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제롬> 

김광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레오나르도는 마돈나를 그린 후 <성 제롬 St. Jeorme>을 그렸다.
광야에서 제롬의 모습은 148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게 언제 그렸다는 기록은 없다.
'교회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제롬은 로마와 가울에서 살다가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 안디옥 근처 샬시스 광야로 가 수행자의 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베들레헴에서 말년을 보냈다.
그는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주석을 달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내어준 후 사자의 친구가 되었다.
제롬을 그린 화가들이 있는데, 비토레 카르파치오Vittore Carpaccio(1450/60?~1525/6)와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방에 있는 학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그렸으며 코시모 투라Cosimo Tura(1430년경~95)는 은둔자의 모습으로 그렸다.

레오나르도는 투리와 마찬가지로 제롬을 학자보다는 참회하며 고행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는 제롬을 나이를 초월한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바싹 마른 체구에 움푹들어간 눈으로 표현했다.
제롬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구주를 바라보듯 어디엔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사자가 앉아 있고 제롬의 오른손에는 돌이 들려 있는데, 자신의 가슴을 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실재 사자가 서양화에 그려진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으며 레오나르도는 실재 사자의 모습을 여기에 삽입했다.
메디치가와 몇몇 피렌체의 부유한 가문에서는 야생동물을 길렀고 사자 외에도 기린 등을 길렀다.
레오나르도가 누구를 위해 패널에 그리기 시작했으며 왜 미완성으로 남겼는지 알 수 없다.
머리 부분의 패널은 훼손된 채 18세기까지 남아 있다가 19세기에 와서야 보수되었다.
<베노이스 마돈나>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르게 남아 있다가 19세기 초에야 우연한 기회에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아저씨가 되는 추기경 페슈는 어느 날 로마의 거리를 걷다가 고물상 뒤켠에서 훌륭한 그림이 문에 그려진 작은 찬장을 발견했다.
그는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는 그것이 르네상스 대가의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찬장 문은 다름 아닌 <성 제롬>의 머리 부분이었다.
그것을 누군가가 찬장의 문으로 단 것이다.
페슈는 머리 부분을 떼어 낸 나머지 패널이 로마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알고는 여러 달을 수소문한 끝에 구두점에서 발견했는데, 구두수선공이 그것을 의자에 못을 박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 부분을 부착하여 유악을 발라 보수했으며 페슈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후인 1845년 바티칸이 소장하게 되었다.
이 그림에서 레오나르도가 인물을 묘사할 때 얼마나 해부학적 정확함을 추구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성 제롬의 목과 앙상한 갈비뼈가 실재 인체를 묘사했음을 알게 해준다.
이 작품은 절망한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처절한가를 알게 해준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29살이었거나 30살이었을 성 싶으며 더욱 더 외로움을 느낄 때였다.
그는 비탄의 글을 많이 적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글에서 "며칠 전에 말했듯이 난 완전히 의욕을 잃었고 ..."라고 적었다.
그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가 적은 노트를 보면 단어를 갖고 발음으로 뜻이 되게 했음을 보며 증조할아버지의 이름 디 세르 피에로di ser Piero를 di. s. p. ero로 적어 dispero라고 읽어 그 뜻이 '나는 절망한다'가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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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0.1권 대 영화 3.5편 

 

토요일 모대학 교수가 번역원고를 갖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인세로 받는 돈을 생각하면 힘이 들어 번역하고 싶지 않지만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어제도 모출판사에 번역원고를 넘긴 분이 와서도 유사한 말을 했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열악해서 두 분의 말씀은 지당하다.
그분의 말로는, 문공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일 년에 읽는 평균 책이 0.1권이며 영화는 3.5편이라고 했다.
책과 영화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책을 번역하는 동기는 미술 관련 전문서의 경우 돈이 우선이 아닌 경우가 보통이다.
주요 동기는 세이다.
하나는 번역서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경우.
다른 하나는 번역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공부가 되기를 원하는 경우.
또는 이 둘 모두이다.
돈이 목적이라면 소설이나 그 밖의 대중적인 책을 번역할 것이다.
전문서 번역자는 빛나는 이름과 공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일 년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전문서의 경우 글쎄 백 명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오백 명 가운데 한 명이 읽지 않나 싶다.
좋은 책을 기획해서 내놓으려고 해도 팔리지 않기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거의 일반이다.
문화적으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외국의 훌륭한 신간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가!

