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회화에 관한 논문>
레오나르도는 무려 5천 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글을 썼다.
이것들은 그의 생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지지 못했지만 글의 양으로 보면 그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저술가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그는 생전에 120종에 달하는 글을 쓰고 있다고 했지만 현존하는 것은 50종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진 것들로 절반은 흘린 글씨로 왼손잡이가 동양식으로 쓴 것처럼 보인다.
레오나르도가 쓴 글은 양적으로 보면 과학과 미술에 관한 내용이 반반이며 미술에 관한 내용은 1651년에 <회화에 관한 논문>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당시 출판사가 편집을 했지만 그이 중복되고 짜임새가 없으며 문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레오나르도의 글이 내용에서는 우수했지만 문장력에 있어서는 매우 취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회화를 회화로서만 익힐 수 있다는 당시의 사고를 부정하고 화가가 되려는 사람은 다른 화가의 작품을 모사하기보다는 자연을 연구하고 알아야 한다면서 들에 나가 다양한 오브제들을 바라보고 각 오브제들의 상이함을 알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화가가 해부학, 원근법, 명암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지각과 경험을 중시한 것으로 그의 사고의 근거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전래된 "우리의 모든 지식은 지각 안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란 문구에 요약되어 있었다.
그는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경험적 판단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해놓은 증명들이, 경험 없이 얻어낸 판단으로 존경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어떤 이들의 권위에 맞서는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나를 비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내 작업이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스승인 순수하고 단순한 경험의 소산임을 알지 못하는 태도이다."
레오나르도에게 있어 회화의 확실성은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첫째, 가장 정확하게 사물을 파악할 수 있는 눈에 의존하고, 둘째, 눈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은 실제 척도를 따라 판단을 검증하며, 셋째, 기하의 원리를 이용하는 데 있었다.
시를 옹호하는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 그는 "회화가 자연의 상을 시보다 더 진실되게 나타내기 때문에 더 낫다"고 주장했으며, 회화와 시의 관계를 실재와 그림자의 관계에 비유했다.
그는 또 회화가 조각보다 우수함을 역설하면서 조각이 색채나 대기의 원근을 나타낼 수 없으며 발광체나 투명체를 비롯하여 구름과 폭풍우, 그 외의 많은 것들을 묘사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회화를 일종의 과학으로 보았으면서도 그는 예술적 모방은 과하적 행위이지만 단순히 기계적인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이론에 근거하는 실천을 역설했다.
그는 말했다.
"학문적 바탕 없이 실제 작업에만 힘을 쏟는 사람들은 키나 나침판을 갖지 않고 바다로 나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선원들과 같다. 실천은 늘 확고한 이론에 근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