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夫婁의 서행西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옛 역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고기古記>입니다. <삼국사기>에는 <고기>가 20여 회 인용되고 있으며, <삼국유사>에도 10여 회 언급되었습니다. 특히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는 <고기>를 인용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히 중요합니다. <고기>란 11~12세기 고려에서 편찬한 역사서로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후기까지도 두루 유통되었습니다.

<고기>에서 이르기를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아들 부루夫婁(부루의 어머니 하백녀는 단군의 후后였음)를 보내어 도산塗山에서 하우夏禹(하나라의 시조 우 임금)를 만났다”고 했고,『오월춘추吳越春秋』(춘추시대의 오와 월 두 나라의 분쟁의 전말을 기록한 사서 6권으로 후한의 조엽趙曄이 엮었음)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있습니다.

 

당요唐堯(중국 고대의 성군으로 요堯임금) 때에 9년 홍수가 져서 요가 하우에게 이를 다스리라고 명했다. 그러나 우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여 매우 걱정하다가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이르러 백마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성공을 빌었다. 그러자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라 칭하면서 우에게 이르기를 ‘구산九山 동남쪽에 있는 도산에 신서神書가 있으니, 세 달 동안 재계하고 이를 내어보라’고 하므로 우가 그 말에 따라 금간옥첩金簡玉牒의 신서를 얻어 오행의 물을 통하게 하는 원리를 알아서 홍수를 다스리어 성공했다. 이에 주신州愼의 덕을 잊지 못하여 정전井田을 그리고 법률 및 도량형의 제도를 세웠다.

 

신채호는 현이玄夷는 조선 당시에 동, 서, 남, 북, 중 5부部를 다른 이름으로는 남藍, 적赤, 백白, 현玄, 황黃으로 불렀는데, 북부가 곧 현부玄部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인이 현부를 가리켜 현이玄夷라 한 것이며, ‘창수’는 곧 창수滄水이며, 주신은 중국 춘추시대의 문자에서는 항상 조선을 주신州愼, 숙신肅愼, 직신稷愼 혹은 식신息愼으로 번역했는데, 주신州愼은 곧 조선을 가리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채호는 <고기>에서의 부루는 『오월춘추』의 ‘창수사자蒼水使者’이니 이때에 중국 일대에 홍수의 재앙이 있었음은 각종 고사가 다 같이 증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대개 단군왕검이 중국의 수재水災를 구제해주기 위해 아들 부루를 창수사자로 임명하여 도산에 가서 하우夏禹를 보고 삼신오제교三神五帝敎의 한 부분인 오행五行(수水, 호火, 금金, 목木, 토土)의 설說을 전하고 치수의 방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우가 왕이 되고 나서 부루의 덕을 잊지 못하여 삼신오제의 교의敎義를 믿어 이를 중국 안에 전하여 퍼뜨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정전井田과 도량형度量衡 그리고 법률 또한 중국의 창작이 아니고 조선의 것을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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