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헐리벌리 저택의 신들린 오르간 연주자 :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7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7
로사 멀홀랜드 / 올푸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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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전자책 출판사 올푸리의 출판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이 출판사는 빅토리아 호러 컬렉션(Victorian Horror Collection)이라는 이름으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발표된 단편 환상소설(공포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 올푸리 출판사가 펴낸 전자책은 총 6권이다. 6권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샬롯 리델 열린 문(20191)

* 아서 맥킨 오비의 빛(20194)

*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 귀퉁이 그림자(20195)

* 브람 스토커 판사의 집(20197)

* 로사 멀홀랜드 헐리벌리 저택의 신들린 오르간 연주자(20198)

* 허버트 조지 웰스 붉은 방(20198)

 

 

이 중에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작품은 4(열린 문, 오비의 빛, 귀퉁이 그림자, 헐리벌리 저택의 신들린 오르간 연주자)이다. 지난달에는 두 편의 작품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그중에서 내가 읽은 작품은 헐리벌리 저택의 신들린 오르간 연주자(The Haunted Organist of Hurly Burly, 줄여서 오르간 연주자’).

 

로사 멀홀랜드(Rosa Mulholland)1841년 아일랜드의 명문가 출신 차녀로 태어나 1921년 더블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부터 글을 써서 각종 문예지에 투고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디킨스의 독려를 받은 멀홀랜드는 작가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은 디킨스가 발행하는 문예지에 실리면서 드디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르간 연주자1891년에 발표되었다. 헐리벌리 마을에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에 기이한 사연을 간직한 오르간이 있다. 그 오르간의 주인인 루이스 헐리(Lewis Hurly)는 고인이다. 오르간은 루이스의 늙은 부모가 관리하고 있다. 아니, 아들이 애지중지 아낀 오르간을 방에 고이 보관해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오르간을 방치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게 적절하다. 왜냐하면 오르간은 루이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저주의 악기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리자(Lisa)라는 여성이 헐리 벌리 저택에 찾아온다. 그녀는 노부부에게 자신을 루이스의 약혼녀라고 밝힌다. 노부부는 루이스는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지만, 리자는 노부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리자는 자신과 약혼한 루이스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루이스의 부탁을 받고 저택에 왔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한 루이스의 부탁저택에 있는 오르간을 쉬지 않고 온종일 연주하는 것이다. 노부부는 리자를 설득하기 위해 루이스의 약혼자였던 마거릿 캘더우드(Margret Calderwood)를 만나보라고 한다. 캘더우드는 망상에 빠진 리자를 위해 루이스의 과거를 들려준다. 루이스는 악마를 숭배하는 일에 빠져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행패를 부리고 다닌다. 루이스와 그 일행은 자신들을 악마 클럽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고인을 모욕하는 일만 골라서 저지른다. 하루는 루이스 일행은 장례식장에서 난동을 부린다. 루이스는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불경한 노래를 크게 부른다. 분노한 고인의 아버지는 루이스와 오르간을 저주한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루이스는 그 문제의 오르간을 헐리벌리 저택으로 가져왔고, 방문을 잠가 놓고 매일 오르간을 연주한다. 미친 듯이 오르간을 연주하는 루이스의 모습을 본 마거릿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그가 오르간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마거릿은 리자에게 악마의 계략에 휘말리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리자는 루이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저주의 손아귀에 떨어진 지 오래다. 오르간은 지속적으로 리자를 괴롭힌다.

 

오르간 연주자는 서양 단편 공포소설 선집에 수록될만한 가치 있는 작품이다. 왜 이 소설이 그동안 국내에 한 번도 번역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멀홀랜드는 아일랜드 민담을 소재로 한 소설과 강인한 여성상을 드러내는 소설을 주로 썼다고 한다. 공포 문학과 페미니즘 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두 장르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멀홀랜드의 소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평가받을 만한 작품이 있을지도 모른다.

 

 

 

 

Trivia

 

 

전자책은 816일에 발행되었고, 826일에 본문의 오자가 수정되면서 업데이트되었다. 그런데 업데이트가 되었는데도 안 고쳐진 오자가 있다.

 

 

 

 

 

18쪽에 마거릿 캐덜우드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시리즈 소개내용에 있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발표 연도가 ‘1817으로 잘못 적혀 있다. 프랑켄슈타인1818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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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밀라 영국인이 사랑한 단편선 2
조셉 토마스 셰리던 르 파뉴 지음, 최윤영 옮김 / 초록달(오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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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vampire) 하면 야회복과 검은 망토를 걸친 남성을 떠올리기 쉽다. 이 익숙한 남성 뱀파이어의 모습은 브람 스토커(Bram Stoker)《드라큘라(Dracula)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탄생하였다. 남성 뱀파이어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미국 영화의 중심지인 할리우드(Hollywood)다. 1931년에 개봉한 영화 <드라큘라>에서 뒤로 빗어 넘긴 머리와 긴 송곳니, 검은 망토의 남성 뱀파이어 이미지가 등장했다.

 

사실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오기 전에 이미 여성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괴테(Goethe)의 시 『코린트의 신부』고티에(Gautier)의 단편소설 『죽은 연인』이다. 두 작품에서 보여준 여성 뱀파이어는 남성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그를 유혹하여 피를 빠는 언데드(undead: 살아있는 시체)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 뱀파이어 중 가장 유명한 존재는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 레 파누(Le Fanu)가 창조한 ‘카르밀라(Carmilla)다. 『카르밀라』는 1872년에 발표된 작품집 《유리잔 속에서 어둡게(In a Glass Darkly)에 포함된 중편소설이다. 《유리잔 속에서 어둡게》는 레 파누가 죽기 일 년 전에 나온 작품이다. 이 작품에 『카르밀라』를 포함한 총 다섯 편의 중 · 단편이 수록되었는데, 한동안 잊힌 작가를 재평가하게 만든 ‘스완 송(Swan Song: 최후의 걸작)이다. 5편의 이야기는 마틴 헤세리우스 박사(Dr. Martin Hesselius)가 기록한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다룬다. 《유리잔 속에서 어둡게》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그린 티(Green Tea)

2. 『친구들(The Familiar)

3. 『하보틀 재판관(Mr. Justice Harbottle)[주1]

4. 『드래건 볼란트의 방(The Room in the Dragon[주2] Volant)

5. 『카르밀라』

 

 

2016년에 초록달 출판사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들어진 《카르밀라》는 『카르밀라』와 『그린 티』를 번역한 것이다. 『그린 티』는 예전에 ‘녹차’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었으나(《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 그 이야기가 수록된 책이 절판되는 바람에 한동안 보기 힘든 작품이었다.

