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 대우 향균세탁소


우리 집 앞에 '대우 세탁소'가 있다.
우리는 이 집에 세탁물을 맡긴다.
경상도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인데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오전 7시 이전에 문을 열고 자정 이전에 문을 닫는 걸 본 적이 없다.
일요일 하루만 쉬는데 어떤 일요일에는 오후 늦게 문을 연다.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부부가 모든 일을 한다.

우리 집 안방 창문에서 바라보면 남자가 다림질하는 걸 볼 수 있고 그 집 창문 때문에 자세히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아내가 수선하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아내에게 저 사람들은 지독히 일한다고 말하니 아내는 사돈 남 말 한다고 했다.
우리도 자정까지 일하는 게 보통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책을 쓴답시고 일하고 아내는 여기저기서 밀려든 원고를 속히 해치우려는 욕심에 집에 와서도 편집일을 계속한다.
일에 대한 시간에 있어서는 우리나 세탁소 부부나 피장파장인 것 같지만, 우리는 그래도 중간에 외출하기도 하고 방문객들과 외식을 하며 바둑TV도 보고 낮잠을 잘 때도 있다.

아무튼 우리 집 앞 대우 세탁소 부부는 억척스럽기가 소보다 더 하다.
세탁소 정면에 기다란 쇠파이프를 달아놓고 옷을 잔뜩 내다 햇볓에 말리기 보통이다.
보기에 좋지 않지만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그 건물과 옆 건물 사이의 통로를 자신의 마당인양 이것저것 소품들을 늘어놓고 때로는 그곳에서 고추도 말리고 배추를 절여 김치를 담구기도 한다.
세탁소는 5층 건물 아래층인데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왜 세탁소에 불평하지 않는 거냐고 물으니 아내의 말이 세탁소에서 그 건물을 샀다고 한다.
건물주가 주변 공간을 제맘대로 사용하는 셈이고 건물에 입주한 사람들은 감히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동네 수퍼마켓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 세탁소 둘째 딸을 만났다.
옷차림이 꽤재재하다.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 들려 있다.
고깃간 아저씨에게 "삼겹살 만 원어치 주세요" 하고 말한다.
한 근 혹은 두 근을 사는 게 아니라 얼마치 달라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니 아내가 돈버는 사람은 돈에 맞추어 물건을 사는 거라고 마치 그런 사람의 심리를 안다는 듯이 말한다.

세탁소 부부는 주 6일 매일 17시간 이상씩 일하니까 돈 쓸 시간도 없다.
저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하고 생각해보지만 아마 두 사람은 돈이 느는 재미에 매일매일 뿌듯해 할 것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밖에서 몇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기고 기계소리도 들려 잠에서 깨어났고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보니 대우 세탁소에 새로운 커다란 간판을 걸고 있다.
아래층 건물 끝에서 끝까지 길게 그리고 폭이 높은 간판을 달고
건물 옆에 툭 튀어나오게 세로로 기다란 간판을 또 거는데 높이가 이층을 넘어갔다.
아무리 자기가 건물주라지만 2층의 세입자에게 불평을 주는 간판이다.
밤에는 불이 켜지는 간판이니 2층 세입자는 그 불빛 때문에 불편해 할 게 뻔하다.

시끄러운 소리가 한참 들리더니 잠잠해진다.
어차피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다시 내다봤다.
놀라운 사실은 간판에 큰 글자로 '향균세탁'이라고 적혀 있다.
앞 간판에도 세로로 긴 간판에도 '향균세탁'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아내에게 '향균세탁'이 뭐냐고 물었다.
항균이면 항균이지 향균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내가 창밖을 보다 남자가 가까이 서 있자 그를 불렀다.
남자는 연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매우 흐뭇한 표정이다.

"향균이 아니라 항균 아네요?" 하고 아내가 물었다.
난 아내에게 "뭐래?" 하고 남자의 응답을 궁금해 했다.
아내는 "아무 말 않고 그냥 싱글벙글거리기만 해" 하고 대답했다.
나는 아내에게 "균을 죽이는 세탁이 아니라 균이 향내가 나게 세탁을 하나보지?" 하고 말하고 우리 두사람은 웃었다.

우리 집 앞에는 대우 향균세탁소가 있다.

세탁소의 부부는 늘 웃는 얼굴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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