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솔한 절충주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널리 퍼드린 찰스 젱크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 The Language of Post-Modernism』(1975)와 유사한 여러 권의 저서에서 국제 현대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경솔한 절충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원천으로 되돌아갔으며 종종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색채와 장식을 도입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1925~)는 “순수함보다 잡종적인 요소”를 좋아하고 “뚜렷한 단일체”보다 “복잡한 활력”을 선호한다고 했다.
건축 외의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공통점이 없는 양식들을 비슷하게 혼합하거나 역설적 방법으로 의식적인 문화적 참조들을 나타내는 회화와 조각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된다.
벤투리는 『건축에서의 복잡성과 모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1966)에서 가치 있는 공식이 있다면 이는 “‘순수한’ 것보다는 혼성된 것, ‘단정한’ 것보다는 절충된 것, ‘명료한’ 것보다는 ‘모호한’ 요소들이 ‘흥미로운’만큼 외고집스럽다”고 기술했는데, 이 공식을 적용하면 우리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줄리앙 슈나벨과 데이비드 샐리의 그림, 그리고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포스트모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 홀저의 작품과 로버트 맹골드의 그림에는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벤투리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의는 현재의 미술 전체를 설명하는 데 문제가 있다.
7. 사전적 정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크리스 발딕은 『간추린 옥스퍼드 문학 용어 사전』(1990)에서 적절한 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적 상황을 가리키며, 특히 TV, 광고, 상업디자인, 팝비디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와 양식들의 과잉을 특징으로 하고 이런 의미에서 ... 포스트모더니티는 파편적 감각, 절충주의적 향수,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simulacra(모조품), 뒤죽박죽인 피상성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전통적으로 가치를 지녔던 깊이, 일관성, 의미, 독창성, 진본성과 같은 특성들이 공허한 신호들의 무작위적인 혼돈 가운데 사라지거나 용해된다. ...
모더니스트 미술가와 작가가 신화, 상징, 혹은 복잡한 형식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얻고자 애썼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는 경박한 냉담성을 지닌 현대적 실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혼돈을 환영하며 의식적으로 ‘깊이 없는’ 작업을 선호한다.
이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을 ‘고급’과 ‘저급’ 문화들 간의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기며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멸조로 포스트모던의 지지자들을 ‘포스티posties’라고 부르는 회의론자들은 이 용어를 상업 자본주의의 화려함과 도덕적 결핍에 대한 학문의 무책임한 도취증상으로 여긴다.
“파편적 감각, 절충주의적 향수,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 뒤죽박죽인 피상성의 문화”로서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작품에서 전통적 가치들이 “공허한 신호들의 무작위적인 혼돈 가운데 사라지거나 용해”되고 “경박한 냉담성을 지닌 현대적 실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혼돈을 환영하며 의식적으로 ‘깊이 없는’” 경솔한 실험이 반복된다면 이런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의 문화 현상을 규정하는 용어라기보다는 부분적 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현재의 미술을 매우 좁은 의미로 확증한 것으로 보여진다.
8. 예술의 종말 이후로서의 동시대
모던으로부터 동시대로의 전이를 예술의 종말과 그 이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는 미국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견해이다.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 After the End of Art』(1995)는 유명하며 미국뿐 아니라 유럽 미술사가와 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필독해야 할 가치 있는 책이다.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면서 예술이 종말을 맞은 1960년대 이후부터 현재를 동시대Contemporary란 말로 지칭한다.
‘동시대’의 가장 명확한 뜻은 단순히 현재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대 미술은 현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술이다.
1970년대는 돌이켜보면 미술사가 길을 잃은 시기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추상표현주의가 1962년에 종말을 고했다면 그 후 몇몇 양식들이 선두를 다투었는데, 그것들은 컬러 필드, 하드 에지,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즘, 팝 아트, 옵 아트, 미니멀리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였으며, 그 밖에도 리처드 세라, 린다 벵글리스, 리처드 터틀, 이바 헤세, 바리 르 바, 그리고 개념주의 미술을 포함하여 영국의 새로운 조각New Sculpture으로 불리운 것들이다.
[아르테 포베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으로 동시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컬러 필드의 영향을 받아 추상 회화나 모노크롬 회화를 추구한 ‘상황 Situation’ 미술과 개념 미술 및 일부 미니멀 아트와 유사하다.