 

『카르밀라』는 18~19세기 유럽에 유행한 고딕 소설(Gothic novel)의 기본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이 이야기 속의 화자(‘이야기 밖의 화자’는 이름과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로라가 경험한 불가사의한 사건을 기록한 헤세리우스 박사의 연구 자료를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이자 주인공인 로라(Laura)가 사는 곳은 외진 지역에 있는 으리으리한 성(schloss)이다. 이 성의 형태를 묘사한 번역문에서는 ‘으리으리한 저택(11쪽)이라고 되어 있는데, 슐로스는 ‘성(城)을 뜻하는 독일어다.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고성이 고딕 소설의 단골 배경인 만큼 ‘저택’보다는 ‘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로라 가족이 사는 성은 오스트리아의 남부 지방인 스티리아(Styria)에 있다. 성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윈 로라는 거의 성 안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아무래도 인적이 드문 곳에 성이 있다 보니 성을 왕래하는 또래 친구들이 적을 수밖에 없다.

 

로라는 어린 시절에 악몽을 겪은 적이 있다. 밤이 되면 어떤 여인이 로라의 방에 찾아와 로라의 목에 상처를 냈다. 너무나도 생생했던 일이라 로라는 자신의 목에 상처를 낸 미지의 존재가 실제로 목격했다고 주장하지만, 가사 도우미는 그녀의 말을 꿈으로 생각할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악몽 같은 날을 겪은 지 12년이 지난 후에 로라는 우연히 사륜마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목격한다. 그 마차에 중년 부인과 소녀가 타고 있었는데, 부인은 로라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딸을 당분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부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로라의 아버지 덕분에 소녀는 로라의 성에 거주하게 되는데, 그 소녀가 바로 카르밀라다.

 

로라는 카르밀라의 외모가 12년 전 자신의 목에 상처를 낸 여인과 닮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러자 카르밀라도 12년 전에 꾼 꿈에서 로라와 비슷한 여인을 봤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신비한 공통점을 매개로 친하게 지내게 된다. 하지만 카르밀라는 로라의 유일한 또래 친구이지만, 자신의 과거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카르밀라는 로라와 단 둘이 있을 때마다 마치 사랑스러운 애인을 대하는 것처럼 로라에게 다가가 친밀감을 드러낸다. 이때 카르밀라는 로라를 ‘내 사랑(Dearest: ‘간절한’, ‘여보’라는 뜻이 있다)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카르밀라는 당황하는 내 모습에 흡족해하며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고, 뜨거운 입술로 내 뺨 이곳저곳에 키스를 퍼부으며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넌 내 거야, 내 것이 되어야만 해. 너와 나는 영원히 하나야(You are mine, you shall be mine, you and I are one for ever).

 

(『카르밀라』 중에서, 54쪽)

 

 

 

두 여성의 에로틱한 관계는 레즈비언(lesbian)의 애정 관계와 유사하다. 그래서 카르밀라를 ‘여성 뱀파이어’가 아닌 ‘레즈비언 뱀파이어’로 볼 수 있다.[주3] 레 파누가 로라와 카르밀라의 관계를 에로틱하게 묘사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카르밀라』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중반기에 나온 소설이다. 그 시대에 산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은 도덕적 중심에 우뚝 서려는 인간상을 지향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인간상은 속물적이지 않으면서도 도덕적으로 결백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이다. 중산층과 귀족계층의 도덕적인 영국 신사들은 도덕적 인간상이 되고자 노력했고, 여성은 도덕적 인간상의 축에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자답지 못한 행동’, 즉 ‘여성스러움’은 남성성을 강조한 도덕적 인간상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 특히 동성애는 도덕적 타락의 극치로 여겼다.

 

당시 인기 절정에 올랐던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면서(와일드의 동성 연인의 아버지가 와일드의 동성애를 공개했다) 한순간에 몰락해버린 사건은 동성애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부정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동성애자 탄압 사례로 남아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볼 때 보수적인 영국 독자들은 로라의 카르밀라의 레즈비언 관계를 도덕적 공동체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징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독자들은 소설에 묘사된 동성애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녀들의 동성애 관계를 무서워하면서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해서 보게 된다. 독자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카르밀라를 ‘도덕성이 오염된(타락한) 괴물’로 규정하면서도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이야기 곳곳에 나오는 에로틱한 묘사는 남성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레 파누가 종이 위에 설치한 장치이다. 로라와 카르밀라는 서로를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녀들의 사랑을 치료받아야 할 ‘병든 열정’으로 치부했다.

 

『그린 티』는 지나치게 학문 연구에 몰두한 인간의 내면이 섬뜩한 미지의 힘에 점점 압도당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제닝스(Jennings) 신부는 글을 쓰다가 정신이 지치면 녹차를 자주 마셨다. 녹차에 중독된 이후로 신부는 원숭이를 닮은 악마를 자주 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제닝스 앞에 나타나는 악마가 보이지 않는다. 악마는 신부의 눈앞에 계속 나타나고, 그 악마가 점점 나타날수록 신부는 괴로움을 호소한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독자들은 『카르밀라』보다 『그린 티』를 더 무서워했을 것이다. 『그린 티』가 영국 독자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이유는 차(茶)를 즐겨 마시는 영국인의 평범한 일상이 무서운 사건이 되고, 그 불가사의한 사건을 분석할 수 있는 이성조차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린 티』에 신부가 마시는 녹차는 현실 세계에 있으면서도 현실 세계에서 마실 수 없는 녹차이다. 레 파누는 이 녹차 하나로 사람들이 익숙하게 생각하던 현실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독자는 녹차를 즐겨 마실 수 있는 일상이 사라진 세상을 대면할 때 긴장감과 섬뜩함을 느낀다. 『그린 티』는 레 파누가 남긴 소설 중에 걸작으로 손꼽힐 만하다.

