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箕子의 동래東來
단재 신채호는 하우夏禹(하나라의 시조 우 임금)는 홍수를 다스린 공으로 왕이 되어 국호를 ‘하夏’라 하고 수두蘇塗(수림樹林이 수두가 되고, 수두는 神壇을 의미했고, 소도蘇塗는 수두의 음역이며, 단壇은 수두의 의역이고, 단군은 곧 ‘수두 하느님’의 의역)의 교敎를 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도산塗山에서 받은 신서神書를 홍법구주洪範九疇(우禹가 정한 정치 도덕의 아홉 원칙(혹은 법)으로 오행五行(수水, 호火, 금金, 목木, 토土), 오사五事(외모, 말,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 팔정八政(양식관리, 재정주관, 제사관리, 백성교육, 범죄단속, 손님대접, 양병 및 백성의 땅 관리), 오기五紀(해歲, 달月, 날日, 별辰, 역법曆法의 계산), 황극皇極(임금의 법도로 임금이 정치의 법을 세우는 것), 삼덕三德(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 계의稽疑(복卜과 서筮의 점을 치는 사람을 임명하고 그들에게 점을 치게 하는 것), 서징庶徵(비, 맑음, 따뜻함, 추움, 바람 및 계절의 변화) 및 오복五福(수壽, 복福,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과 육극六極(횡사요절, 질병, 근심, 빈곤, 악, 약함)이다)라 하며 신봉했다고 합니다. 그 후 하夏나라가 수백 년 만에 망하고, 그 뒤를 상商나라(은殷나라라고도 함)가 이어서 또 수백 년 동안 지속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를 이어 주周나라가 흥하여서는 주나라 무왕武王이 홍법구주를 배척했으므로 상나라의 왕족인 기자箕子가 홍법구주를 지어 무왕과 변론하고는 조선으로 도망쳐 왔는데, 『상서尙書』(한대漢代 이전까지는 서書라고 했으나 한 대에는 상서尙書라 했고, 송대宋代에 와서 서경書經이라 부르게 되었음)의 홍범편洪範篇이 곧 이에 관한 내용이다.
기자는 상나라 태정제太丁帝의 아들로 주왕紂王의 숙부입니다. 주왕의 폭정에 대해 간언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친 척 하여 유폐幽閉되었습니다. 상나라가 멸망한 뒤 석방된 뒤 주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고 상나라의 유민들을 이끌고 주나라를 벗어나 북으로 이주했다. 비간比干, 주왕(紂王)의 이복형 미자微子와 더불어 상나라 말기의 어진 삼인三仁으로 꼽힙니다. 이 기자가 한반도로 옮겨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신채호는 홍범편의 많은 구句들이 도산塗山 신서神書의 본문이고, 나머지는 모두 기자가 부연 설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내석우홍범구주 天乃錫禹洪範九疇”(이에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구주를 주었다)고 했는데, 이 말은 곧 기자가 단군檀君을 가리켜 천天이라 하고, 단군이 전수傳授한 것을 천天이 수授(주었다)했다고 한 것으로 이는 수두의 교의敎義에서는 단군을 천天의 대표로 보는 까닭이라고 말합니다.
신채호는 기자가 조선으로 도망쳐온 것은 상나라가 주나라에 의해 망함과 동시에 상나라의 국교인 수두교蘇塗敎가 압박을 받게 되었으므로 고국을 버리고 수두교의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채호는『한서漢書』에 거북이 문자를 등에 지고 낙수洛水에서 나오므로 우禹가 홍범을 널리 폈다고 했으나,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서 “하출도, 낙출서, 성인칙지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황하에서 그림圖이 나오고 낙수에서 글書이 나오자, 성인께서 그것을 본뜨셨다)고 하여 명백히 ‘하도낙서河圖洛書’가 둘 다 역易의 괘卦를 짓게 된 원인임을 적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낙서洛書가 나왔으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홍범을 지었다고 주장하는 것”(청나라 유학자 모기령毛奇齡의 학설)이야말로 어찌 허황된 망증妄證이 아니겠는가고 말합니다.
신채호는 『오월춘추吳越春秋』에 의하면 홍범오행洪範五行이 조선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라 했으므로 이는 믿을 수 있으며, 또 『초사楚辭』(16권으로 중국 전국시대의 굴원, 송옥 등에 의해 시작된 초나라의 운문을 한나라 유향劉向이 편집)에 의하면 ‘동황태일東皇太一’(태일太一은 ‘신한’이며 ‘신’은 최고 최상이란 뜻이다) 곧 단군왕검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호북湖北, 절강浙江 등지에 많이 유행했는데, 이곳은 대개 하夏나라의 우禹가 형산衡山에서 하늘에 제사지내고 도산에서 부루夫婁로부터 신서神書를 받은 곳이므로 수두교가 가장 유행한 지방이 되었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채호는 수두교가 중국 각지에 널리 퍼져있었다.『사기史記』 흉노전匈奴傳에 의하면 흉노도 조선과 같이 5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구리銅로 천제天祭 모습의 사람을 만들어 그것을 ‘휴도休屠’라 명명했으니 이는 곧 수두의 음역音譯이라고 말합니다. 휴도의 제사를 맡은 자를 휴도왕休屠王이라 했으며 이 또한 단군檀君이란 뜻과 비슷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휴도에서 삼룡三龍을 제사지냈는데, 용은 또 신을 가리킨 것이므로 삼룡은 곧 삼신三神이다. 따라서 흉노족도 수두교를 수입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고대의 종교와 정치는 구별이 없어서 종교상의 제사장이 곧 정치상의 원수이며, 종교가 전파되는 곳이 곧 정치상의 속지屬地이니 대단군大壇君 이래 조선의 교화가 중국, 흉노 등의 각 민족에게 널리 전포되었음을 근거로 정치상 강역疆域이 광대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