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보티첼리
수세기 동안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Alessandro di Mariano Filipepi, 1444/5~1510)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지만 현재 콰트로첸토의 가장 사랑받는 화가이다.
보티첼리란 이름의 뜻은 '작은 몸통 little barrel'인데 그의 형이 살이 쪄서 붙여진 별명으로 그에게도 사용되었다.
이 별명이 그의 성이 되었다.
보티첼리는 베로키오의 작업장에 들어오기 전에 필리포 리피로부터 수학했으며 그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양식은 15세기 후반 예술가들의 것들과 유사한 데가 있는데 마사초의 과학적 자연주의에 반하는 고딕 양식으로 감성적이고 여성적 우아함과 장식적 요소가 두드러졌다.
보티첼리가 자신의 작업장을 가지고 독립한 것은 1465년경이었다.
그는 독립하고 곧 메디치가로부터 주문을 받아 일했는데, 로렌처의 어머니 루크레지아 토르나부오니를 위해 <유딧 Judith>를 그렸으며 그녀의 남편 피에로 고토소를 위해 <위대한 마돈나 Madonna of the Magnificat>와 <동방박사의 경배 Adoration of the Magi>를 그렸다.
그는 <위대한 마돈나>를 마돈나가 찬송가를 적고 있는 장면으로 묘사하면서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를 각각 열여섯 살과 열두 살의 소년들로 마리아가 쓰고 있는 책을 붙들고 있게 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그가 프라 리포로부터 받은 영향이었다.
<동방박사의 경배>에서는 코시모가 마돈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그렸으며, 그 아래 피에로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고, 열일곱 살의 로렌초가 칼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는데, 열일곱 살이면 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나이이다.
보티첼리는 메디치가의 세 세대를 그림에 삽입한 것이다.
피에로가 사망한 후 로렌초와 줄리아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티첼리를 후원했으며 보티첼리가 그린 유명한 초상화는 줄리아노와 줄리아노의 애인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를 그린 것이다.
보티첼리는 대부분의 생애를 피렌체에서 보냈고, 유일하게 피렌체를 떠난 기간은 1481~2년으로 시스티나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서였으며, 그는 그때 페루지노, 로젤리, 기를란다요와 함께 나란히 작업했다.
그가 시스티나 예배당을 장식한 것만 봐도 당시 그가 유명한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의 주문을 받고 <프리마베라 Primavera>,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Pallas and the Centaur> 세 점을 그렸으며 현재 모두 우피치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보티첼리는 종교적?신화적 그림을 주로 그렸지만 초상화도 그렸고 단테의 『신곡 Divine Comedy』을 위해 펜으로 드로잉도 많이 그렸다.
그는 작업장을 운영했는데 그의 제자들 중 가장 유명한 화가는 필리포 리피Filippino Lippi(1457년경~150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