 

 

 

 

 

[주1] 『하보틀 재판관』에 관한 내용은 필자의 글을 참고할 것.

[GBLA #3: 레 파누] (2019년 8월 20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1044572

 

 

[주2] ‘Dragon’은 상상의 동물인 용(龍)과 ‘거친 여자’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소설 제목에 있는 ‘Dragon’은 후자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주3] 필자가 말하는 ‘여성 뱀파이어’와 ‘레즈비언 뱀파이어’의 의미는 다르다. 그러니까 레즈비언 뱀파이어는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뱀파이어다.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모니크 위티그(Monique Wittig)의 레즈비언 여성주의 이론을 근거를 가지고 카르밀라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따로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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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2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즈비언 뱀파이어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뱀파이어라는 말씀은 레즈비언이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정체성 차원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원에서도요??

주3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얼른 따로 글로 풀어주시기를 기다려봅니다....

cyrus 2019-08-22 15:37   좋아요 0 | URL
모니크 위티그는 보부아르가 말한 유명한 명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를 재해석하면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여성은 이성애 여성이 아니라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위티그는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합니다.

위티그가 거부하는 ‘여성’이란 이성애 중심 사회에 있는 생물학적 여성을 뜻해요. 위티그는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방식이 이성애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해석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위티그는 여성 내부의 이성애 중심주의가 레즈비언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고 지적했고, 레즈비언이야말로 남성 중심적 권력과 이성애 중심주의 모두를 거부할 수 있는 주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명제가 바로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입니다. 위티그가 강조하는 레즈비언은 남녀 성별 범주를 넘어서는 독립적인 주체입니다.

카르밀라를 ‘여성 뱀파이어’라고 보는 해석이 많았는데요, 저는 이 해석이 카르밀라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여성 뱀파이어’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뱀파이어라는 정체성을 부각하거든요. 결국 여성 뱀파이어는 남성을 유혹하는 이성애적 존재가 돼 버려요. 그렇지만 카르밀라는 이성애적 존재가 아니죠. 그래서 저는 위티그의 이론을 가지고 와서 카르밀라를 ‘이성애 중심 사회를 전복하는 레즈비언 뱀파이어’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레즈비언을 특별한 주체로 내세우는 위티그의 주장도 비판받고 있습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위티그가 레즈비언을 이상화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상, 제가 쓰려는 글을 요약해봤습니다. ^^

syo 2019-08-22 16:0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개념이 품고 있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그 개념을 거부하고, 그 거부를 선언하는 언술로 ˝레즈비언은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는 거죠??

그럼 다음 글에서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알 수 있겠군요. 화이팅 ㅎㅎㅎㅎ

cyrus 2019-08-22 16:2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에 위티그의 이론을 설명한 내용이 나와요. ^^
 

 

 

아일랜드는 영국 옆에 붙은 섬나라지만, 걸출한 작가들이 태어나고 자란 세계문학의 보고이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브람 스토커(Bram Stoker),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등은 아일랜드 출신이다. 예이츠와 쇼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앞에 언급한 작가들보다 인지도가 낮지만, 시인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는 199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 말 아일랜드에서는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문화 운동을 통해 정신적인 독립을 이루려는 노력이 병행되어 전개되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문예 부흥 운동(The Gaelic Revival Movement)이 있었다. 문예 부흥 운동을 주도한 아일랜드의 문화예술인들은 잊힌 켈트인(Celts)의 고대 신화와 게일어(Gaelic)를 복원하고, 상실된 민족 주체성을 고양했다. 이러한 아일랜드의 문예 부흥 운동은 일제 식민 통치 시절의 우리 문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일랜드에는 요정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나오는 구전 설화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일랜드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각종 전설과 민담은 아일랜드 특유의 문학을 활짝 꽃피게 만든 자양분이 됐다. 영국과 아일랜드 출신의 환상소설 작가들은 어린 시절부터 들은 구전 설화를 자양분 삼아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갔다. 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의 환상 문학 계보를 되짚어 볼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가는 《드라큘라》를 쓴 브람 스토커지만, 스토커 이전에 등장한 ‘이 작가’를 절대로 빠질 수 없다. 그는 바로 조지프 토마스 셰리든 레 파누(Joseph Thomas Sheridan Le Fanu)다.[주]

 

 

 

 

 

 

 

나는 ‘레 파누’라고 쓰고 있지만, 정확한 영문 이름표기라고 할 수 없다. 현재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레 퍼뉴’ 또는 ‘러 파누’라고 쓴다. 그러나 ‘르 파뉴’, ‘르파누’, ‘레퍼뉴’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 ‘Le’와 ‘Fanu’를 붙여 쓰는 경우가 있는데, 정확하게 표기하려면 띄어 써야 한다. 《주석 달린 셜록 홈즈 4》(현대문학)에서는 ‘러패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더 골치 아픈 건 미들 네임(middle name)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다. 나는 ‘셰리든’이라고 썼지만, 또 어떤 사람은 ‘셰리던’, ‘셰리단’이라고 쓴다. 한글로 표기된 이름이 다양한 외국 작가가 또 있을까? 아무튼 나는 ‘레 파누’라고 쓰겠다.

 

레 파누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태어난 작가이다. 그는 아일랜드의 구전 설화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다듬어서 환상 소설과 공포 소설을 주로 썼다. 그래서 레 파누의 소설에는 꼭 한 번은 아일랜드의 미신이라든가 구전 설화의 일부 내용이 언급된다. 소설은 이야기 밖의 화자가 아는 사람에게서 들은 신기하고도 으스스한 경험담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레 파누의 짧은 환상 소설과 공포 소설을 읽으면 한 편의 구전 설화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파누는 실재와 환상이 하나로 포개진 세계를 그려낸 다음, 그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한다.

