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의 ready made와 워홀의 <브릴로 상자>의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우선 백신님이 저의 글을 열심히 읽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사실 제 글에 대해 그동안 누구도 지적을 해주지 않아 과연 계속해서 글을 올리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몇 사람에게라도 공감을 주고 미술사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글쓰가의 보람은 있겠다 싶어 스스로 자위를 하곤 했습니다.

백신님의 글을 읽으니 서양미술사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 뿐 아니라 지적하신 점 또한 매우 타당하고 중요해서 앞으로 더욱 글을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글이 명확하지 않는 데 대해서 앞으로는 좀더 명확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뒤샹의 ready made와 워홀의 <브릴로 상자>의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백신님이 언급한 대로 뒤샹의 변기는 상점에서 구입한 기성품입니다.
워홀의 상자는 목공을 시켜 만든 나무 상자에 원래 브릴로 상자를 모방하여 색을 칠한 것입니다.
하나는 기성품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기성품을 제작한 것입니다만, 후자 역시 예술에 있어서의 '만들기'와는 무관한 것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뒤샹과 워홀의 작품 모두의 중요한 점은 평범한 것의 '변용 transformation'에 있습니다.
기성품과 기성품의 모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미술품이 될 수 없는 평범한 오브제를 변용의 의미를 담아 미술품으로 소개한 것이 문제를 야기시킨 것입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고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면 미학학회에서 단토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학회에서도 그럴 생각이 있습니다. 언제가 될른지는 나중에 의논해야 사항이지만 ...

만약 단토가 우리나라에 오신다면 제가 그분에게 질문할 사항이 바로 앞서 언급한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은 <브릴로 상자>를 예술의 종말을 알리는 작품으로 꼽았는데,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이미 종말을 고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단토가 워홀의 작품을 꼽은 이유는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소개될 때만 해도 그린버그의 '모던 회화론'이 나오기 훨씬 전인 데다 '변용'이라는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 <브릴로 상자>라고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론됩니다.
저는 뒤샹의 변기가 <샘>이란 작품명으로 이미 변용되었다고 보지만 그분은 그렇게 주장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여하튼 나무상자에 비누상자 포장을 그대로 디자인해서 책색한 것은 자연을 따라 모방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으로서의 '만들기'와는 다름니다.
변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만들기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레디메이드와 이런 만들기가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을 단토의 논리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토는 1964년 4월 맨해튼 이스트 74가의 스테이블 갤러리에 가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조각 전시회를 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린버그의 후예들이 비평에 크게 관여할 때라서 워홀의 작품은 진정으로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때였습니다.
그때 단토는 그 작품이 미술품임을 확신했으며 <브릴로 상자>가 슈퍼마켓의 저장실에 있는 브릴로 상자 사이의 그 어떠한 지각적 차이도 사물과 예술 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할 때 양자 사이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심원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단토는 말했습니다. "모든 철학적 물음들이 그러한 형식을 갖는다고 주장해왔다. 즉 겉으로는 식별불가능한 두 가지가 상이한, 실로 대단히 상이한 철학적 범주들에 속할 수 있는 것이다."

단토의 말에서 그분 자신도 레디메이드와 워홀의 작품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도 워홀의 변용을 위한 만들기를 과거 미술에 대한 개념으로서의 '만들기'와는 달리 취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단토의 말에서 이런 점은 더욱 확연해집니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술작품은 언제나 예술작품으로 확인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철학적 문제란 왜 그것이 예술작품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워홀과 함께 예술작품이 이래야 한다는 특별한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브릴로 상자처럼 보일 수도 있고 스프 깡통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단토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예술의 종말로 보지 않은 이유는 변용으로서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중요한 쟁점으로 꼽는 것은 기성품과 기성품의 모방의 차이가 아니라 변용의 가능성이 워홀의 작품에 와서야 분명해졌음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술의 종말은 '변용'에 있고 이의 조짐이 미술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타 예술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음의 단토의 말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납니다.

"워홀은 이런 심원한 발견을 이룩한 예술가 집단들 중의 한 명에 불과하다. 음악과 소음의 구별, 무용과 몸동작 사이의 구별, 문학과 한갓된 글쓰기 사이의 구별도 워홀의 돌파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며 그것과 모든 면에서 평행선을 그으면서 진행되었다."