어제 온 분은 아주 중요한 예술철학책을 번역했는데 3년 걸렸다.
인세로 몇 백만 원을 받는다고 할 때 3년의 노동 댓가로는 너무 적은 돈이다.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여 천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해도 3년의 노동의 댓가로는 적은 돈이다.
운이 좋아 전문서가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부 지식인들은 사명감을 갖고 번역하거나 자신의 저서를 쓰고 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돈을 벌지 못해도 고된 일을 하고 있다.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마저도 없다면 이런 일을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식이 명예와 결부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모대학의 예술철학 교수는 아주 어려운 원서를 번역하느라 몹시 고생했다고 한다.
헌데 너무 전문적인 철학서라서 출판사가 초판 500부밖에 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그분에게 번역할 의사를 물었더니 고생한 댓가가 너무 적어 당분간은 번역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나중에 속사정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500부를 발행했으면 인세를 거의 받지도 못한 것이다.
500부를 다 팔아도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게 된다.
몇 년을 걸려 노력한 댓가로는 비참하다.

우리나라 대학의 질적 수준이 주요 60개 나라 가운데 꼴찌인 것은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들도 필요한 만큼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각 전문 분야에서 우니라나가 꼴찌를 하는 것은 전문서 출간 출판사의 존립을 위협한다.
앞서 언급한 세 분 모두 외국에 나가 고생하며 학위를 받고 돌아왔고 현재에도 몇 권의 번역서 내지는 저서를 쓴 분들이다.
그러한 고급 인력이 댓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영화는 3.5편을 보면서 책은 0.1권을 읽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최소한 1권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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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 

 

1483년 4월 25일에 맺어진 계약서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암브로조와 이반젤리스타 데 프레디스와 계약을 맺고 근래 창설된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한 잉태 단체'를 위해 상 프란체스코 그랑데San Francesco Grande 교회 내의 예배당에 제단화를 그리기로 했다.
이 제단화는 파괴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세 쪽 제단화로 중앙 패널에 레오나르도가 유화로 그렸고 암브로조가 양쪽 날개 패널에 그렸으며 이반젤리스타는 금박을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업은 암브로조가 맡아 레오나르도에게 일부를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반은 라틴어 반은 이탈리아어로 작성된 계약서에 의하면 레오나르도가 중앙 패널에 그린 그림은 양편에 두 예언자가 있고 두 사람 사이에 동정녀 마리아가 있는 모습으로 마리아의 가운을 그는 진한 파란색에 금실로 무늬를 넣고 초록색으로 선이 나타나게 했다.
마리아의 머리 위 하느님의 의상도 마찬가지로 파란색과 금색이며 금색 후광을 한 천사들을 그는 그리스인의 양식으로 그려졌다.
아기 예수를 금색 플랫폼 같은 것 위에 있게 하고 배경은 다양한 색으로 산과 바위를 그려 넣었다.