 

 

 

 

 

 

 

 

 

 

 

 

 

 

 

 

 

 

 

* 이탈로 칼비노 엮음 《세계의 환상 소설》 (민음사, 2010)

* [품절] 프랑수아 레이몽, 다니엘 콩페르 《환상문학의 거장들》 (자음과모음, 2001)

 

 

 

 

환상 소설을 직접 선별하고 편집한 이탈리아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는 레 파누를 ‘최초의 유령 이야기 집필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과거의 환상 소설은 소수의 작가만 쓰는 가벼운 글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예술을 지향한 고전주의 미학이 지배한 주류 문단은 환상 소설을 저급한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유령을 소재로 한 고딕 소설(Gothic novel)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환상에 흥미를 느낀 독자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줬다. 레 파누가 등장하면서 환상 소설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고 ‘전문화’하기 시작된다. 19세기 영국에 유령 이야기를 안 쓴 작가를 찾기가 어렵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도 유령 이야기를 썼다. 《환상문학의 거장들》(자음과모음)에서 레 파누는 ‘환상문학의 위대한 고전 작가’로 소개된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 [품절] 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06)

 

 

 

 

 

 

 

 

 

* [절판, No Image] 르 파뉴 《흡혈귀 카르밀라》 (효리원, 1996)

* [절판, No Image] 르 파뉴 《사랑을 꿈꾸는 흡혈귀 카밀라》 (지경사, 1993)

 

 

 

 

레 파누의 대표작인 《카르밀라(Carmilla)여성 뱀파이어(vampire)가 등장하는 중편 소설로,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큰 영향을 준 걸작이다. 《카르밀라》는 영화로 나올 정도로 《드라큘라》만큼 파급력이 있는 뱀파이어 문학의 고전이다. 90년대에 ‘사랑을 꿈꾸는 카밀라’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나온 적이 있다. 어린이 독자의 수준에 맞게 원작을 순화한 것이다. 사실은 원작에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가 부각된 묘사가 있다.

 

국내에 레 파누의 단편소설 몇 편이 번역되어 나왔다. 여기서부터 그의 작품들을 발표 연도순으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H: 작품의 역사적 중요성, Q: 작품의 우수성, R: 작품 번역본의 희소가치)

 

 

 

 

 

 

유령과 접골사

The Ghost and the Bonesetter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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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파누가 처음으로 쓴 소설로 알려져 있다. 접골사는 골절되거나 탈골된 뼈를 직접 손으로 교정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일랜드의 지방에서 근문하는 주교 사제 프랜시스 퍼셀(Francis Purcell)은 독특한 취미가 있다. 그의 취미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마을 주민들이 경험한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퍼셀은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 집행인이 퍼셀이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게 되고, 이 소설에서 유언 집행인은 퍼셀이 기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이야기 밖의 화자’로 등장한다. ‘이야기 속 화자’는 접골사 테리 닐(Terry Neil)의 아들이다.

 

테리 닐은 영주의 땅에서 일하는 소작인이다. 영주가 외출하면서 며칠간 성을 비우게 되면, 영주의 소작인들이 성을 지켜야 한다. 테리 닐도 어쩔 수 없이 영주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성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다. 성에 과거 영주의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있는데, 밤이 되면 이 늙은 지주의 유령이 액자에 나와 성 안을 돌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술을 마시고 물건을 흩뜨려 놓는다고 한다. 테리 닐은 뜬눈으로 성을 지키다가 늙은 지주의 유령을 만나게 되고 대화까지 하게 된다. 늙은 지주의 유령은 생전에 다친 오른쪽 다리를 가리키면서 부러진 뼈를 제대로 맞춰달라고 부탁한다. ‘재미있는 반전’이 있는 이야기다.

 

 

 

 

 

 

 

 

 

 

 

 

 

 

 

 

 

 

* [국내 미번역] 레 파누 《The Purcell Papers》 (Arkham House Publishers[주2], 1975)

 

 

 

『유령과 접골사』에 영주의 집사가 등장하는데, 이름은 로렌스 코너(Lawrence Connor)다. 그런데 번역문에는 ‘로렌스 오코너’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다. 『유령과 접골사』는 레 파누가 죽은 이후에 나온 《The Purcell Papers》(1880)에 수록되었다. 세 권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작중인물인 퍼셀이 수집하고 기록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단편집에 수록된 모든 글은 레 파누가 1838년부터 1840년까지 <Dublin University Magazine>라는 잡지에 발표한 것이다. 레 파누는 <Dublin University Magazine>의 편집자로 활동했다.

 

 

 

 

 

 

 

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

An Account of Some Strange Disturbances in Aungier Street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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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ook] 르파뉴 《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 (올푸리, 2018)

* [e-Book] 브람 스토커 《판사의 집》 (올푸리, 2019)

 

 

 

 

이 단편소설도 <Dublin University Magazine>에 실렸다. 에인저(Aungier)는 실제로 더블린에 있는 거리다. 화자와 그의 사촌 톰 러들로(Tom Ludlow)는 에인저 거리에 있는 집에 살게 된다. 그런데 그 집은 17세기에 교수형을 집행했던 판사(사람들은 그에게 ‘교수형에 미친 판사’라는 별명을 붙여졌다)가 살았던 곳이다. 그들은 그 집에서 악몽과 같은 무서운 일을 겪는다. 그들이 본 것은 교수형에 미친 판사의 유령이었다. 이 이야기는 브람 스토커의 단편 『판사의 집(The Judge’s House)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다. 그리고 1872년에 레 파누는 『에인저 거리』를 새롭게 다듬어 『하틀보 재판관(Mr. Justice Harbottle)라는 글을 발표했다.

 

전자책으로 만들어진 『에인저 거리』 번역본에 오류가 있다. 『에인저 거리』의 발표연도가 1851년’으로 잘못 적혀 있다. ‘하틀보 재판관’의 원제가 ‘Mr. Judge Harbottle’로 되어 있는데 ‘Judge’가 아니라 ‘Justice’이다.