양식으로서의 '만들기'가 더 이상 미술품이 되는 조건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워홀의 상자 만들기는 '양식 style'으로서의 만들기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그 점을 중요하개 여기지 않으며 다만 레디메이드와 같이 평범한 오브제라는 점에서 동등하게 생각합니다.
뒤샹은 미술품이 되는 데 '만들기'가 아무런 조건이 되지 않음을 강조했다면 워홀은 똑같이 만들어서 '변용'이 미술품 자체의 의미라고 주장한 것이 다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레디메이드에도 변용의 의미가 내포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기회가 되면 단토에게 질문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1963년 워홀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매우 놀라울 정도로 미래를 예견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의 양식이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다음 주면 추상표현주의자나 팝아티스트, 아니면 사실주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엇인가를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워홀은 모든 양식들이 동등하게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것보다 나은 양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이 말은 모든 예술이 동등하면서 무차별적으로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좋음과 나쁨이 올바른 양식에 속하는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예술의 종말 이후에나 가질 수 있는 사고로 단토는 그래서 워홀을 예술의 종말을 알리는 언행을 한 인물로 꼽았습니다.

백신님,

백신이란 이름을 처음 대하는 것 같은데 미술 관련 글도 종종 올리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저의 글에 대해 지적할 점이 있으면 서슴치 마시고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올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예술의 종말 이후> 읽고나서 소감을 적어주시면 또한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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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솔한 절충주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널리 퍼드린 찰스 젱크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 The Language of Post-Modernism』(1975)와 유사한 여러 권의 저서에서 국제 현대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경솔한 절충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원천으로 되돌아갔으며 종종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색채와 장식을 도입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1925~)는 “순수함보다 잡종적인 요소”를 좋아하고 “뚜렷한 단일체”보다 “복잡한 활력”을 선호한다고 했다.
건축 외의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공통점이 없는 양식들을 비슷하게 혼합하거나 역설적 방법으로 의식적인 문화적 참조들을 나타내는 회화와 조각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된다.
벤투리는 『건축에서의 복잡성과 모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1966)에서 가치 있는 공식이 있다면 이는 “‘순수한’ 것보다는 혼성된 것, ‘단정한’ 것보다는 절충된 것, ‘명료한’ 것보다는 ‘모호한’ 요소들이 ‘흥미로운’만큼 외고집스럽다”고 기술했는데, 이 공식을 적용하면 우리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줄리앙 슈나벨과 데이비드 샐리의 그림, 그리고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포스트모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 홀저의 작품과 로버트 맹골드의 그림에는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벤투리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의는 현재의 미술 전체를 설명하는 데 문제가 있다.

7. 사전적 정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크리스 발딕은 『간추린 옥스퍼드 문학 용어 사전』(1990)에서 적절한 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적 상황을 가리키며, 특히 TV, 광고, 상업디자인, 팝비디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와 양식들의 과잉을 특징으로 하고 이런 의미에서 ... 포스트모더니티는 파편적 감각, 절충주의적 향수,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simulacra(모조품), 뒤죽박죽인 피상성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전통적으로 가치를 지녔던 깊이, 일관성, 의미, 독창성, 진본성과 같은 특성들이 공허한 신호들의 무작위적인 혼돈 가운데 사라지거나 용해된다. ...
모더니스트 미술가와 작가가 신화, 상징, 혹은 복잡한 형식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얻고자 애썼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는 경박한 냉담성을 지닌 현대적 실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혼돈을 환영하며 의식적으로 ‘깊이 없는’ 작업을 선호한다.
이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을 ‘고급’과 ‘저급’ 문화들 간의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기며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멸조로 포스트모던의 지지자들을 ‘포스티posties’라고 부르는 회의론자들은 이 용어를 상업 자본주의의 화려함과 도덕적 결핍에 대한 학문의 무책임한 도취증상으로 여긴다.

“파편적 감각, 절충주의적 향수,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 뒤죽박죽인 피상성의 문화”로서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작품에서 전통적 가치들이 “공허한 신호들의 무작위적인 혼돈 가운데 사라지거나 용해”되고 “경박한 냉담성을 지닌 현대적 실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혼돈을 환영하며 의식적으로 ‘깊이 없는’” 경솔한 실험이 반복된다면 이런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의 문화 현상을 규정하는 용어라기보다는 부분적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현재의 미술을 매우 좁은 의미로 확증한 것으로 보여진다.

