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지하드와 현대 지하드의 테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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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거론하지 않고는 이슬람주의를 말할 수 없다. 이슬람주의는 테러리즘과 별개의 개념이므로 나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를 폭력과 결부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대전에서 폭력을 일삼는 지하드에는 테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슬람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띤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는 폭력의 정당화를 거론할 때에 특히 부각되는 개념이다. 이슬람교는 지하드를 “자기수련” 이자, 코란에 따르면, 포교의 일환으로 불신자와 벌이는 물리적 투쟁(키탈)의 실천으로 규정한다. 7~17세기 사이에 이슬람문명이 고도로 발전하자 무슬림은 국제적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이슬람교의 확산을 위해 지하드를 감행했다. 저명한 이슬람 역사학자 마셜 G. S. 호지슨은 무슬림이 그때 “국제 정치질서를 형성” 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문명은 서방세계가 득세하자 주춤하고 결국 쇠퇴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된 역사는, 세계를 “베스트팔렌식 논리” 가 규정한 국제 시스템에 맞춰 그리는 식으로 2장에서 요약했다. 오늘날 이슬람주의는 문화적 근대화와 서양의 패권주의 간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황에서 “서방세계에 항거하는 반란” 중 으뜸으로 꼽힌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근대의 국제 시스템이 진화하고 국제사회가 확대되면서 쇠락해가는 이슬람문명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될 것이다. 그중 꾸며낸 전통의 이슬람식 “샤리아 논리”는 계속 이어갈 것이다. 이 같은 맥락감안한다면, 문화적 근대화와 반계몽사상에 나타난 전도현상 또한 근대화에서 비롯된 위기에 봉착한 이슬람문명에는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이른바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 라는 베스트팔렌식 국제 시스템을 거부함으로써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려는 이슬람세계 학자들의 노력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방어 문화” 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식 세계관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수니파 이슬람교에서 가장 유력한 교육기관으로는 1천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을 보낸, 카이로에 소재하는 알아즈하르 대학٧을 꼽을 수 있다.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나온 교재는 『휴머니티의 선언Bayan li al-Nas』으로, “무장지하드”를 포기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쉐이크 알아즈하르가 공포한 판결fatwa(파트와)은 수니파 이슬람교의 종교기관에서 최우선으로 여긴다. 1989년 9월, 쉐이크 자두울 하크는 타계하기 전, 나와의 회동에서 “무장 지하드” 를 규탄하며 판결(파트와)을 재차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슬람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은 이를 이슬람교의 원수에 굴복하는 작태라고 일축했다.
전통 성전이 현대 성전주의로 진화된 데는 하산 알반나의 공이 컸다. 사이드 쿠틉이 주창한 “이슬람세계의 혁명” 은 훗날 “글로벌 성전” 의 일환으로 추가된 것으로, 여기서 혁명이란 칼리프 시대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지배siyadat al-Islam(시야다트 알이슬람)를 회복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알반나와٧ al-Azhar University: 국립 종합대학으로 이슬람 학문의 중심이며 수니파 이슬람교의 교육 중심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로, 시아파인 파티마 왕조가 970년에 알아즈하르 사원을 건립한 뒤 선교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988년 사원 안에 대학을 개교했다. 그 후 아유브 왕조의 시조 살라딘이 파티마 왕조를 쓰러뜨렸을 때 파괴되었다가 수니파의 학부로 재건되었으며 맘루크 시대에 중수되었다.
쿠틉은 폭력의 정당성뿐 아니라, 이슬람국가의 정규전인 전통 성전이 이슬람의 비국가적 주동세력이 자행하는 테러로 탈바꿈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 성전주의는 단순한 테러리즘이나 폭동, 그 이상을 예고한 것으로 샤리아에 따라 세계를 재편하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양에서 속출하는 성전 관련 문헌이나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에는 이 같은 맥락이 대체로 누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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