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은 시간을 죽이는(Killing Time) 오락물이다교양 독서를 선호하는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읽으면 시간을 낭비(wasting time)한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은 SF와 더불어 독서 모임에 자주 초대받지 못한다. 박학다식한 다독가들의 머릿속에 추리소설이 단 한 권도 꽂혀 있지 않다. 다독가들은 추리소설이 독서 모임 필독서로 선정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마저 추리소설을 외면한다. 그들은 추리소설을 순문학과 반대되는 비문학으로 취급한다. 어정쩡한 추리소설은 장르문학이라는 특별 보호구역에 정착한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거의 없다. 추리소설 마니아가 독서 모임에 가면 추리소설의 매력을 몰라보는 독자들을 만난다. 그들과 대화가 통하면 친구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추리소설과 친하지 않다. 추리소설 마니아는 외롭다. 자신의 독서 취향을 발산하지 못한다.


나는 추리소설 마니아가 아니지만, 추리소설을 별개의 문학으로 보는 관점에 반대한다. 추리소설이 항상 장르문학’의 범위 안에서만 거론되는 것도 못마땅하다추리소설을 즐겨 읽지 않더라도 추리소설이 왜 (‘장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고문학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문학적인 추리소설을 옹호한다이 책들은 추리소설의 풍성한 매력을 어떻게 알릴지 늘 고민하는 마니아들에게 조력자가 되어 준다.















 




* [개정판] 줄리언 시먼스, 김명남 옮김 블러디 머더: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우연한지식, 2026)

 

* [구판, 절판] 줄리언 시먼스, 김명남 옮김 블러디 머더: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을유문화사, 2017)



영국의 추리소설가 줄리언 시먼스(Julian Symons)는 10살에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한 추리소설 중독자다. 그는 추리소설도 ‘어엿한 문학’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 블러디 머더》(Bloody Murder)를 썼다. 시먼스자신의 취향이 첨가된 추리소설의 역사를 정리한다. 그는 역사를 돌아보면서 추리소설이 애초에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쓴 오락물이었다고 인정한다. 오락성이 짙은 추리소설의 줄거리는 단조롭다. 똑똑한 탐정이 퍼즐과 같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추리소설 중독자들은 퍼즐이 풀리는 이야기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시먼스는 인기가 많은 추리소설들이 선정 문학(sensational literature)의 일부였으며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는 추리소설을 가리켜 재미난 쓰레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추리소설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따지는 비평을 중시했고, 예술 작품에 가까운 추리소설을 알리려고 했다


















* 이브 뢰테르, 김경현 옮김 추리 소설(문학과지성사, 2000)



프랑스 교육학과 교수 이브 뢰테르(Yves Reuter)의 추리소설분량이 얇은 가벼운 학술서. 이 책도 추리 소설의 기원과 약사(略史)를 소개하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문학과 추리 소설의 폭넓은 상호 관계를 다룬 6에 있다추리소설은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변화의 과정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다양한 서사와 등장인물들을 선보이는 추리소설은 살아 움직이는 소설이다. 다양성과 실험성을 추구하는 추리소설은 문학 대 부차 문학이라는 경직된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 [절판] 에르네스트 만델, 이동연 옮김 즐거운 살인: 범죄 소설의 사회사(이후, 2001)




정치적 성향과 정파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편협한 독서를 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저자를 비난하고, 그 저자가 쓴 책을 깎아내린다. 특정 이념을 지지하는 독선적인 독서는 위험하다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취향에 정치적 성향과 정파 이념은 절대로 개입할 수 없다정치적 성향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독자가 추리 소설을 즐긴다.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스탈린과 대립한 트로츠키(Leon Trotsky)를 지지한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은 추리소설을 오락물로 취급하는 관점에 반대하는 추리 소설 마니아다. 그는 추리 소설을 분석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다. 만델의 관심사는 추리소설에 흔적처럼 남은 사회 제도의 변화 궤적이다. 1985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즐거운 살인》(Delightful Murder)의 부제범죄 소설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the Crime Story). 만델의 사회사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얽힌 추리소설의 역사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반영된 추리소설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와 모순을 증언한다. 만델은 추리소설을 분석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범죄가 어떻게 조성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자답게 자본주의 사회는 범죄 사회라고 결론을 내린다.


