 

 

 

 

 

 

 

녹색 눈을 가진 고양이의 원한

녹색 눈의 흰 고양이

흰 고양이

The White Cat of Drumgunniol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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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ook] 르파뉴 《흰 고양이》 (위즈덤커넥트, 2019)

 

 

 

 

 

 

 

 

* [절판, No Image] 레파뉴 《녹색 눈의 흰 고양이》 (뱅크북, 1996)

* [절판, No Image] 레파뉴 《녹색 눈을 가진 고양이의 원한》 (동림, 1993)

 

 

 

드럼거니얼(Drumgunniol)은 가상의 지명이다. 드럼거니얼에 사는 도너번(Donovan) 가족은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는 저주에 시달린다. 녹색 눈의 흰 고양이는 불길한 예언을 암시하고, 한 가족을 파멸시키는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고양이는 불길함의 상징으로 이야기 속에 많이 등장해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검은 고양이》와 비교하기 위해 언급되기도 한다. 레 파누는 고양이와 유령이 동시에 나타나는 장면을 《카르밀라》에 재현했다.

 

 

 

 

 

 

악마 디컨

Dickon the Devil (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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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이 소설은 전설적인 영국의 록 그룹 (Queen)의 멤버인 존 디컨(John Deacon)과 관련이 없다. 이름의 알파벳 철자가 다르다. ‘악마 디컨’은 이십 년 동안 널따란 영지에서 노숙하는 사나이다. 그는 백치지만, 영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악마다, 악마를 보았다!”라고 외치기만 한다. 화자가 디컨이 완전히 미쳐버리게 된 이유를 알려주는 짤막한 이야기다.

 

 

 

 

 

 

 

 

 

 

 

 

 

 

 

 

 

 

 

* [절판] 레파뉴 《유령의 집》 (동림, 2001)

* [절판, No Image] 레파뉴 《낡은 저택의 유령》 (동림, 1993)

 

 

 

90년대에 ‘동림’이라는 이름의 출판사가 ‘세계명작괴기시리즈’를 펴낸 적이 있다. 책 한 권에 서구의 단편 공포 소설과 환상소설을 세 편 이상 수록되었다. 어린이 독자를 겨냥해서 만든 책이라서 그런지 책의 번역 및 편집 상태는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좋지 못하다. 2000년대 초반에 동림 출판사는 ‘세계걸작스릴러’ 시리즈를 펴냈는데, 표제와 표지만 달라졌을 뿐 ‘세계명작괴기시리즈’의 구성과 똑같다. 그러므로 《낡은 저택의 유령》과 《유령의 집》은 같다고 보면 된다.

 

 

 

 

 

 

 

 

 

 

 

 

 

 

 

 

 

 

* 앰브로즈 비어스 《아울크리트 다리에서 생긴 일》 (혜윰, 2017)

 

 

 

이 책에는 레 파누의 작품으로 알려진 표제작(‘낡은 저택의 유령’, ‘유령의 집’) 이외에 ‘악마가 된 사나이’, ‘오른발 가운뎃발가락’이라는 단편소설도 수록되었다. 악마가 된 사나이’를 쓴 작가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오른발 가운뎃발가락’은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가 썼다.

 

 

 

 

 

[주1] 물론, 레 파누 이전에 활동한 고딕 문학 작가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말한 환상 문학 계보는 온전한 의미의 환상 문학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근대부터 시작한다.

 

 

[주2]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소설을 포함한 공포 소설 및 환상 소설들을 출판한 곳이다. ‘아캄/아컴(Arkham)’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자주 나오는 가상의 도시다. 이 출판사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과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와 관련된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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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22 12:03   좋아요 0 | URL
아일랜드에 극심한 기근이 일어나서 아일랜드 인들이 많이 죽고, 대부분은 미국이나 다른 유럽으로 이주했어요. 미국으로 이주해서 성공한 아일랜드 출신 사람이 많아요. 케네디 대통령의 조상이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아일랜드 인이에요. 살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이주해온 아일랜드 인들은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많이 받았어요.

2019-08-22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22 12:05   좋아요 0 | URL
존 밀링턴 싱. 유명한 극작가네요. 제가 희곡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아서 싱이 이런 대단한 극작가인 줄 몰랐네요. ^^;;
 

 

 

 

공포문학은 독자 성향에 따라 작품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탐구하는 현실 밀착형 공포를 선호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미지의 존재나 귀신 같은 초자연적 공포만을 찾는 독자도 있다.

 

 

 

 

 

 

 

 

 

 

 

 

 

 

 

 

 

 

 

*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황금가지, 2005)

* 김은희 《킹덤: 김은희 대본집》 (김영사, 2019)

 

 

 

 

몇 년 전부터 ‘좀비(zombie)가 공포물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시리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2016년에 영화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형 좀비 영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판 좀비 사극 <킹덤(kingdom)>은 탄탄한 스토리와 액션, 화려한 영상미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는 좀비를 소재로 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원작을 읽을 때 좀비 떼들이 달아나는 인간을 쫓아가서 물어뜯는 잔혹한 영화 장면을 기대해선 안 된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인류 마지막 생존자의 고독과 절망적인 공포의 깊이를 묘사한 소설이다.

 

 

 

 

 

 

 

 

 

 

 

 

 

 

 

 

 

 

 

*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열린책들, 2009)

 

 

 

 

좀비물이 언제까지 유행할지 모르겠으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오컬트 소재가 등장하게 되면 좀비물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다. 좀비물이 유행하기 전에는 뱀파이어물이 많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장편소설 《드라큘라》는 20세기 이후에 출현한 다양한 뱀파이어물의 원본이다. <노스페라투(Nosferatu)>에서 프란시스 코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드라큘라>에 이르는 뱀파이어 영화들은 스토커의 소설에 빚지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16)

* [절판] 로렌스 A. 릭켈스, 정탄(=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강의》 (루비박스, 2009)

* 한혜원 《뱀파이어 연대기》 (살림, 2004)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오기 전에 흡혈귀 전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스토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활동한 몇 몇 작가들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흡혈귀가 처음으로 ‘뱀파이어(Vampir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시인 조지 바이런(George Byron)의 주치의 겸 비서인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의 동명 단편소설에서였다.

