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독일에서 온 출판사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코엑스에 갔습니다.
금년 주빈국이 일본이라서 일본 출판사 대표들과 우리나라 여성편집자들의 모임이 주최한 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상황은 비슷한데, 책이 잘 팔리지 않아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e-book, mobil 등 책의 활용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내 생각은 출판의 현황이 인문학의 위기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그리고 인문적인 책들이 팔리지 않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관광가이드, 요리방법, 컴퓨터기술 관련, 몇몇 소설가와 시인들의 책 등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다만 인문학 그리고 인문적인 책들이 팔리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며, 이는 비단 일본과 우리나라만의 현상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적인 현실로서 이미 많은 학자들이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독자들은 인문학 내지는 인문적인 지식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매우 우려되는 점입니다.
인간은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되는 동물이 아닙니다.
너무 잘 먹어서 몸을 살찌운 뒤 다이어트 책을 읽으면서 살 빼느라 고심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평수가 많은 아파트에 살면서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하기 위해 사는 동물은 아닙니다.
특별히 세계관, 인생관을 가지지 않고 자기에게 유익하기만 하면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하면서 기회주의자로 사는 동물도 아닙니다.
인터넷이 무척 발달되어 있어 인터넷에서 무상으로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므로 독서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그리고 인문적인 책에 등을 돌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인문학자, 작가, 인문주의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인문학의 영역을 더욱 넓혀서 자연과학과 영역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자연과학의 지식으로 인문적인 문제를 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학문이 세분되다 보니 학문들 간의 소통이 부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연과학에서도 생물학자와 두뇌과학자 간에 소통이 부재합니다.
예술 전공자와 사회학자 혹은 경제학자 간에 소통이 부재합니다.
철학자와 물리학자 혹은 화학자 간에 소통이 부재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전합니다.
MIT 대학의 철학교수가 식당에서 물리학 교수를 만나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철학교수가 물리학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철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리학교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타 학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학문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세분화된 지식에 평생을 거는 삶이란 무슨 의미가 되겠습니까?
“나는 평생 악어의 생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이 온당한 것일까요?
악어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이 인류에게 중요한 지식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세상에는 악어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태에 관한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란 바로 인간의 생태에 관한 학문입니다.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악어 전공자는 인간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인문학 전공자는 인간과 관련해서 악어의 생태에도 관심을 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학문 간의 소통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산되는 문화상품으로서의 책이 출간된다면 출판의 불황이 타개될 것이라고 봅니다.
철학자, 문인, 예술가는 물리학, 생물학, 화학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는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말할 수 있어야 학문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건축가와 종교인이 인류학에 관해 말하고 인류학자는 건축과 종교에 관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문 간에 소통이 발생하지 않으면 세분화된 지식들은 인류에게 능률적으로 기여할 수 없습니다.
악어의 생태에 관한 지식이 악어 전공자들에게만 만족을 준다면 얼마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식이겠습니까?
지식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앞으로 지식인들이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독자들도 편식을 하지 말고 지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게임을 잘 하고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밖의 지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알아야 컴퓨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은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지식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많은 음악을 들은 사람이 음악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더 잘 즐길 수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가 곧 출판의 불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는 사람들이 독서하지 않는다고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출간해야 합니다.
그러한 책은 학문 간의 소통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며,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책들이 서점에 즐비하게 꽂힐 때 독서하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독일인을 만나 독일 교과서를 여러 권 보았습니다.
독일의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은 참 훌륭한 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독일의 초등학생들의 교과서라면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읽을 수 있고, 독일의 중고등학생들의 교과서라면 우리나라 성인들이 읽을 수 있으며, 독일의 대학생들의 교과서라면 우리나라 전공자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불행하지만 문화의 현주소입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오로지 진학하기 위해 공부할 뿐입니다.
최종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입시공부 외에는 아무런 공부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독일뿐 아니라 선진국의 교과서에는 다양한 지식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해서 풍요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식들이 쌓여진 책들이 출간되기 바랍니다.
학문 간의 소통이 활발한 책들이 출간되기 바랍니다.
독자들도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지식을 섭취하기 바랍니다.
관심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인문학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바랍니다.
인문학의 영역은 철학, 종교, 역사, 언어, 문학,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법학, 정치학, 인류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합니다.
우주의 기원, 인류의 기원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등의 관심일 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의 관심이기도 하고, 문학과 예술의 관심이기도 해야 합니다.
학문의 징검다리가 놓이지 않으면 지식은 불구가 됩니다.
어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하루였습니다.
코엑스를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