계약서에는 이 패널을 필히 '순결한 잉태의 축제의 날'인 12월 8일 이전까지 그려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세 쪽 제단화 전체의 값은 200두카트였다.
유화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라서 계약서에는 그림을 10년 동안 보증해야 한다는 단서가 적혀 있다.
그리고 전문가들에 의해 작품을 심사한 후 좋은 평을 듣게 되면 보너스를 따로 지급하기로 되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이 시기에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 Madonna of the Rocks>를 그렸다.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란 제목은 나중에 붙여진 것이고 레오나르도가 붙인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도상의 후광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는 교회가 강요하는 교리에 무관심했으며 성서를 주제로 그릴 때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렸을 뿐 카톨릭의 신학적 해석에 개의하지 않았다.
그는 후광 같은 고풍의 장식을 불필요한 요소로 보았다.
이 작품에 나타난 의상은 특별한 종류의 천도 아니고 수를 놓은 장식도 없다.
바위를 배경으로 중앙에 마리아, 오른편에 천사가 있고 날개가 그늘로 인해 잘 보이지 않으며 중앙 아래 아기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보인다.
마리아의 한때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교회가 원하는 도상적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15세기 피렌체의 마돈나 그림이란 맥락에서 볼 때 <바위동굴 속의 마돈나>는 매우 독특하다.
마돈나는 무릎을 꿇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고 옆모습이 아니라 앞모습이다.
자기 오른편에서 몸을 앞으로 굽히고 아기 예수를 향해 기도하는 아기 요한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왼손은 따로 움직이는 중이라서 공중에 떠 있다.
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는 축복의 제스처로 요한에 응답한다.
예수 옆에는 천사가 무릎을 꿇은 채 하느님의 아들을 보호하고 있다.
천사는 화면 속에서 유일하게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길 안내판처럼 오른손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다.
이상하게 생긴 배경의 바위 틈 사이로 바깥 세상의 빛이 환희 보인다.
주제가 새로울 뿐만 아니라 주제를 다룬 방법도 새롭다.
네 사람 모두 자유로운 동작을 하고 있으며 회화적인 빛의 효과로 어두운 배경을 통해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뵐플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그림은 건축적 뼈대를 하고 있다. 이 말은 화가들이 보여준 단순한 좌우대칭과는 전혀 다름을 뜻한다. 자유가 더 많고 동시에 법칙도 더 많다. 개별적 요소들은 전체 맥락에서 파악된다. 이것이야말로 16세기의 양식인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일찍이 16세기의 흔적을 선보였다.”

복음서에는 동방박사가 '유대인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음을 알고 헤로드 대왕을 찾아 왔을 때 헤로드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그 지역에서 태어난 남아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천사 가브리엘은 이 사실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알려주었고 두 사람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 가 헤로드가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그러나 성 누가에서 기인한 외경과 14세기 도미니크회 소속 프라 피에트로 카발카Fra Pietro Cavalca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마리아는 피난 중 천사 유리엘Uriel의 보호를 받던 성 엘리자베스와 아기 요한을 만난다.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까지 광야에서 지냈다.

레오나르도는 이 이야기에 근거해 그렸으며 마리아는 바위동굴 앞에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놀랍게도 산이 열리고 마리아 가족이 거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성서에는 훗날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베푼 것으로 적혀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역할이 반대가 되어 왼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요한을 오른쪽 예수가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천사가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다.
배경의 바위 속 갈라진 틈으로 흐르는 물은 정결의식 세례를 암시한다.

바위와 동굴은 전통적으로 피렌체 미술에서 원시적 자연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레오나르도에게는 개인적인 기억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어렸을 적 캄캄한 동굴 속을 두려움을 갖고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호기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성화에 자신의 기억과 느낌을 삽입했다.
그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상을 행복에 젖어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오로지 아들의 행복과 안전만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거처와 놀이터를 마련해준다.
땅거미가 지고 있지만 어머니는 염려할 바가 전혀 없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의 대부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린 년대가 확실하지 않다.
왜 천사가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는지, 왜 관람자에게 이 장면을 부각시켰는지, '순결한 잉태'에 바친 예배당 제단에 왜 이런 그림을 걸려고 했는지 등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다.
각 도시마다 수호성인이 있는데, 요한은 피렌체를 보호하는 성인이다.
작품의 배경이 미완성의 <성 제롬>의 배경과 유사하고 베로키오의 양식이 아직 남아 있어 그가 밀라노로 오기 전 토스카니에서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가 이 작품을 예배당 제단을 위해 그리려고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그리고 있었고 밀라노에 와서야 완성시킨 것을 의미한다.
마돈나가 아기 예수와 요한과 함께 있는 장면은 당시로서는 별난 모티프였다.
계약서에는 그가 8개월 반만에 제단화를 그리기로 되어 있었고 이는 그에게는 매우 짧은 기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데는 충분한 기간이지만 무엇을 그릴까 하고 구상하는 데는 짧은 기간이다.
그는 누군가가 이미 창안한 구성을 따르지 않았으며 주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 완전한 습작을 거친 후에야 제작했으므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그리기로 계약한 후 미리 구상했던 이것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레오나르도는 과격한 정신의 소유자였고 완벽주의자였다.