* 서머싯 몸, 이민아 옮김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열린책들, 2020)

 

* [절판] 서머싯 몸, 신상웅 옮김 어센덴(동서문화사, 2003)



추리소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문학과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문학적이라고 규정한 작품을 쓴 작가들은 추리소설을 쓴 적이 있다이런 유형의 작가가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순문학 중심으로 쓰인 문학사는 추리소설을 썼거나 추리소설의 매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작가의 이력에 주목하지 않는다짧게나마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이 첩보 소설을 쓴 사실을 아는 독자가 많지 않다. 몸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14년에 입대를 신청했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당시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다), 키가 작아서 입대 불가 판정을 받았다. 몸은 독일어에 능숙해서 영국 비밀 정보부(MI6) 요원으로 일한다. 종전 후에 스파이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연작 단편 소설집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약칭: 어셴든, Ashenden: Or the British Agent)을 발표한다


원래 이 소설집은 총 31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몸과 친분이 있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초고를 먼저 읽었다. 처칠은 국가 기밀 정보가 언급된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고, 몸은 처칠의 조언을 받아들여 문제가 되는 열네 편의 이야기를 삭제했다. 어셴든은 출간 당시 독자와 비평가들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다. 시먼스를 포함한 추리 소설가들은 이 소설의 진가를 알아봤고, 오늘날 어셴든첩보 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 [절판] 존 르 카레, 최용준 옮김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열린책들, 2007)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8월의 세계 문학, 추천 독자: ‘읽는 인간천성은]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개정판 583번째 책]

* 존 르 카레, 김석희 옮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열린책들, 2009)

 

 

* 존 르 카레, 이종인 옮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열린책들, 2005)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개정판 726번째 책]

* [품절] 존 르 카레, 조영학 옮김 스마일리의 사람들(열린책들, 2013)




추리소설은 잡종의 문학이다. 추리소설을 탐정 소설, 범죄 소설, 첩보 소설, 스릴러 소설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추리소설의 8할은 탐정 소설과 범죄 소설이다. 시먼스는 첩보 소설을 추리소설의 범주에 포함하지만, 탐정 소설과 범죄 소설과 계통이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블러디 머더》 16장은 첩보 소설의 계보를 다룬스파이 소설의 짧은 역사.


시먼스는 첩보 소설의 형식에 두 가지 전통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전통은 권위를 지지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두 번째 전통은 권위를 비판하고 급진적이다.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첩보 소설은 두 번째 전통에 속한다르 카레의 첫 번째 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MI6 조직원 조지 스마일리(George Smiley)가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이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약칭: 스파이)는 데뷔작이 완전히 잊힐 정도로 유명해진 르 카레의 대표작이다이 두 소설은 관료주의를 비판한다. 르 카레가 묘사한 MI6 요원들은 생각보다 영민하지도 않으며 초인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스파이의 주인공인 비밀 요원 앨릭 리머스(Alec Leamas)MI6의 무자비한 권위에 이용당하다가 결국 희생되는 소모품과 같은 존재르 카레는 스파이의 성공에 힘입어 스마일리가 재등장하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스마일리의 사람들을 발표했다. 시먼스는 두 작품에서 보여준 르 카레의 필력이 전작들에 비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문학적이지 않은 추리소설도 재미있다. 추리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이야깃거리가 많이 나온다추리소설과 친해지고 싶지 않은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펼치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추리소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추리소설 얘기가 나오면 재미가 없고, 유익하지 않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등 온갖 이유를 둘러댄다추리소설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려면 독자인 우리가 직접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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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이 쓰신 글은 늘 제가 생각하던 것이네요.요즘에야 출판계에서 추리소설이 많이 간행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추리소설이나 SF소설은 한 마디 비주류 B급문학으로 취급당했습니다.
뭐 그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국 문단은 신춘문예나 유력 문학잡지를 통해 작가를 발굴했기에 사회적 메시지, 인간의 내면, 문장력을 중시하는 ‘순문학’ 중심이 되었고 그 결과 서양에서는 고급 오락으로 여겨졌던 추리, SF, 판타지 등은 ‘오락용 펄프 픽션(Pulp Fiction)‘이나 ‘하급 문화‘로 치부되어 작가나 독자 모두 한국의 주류 문학에서 소외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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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만나러 가자.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신다.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학교는 어두워진다. 친구가 없는 다현은 어두운 학교를 좋아한다방과후에 울리는 종소리는 다현을 설레게 한다준후가 다현을 기다린다준후는 결혼한 마흔 다섯 살의 교사다. 다현과 준후는 집에 가지 않는다. 제자와 교사는 남몰래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어둑한 욕정이 솟구치는 사랑의 학교아무도 없는 교실은 두 사람을 위한 침실이 된다하지만 밀회의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다현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준후는 다현을 죽이지 않았다. 준후가 경찰에 신고하면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가 들통난다. 혼자 살아남고 싶은 준후는 다현의 시체를 호수에 내다 버린다.