8. 예술의 종말 이후로서의 동시대

모던으로부터 동시대로의 전이를 예술의 종말과 그 이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는 미국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견해이다.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 After the End of Art』(1995)는 유명하며 미국뿐 아니라 유럽 미술사가와 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필독해야 할 가치 있는 책이다.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면서 예술이 종말을 맞은 1960년대 이후부터 현재를 동시대Contemporary란 말로 지칭한다.
‘동시대’의 가장 명확한 뜻은 단순히 현재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대 미술은 현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술이다.

1970년대는 돌이켜보면 미술사가 길을 잃은 시기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추상표현주의가 1962년에 종말을 고했다면 그 후 몇몇 양식들이 선두를 다투었는데, 그것들은 컬러 필드, 하드 에지,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즘, 팝 아트, 옵 아트, 미니멀리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였으며, 그 밖에도 리처드 세라, 린다 벵글리스, 리처드 터틀, 이바 헤세, 바리 르 바, 그리고 개념주의 미술을 포함하여 영국의 새로운 조각New Sculpture으로 불리운 것들이다.


[아르테 포베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으로 동시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컬러 필드의 영향을 받아 추상 회화나 모노크롬 회화를 추구한 ‘상황 Situation’ 미술과 개념 미술 및 일부 미니멀 아트와 유사하다.
아르테 포베라는 전통적인 미술 형식이나 도상의 사용을 거부하였고 체계화되지 않은 해프닝을 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미술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는 아르테 포베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르테 포베라는 주로 미술 매체의 물질적인 속성 및 미술 재료의 변하기 쉬운 성질과 관련이 있는 근본적으로 반상업적이고, 불안정하며, 평범하고 반형식적인 미술을 표방한다.
실재 재료와 현실에 대한 미술가의 참여를 중시하며 또 그러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민감하고 지적이며 교묘하고도 사적인 강렬한 방법으로 해석해내려는 미술가의 시도를 강조한다.” ]

[새로운 조각: 1980년대 초에 개최된 일련의 전시회, 특히 1981년 런던의 현대 예술 협회와 브리스톨에 있는 아르놀피니 화랑에서 열린 ‘오브제와 조각’전을 통해 등장한 영국 조각가들의 작품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들의 작품에 구체적인 공통점은 없었지만 대체로 추상 조각을 제작했으며 산업 재료와 폐품을 사용했다. 더러 인간을 암시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양식들이 우열을 다투었더라도 1970년대에는 새로운 것이 부재한 시기로 보였다.
그때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가 1980년대 초에 등장했다.


[신표현주의: 에너지즘, 네오-야수주의, 격렬하고 폭력적인 또는 거친 회화에 대한 명칭으로 프랑스에서는 자유 구상Figuration Libre, 이탈리아에서는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 등으로 알려졌다.
재료를 처리하는 거친 방식이나 강렬한 감정적 주관성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이다.
슈나벨을 선두로 몇몇 신표현주의 미술가들은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관습적인 기법을 모두 무시하고 일부러 형편없게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드 페인팅 Bad Painting’이란 말이 신표현주의 작품 일부에 적용되었다.
독일의 신표현주의자들은 종종 ‘새롭고 거친 사람들 Neue Wilden’로 불리었다.
신표현주의의 대표적 독일 미술가들로는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1938~), 라이너 페팅Rainer Fetting(1949~), 외르크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1945~),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1945~), 베른트 코베를링Bernd Koberling(1938~),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upertz(1941~), 펭크(랄프 빙클러)A. R. Penck(Ralf Winkler(1939~)가 있고, 이탈리아 미술가들로는 산드로 키아Sandro Chia(1946~),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1952~), 엔초 쿠치Enzo Cucci(1949~), 밈모 팔라디노Mimmo Paladino(1948~)가 있으며, 미국 미술가들로는 로버트 쿠시너Robert Kushner(1949~), 데이비드 샐리David Salle(1952~), 줄리앙 슈나벨Julien Schnabel(1951~)이 있다.