<바위동굴 속의 동정녀>는 두 점인데 한 점은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으로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고 런던의 국립화랑National Gallery에 소장되어 있는 다른 한 점은 레오나르도가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와 협력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루브르의 것보다 나중에 그려진 이것에서 암브로조의 솜씨가 부분적으로 발견된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현존하지 않는 또 다른 유사 작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불완전하게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레오나르도와 교회측은 20년 이상 소송으로 시비를 가렸다.
작품이 약속한 기간 내에 제작되지 않는 데다 세 사람이 완성시킨 작품을 교회측이 만족하지 못해 생긴 소송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추가로 100두카트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지만 25두카트만 받았을 뿐이다.
레오나르도만 계약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암브로조도 두 천사 음악가를 양쪽 날개 패널에 그리기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한 천사만 그렸으며 후광도 금박도 넣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전통을 아주 무시하지는 않았는데, 공간을 약간이나마 고딕 양식으로 처리했고 바위 위에 식물을 묘사한 것은 전통 상징주의를 따른 것이다.
배경의 담쟁이덩굴은 충성과 지속을 의미하고 화면 앞의 종려와 붓꽃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과 인류에게 평화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슬픔과 죽음의 꽃으로 알려진 아네모네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처형될 것을 예고해준다.
교회측은 레오나르도에게 예언자들에 에워싸인 동정녀를 그리라고 했지만 그는 예언적 표적과 상징적 요소들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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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어찌하여 성욕을 주시고 또 부끄러움을 주시나이까!


참으로 훌륭한 초상입니다.
순결하고도 청순한 처녀의 모습입니다.
배아트리체 첸지에게 그러 끔찍한 사연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다루어질 만한 일이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니 ...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인간은 동물에 불과할 때도 있어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윤리적인 줄 알면서도 성욕이 요구하는 행동을 취합니다.

노교수가 자신을 방문한 여제자를 갑자기 끌어안자 여제자는 놀라서 달아났답니다.
노교수는 하늘을 보고 이렇게 외쳤답니다.
"신이여, 어찌하여 성욕을 주시고 또 부끄러움을 주시나이까!"
이것은 오래 전에 읽은 시로서 나름대로 감동적이었지요.
아름다운 육체를 탐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우리는 윤리를 존중해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탐하지 않으려는 자연스럽지 못한 노력을 하는데, 이런 노력을 완수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욕보였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거부한 행동으로 비극입니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연민은 단순히 그녀의 모습이 예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그녀의 초상을 두려움에 싸인 그녀의 심리를 관람자의 연민으로 연결시킨 화가 귀도 레니의 탁월한 솜씨에서 비롯한다고 봅니다.
미술사에는 종종 이런 천재 화가가 등장합니다.
등을 약간 관람자를 향한 채 몸을 틀어 관람자를 바라보는 구성은 어쩜 레니가 먼저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후에 염두에 두고 알아보려고 합니다.
베아트리체가 16세기의 소녀였다면 레니가 25살 이전에 이 그림을 그린 것이 되는데, 젊은 나이에 이런 훌륭한 그림을 그렸다니 믿기지 않아요.

귀도 레니Guido Reni(1575~1642)는 17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할 만한 화가로서 색의 귀재이며, 우아한 선,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기할 만한 장점은 자연주의와 고전주의를 이상화시키는 것을 혼용한 것으로 이탈리아 회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황의 초상에서도 보듯 그는 모델의 심리를 사뭇 예리하게 드러나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매우 감성적입니다.
본능적인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볼로냐 태생의 레니는 로도비코 카르라치Lodovico Carracci로부터 수학했으며 1600년경 로마로 갔습니다.
이 그림은 1600년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로마에서 활약하면서 독자적인 대가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명암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모델을 극중의 한 장면으로 묘사했는데 카라바조 스타일의 명암을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민필름이 올리는 그림은 눈길을 끌게 합니다.

임형주의 'Once Upon a Dream' 잘 들었습니다.
모처럼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는 느낌입니다.
TV에 등장하는 가수들, 열린 음악회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다가 채널을 딴 데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추어 수준의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걸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임형주의 노래는 조금은 설익게 들리지만 우리나라 일반 가수들보다는 훌륭하고 몇 년 후 성숙되고 더욱 더 감성적인 노래를 부를 것으로 여겨집니다.