정해연홍학의 자리는 이중으로 구성된 추리소설이다. 본격 추리소설과 도치 서술 추리소설(inverted mystery)이 절묘하게 겹쳐 있다. 본격 추리소설은 탐정이나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본격 추리소설이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도치 서술 추리소설은 범행의 전모가 밝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도치 서술 추리소설은 범인을 공개하면서 시작된다. 독자는 범인과 범행 방법을 모두 알고 있다. 홍학의 자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범인은 다현의 시체를 유기한 준후다하지만 준후는 다현을 살해한 범인이 아니다. 독자와 준후는 진범이 누군지 모른다. 시체 유기죄를 저지른 준후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진범 찾기에 나선다. 그는 다현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탐정과 형사, 범인이 유명한 추리소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범죄 피해자는 간간이 언급되는 단역이다. 죽은 단역은 말이 없다홍학의 자리피해자를 비중 있게 묘사한 추리소설이다. 다현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이자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인간이다. 다현의 삶은 대륙과 같은 사회에 어울리지 못해 따로 떨어진 섬[주]과 같다작가는 사회가 외면한 피해자의 열여덟 인생을 온전하게 복원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진심이 머금은 생전 목소리(“홍학이 있는 네덜란드의 아루바 섬에 같이 가보고 싶어요.”)를 들려준다준후는 자신이 다현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욕정이 가득한 그는 다현의 몸을 껴안을 뿐이다. 다현의 외로운 마음을 보듬지 못한다.


다현이 없는 학교는 교실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감추기에만 급급하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건전한 도덕을 강조(강요)한다. 교장은 학생들이 올바르게 자라는 데 필요한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덕 교육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명예를 중시하는 교장은 학생들의 생각에 도덕을 처발라서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을 가린다. 학교는 죽은 학생을 애도하는 시간을 없앤다. 심지어 죽은 학생을 학교에 다닌 적도 없는 투명한 학생으로 만든다. 비정한 학교는 살기 위해 죽은 학생을 두 번 죽인다



학교 종이 땡땡땡


그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제대로 알자.

살아있는 학생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명예롭게 살고 싶은 학교를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죽은 학생을 위한 조종(弔鐘)은 누가 울려주나?

 








[]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의 문장 인간은 완전한 하나의 섬이 아니다를 참고했다. 원문은 던이 병상에 있었을 때 쓴 17번째 기도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 기도문에서 가장 유명한 또 하나의 구절은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 제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에 영감을 주었다. 



 인간의 죽음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니, 나는 인류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그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다(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존 던, 김명복 옮김, 인간은 섬이 아니다: 병의 단계마다 드리는 기도, 나남, 2009,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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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奇書)내용이 기이한 책이다. 내용이 어려워서 읽기 힘든 책을 뜻하기도 한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잘 아는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가 있다. 오구리 무시타로(小栗虫太郎)흑사관 살인 사건(1934), 유메노 큐사쿠(夢野久作)도구라 마구라(1935), 나카이 히데오(中井英夫)허무에의 제물(1964)이다.

