신표현주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향이 발견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이내 퇴폐한 회화로 인식되고 말았다.
주지할 점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모던 아트와 동시대 미술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때 포스트모던이란 말이 등장했는데 이는 너무 힘 있는 말이며 동시대 미술의 어떤 부분을 매우 좁은 의미로 확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벤투리가 말한 것 같이 분명한 양식에 대한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단토는 포스트모던이란 말을 배척하면서 1960년대 중반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어 이는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의 종식을 의미하는 작품이라면서 바사리에 의해 개념화된 미술이 종말을 고하는 사건으로 보고 그 이후의 미술을 ‘역사 이후의 미술’로 보았다.
워홀의 작품이 소개된 그때만 해도 그의 작품이 그런 엄청난 의미를 지니며 파장을 불러올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4.19 혁명을 예로 들면 4월 19일 그날의 학생들의 정치적 반발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깊은지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날의 의거가 우리나라 민주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심어주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들어서야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서양에서 600년 동안이나 인식되어 온 예술의 개념을 분쇄시키는 의미가 있는 작품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서양의 예술 개념은 플라톤의 『공화국 The Republic』과 그 밖의 저서에서 언급된 모방이었다.
그리스 예술의 대부분 특히 조각과 드라마가 모방적mimetic이었으므로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으로 본 것은 당연했다.
시각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 사고에도 침투되었으며 최초의 미술사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 전기작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74)는 자기 시대의 대가들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미켈란젤로를 절정에 달한 모방적 기교의 진보적 완전함으로 보았다.
그리스인이 모방을 예술적 이상으로 본 이래 바사리를 통해 르네상스를 거쳐 1960년대에까지 이같은 인식이 아무런 회의도 없이 고정 관념으로 전해졌다.
이는 서양인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예술의 울타리를 치고 비서양인의 예술을 예술로 간주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면 아시아, 아프리카, 오대양의 예술에서는 예술의 이상을 모방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고갱을 비롯하여 유럽의 미술가들이 유럽 외의 예술을 동경했던 것은 모방이 예술적 이상이 아니라는 데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시각 예술이 모방과 긴밀한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서양에 알려졌을 때 “시각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미술 자체란 무엇인가?” 하는 집요한 의문이 생겼다.

요컨대 실재에 대한 정확한 모방이 아니더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래 예술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속박받아야 할 그 무엇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미술이 시각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사물에 대한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다시 말하면 어떤 것에 대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없는 가운데 완전 추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술가들이 알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은 미술가가 만들지 않더라도 미술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미술품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녀야 하는 속성이 없다는 것 달리 말하면 미술품이 반드시 보여지도록 혹은 되어지도록 하게 하는 특정한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의 단순한 도구도 미술품이 될 수 있었으며, 상품을 담은 상자도 작품이 되었고, 길에 버려진 고무조각 짜투라기들도 리처드 세라에 의해 작품이 되었다.
이런 사고가 20세기 말 보편적으로 나타나자 단토는 이를 예술철학사가 종말에 이른 것으로 보았다.
서양인을 오래 지배한 예술은 모방이라는 즉, 모방의 특성을 지녀야만 예술이라는 개념이 붕괴된 것이다.
이는 또한 서양 미술사가 종말을 고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던 아트는 20세기에 가장 확실하게 각기 자체의 용어로 미술을 정의하고자 시도 경합한 동향들 중 견줄 나위없이 두드러진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모더니즘 최고 성과물 가운데 하나는 선언문일 것이다.
이는 미적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요구 안에서 작용하는 미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과 같이 미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명령하는 예술적 문서나 다름 없었다.
모더니즘의 시기에는 선언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에는 미술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농후했다.
예술의 종말 혹은 미술사의 종말은 미술 운동들의 종말 또는 선언문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완전한 예술적 다원주의의 시기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서양 중심의 미술 울타리가 걷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지구상의 어느 지역의 미술도 편입된, 다시 말하면 미술의 울타리가 모두 걷혀진 상태의 미술이 용인되고 인정되는 시기에 진입되었음을 뜻한다.
동시대란 이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9. 그렇다면 미술은 정의되지 않는가?

현재 미술의 정의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그룹은 미술이 정의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의 대표적인 인물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다른 그룹은 정의된다는 주장이지만 이들의 정의는 분분하며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게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미술이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정의가 최소한으로 약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정의로 단토는 미술품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고 그 의미가 작품에서 물질적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오브제가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변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오브제에 읽을거리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요컨대 이는 미술비평의 소관으로 미술품으로 존재하려면 관람자가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이 따라야 한다.
비평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것이다.