아르테 포베라는 전통적인 미술 형식이나 도상의 사용을 거부하였고 체계화되지 않은 해프닝을 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미술 비평가 제르마노 첼란트는 아르테 포베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르테 포베라는 주로 미술 매체의 물질적인 속성 및 미술 재료의 변하기 쉬운 성질과 관련이 있는 근본적으로 반상업적이고, 불안정하며, 평범하고 반형식적인 미술을 표방한다.
실재 재료와 현실에 대한 미술가의 참여를 중시하며 또 그러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민감하고 지적이며 교묘하고도 사적인 강렬한 방법으로 해석해내려는 미술가의 시도를 강조한다.” ]
[새로운 조각: 1980년대 초에 개최된 일련의 전시회, 특히 1981년 런던의 현대 예술 협회와 브리스톨에 있는 아르놀피니 화랑에서 열린 ‘오브제와 조각’전을 통해 등장한 영국 조각가들의 작품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들의 작품에 구체적인 공통점은 없었지만 대체로 추상 조각을 제작했으며 산업 재료와 폐품을 사용했다. 더러 인간을 암시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양식들이 우열을 다투었더라도 1970년대에는 새로운 것이 부재한 시기로 보였다.
그때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가 1980년대 초에 등장했다.
[신표현주의: 에너지즘, 네오-야수주의, 격렬하고 폭력적인 또는 거친 회화에 대한 명칭으로 프랑스에서는 자유 구상Figuration Libre, 이탈리아에서는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 등으로 알려졌다.
재료를 처리하는 거친 방식이나 강렬한 감정적 주관성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이다.
슈나벨을 선두로 몇몇 신표현주의 미술가들은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관습적인 기법을 모두 무시하고 일부러 형편없게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드 페인팅 Bad Painting’이란 말이 신표현주의 작품 일부에 적용되었다.
독일의 신표현주의자들은 종종 ‘새롭고 거친 사람들 Neue Wilden’로 불리었다.
신표현주의의 대표적 독일 미술가들로는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1938~), 라이너 페팅Rainer Fetting(1949~), 외르크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1945~),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1945~), 베른트 코베를링Bernd Koberling(1938~),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upertz(1941~), 펭크(랄프 빙클러)A. R. Penck(Ralf Winkler(1939~)가 있고, 이탈리아 미술가들로는 산드로 키아Sandro Chia(1946~),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1952~), 엔초 쿠치Enzo Cucci(1949~), 밈모 팔라디노Mimmo Paladino(1948~)가 있으며, 미국 미술가들로는 로버트 쿠시너Robert Kushner(1949~), 데이비드 샐리David Salle(1952~), 줄리앙 슈나벨Julien Schnabel(1951~)이 있다.
신표현주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향이 발견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이내 퇴폐한 회화로 인식되고 말았다.
주지할 점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모던 아트와 동시대 미술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때 포스트모던이란 말이 등장했는데 이는 너무 힘 있는 말이며 동시대 미술의 어떤 부분을 매우 좁은 의미로 확증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벤투리가 말한 것 같이 분명한 양식에 대한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단토는 포스트모던이란 말을 배척하면서 1960년대 중반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어 이는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의 종식을 의미하는 작품이라면서 바사리에 의해 개념화된 미술이 종말을 고하는 사건으로 보고 그 이후의 미술을 ‘역사 이후의 미술’로 보았다.
워홀의 작품이 소개된 그때만 해도 그의 작품이 그런 엄청난 의미를 지니며 파장을 불러올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4.19 혁명을 예로 들면 4월 19일 그날의 학생들의 정치적 반발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깊은지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날의 의거가 우리나라 민주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심어주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들어서야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서양에서 600년 동안이나 인식되어 온 예술의 개념을 분쇄시키는 의미가 있는 작품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서양의 예술 개념은 플라톤의 『공화국 The Republic』과 그 밖의 저서에서 언급된 모방이었다.
그리스 예술의 대부분 특히 조각과 드라마가 모방적mimetic이었으므로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으로 본 것은 당연했다.