앞으로 좋은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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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 대우 향균세탁소


우리 집 앞에 '대우 세탁소'가 있다.
우리는 이 집에 세탁물을 맡긴다.
경상도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인데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오전 7시 이전에 문을 열고 자정 이전에 문을 닫는 걸 본 적이 없다.
일요일 하루만 쉬는데 어떤 일요일에는 오후 늦게 문을 연다.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부부가 모든 일을 한다.

우리 집 안방 창문에서 바라보면 남자가 다림질하는 걸 볼 수 있고 그 집 창문 때문에 자세히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아내가 수선하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아내에게 저 사람들은 지독히 일한다고 말하니 아내는 사돈 남 말 한다고 했다.
우리도 자정까지 일하는 게 보통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책을 쓴답시고 일하고 아내는 여기저기서 밀려든 원고를 속히 해치우려는 욕심에 집에 와서도 편집일을 계속한다.
일에 대한 시간에 있어서는 우리나 세탁소 부부나 피장파장인 것 같지만, 우리는 그래도 중간에 외출하기도 하고 방문객들과 외식을 하며 바둑TV도 보고 낮잠을 잘 때도 있다.

아무튼 우리 집 앞 대우 세탁소 부부는 억척스럽기가 소보다 더 하다.
세탁소 정면에 기다란 쇠파이프를 달아놓고 옷을 잔뜩 내다 햇볓에 말리기 보통이다.
보기에 좋지 않지만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그 건물과 옆 건물 사이의 통로를 자신의 마당인양 이것저것 소품들을 늘어놓고 때로는 그곳에서 고추도 말리고 배추를 절여 김치를 담구기도 한다.
세탁소는 5층 건물 아래층인데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왜 세탁소에 불평하지 않는 거냐고 물으니 아내의 말이 세탁소에서 그 건물을 샀다고 한다.
건물주가 주변 공간을 제맘대로 사용하는 셈이고 건물에 입주한 사람들은 감히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네 수퍼마켓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 세탁소 둘째 딸을 만났다.
옷차림이 꽤재재하다.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 들려 있다.
고깃간 아저씨에게 "삼겹살 만 원어치 주세요" 하고 말한다.
한 근 혹은 두 근을 사는 게 아니라 얼마치 달라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니 아내가 돈버는 사람은 돈에 맞추어 물건을 사는 거라고 마치 그런 사람의 심리를 안다는 듯이 말한다.

세탁소 부부는 주 6일 매일 17시간 이상씩 일하니까 돈 쓸 시간도 없다.
저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하고 생각해보지만 아마 두 사람은 돈이 느는 재미에 매일매일 뿌듯해 할 것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밖에서 몇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기고 기계소리도 들려 잠에서 깨어났고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보니 대우 세탁소에 새로운 커다란 간판을 걸고 있다.
아래층 건물 끝에서 끝까지 길게 그리고 폭이 높은 간판을 달고
건물 옆에 툭 튀어나오게 세로로 기다란 간판을 또 거는데 높이가 이층을 넘어갔다.
아무리 자기가 건물주라지만 2층의 세입자에게 불평을 주는 간판이다.
밤에는 불이 켜지는 간판이니 2층 세입자는 그 불빛 때문에 불편해 할 게 뻔하다.

시끄러운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잠잠해진다.
어차피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다시 내다봤다.
놀라운 사실은 간판에 큰 글자로 '향균세탁'이라고 적혀 있다.
앞 간판에도 세로로 긴 간판에도 '향균세탁'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아내에게 '향균세탁'이 뭐냐고 물었다.
항균이면 항균이지 향균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내가 창밖을 보다 남자가 가까이 서 있자 그를 불렀다.
남자는 연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매우 흐뭇한 표정이다.

"향균이 아니라 항균 아네요?" 하고 아내가 물었다.
난 아내에게 "뭐래?" 하고 남자의 응답을 궁금해 했다.
아내는 "아무 말 않고 그냥 싱글벙글거리기만 해" 하고 대답했다.
나는 아내에게 "균을 죽이는 세탁이 아니라 균이 향내가 나게 세탁을 하나보지?" 하고 말하고 우리 두사람은 웃었다.

우리 집 앞에는 대우 향균세탁소가 있다.

세탁소의 부부는 늘 웃는 얼굴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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