* 오구리 무시타로, 강원주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이상미디어, 2019)

 

* [절판] 오구리 무시타로, 김선영 옮김 흑사관 살인 사건(북로드, 2011)




올해가 《흑사관 살인 사건》이 발표된 지 90주년이 된 해다흑사관 살인 사건후리야기(降矢木) 가문의 성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성이 중세에 유행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매장한 건물과 비슷해서 흑사관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이 작품에 오구리 무시타로의 탐정소설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변호사인 노리미즈 린타로(法水麟太郎)가 등장한다. 노리미즈는 박식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설명하면서 불가사의한 사건을 추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리미즈가 아는 게 너무 많아서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장광설이 되고 만다. 노미리즈는 종교, 점성술, 과학, 범죄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헌과 용어들을 언급하면서 설명한다. 흑사관 살인 사건이 기서로 평가받는 이유가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현학적인 내용이다. 독자는 인내심 하나만으로 방대하면서도 난해한 내용을 뚫으면서 읽어야 한다.

 



















* [절판] 유메노 큐사쿠, 이동민 옮김 도구라 마구라(크롭써클, 2008년, 전 2권)





도구라 마구라유메노 큐사쿠의 유작이다. 유메노는 이 소설을 써서 탈고하는 데까지 십 년을 바쳤다. 소설이 발표된 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독특하게도 뇌와 기억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소설을 SF로 보기도 한다. 두 권으로 된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 나카이 히데오, 허문순 옮김 허무에의 제물(동서문화사, 2009)

 



허무에의 제물반 미스터리(anti mystery)’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번역본을 낸 출판사는 동서문화사. 허무에의 제물의 역자는 해설에서 ‘600쪽이 넘는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라며 운을 뗀다. 읽기 까다로운 작품을 완독한 것을 자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작품인지 모르고 한 거짓말일까?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책을 출판하고, 유령 역자(익명의 역자가 번역한 책에 고인이 된 역자의 이름을 쓴 것)’를 내세워 책을 펴낸 출판사의 전력을 생각하면 역자의 말이 미덥지 않다.

















* 윤영천 미스터리 가이드북: 한 권으로 살펴보는 미스터리 장르의 모든 것(한스미디어, 2021)




미스터리 가이드북을 펴낸 미스터리 전문가 윤영천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흐름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3대 기서에 도전하라고 권한다. 단순히 기서라는 단어에 혹해서 도전한다면 그 시간에 다른 작품을 읽으라고 말한다. 미스터리 마니아가 그렇게 말하니까, 기서를 더 읽고 싶어진다.


















* 백휴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나비클럽, 2024)




철학을 전공한 추리소설 작가 백휴는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에서 추리소설은 오락소설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추리소설을 철학적으로 읽기를 시도한다나는 이 책을 프롤로그-12순으로 읽었다. 12장은 프롤로그의 심화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추리소설을 철학적 관점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본격적으로 나온다그런데 12장에 인용된 철학자가 너무 많다. 철학 용어를 인용하면서 추리소설을 철학으로 독해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독자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근거를 설명할 땐 단순할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 필요해 보인다.


고전 추리소설에 묘사된 탐정은 추리력과 논리력이 뛰어나다. 가장 대표적인 탐정이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다. 추리력과 논리력은 어떤 현상을 올바르게 분석하게끔 해주는 이성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능력이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서구 지식인들이 찬양했던 이성의 입지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니체(Nietzsche)로 시작해서 몇몇 철학자들이 이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추리소설 역시 이성과 반이성이 충돌하는 철학의 흐름에 맞춰 유행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나온 추리소설 속 탐정은 똑똑하지 않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거나 결국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3대 기서 중 흑사관 살인 사건을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으려고 했는데, 추리소설로 철학 하기를 읽고 난 후에 생각이 달라졌다. 추리소설 3대 기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읽어보면 어떨까? 읽기 어렵기로 악명높은 책들을 더 어려운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탐정소설 속에 지혜의 알갱이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지혜의 알갱이 한 톨이라고 찾지 못해도 좋다. 일단 흑사관 살인 사건을 끝까지 읽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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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2-15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인데 내용이 어렵고 그것도 철학적인 접근~~
그럼에도 어쩐지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cyrus 2024-02-23 07:00   좋아요 1 | URL
내용이 어렵거나 특이한 책은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어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거든요. ^^

