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현대미술관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진부한 것에 관심을 둔 미국의 1960년대 미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는 미술은 미국의 1960년대 미술의 답습이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 이유는 다양한 대중미술이 그 시기에 이루어졌고, 아티스트들이 대중이 원하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그 시기에 유행한 안전한 방법에서 탈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모험하려고 하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일하듯이 아티스트들도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창작한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미술의 질이 저하되었다.
대중의 취향이 1960년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미국의 1960년대 미술이 답습되는 이유가 된다.
미국의 1960년대 미술을 알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는 미술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팝 아트Pop art
1960년대 초는 평화와 부의 시대였지만 이는 외적으로 드러난 것이고 그 이면에는 정치적·사회적 병폐의 기미가 있었다.
1960년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데모하던 학생들이 무장한 경찰관들의 공격을 받고, 1963년에는 20만 명의 시민이 수도 워싱턴에 모여 백인과 흑인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다.
밥 딜런Bob Dylan(1941~)의 저항적인 노래는 불평에 가득 찬 젊은이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정부는 은밀히 더 많은 군사적 조력자들을 남베트남으로 보내 북쪽의 공산주의 침략자들에 대항하게 했다.
베를린에는 1961년 장벽이 세워져 독일을 둘로 나눴다.
미국의 팝 아트는 이런 평화와 부 그리고 분노의 분위기 속에서 등장했으며, 실재와 외양의 불일치는 그 시대의 특징이었다.
미국 팝 아트의 특징은 표면상의 냉정함으로 인해 주제에 대한 참여의식이 결여되어 보이는 점이다.
일견 거기에는 다다의 기교와 다다의 수법이 재생된 듯 보이나 그 이면에서 다다의 정신을 발견하기란 어려운데, 아티스트들이 반미술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 새로운 미술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표면상의 경박함을 보고 팝 아트를 비지성적인 것으로 판단하거나 표면상의 초탈함을 보고 참여의식의 결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팝 아트는 고도의 자의식 운동이었으며, 개념이 아티스트들에 의해 해체되었다.
앤디 워홀은 미술품이 수공의 산물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거했다.
많은 그의 작품이 형판 인쇄를 통해 캔버스에 직접 옮겨졌다.
미국 팝 아트의 뿌리는 존 케이지를 거쳐 다다와 마르셀 뒤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진부한 것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1930년대의 정경회화American Scene Painting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 미술 개념을 풍자하고 동시대 일상문화의 평범함과 통속성을 미술의 재료로 끌어들여 격상시킨 건 앞서 일어난 영국 팝 아트와 공유하는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팝 아트는 1960년대에 만연한 정신에 대한 진정한 표명이었으며 1970년대의 가장 특징적인 여러 장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미술사의 관점에서 볼 때 팝 아트의 주요 특징은 특히 리히텐슈타인과 존스의 작품에서와 같이 통속성과 평범함이라는 외관 뒤에 숨겨진 고도의 솜씨와 디자인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1923~97)은 상업미술, 만화주인공, 광고, 풍선껌과 아이스크림소다 등의 포장에 등장하는 통속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했다.
또한 세잔, 피카소, 몬드리안을 위시하여 모더니즘 대가들의 작품과 그리스 신전, 일몰광경, 풍경 등을 찍은 그림엽서, 변형된 1920년대의 아르데코 디자인을 풍자적으로 개작했으며, 키치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뛰어난 형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빼어난 팝 아티스트로 꼽힌다.
재스퍼 존스Jasper Johns(1930~)가 25살 때 그린 <국기 Flag>는 전설적인 작품이 되었는데, 미국 국기지만 특수한 디자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 볼 때 그것은 휘날리는 국기가 아니며 오히려 뛰어난 솜씨와 물감의 사용을 통해 훌륭한 회화적 특질을 지녔다.
<국기>, <과녁판>, <지도>, <숫자>, <색판> 등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존스는 그것들을 새로운 형태들로 창조하면서 그림이 사물의 모방이 아니라 사물 자체임을 제시했다.
상징적 이미지가 그의 손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가 담배파이프를 그린 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듯이 그런 효과를 작품에 응용했다.
마그리트는 “사물은 사물이 지닌 명칭이나 이미지대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으며, “그림에서 글자는 이미지와 같은 물질이다”라고 했는데, 존스가 그림에 사용한 글자는 마그리트의 미학과 관련이 있다.
앤디 워홀Andrew Warhola(1928~87)은 리히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만화와 광고를 선택했다.
어린 시절의 영웅이나 자신이 즐겨 먹고 마시던 상품을 선택했는데, 그것들은 뽀빠이, 낸시, 딕 트레이시, 배트맨, 슈퍼맨, 코카콜라, 브릴로 패드, 하인즈 케첩, 캠벨 토마토주스, 켈로그 콘푸로스트 등이었다.
그는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새로운 양식으로 디자인했다.
1962년 8월에 야구선수를 시작으로 영화배우 트로이 도나휴와 워렌 비티를 다음으로 그들의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뜨는 작업을 시작했다.
8월 5일 섹스 심벌인 마릴린 먼로가 약을 과량 복용하여 죽자 다음날 그녀의 초상을 실크스크린으로 떴다.
<100개의 마릴린이 하나보다 낫다 A Hundred Marilyns are Better than One>에서처럼 많은 수로 반복하기도 했다.
마릴린과 리즈의 초상화가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 밖에도 캠벨수프 깡통, 코카콜라 병, 모나리자, 엘비스 프레슬리, 재키 케네디 등을 실크스크린으로 떴다.
오브제나 개체들은 미술품 내에서의 반복되고 그리고 하나가 복제들을 대량 생산한다.
반복과 복제는 의미의 대상, 혹은 기호를 소멸시키는 걸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