 

폴리도리는 바이런과 함께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의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1816년 스위스에서 메리 셸리(Mary Shelley)와 그의 남편이자 시인인 퍼시 B. 셸리(Percy Bysshe Shelley)를 만났다. 바이런과 폴리도리, 그리고 셸리 부부가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었던 기간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며칠 내내 비가 내렸는데, 훗날 기상학자들은 1813년에 폭발한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에 나오는 화산재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1816년 스위스의 날씨가 나빠졌다고 보고 있다. 외출을 할 수 없었던 네 사람은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무서운 이야기를 만드는지 내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폴리도리는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만든다. 폴리도리의 소설에 뱀파이어로 나오는 루스벤 경(Lord Ruthven)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바람둥이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1819년에 발표되었다. 올해는 뱀파이어가 세계문학사에 처음으로 진입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뱀파이어》가 발표되기 일 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이 메리 셸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그 이야기를 만든 폴리도리가 아닌 ‘조지 바이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실은 잡지의 편집자가 당시에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명사였던 바이런의 이름을 쓴 것이다. 《뱀파이어 연대기》(살림)에서 폴리도리는 ‘바이런의 명성에 의해 가려진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뱀파이어 영화와 관련 문학작품들을 비평하는 강의를 개설한 로렌스 A. 릭켈스(Lawrence A. Rickels)폴리도리가 바이런이 이미 구상한 작품[주1]을 표절했다고 주장한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구상한 작가가 폴리도리인지 아니면 바이런인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로서는 《뱀파이어》의 원작자는 폴리도리로 알려지고 있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에 수록되어 있다.

 

 

 

 

 

 

 

 

 

 

 

 

 

 

 

 

 

 

 

 

* [e-Book]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왓북, 2019)

* [e-Book] 브람 스토커 《판사의 집》 (올푸리, 2019)

 

 

 

 

《드라큘라》가 워낙 유명해서 스토커는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로 알려져 있다. 《드라큘라》를 쓰기 전에 이미 여러 편의 장편과 단편소설을 썼지만, 《드라큘라》만큼 성공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토커는 27년 동안 영국의 연극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의 비서 겸 어빙이 소유한 극장 지배인으로 일한다. 스토커가 영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그를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토커는 더블린(Dublin)에서 태어난 아일랜드 인이다. 1912년에 스토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내(스토커와 결혼하기 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그녀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스토커와 와일드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이며 대학 동문이다)가 남편이 쓴 중 · 단편을 모은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을 1914년에 출판한다. 이 소설집에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드라큘라의 손님(《뱀파이어 걸작선》에 수록), 『판사의 집』(《영국의 괴담》에 수록), 『스쿼(squaw,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 『쥐들의 장례』[주2] 등이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 [e-Book] 르 파뉴《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 (올푸리, 2018)

 

 

 

 

『드라큘라의 손님』은 원래 《드라큘라》 초고의 초반부에 해당한 내용이었으나 초판에서 삭제되었다. 『판사의 집』은 17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악명 높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살았던 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공포의 절정을 이룬다. 과거에 죽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무시무시한 유령으로 등장하는 플롯은 1851년에 발표된 조지프 셰리든 레 파누(Joseph Sheridan Le Fanu)《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레 파누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며, 스토커는 레 파누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언론 매체의 연극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레 파누는 초자연적인 존재 및 현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872년에 나온 《카르밀라(Carmilla)다. ‘카르밀라’는 소설에 나오는 ‘레즈비언 흡혈귀’의 이름이다. 《카르밀라》는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책세상, 2004)

*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 (명문당, 2000) [주3]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완역본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완역본에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 중 단 네 편(『드라큘라의 손님』, 『판사의 집』, 『스쿼』, 『쥐들의 장례』)만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책에 있는 공포문학 작품들을 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공포문학도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유행을 탄다.

 

 

 

[주1] 미완성 소설이라 ‘미완의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여지게 됐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되어 있다.

 

[주2] ‘쥐의 매장’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호러 걸작선》에 수록되어 있다. 종이책은 절판되었고, 현재는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주3] ‘판사의 집’이 수록된 단편 공포소설 선집. 영국,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이 쓴 단편 공포소설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번역체에 한문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진다. 참고로 이 번역본을 만든 ‘명문당’은 동양 고전을 많이 펴낸 출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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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의 섬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4
에도가와 란포 지음, 채숙향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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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C이상(약칭 ‘이상’): 안녕하세요. ‘이상한 책’의 이상한 진행자 MC이상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무더위를 식혀줄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올여름 피서지 대신에 으스스하고 기괴한 섬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바로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소설 《도플갱어의 섬》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깐깐하게 책을 읽는 것으로 유명한 깐죽 아니, ‘깐독의 달인’ 사이러스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사이러스(약칭 ‘사이’): 안녕하세요. 사이러스입니다. 방금 저를 소개하면서 ‘깐죽’이라고 말씀하신 거 같은데, 사실 소설에 대해서 깐죽거릴 게 많아요.

 

 

이상: 네, 선생님. 벌써 긴장되기 시작하는데요. 《도플갱어의 섬》이 어떤 소설인지 먼저 소개해주신 다음에 선생님만의 날카로운 의견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사이: 《도플갱어의 섬》은 1927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원제는 ‘파노라마 섬 기담(パノラマ島綺譚)입니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입니다. 란포의 본명은 히라이 다로(平井太郎)입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서 따온 것이죠. 란포는 서양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아 여러 편의 추리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추리소설 발전과 보급에 앞장을 섰던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를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도플갱어의 섬》은 ‘도서(倒叙)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도서’란 시간의 흐름을 역순으로 전개하는 서술 방식을 뜻합니다. 영화 용어로 많이 쓰이는 ‘플래시백(flashback)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먼저 밝힌 다음에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여주는 방식이죠. 그러면 도서 미스터리가 어떤 장르인지 이해가 되죠? 독자는 처음부터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발단과 그 과정을 지켜보죠. 여기까지만 보면 완전 범죄가 됩니다. 그러나 탐정이 등장하면서 완전 범죄로 남을 뻔한 범행이 탄로 나게 되면서 사건이 해결됩니다. 《도플갱어의 섬》에 나오는 범인은 ‘극단적인 몽상가’인 히토미 히로스케입니다. 히로스케는 자신의 이상향인 ‘파노라마 섬’을 만들기 위해 아주 대담하면서도 치밀한 전략을 실행합니다. 자신을 자살로 위장하여 ‘히토미 히로스케’에 관한 모든 삶의 흔적들을 모조리 지웁니다. 그런 다음 자신과 닮았지만, 이미 망자가 된 고모다 겐자부로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히로스케는 매장된 고모다가 죽다 살아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고모다가 되어 혼신의 연기를 펼칩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서 히로스케는 완벽하게 고모다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모다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아 그 돈으로 본격적으로 파노라마 섬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파노라마 섬은 현실 세계와 다른 곳입니다. 그곳은 거대한 기계가 환상적인 자연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섬입니다. 파노라마 섬이 얼마나 기괴한지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직접 봐야 합니다.