stella.K 2024-02-15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는다면 흑사관부터 도전할까 했는데 네 글 읽어보니 미스터리 가이드 북이랑 철학하기부터 읽어야지 싶네. 미스터리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만만히 봤다간 큰코 다치겠군.
근데 허무에의 제물이 그런 사연이 있었군. 저 제목도 사실은 문법상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 ~~에의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들었거든 일본식 표현이라고 하던데. 손 좀 보면 좋을텐데ᆢ

cyrus 2024-02-23 07:03   좋아요 0 | URL
저도 ‘~에의’라는 표현이 눈에 거슬렸어요. 동서미스터리문고 개정판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해서 제목이 고쳐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최근에 개정판으로 나온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 뒤표지에 보면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모파상, 러브크래프트, 스토커 등 대작가 10인의 숨은 명작

국내 최초 공개


 


국내 최초 공개라는 표현을 누가 썼는지 궁금하다사실을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처음 소개한 것처럼 뻔뻔스레 쓰다니.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외, 정진영 옮김,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책세상, 2023)

 

* [구판 절판]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1(책세상, 2004)




윌리엄 W. 제이콥스(William W. Jacobs)부적,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부르시면 갈게요,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오를라,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2004년에 출간된 구판 세계 호러 걸작선 1에 수록되어 국내 최초로 공개된 것은 맞다. 하지만 2004년 이전에 한 번 번역된 사실이 확인되면 내 견해는 틀리게 된다.











* [절판, No Image] 정태원 엮음 공포특급 5 : 세계 편(한뜻, 1996)




부적의 원제는 <The Monkey’s Paw>. 가장 많이 알려진 소설 제목이 원숭이 손 또는 원숭이 발이다말라비틀어진 원숭이 손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부적이다부적1996년에 출간된 공포특급 5 : 세계 편에 수록된 적이 있다. 제목은 원숭이 손’이다. 1990년대에 장르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 정태원(1954~2011)이 이 책의 엮은이로 참여했다. 그 이후로 부적은 1997년과 1998년에 나온 단편소설 선집에 수록되었다.


모파상은 매독으로 인해 생긴 정신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 정신 착란증(섬망증)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쓰게 만든 원인일지도 모른다. 오를라』(The Horla)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두려워한다. 그는 오를라라는 이름의 괴이한 존재에 필사적으로 저항해보지만 끝내 미쳐버리고 만다. 모파상은 정신이 점점 피폐해지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실감 나게 묘사했다.
















* [절판] 기 드 모파상, 한용택 옮김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장원, 1996)

 



1996년에 출간된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에 오를라』가 수록되었다. 이 책에 총 25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여기에 모파상이 쓴 최초의 단편소설과 죽기 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모파상은 오를라를 두 가지 버전으로 썼다. 1886년에 발표된 오를라1판의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환각 증세를 설명한다. 이듬해에 나온 오를라2판은 주인공 자신이 겪은 기이한 체험을 일기에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전개된다.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은 두 가지 버전의 오를라가 실린 단편 선집이다.
















기 드 모파상한용택 옮김 《박제된 손: 기 드 모파상의 판타스틱 스토리》 (우물이있는집, 2007)




2007년에 출간된 모파상 단편 선집 박제된 손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의 역자가 번역한 책이라서 어떻게 보면 1996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라 할 수 있다. 박제된 손도 두 가지 버전의 오를라를 만날 수 있는 책이지만,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에 소개된 25편의 작품 모두 수록된 건 아니다. 박제된 손에 수록된 모파상의 단편소설은 총 19편이다.
















