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필리포 리피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1406년경~69)는 버려진 아이로 카르미네 수도원에서 자랐고 1421년에는 수사가 될 것을 맹세했다.
도미니칸 소속 프라 안젤리코와는 달리 그는 마지못해서 하는 탁발수사였으며 수녀 루크레지아 부티와 사랑에 빠져 스캔달을 일으켰고 부티는 그의 아들 필리피노Filippino(1457년경~1504)와 딸 알레산드라Alessandra를 낳았다.
필리피노는 열두 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그후 보티첼리에게서 배운 후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리피는 부티와의 결혼을 허락받았지만 여전히 서명을 할 때 수사로서 '형제 필리포스 Frater Philippus'라고 했다.
바사리에 의하면 리피가 화가가 된 것은 마사초가 카르미네 교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부터였다.
리피가 1437년에 그린 <타르퀴니아 마돈나 Tarquinia Madonna>는 마사초의 영향을 받아 그린 것이다.
그러나 1440년부터 그의 양식에는 변화가 생겼으며 좀더 선을 사용하면서 장식적 모티프를 선호했다.
그는 <동정녀와 아이 Virgin and Child>의 주제에 집착했으며 이를 둥근 원형tondi에 그렸으며 이런 포맷에 그린 최초의 화가들 중 한 명이었다.
프레스코 화가인 그의 유명한 작품은 1452~66년 프라토 대성당에 그린 성 스데반과 세례 요한의 일대기이다.
리피는 메디치의 후원을 받았으며 사기행위로 투옥되어 고문을 받을 때 메디치가의 도움을 받았다.
리피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로 많은 화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보티첼리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아마 그로부터 수학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