 

 

이상: 란포가 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미스터리 소설인 《도플갱어의 섬》도 포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 볼 수 있을까요?

 

 

사이: 네, 그럼요. 현실과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포의 단편소설 『애른하임의 영토』에 나오는 주인공과 비슷합니다. 둘 다 몽상가이고, 그들이 세우려고 하는 이상향은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안식처이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의 이상향은 헛된 꿈으로 보이겠지만, 몽상가들은 이상향에서 사는 일이 현실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란포의 좌우명이 어쩌면 몽상가들이 좋아할 만한 말일 수 있겠군요. 그리고 몽상가들은 자신을 ‘몽상가’라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포를 위한 오마주(hommage)로 볼 수 있는 소설 속 장면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이상: 포를 위한 오마주라니! 흥미로운데요. 어떤 장면인가요?

 

 

사이: 히로스케가 매장된 고모다의 시체를 파헤치기 전에 ‘가사(假死) 매장’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히로스케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매장된 사례를 잘 알고 있는데요, 이때 히로스케의 범행을 관찰하듯이 서술하고 있는 화자는 포의 단편소설 『때 이른 매장』을 언급합니다. 아마도 이 이름없는 화자의 정체는 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일 것입니다. 고모다의 아내 치요코는 남편 행세를 하는 히로스케를 의심합니다. 결국 히로스케는 자신의 정체를 안 치요코를 죽입니다. 그는 치요코의 시체를 콘크리트 기둥 안에 숨깁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포의 대표작 『검은 고양이』가 생각났어요. 이 단편소설에 나오는 남편도 아내를 죽이고 맙니다. 그도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 한쪽 벽 속에 숨깁니다. 이 남편과 히로스케는 시체를 완벽히 숨겼다고 확신하지만, 아주 사소한 실수로 인해 범행 사실이 발각됩니다. MC 양반, 히로스케가 치요코를 죽인 다음에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이상: 글쎄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사이: 책을 제대로 안 읽었구먼. 책을 펼쳐서 221쪽을 보시오. 치요코를 죽인 이후로 히로스케는 더욱 더 망상에 가까운 광기를 드러내요. 이때 그는 자신을 ‘파노라마 왕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자신이 죽인 치요코를 ‘파노라마 왕국의 여왕님’이라고 스스로 선포합니다. 저는 소름 돋는 히로스케의 말을 보면서 그가 『애너벨 리』에 나오는 ‘바닷가 왕국’의 남성과 너무나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 ‘애너벨 리’라면…‥ 포가 쓴 시 아닌가요?

 

 

사이: 네, 맞아요. 『애너벨 리』는 죽은 아내를 위한 애가(哀歌)입니다. 이 시의 화자인 남성은 바닷가 왕국에 영원히 잠들어 있는 애너벨 리를 잊지 못해 늘 그녀의 곁에 누워 있어요. 만약 그가 이 바닷가 왕국의 주인이라면, 애너벨 리는 이 왕국의 여왕입니다. 그러나 화자의 마음속에는 왕국이 아닌 오로지 애너벨 리에 대한 일편단심만 있을 뿐입니다. 그에게 애너벨 리는 단순히 사랑했던 연인이 아니에요. 에너벨 리는 그녀를 사랑했던 소중한 기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면서 화자를 살아가게 만드는, 화자만을 위한 진짜 ‘왕국’인 거죠. 그는 죽은 애너벨 리가 다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한 담보로 이 왕국을 바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로스케는 바닷가 왕국의 남성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인간이죠. 히로스케는 치요코를 ‘파노라마 왕국의 여왕님’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치요코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치요코를 왕국의 여왕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섬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나체상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히로스케는 그녀를 자신의 왕국을 아름답게 만드는 부속품으로 취급합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직접 만든 왕국인 파노라마 섬을 사랑합니다.

 

 

이상: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히로스케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도플갱어의 섬》을 긍정적으로 평하면서 소개해주셨는데요, 이 소설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적인 견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이: 일단 작품 평을 하기 전에 이 책에 있는 오자 하나를 지적하고 싶소.

 

 

이상: 네? 저희가 만든 《도플갱어의 섬》에 오자가 있었어요?

 

 

 

 

 

사이: 내가 읽은 책은 초판이에요. 111쪽에 보면 ‘무가유향’이라는 말이 나와요. 무가유향을 한자로 쓰면 ‘無可有鄕’입니다. 《도플갱어의 섬》의 일본어 텍스트에 보면 ‘無可有鄕’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번역본에는 무가유향의 한자어가 ‘無何有鄕’으로 되어 있어요. 이 한자어를 읽으면 ‘무하유향’입니다. 무가유향과 무하유향 모두 유토피아(utopia)를 뜻하는 한자어죠.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줄 수 있소.

 

 

이상: 아, 정말이네요. 다음 쇄가 출간되면 이 오자를 고치겠습니다.

 

 

사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도플갱어의 섬》의 최악의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히로스케가 치요코를 죽이는 장면을 언급할 것입니다.

 

 

이상: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그 장면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히로스케의 잔인한 광기가 ‘펑’하면서 폭발하는 절정의 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이: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이상하네요. 출판사 이름이 ‘이상’미디어라서 그런가?

