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0.1권 대 영화 3.5편
토요일 모대학 교수가 번역원고를 갖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인세로 받는 돈을 생각하면 힘이 들어 번역하고 싶지 않지만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어제도 모출판사에 번역원고를 넘긴 분이 와서도 유사한 말을 했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열악해서 두 분의 말씀은 지당하다.
그분의 말로는, 문공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일 년에 읽는 평균 책이 0.1권이며 영화는 3.5편이라고 했다.
책과 영화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책을 번역하는 동기는 미술 관련 전문서의 경우 돈이 우선이 아닌 경우가 보통이다.
주요 동기는 세이다.
하나는 번역서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경우.
다른 하나는 번역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공부가 되기를 원하는 경우.
또는 이 둘 모두이다.
돈이 목적이라면 소설이나 그 밖의 대중적인 책을 번역할 것이다.
전문서 번역자는 빛나는 이름과 공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일 년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전문서의 경우 글쎄 백 명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오백 명 가운데 한 명이 읽지 않나 싶다.
좋은 책을 기획해서 내놓으려고 해도 팔리지 않기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거의 일반이다.
문화적으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외국의 훌륭한 신간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가!
어제 온 분은 아주 중요한 예술철학책을 번역했는데 3년 걸렸다.
인세로 몇 백만 원을 받는다고 할 때 3년의 노동 댓가로는 너무 적은 돈이다.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여 천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해도 3년의 노동의 댓가로는 적은 돈이다.
운이 좋아 전문서가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부 지식인들은 사명감을 갖고 번역하거나 자신의 저서를 쓰고 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돈을 벌지 못해도 고된 일을 하고 있다.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마저도 없다면 이런 일을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식이 명예와 결부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모대학의 예술철학 교수는 아주 어려운 원서를 번역하느라 몹시 고생했다고 한다.
헌데 너무 전문적인 철학서라서 출판사가 초판 500부밖에 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그분에게 번역할 의사를 물었더니 고생한 댓가가 너무 적어 당분간은 번역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나중에 속사정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500부를 발행했으면 인세를 거의 받지도 못한 것이다.
500부를 다 팔아도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게 된다.
몇 년을 걸려 노력한 댓가로는 비참하다.
우리나라 대학의 질적 수준이 주요 60개 나라 가운데 꼴찌인 것은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들도 필요한 만큼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각 전문 분야에서 우니라나가 꼴찌를 하는 것은 전문서 출간 출판사의 존립을 위협한다.
앞서 언급한 세 분 모두 외국에 나가 고생하며 학위를 받고 돌아왔고 현재에도 몇 권의 번역서 내지는 저서를 쓴 분들이다.
그러한 고급 인력이 댓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영화는 3.5편을 보면서 책은 0.1권을 읽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최소한 1권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