시각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 사고에도 침투되었으며 최초의 미술사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 전기작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74)는 자기 시대의 대가들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미켈란젤로를 절정에 달한 모방적 기교의 진보적 완전함으로 보았다.
그리스인이 모방을 예술적 이상으로 본 이래 바사리를 통해 르네상스를 거쳐 1960년대에까지 이같은 인식이 아무런 회의도 없이 고정 관념으로 전해졌다.
이는 서양인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예술의 울타리를 치고 비서양인의 예술을 예술로 간주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왜냐면 아시아, 아프리카, 오대양의 예술에서는 예술의 이상을 모방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고갱을 비롯하여 유럽의 미술가들이 유럽 외의 예술을 동경했던 것은 모방이 예술적 이상이 아니라는 데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다.
시각 예술이 모방과 긴밀한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서양에 알려졌을 때 “시각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미술 자체란 무엇인가?” 하는 집요한 의문이 생겼다.
요컨대 실재에 대한 정확한 모방이 아니더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래 예술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속박받아야 할 그 무엇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미술이 시각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사물에 대한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다시 말하면 어떤 것에 대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없는 가운데 완전 추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술가들이 알게 되었다.
마르셀 뒤샹은 미술가가 만들지 않더라도 미술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미술품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녀야 하는 속성이 없다는 것 달리 말하면 미술품이 반드시 보여지도록 혹은 되어지도록 하게 하는 특정한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의 단순한 도구도 미술품이 될 수 있었으며, 상품을 담은 상자도 작품이 되었고, 길에 버려진 고무조각 짜투라기들도 리처드 세라에 의해 작품이 되었다.
이런 사고가 20세기 말 보편적으로 나타나자 단토는 이를 예술철학사가 종말에 이른 것으로 보았다.
서양인을 오래 지배한 예술은 모방이라는 즉, 모방의 특성을 지녀야만 예술이라는 개념이 붕괴된 것이다.
이는 또한 서양 미술사가 종말을 고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던 아트는 20세기에 가장 확실하게 각기 자체의 용어로 미술을 정의하고자 시도 경합한 동향들 중 견줄 나위없이 두드러진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모더니즘 최고 성과물 가운데 하나는 선언문일 것이다.
이는 미적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요구 안에서 작용하는 미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과 같이 미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명령하는 예술적 문서나 다름 없었다.
모더니즘의 시기에는 선언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에는 미술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농후했다.
예술의 종말 혹은 미술사의 종말은 미술 운동들의 종말 또는 선언문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완전한 예술적 다원주의의 시기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서양 중심의 미술 울타리가 걷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지구상의 어느 지역의 미술도 편입된, 다시 말하면 미술의 울타리가 모두 걷혀진 상태의 미술이 용인되고 인정되는 시기에 진입되었음을 뜻한다.
동시대란 이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9. 그렇다면 미술은 정의되지 않는가?
현재 미술의 정의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그룹은 미술이 정의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의 대표적인 인물이 비트겐슈타인이다.
다른 그룹은 정의된다는 주장이지만 이들의 정의는 분분하며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게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미술이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정의가 최소한으로 약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정의로 단토는 미술품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고 그 의미가 작품에서 물질적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오브제가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변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오브제에 읽을거리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요컨대 이는 미술비평의 소관으로 미술품으로 존재하려면 관람자가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이 따라야 한다.
비평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것이다.
이제 수십 점에 달하는 작품을 함께 감상할 터인데 설명 없이 보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이 작품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동시대 미술이 전문적이 되었고 자기 지시성selt-referentiality을 지니고 있어 비평가의 식견이 미술품을 규정하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동시대의 비평은 작품에 대한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에도 작용한다.
과거에는 작품을 성립하는 판단 기준이 작품이 제작되기 전에 미리 존재했지만 동시대에는 작품을 규정하는 기준을 미술가가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단토가 동시대 미술이 철학의 문제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미술이 전문적이고 자기 지시적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철학과 상보적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품의 구성은 눈으로 파악되지만 그 의미는 눈으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를 캐는 데 철학적 추리 능력이 요구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오늘날 미술가들이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이론 없이 눈으로만 파악되는 미적 풍성함만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지만 작품들에서 창작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시각적으로 자극하는 오브제들은 많이 보여주지만 정작 창작의 의미는 읽혀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