이제 수십 점에 달하는 작품을 함께 감상할 터인데 설명 없이 보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이 작품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동시대 미술이 전문적이 되었고 자기 지시성selt-referentiality을 지니고 있어 비평가의 식견이 미술품을 규정하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동시대의 비평은 작품에 대한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에도 작용한다.
과거에는 작품을 성립하는 판단 기준이 작품이 제작되기 전에 미리 존재했지만 동시대에는 작품을 규정하는 기준을 미술가가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단토가 동시대 미술이 철학의 문제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미술이 전문적이고 자기 지시적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철학과 상보적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품의 구성은 눈으로 파악되지만 그 의미는 눈으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를 캐는 데 철학적 추리 능력이 요구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오늘날 미술가들이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이론 없이 눈으로만 파악되는 미적 풍성함만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지만 작품들에서 창작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시각적으로 자극하는 오브제들은 많이 보여주지만 정작 창작의 의미는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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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 2010-09-1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요 필요부분부터 발췌해서 목록화하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동시대 미학 1
아서 단토 지음, 이성훈 외 옮김 / 미술문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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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양에게


<예술의 종말 이후>를 원서와 대조해서 읽고 있다니 제대로 공부한다고 생각됩니다.
단토는 미국 철학학회 회장과 미학학회 회장을 엮임했고 컬럼비아 대학 철학과 교수였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이른에 다달아 은퇴하셨습니다.
맨하튼에 살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발간되는 예술철학 관련 서적에서 유럽 학자들이 단토를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거의 20년째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 김주영씨의 말로는 책방에 가면 단토의 책이 여러 권 잔뜩 쌓아 있어 그분의 영향을 실감한다고 하더군요.
그분은 프랑스어로 번역된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우리말 번역서를 읽고 있습니다.

정화양,
이 책을 열심히 읽고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난 16일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3주 정도 지내다 돌아오려고 합니다.
부모 형제가 그곳에 계시므로 내게는 뉴욕이 고향이나 다름 없습니다.
내게는 고향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이번에도 신간을 많이 구입하려고 합니다.
연례 행사이지만 신간 중에서 일부는 우리말로 번역됩니다.
작년에 거져온 신간 중 일부는 곧 번역되어 나올 예정입니다.
한양대 반성완 교수님이 거의 탈고 상태인데, 그분의 번역은 완벽하고도 아름답습니다.
문학 전공자라서 우리말로 옮기는 데 그분을 따라갈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그분이 백낙청씨와 함께 번역한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꼭 읽도록 하세요.
창작과 비평사에서 4권으로 출간한 고전입니다.
두 분의 번역이 완벽해서 자신을 갖고 권할 수 있는 책입니다.
예술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본 책인데 하우저가 처음 그런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술을 흔히 독자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술도 사회적 산물입니다.
우리나라 예술이 우리나라 사회의 산물이듯이 모든 예술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단토의 또 다른 저서를 이미 계약했는데, 그동안 번역자를 물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없다고 모두 물러섭니다.
나는 번역보다는 내 저서를 쓰는 것이 더 좋아 번역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뉴욕에서 돌아오면 아무래도 단토의 저서 한 권을 번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의 예술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중요해서 우리나라 독자가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지요.

하우저, 단토 등 대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대가를 이해하면 시시껄렁한 이론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사회 각 분야가 그러하듯 학문에도 사이비 이론이 난무합니다.
그런 걸 귀담아 듣다가는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좋은 책을 선별해 읽을 줄만 알아도 학문의 정도를 걷는 출발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쪼록 학업에 성과가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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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동시대 미학 1
아서 단토 지음, 이성훈 외 옮김 / 미술문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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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영님에게,

우선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고 있다니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매우 중요한 책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토의 미학을 알아야 contemporary art에 관해 자신있게 논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아서 단토의 저작은 전문 철학서와 예술철학 및 미술비평서로 양분할 수 있는데,
전문 철학서로는
<Nietzsche as Philosopher>, <Mysticism and Morality>, <Narration and Knowledge>, <Connections to the World: The Basic Concepts of Philosophy> 등이 있습니다.

예술철학 및 미술비평서로는 <예술의 종말 이후> 외에도
<Beyond the Brillo Box: The Visual Arts in Post-Historical Perspective>, <Encounters & Reflections: Art in the Historical Present>, <Playing with the Edge: The Photographic Achievement of Robert Mapplet!horpe>, <The Artworld>(이것은 논문), <The Philosophical Disenfranchisement of Art>, <The State of the Art>,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Philosophizing Art>, <The Madonna of the Future> 등이 있습니다.

