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
1483년 4월 25일에 맺어진 계약서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암브로조와 이반젤리스타 데 프레디스와 계약을 맺고 근래 창설된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한 잉태 단체'를 위해 상 프란체스코 그랑데San Francesco Grande 교회 내의 예배당에 제단화를 그리기로 했다.
이 제단화는 파괴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세 쪽 제단화로 중앙 패널에 레오나르도가 유화로 그렸고 암브로조가 양쪽 날개 패널에 그렸으며 이반젤리스타는 금박을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업은 암브로조가 맡아 레오나르도에게 일부를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반은 라틴어 반은 이탈리아어로 작성된 계약서에 의하면 레오나르도가 중앙 패널에 그린 그림은 양편에 두 예언자가 있고 두 사람 사이에 동정녀 마리아가 있는 모습으로 마리아의 가운을 그는 진한 파란색에 금실로 무늬를 넣고 초록색으로 선이 나타나게 했다.
마리아의 머리 위 하느님의 의상도 마찬가지로 파란색과 금색이며 금색 후광을 한 천사들을 그는 그리스인의 양식으로 그려졌다.
아기 예수를 금색 플랫폼 같은 것 위에 있게 하고 배경은 다양한 색으로 산과 바위를 그려 넣었다.
계약서에는 이 패널을 필히 '순결한 잉태의 축제의 날'인 12월 8일 이전까지 그려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세 쪽 제단화 전체의 값은 200두카트였다.
유화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라서 계약서에는 그림을 10년 동안 보증해야 한다는 단서가 적혀 있다.
그리고 전문가들에 의해 작품을 심사한 후 좋은 평을 듣게 되면 보너스를 따로 지급하기로 되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이 시기에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 Madonna of the Rocks>를 그렸다.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란 제목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고 레오나르도가 붙인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도상의 후광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는 교회가 강요하는 교리에 무관심했으며 성서를 주제로 그릴 때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렸을 뿐 카톨릭의 신학적 해석에 개의하지 않았다.
그는 후광 같은 고풍의 장식을 불필요한 요소로 보았다.
이 작품에 나타난 의상은 특별한 종류의 천도 아니고 수를 놓은 장식도 없다.
바위를 배경으로 중앙에 마리아, 오른편에 천사가 있고 날개가 그늘로 인해 잘 보이지 않으며 중앙 아래 아기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보인다.
마리아의 한때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교회가 원하는 도상적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15세기 피렌체의 마돈나 그림이란 맥락에서 볼 때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는 매우 독특하다.
마돈나는 무릎을 꿇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고 옆모습이 아니라 앞모습이다.
자기 오른편에서 몸을 앞으로 굽히고 아기 예수를 향해 기도하는 아기 요한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왼손은 따로 움직이는 중이라서 공중에 떠 있다.
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는 축복의 제스처로 요한에 응답한다.
예수 옆에는 천사가 무릎을 꿇은 채 하느님의 아들을 보호하고 있다.
천사는 화면 속에서 유일하게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길 안내판처럼 오른손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다.
이상하게 생긴 배경의 바위 틈 사이로 바깥 세상의 빛이 환희 보인다.
주제가 새로울 뿐만 아니라 주제를 다룬 방법도 새롭다.
네 사람 모두 자유로운 동작을 하고 있으며 회화적인 빛의 효과로 어두운 배경을 통해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뵐플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그림은 건축적 뼈대를 하고 있다. 이 말은 화가들이 보여준 단순한 좌우대칭과는 전혀 다름을 뜻한다. 자유가 더 많고 동시에 법칙도 더 많다. 개별적 요소들은 전체 맥락에서 파악된다. 이것이야말로 16세기의 양식인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일찍이 16세기의 흔적을 선보였다.”