* 몬터규 로즈 제임스, 조호근 옮김 몬터규 로즈 제임스: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 외 32(현대문학, 2014)

 

*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명문당, 2000)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부르시면 갈게요』(Oh, Whistle, and I’ll Come to You, My Lad)는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고대에 만들어진 청동 호각(호루라기)을 불면 유령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2000년에 출간된 영국의 괴담에 처음 소개되었다. 제목은 <피리를 불면 내가 가지>영국의 괴담괴담은 익명의 작가가 만든 도시 괴담이 아니다. 영국 출신 작가들이 쓴 단편 공포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영국의 괴담을 펴낸 출판사는 동양 고전을 주로 펴내는 곳이다. 아무래도 한문에 제일 관심이 많은 출판사가 만든 책이라서 그런지 문장에 한문으로 된 단어가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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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16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도 깜놀할 듯,ㅎㅎ

cyrus 2023-05-16 06:38   좋아요 0 | URL
출판사는 제 글에 관심이 없어서 그 정도 반응은 보이지 않을 거예요. 이런 글이 있는 것조차 모를 수도 있어요... ㅎㅎㅎ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 패닉룸
H. P. 러브크래프트 외 지음, 정진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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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첫 번째2004년에 나온 세계 호러 걸작선 1의 개정판이다. 세계 호러 걸작선 1서양 작가들의 단편 공포소설 선집이다. 구판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총 열네 편이다이 중에서 네 편의 단편은 개정판에 실려 있지 않다. 개정판에 빠진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숨 막힘(Loss of Breath)


* 아서 매첸(Arthur Machen) - 악마의 뇌(The Immost Light)


* 로버트 체임버스(Robert Chambers) 옐로 사인(The Yellow Sigh)


* 사키(Saki) - 스레드니 바쉬타르(Sredni Vashtar)




그뿐만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는) 삽화와 작가를 간략하게 소개한 글도 삭제되었다. 그런데 작가 소개 글이 삭제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르문학,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작가들의 공포 문학 작품을 주로 번역한 정진영 씨의 해설에 작가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윌리엄 W. 체임버스(William W. Jacobs)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구판에 있는 오탈자나 문장의 오역을 고치지 않고, 책값을 올려서 개정판이라고 펴내는 비양심적인 출판사들이 종종 있다. 개정판인 척하는 구판은 잘못 만든 책이다. 이런 책도 절대로 독자들에게 팔면 안 되는 파본이다. 출판사는 독자들을 속인 책을 펴낸 것에 사과해야 하며 그 책을 구매한 독자들에게 책값을 돌려줘야 한다.


6년 전에 나는 구판 세계 호러 걸작선 1에서 발견된 문장의 오역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문제의 구절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사냥개에 있다.



* 세계 호러 걸작선 1228


 그 무슨 사악한 숙명이었기에, 우리는 그 오싹한 폴란드의 교회 묘지로 이끌렸던가? 그것은 오백 년 전 그 자신이 구울로서 권력자의 무덤에서 중요한 물건을 훔쳤다는 어느 인물의 이야기와 관련된 음산한 풍문이며 전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문]


 By what malign fatality were we lured to that terrible Holland churchyard? I think it was the dark rumor and legendry, the tales of one buried for five centuries, who had himself been a ghoul in his time and had stolen a potent thing from a mighty sepulchre.

 


‘Holland’네덜란드의 영어식 표기. 그런데 역자는 폴란드라고 썼다. 개정판에서는 네덜란드로 고쳐졌다.



*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287~288


 무슨 사악한 숙명이었기에, 우리는 그 오싹한 네덜란드의 교회 묘지로 이끌렸던가? 그것은 오백 년 전 그 자신이 구울로서 권력자의 무덤에서 중요한 물건을 훔쳤다는 어느 인물의 이야기와 관련된 음산한 풍문이며 전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세계 호러 걸작선 1종이책은 절판되었지만, 전자책은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문제는 절판되지 않은 세계 호러 걸작선 2.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첫 번째책날개에 기이하고 기묘한 이야기-두 번째출간을 예고하는 글이 없다. 하지만 세계 호러 걸작선 2도 언젠가는 절판될 수 있다. 구판의 형태가 남아 있는 2권이 절판되기 전까지는 새 옷을 갈아입으면서 판형이 줄어든 1권과의 어색하고 기묘한동거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네덜란드 구울> 2017115일에 썼음.

https://blog.aladin.co.kr/haesung/905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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