 

 

이상: 네? 뭐라고요?

 

 

사이: 아, 아닙니다! 책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란포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끔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역겹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장면은 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히로스케가 치요코를 죽이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에 나오는 표현 몇 개를 인용해보죠. 인용된 표현들은 모두 220쪽에 있습니다.

 

 

 “벌거벗은 남녀의 도취된 몸짓”

 

“죽음의 유희”

 

“히로스케와 치요코 모두 어느새 고통을 잊고 황홀한 쾌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에 빠져들었습니다.”

 

“치요코의 창백한 얼굴과 그 위에 흐르는 실처럼 가느다란 피, 붉은 옻칠을 한 것처럼 윤기가 흐른 한 줄기 피는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히로스케와 치요코는 전라 상태입니다. 히로스케는 강압적으로 치요코를 덮친 상태에서 교살을 시도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자마자 불쾌감이 느껴졌어요. MC양반, 치요코가 죽어가는 과정을 ‘죽음의 유희’라고 표현한 문장이 좋다고 생각하오? 피해자인 치요코가 죽어가면서 황홀한 쾌감에 빠진다는 묘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이 장면을 ‘미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나요? 저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미학으로 과대 포장하면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작년에 이상미디어 출판사에서 나온 《단발머리 소녀》사토 하루오(佐藤春夫)의 단편소설 『불의 침대』가 수록되어 있어요. 혹시 그 소설을 읽어보셨습니까?

 

 

이상: 네, 당연히 읽었죠.

 

 

사이: 『불의 침대』에 벌거벗은 여인이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단발머리 소녀》 리뷰를 쓰면서 그 장면을 비판한 적이 있어요.[주] 온몸에 불이 붙은 여인이 쾌락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것처럼 묘사했거든요. 포는 『상상력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추한 것도 상상력의 재료가 될 수 있으며 아름답다고 썼습니다. 란포는 《도플갱어의 섬》에서 기괴하고 섬뜩한 것을 상상력의 재료로 쓰는 포의 작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죠. 하지만 기발한 란포의 상상력은 가끔 정도를 넘어설 때가 있어요. 히로스케의 망상이 위험하듯이, 란포의 상상력도 위험해요.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야 하고 비판적으로 봐야 합니다.

 

 

이상: 좋은 쪽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단발머리 소녀》도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이: 고맙긴. 시간이 더 있었으면 《단발머리 소녀》까지 비판할 수 있었소. 그나저나 《단발머리 소녀》에도 오자가 있던데, 고치긴 했소?

 

 

이상: 정말요? 그 책에 오자가 있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사이: 허, 이런…‥.

 

 

이상: 오늘은 여기까지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도플갱어의 섬》은 표제작 이외에 세 편의 소설이 수록된 란포의 작품 선집입니다. 오늘 인터뷰에서 언급되지 못한 세 편의 소설도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인터뷰 때 뵙겠습니다. (속마음: 다음 인터뷰를 할 땐 저 사람 부르지 말아야겠어)

 

 

 

 

[주] “파격으로 가장한 문학의 성 착취를 보고 싶지 않다” (2019년 1월 28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63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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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7-2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참 재미있는 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에도가와 란포는 본래는 에드가 앨런 포우에서 필명을 따올정도로 처음에는 정통파 본격 추리로 출발했는데 중간에서 이른바 변격물로 변신해간 작가죠.아무레도 일본인 특유의 뭐랄까 좀 음습한 감성과 암울했던 군국주의 시대의 합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cyrus 2019-07-25 11:4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란포 특유의 음습한 묘사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란포의 단편소설 <애벌레>에 묘사된 장애인의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진 이후로는 란포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양가적인 느낌이 들어요. 재미있으면서도 무언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요. ^^;;

2019-07-24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25 11:51   좋아요 0 | URL
여자 도둑이 탐정 아케치와 사랑에 빠지는 전개가 별로였어요... ㅎㅎㅎ
제 리뷰에 작품과 출판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안 뽑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cyrus님께서 평소 대화에서도 ‘~했소‘하는 문어체를 많이 사용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ㅋ

cyrus 2019-07-25 11:5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저는 옛날 사람이 아닙니다! ㅎㅎㅎㅎ 저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 옛날 사람 어투를 써봤습니다... ^^;;

syo 2019-07-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글도 잘 쓰시면 어떡해요. 왜 혼자서 칼국수도 잘하고 피자도 잘 만들죠?

cyrus 2019-07-25 11:55   좋아요 0 | URL
나름 재미있게 쓴 리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저조하네요. 스포일러 표시 때문에 글을 안 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네요. 그런데 지금 이 글을 다시 보니 분량을 조절하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오늘 날씨가 습하면서 흐린데 따끈한 칼국수가 먹고 싶네요.. ㅎㅎㅎ

syo 2019-07-25 13:42   좋아요 0 | URL
요즘 전체적으로 알라딘이 좀 휑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거예요.

칼국수 한그릇 하시죠. 저 서울 올라가면 또 기약없이 못 만날 텐데.

cyrus 2019-07-27 10:48   좋아요 0 | URL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휑하다기보다는 온라인 관계가 파편화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곳 알라딘 서재에 크게 두 가지 유형의 회원이 활동한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유형은 혼자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 분들, 두 번째 유형은 특정 회원들을 중심으로 친분을 맺는 분들이에요. 그 전에 syo님과 만나면서 얘기했었지만, 제가 읽는 책들이 쉽고 재미있는 분야나 주제의 내용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책을 매개로 저와 친하게 지내기 어려워할 거예요. 책에 대한 공통된 관심이 온라인 회원들 간의 친밀도를 높아지게 만드는 원인이거든요. 제 블로그가 다른 분들의 블로그와 비교하면 친밀도를 형성하기 어려워요.

서울에 언제 가세요? 서울 가기 전에 한 번 뵙죠. ^^

syo 2019-07-29 11:57   좋아요 1 | URL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가을의 한복판은 서울에서 보내게 되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그 전에 한번 봐요. 사이러스님이 바쁨쟁이니까 여유내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