2000년에 발간된<The Madonna of the Future>는 다원주의 미술세계에 관한 에세이들을 묶은 책으로 이것이 박혜영님이 궁금해 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987년에 출간된 <The State of the Art>는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이 담긴 책으로 1958~64년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 그리고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반 고흐, 레온 갈럽Leon Golub, 리 크래스너Lee Krasner(잭슨 폴록의 아내입니다),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 로버트 머더웰Robert Motherwell, 카라바조Caravaggio, 드 쿠닝De Kooning, 칸딘스키Kandinsky, 앙리 루소Henri Rousseau,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등등 많은 작가들의 위상과 작품에 관한 예리한 비평입니다.

단토의 예술철학 및 비평서로는 <예술의 종말 이후>가 한국어 첫 번역서입니다.
우선 한 권이라도 나와서 다행합니다.
단토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셈이니까 말입니다.

박혜영님,

단토에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습니다.
아니 박혜영님이 내게 고마워해야 하겠지요?
그분의 대부분 원서는 내게 있으므로 혹시 읽다가 궁금한 점 있으면 질문하세요.
능력이 되는 대로 답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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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치의 다음 이야기


노구치는 1949년 양차세계대전 사이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브란쿠시를 꼽으면서 그가 자연의 사물을 외관보다는 보편적 본질을 추상으로 나타낸 데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의 동기가 되고 있다면서 자기 자신은 사물들의 자체 관계를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세계가 원자와 돌발적인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실존이 그런 공간 안에 있는 것이며, 존재 자체가 불확실하다고 했는데, 이는 당시 물리학의 발견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우주의 운동에 부분적으로 불확정적인 요인이 작용함을 인식한 미학으로 들린다.
브란쿠시와 마찬가지로 노구치는 실재하는 사물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었므로 그의 작품은 정확하게 어떤 사물에서 형태를 취했는지 알 수 없고 사물의 본질을 그가 어떻게 형상화했는가를 부여준다.
조각과 그 밖의 예술은 늘 달라져야 하지만 불변하는 실재의 모습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49년에 말했다.

“의미가 예술의 범위에 속한다면 질서 또한 예술에 속한다. 삶의 주요 의미가 모호하고obscure 혼돈스럽다chaotic면 예술이 잔인함brutality만이 있다고 지적하지 않는 가운데 조화를 통해 질서를 세울 필요가 있다. 나는 조각이 특별히 조화로서의 공간과 인간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질서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질서는 공간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며 물질의 실재reality of matter 혹은 정신의 상태state of mind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정신은 질서이며 질서가 없으면 사물들은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런 사고는 몬드리안의 미학과 상통하는 것으로 몬드리안은 자연을 불운한 사건으로 보았다.
자연을 무질서로 보고 예술이 자연을 질서 있게 정돈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노구치의 미학 역시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조각을 ‘공간의 예술 art of apaces’로 본 것이다.
에너지의 집중, 비이성적이지만 의미를 강조, 이런 것들이 조각의 미학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감지할 수 없는 빈 공간voids, 공간의 압력과 중단이 노구치가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들이다.
“조각이 돌덩이로 이루어졌을 경우 돌과 돌 사이의 공간, 돌과 인간 사이의 공간, 그것들 사이의 의사소통과 관조”가 그의 주요 관심사이다.

노구치는 유기적 형태를 인위적으로 변형시키는 데 있어 질서와 기하를 중시했다.
그는 기술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여겼는데, 조각을 제작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술을 축적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기술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나친 기술이 오히려 창조를 억제시키므로 기술보다 중요한 것으로 작가의 의도를 꼽았고 기술은 이차적인 요소로 보았다.
조각이 인류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되었다면서 초기의 발전된 기술이 상상력을 일으켜 새로운 형태를 만들게 했고, 실재를 환기시켰으며, 또한 본래의 인간의 한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다고 했다.
사물의 기본적 원리를 형태화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1898~1986)의 수평적 요소와 브란쿠시의 새가 지닌 수직적 요소를 진보된 형태로 지적했다.
최근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재료와 연장이 나와 조각의 영역이 범람하며 많은 재료와 연장의 발견은 매우 반길만 하지만, 그것들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개념으로 진일보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수공예로 전락하거나 상업적 장식으로 혐오감을 주는 조각이 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고 보았다.
그는 취미와 재료의 선택 그리고 궁극적으로 조각에 대한 우리의 개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조각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수공예 혹은 상업적 장식인지를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 노구치의 주장이고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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