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이 분포해 있었던 아리라
이승훈이 건립한 정주의 오상학교에 들른 신채호의 모습을 당시 교사를 재직하던 춘원 이광수는 1936년 4월 <조광>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 주필이나 되는 단재는 풍채가 초라한 샌님이나 이상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세수할 때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물을 찍어다 바르는 버릇 때문에 마룻바닥, 저고리 소매와 바지가랑이가 온통 물투성이가 됐다. 누가 핀잔을 주려 하면 ‘그러면 어때요’라고 하였다. 남의 말을 듣고 소신을 고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웃고 얘기할 땐 다정스러웠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조선족이 얼마나 넓게 분포하고 살았는지를 이두문을 풀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우리 고어에서는 오리鴨를 ‘아리’라 하고, 강江을 ‘라’라 했는데, 압록강鴨綠江, 대동강大同江, 두만강豆滿江, 한강漢江, 낙동강洛東江과 길림성吉林省의 송화강松花江, 봉천성奉天省의 요하遼河, 영평부永平府의 난하灤河 등을 이두자로 쓴 옛 이름을 찾아보면 아례강阿禮江, 아리수阿利水, 욱리하郁利河, 오열하烏列河, 열수列水, 무열하武列河, 압자하鴨子河라 하여 아례阿禮, 아리阿利, 오열烏列, 무열武列의 열列은 모두 ‘아리’의 음역音譯이며, 압자鴨子(고어에서 오리를 아리라 했음)는 ‘아리(=오리)’의 의역意譯이고, 강江, 하河, 수水는 모두 ‘라’의 의역意譯이다. 위의 각 큰 강들은 모두 조선족 선조들이 지은 이름들이고, 조선 고대의 문화는 거의 다 위의 큰 강의 강변에서 발생했으므로,『삼국지三國志』에도 구려작국句麗作國, 의대수이거依大水而居(고구려高句麗는 나라를 세우면서 큰 물가에 터를 잡고 살았다)라고 했던 것이다.
‘나라’는 고어에서 ‘라라’라 했으니, ‘라라’는 본래 ‘나루津渡(진도)’를 가리키던 명사로서 후에 와서 국가國家를 가리키는 명사로 된 것이다. 그리고 고대 지명의 끝에 붙은 나那, 라羅, 노奴, 루婁, 누耨, 량良, 랑浪, 양穰, 양陽, 강岡, 아牙, 야邪 등은 모두 ‘라’의 음역이고, 천川, 원原, 경울京, 국國 등은 모두 다 ‘라’의 의역이다. 이들 양자는 다 ‘라라’의 축역縮譯인바, 강江은 어렵漁獵의 밑천이 되고 배로써 오고 갈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하므로, 상고의 문명은 거의 대부분 강가에서 발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