한 학자라고 비판한다.

 

이슬람 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거의 중동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만큼 우리 머릿속에는 '이슬람=중동'이라는 등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 세계를 가볍게 보는 인식이 만들어 낸 고정관념일 뿐이다. 유럽에서도 이슬람 세력이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루이스조차도 최근 무슬림 공동체가 늘어나는 유럽의 미래를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이슬람화 유럽 아니면 유럽화한 이슬람 세계가 나올 수 있다. 현재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옛 영화를 되살리려고 한다.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이하 IS)’가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살상행위 역시 '비무슬림은 적'이라는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디어와 학계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일삼는 과격한 무슬림들을 ‘이슬람 원리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루이스는 이 명칭이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원리주의'는 원래 성서를 절대적으로 믿는 일부 개신교를 가리켰으나 1980년대부터 이슬람 부흥 현상이 일어나면서 급진적 이슬람 세력들을 '원리주의자'로 통칭하게 되었다. 이슬람 과격파와 미국 개신교 원리주의자들 사이에는 어떠한 유사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리주의’는 이슬람 과격파에만 적용되었다.

 

루이스를 미국의 중동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미적 전문가로 보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서구의 개입이 중동의 혼란을 더 악화시켰으며 중동 문제나 중동 역사는 중동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들어가는 말’에 루이스는 올바른 역사가의 책무를 강조한다.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과거의 진실을 정확히 밝혀내어 파악한 그대로 설명하는 것. ‘5장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는 역사학도라면 꼭 읽어봐야 할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중동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역사학도가 많았으면 좋겠다. 루이스의 회고를 보면서 민감한 중동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대학교마다 중동 관련 학과 및 연구소를 설립하고, 각국의 전문가를 초청하고 조언을 들으려는 정부기관의 태도가 얼마나 부럽던지. 한국인이 중동에서 피살당하면 해당 국가를 관광 금지 국가로 규정만 하고 일단락 짓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비교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된 중동을 전 세계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겁 먹은 어린아이처럼 혼자 저 멀리 떨어져서 힐끗 쳐다보기만 한다.

 

 

 

 

※ 《100년의 기록》은 훌륭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이드를 비판하는 루이스의 입장에 판단 보류하는 차원에서 별 네 개만 줬다. 이 책이 별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평가하려면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중동의 역사를 다룬 루이스의 책을 같이 참고해야 한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5-07-0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키 이슬람과 위그르족 사이에 그런 관계가 있었네요. 오늘도 감사하며 배웁니다. ^^

cyrus 2015-07-10 20:57   좋아요 0 | URL
저도 기본적인 사실만 알게 되었어요. 관련된 정보를 더 찾아보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

에이바 2015-07-09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났던 위구르족들은 진짜 신비롭고 아름답게 생겼어요. 터키랑 중국 여권 둘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최근 몇 년 간 자치구 독립운동으로 유혈상황이 빚어졌었죠..

cyrus 2015-07-10 20:57   좋아요 0 | URL
어제 위구르족이 궁금해서 처음으로 검색을 해봤는데 정말 예쁜 위그르족 여인 사진을 봤어요.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7-1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지 않은 역사들이 많이 있죠~

cyrus 2015-07-10 20:58   좋아요 0 | URL
네, 알려주지 않은 역사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죠.

라스콜린 2015-07-1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 좋은 책이군요~! 읽어봐야겠네요 .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cyrus 2015-07-10 20: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중동에 관심이 있다면, 책을 읽을 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

stella.K 2015-07-1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봐야겠네.
작년부터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 모임에 나가고 있거든. 지역별로 모이고 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중동 지역 모임을 나가게 됐지.
그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나가면서 관심을 갖게 되더군.
그런데 뭐 중동에 대해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김경집 교수는 중동이라고 부르지 말고 서아시아라고 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 이유에 대해 뭐라고 설명을 했다만 내가 기억할리는 없고
암튼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에서 그랬어.ㅋㅋ

cyrus 2015-07-10 21:00   좋아요 0 | URL
중동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보니까 잘못된 정보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를 반쯤 정도 읽다가 말았는데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