복음서에는 동방박사가 '유대인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음을 알고 헤로드 대왕을 찾아 왔을 때 헤로드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그 지역에서 태어난 남아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천사 가브리엘은 이 사실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알려주었고 두 사람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 가 헤로드가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그러나 성 누가에서 기인한 외경과 14세기 도미니크회 소속 프라 피에트로 카발카Fra Pietro Cavalca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마리아는 피난 중 천사 유리엘Uriel의 보호를 받던 성 엘리자베스와 아기 요한을 만난다.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 광야에서 지냈다.
레오나르도는 이 이야기에 근거해 그렸으며 마리아는 바위동굴 앞에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놀랍게도 산이 열리고 마리아 가족이 거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성서에는 훗날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베푼 것으로 적혀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역할이 반대가 되어 왼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요한을 오른쪽 예수가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천사가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다.
배경의 바위 속 갈라진 틈으로 흐르는 물은 정결의식 세례를 암시한다.
바위와 동굴은 전통적으로 피렌체 미술에서 원시적 자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레오나르도에게는 개인적인 기억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어렸을 적 캄캄한 동굴 속을 두려움을 갖고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호기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성화에 자신의 기억과 느낌을 삽입했다.
그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상을 행복에 젖어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오로지 아들의 행복과 안전만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거처와 놀이터를 마련해준다.
땅거미가 지고 있지만 어머니는 염려할 바가 전혀 없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의 대부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린 년대가 확실하지 않다.
왜 천사가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는지, 왜 관람자에게 이 장면을 부각시켰는지, '순결한 잉태'에 바친 예배당 제단에 왜 이런 그림을 걸려고 했는지 등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다.
각 도시마다 수호성인이 있는데, 요한은 피렌체를 보호하는 성인이다.
작품의 배경이 미완성의 <성 제롬>의 배경과 유사하고 베로키오의 양식이 아직 남아 있어 그가 밀라노로 오기 전 토스카니에서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가 이 작품을 예배당 제단을 위해 그리려고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그리고 있었고 밀라노에 와서야 완성시킨 것을 의미한다.
마돈나가 아기 예수와 요한과 함께 있는 장면은 당시로서는 별난 모티프였다.
계약서에는 그가 8개월 반만에 제단화를 그리기로 되어 있었고 이는 그에게는 매우 짧은 기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는 충분한 기간이지만 무엇을 그릴까 하고 구상하는 데는 짧은 기간이다.
그는 누군가가 이미 창안한 구성을 따르지 않았으며 주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 완전한 습작을 거친 후에야 제작했으므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그리기로 계약한 후 미리 구상했던 이것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레오나르도는 과격한 정신의 소유자였고 완벽주의자였다.
<바위동굴 속의 동정녀>는 두 점인데 한 점은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으로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고 런던의 국립화랑National Gallery에 소장되어 있는 다른 한 점은 레오나르도가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와 협력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루브르의 것보다 나중에 그려진 이것에서 암브로조의 솜씨가 부분적으로 발견된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현존하지 않는 또 다른 유사 작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불완전하게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레오나르도와 교회측은 20년 이상 소송으로 시비를 가렸다.
작품이 약속한 기간 내에 제작되지 않는 데다 세 사람이 완성시킨 작품을 교회측이 만족하지 못해 생긴 소송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추가로 100두카트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지만 25두카트만 받았을 뿐이다.
레오나르도만 계약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암브로조도 두 천사 음악가를 양쪽 날개 패널에 그리기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한 천사만 그렸으며 후광도 금박도 넣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전통을 아주 무시하지는 않았는데, 공간을 약간이나마 고딕 양식으로 처리했고 바위 위에 식물을 묘사한 것은 전통 상징주의를 따른 것이다.
배경의 담쟁이덩굴은 충성과 지속을 의미하고 화면 앞의 종려와 붓꽃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과 인류에게 평화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슬픔과 죽음의 꽃으로 알려진 아네모네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처형될 것을 예고해준다.
교회측은 레오나르도에게 예언자들에 에워싸인 동정녀를 그리라고 했지만 그는 예언적 표적과 상징적 요소들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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