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컴포트 티퍼니Louis Comfort Tiffany(1848-1933)>
19세기말에 열린 전시회와 만국박람회에서 주목을 받은 미국의 디자이너 루이스 컴포트 티퍼니Louis Comfort Tiffany(1848-1933)는 양식화된 자연적 형태로 장식한 화려한 색채의 유리전등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레지옹 도뇌르 5등 수훈자로 지명 받고, 1902년 토리노에서 열린 제1회 국제근대장식미술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티퍼니란 이름은 장식미술에서 혁신의 전통이 되었다.
티퍼니의 아버지인 찰스 루이스 티퍼니Charles Louis Tiffany(1812-1902) 소유의 은과 보석회사인 티퍼니 상사는 일찍이 1870년대부터 일본과 이슬람의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티퍼니 상사의 제품은 파리의 가장 우수한 작품들과 경쟁하여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찬사를 받았으며, 프랑스의 훌륭한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원천들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었다.
잠자리와 잉어로 장식된 티퍼니 상사의 물주전자는 이 회사가 나중에 전기 아르누보 양식으로 널리 알려지는 일종의 자포니즘Japonism 양식의 디자인 제작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이 회사의 제품에는 시부이치四分一와 주석, 금, 은으로 만든 사큐도우(적동赤銅)는 일본의 합금 그리고 나뭇결을 의미하는 모쿠르네mokurne 장식기법을 사용하여 독특하며 값비싼 장식을 이용했다.
루이스 컴포트 티퍼니는 1892년 1900년에 티퍼니 스튜디오로 개칭한 티퍼니 유리장식 회사를 세웠다.
그는 유리를 소재로 작업하는 존 라 파지John La Farge(1835-1910)와 경쟁하면서 1894년에 그의 특허품인 손으로 불어 만드는 무지개빛 파브릴 유리Favrile Glass를 개발했다.
파브릴은 ‘손으로 만든’이란 의미의 옛 영어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뉴욕의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라 파지는 일본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화가로 명성을 쌓았으나 나중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했다.
티퍼니의 파브릴 유리는 상업생산품이었으나 손으로 만든 유리제품의 미와 광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티퍼니는 파브릴 유리로 전등과 꽃병을 포함한 여러 제품을 제작했으며, 자연스러운 기법과 아름다움을 빙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1891년과 1894년 사이에 뉴욕을 포함하여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방문한 빙은 티퍼니 작품의 특성을 장식의 목적을 위해 사용된 아무리 수단이 풍부하고 복잡하더라도 그것이 유리 자체에서 찾아진 데 있다면서 이를 미술에서 발전으로 칭찬했다.
빙은 미국에서 근대적 감각을 발전시킨 주요 인물들을 언급하면서 티퍼니를 포함시켰다.
그는 1894-95년에 보나르, 랑송, 툴루즈 로트레크를 포함하는 열한 명의 주요 프랑스 미술가들이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제작을 티퍼니에게 의뢰함으로써 미국 산업의 힘과 혁신을 프랑스의 미술과 결합시켰다.
이런 합작의 결과물은 빙에게 미국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빙에게 티퍼니는 새로운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열정적인 혁신가였다.
티퍼니는 1902년에 집안의 은과 보석회사인 티퍼니 상사의 디자인 감독이 되었고, 1904년부터 보석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의 보석은 가장 넓은 구매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