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치에서 태어난 천재 사생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1452년 4월 15일 토요일 오후 10시 30분 토스카니의 마을 빈치의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빈치Vinci는 빈치Vinchi에서 유래했는데 빈치는 토스카니 시골 사람들이 엮는 골풀로 빈치오Vinchio로 불리우는 개울가에서 자랐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성을 골풀과 동일시하여 <흰담비를 안은 여인>과 <모나리자>에서 골풀을 사용했다.
빈치는 피렌체에서 약 32km 떨어진 마을이다.
빈치는 우리나라 읍에 해당한다.
에트루리아에 속했다가 훗날 로마 영토가 된 이 마을은 몬탈바노와 아르노 강 계곡 사이에 위치하며 구이디 공작의 중세 성과 산타 크로체 교회, 양로원과 몇 채의 집이 있었다.
빈치의 옛 법령 부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빈치는 성이다. 이 성의 역사는 거인들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인들은 열광적으로 거만하게 하늘에 대항했고 결국 하늘의 벌을 받아 큰 치욕을 당했다."

빈치가 피렌체의 영토가 된 것은 13세기 중엽이다.
기능적이고 상징적인 요새 형상을 한 빈치는 아몬드처럼 생겨 군사적, 종교적 힘의 타워를 돛대로 삼은 한 척의 배 안에 건설된 성처럼 보였다.


레오나르도의 할아버지 안토니오Antonio di Ser Piero da Vinci(1372년경~1465)는 고조할아버지의 공증기록부 마지막 페이지 아래에 "1452년 손자가 태어났는데, 나의 아들 세르 피에로Ser Piero의 아이이다"라고 적었다.
아이가 사생아일 경우 아이 어머니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 것은 상례였다.
세르 피에로는 레오나르도가 태어나던 해 결혼했으며 피렌체의 부르주아 딸 열여섯 살의 알비에라 디 조반니 아마도리Albiera di Giovanni Amadori를 아내로 맞아 피렌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피에로의 나이 스물다섯이었고 직업이 공증인으로 사업차 피사, 피스토이아, 피렌체 등지에 출장을 가곤 했다.

레오나르도의 어머니는 카테리나Caterina로 알려졌으며 아이를 출산할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두 살로 농부의 딸이었다.
카테리나의 아버지는 소작농이었거나 여인숙의 머슴이었던 것 같다.
카테리나의 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레오나르도를 낳고 얼마 후 별명이 아카타브리가Accattabriga로 알려진 걸핏하면 싸움질하는 안토니오 디 피에로 디 안드레아 디 조반니 부티Antonio di Piero di Andrea di Giovanni Buti란 사람과 결혼하여 빈치에서 불과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캄포 제피Campo Zeppi에 살림을 차렸다.
카테리나는 곧 딸 피에라를 낳았고 딸을 셋 더 낳은 후 아들을 낳았다.
이들 다섯은 레오나르도의 의붓여동생 남동생이 되는 셈이다.
카테리나가 레오나르를 낳고서도 서둘러 결혼을 한 걸 보면 피에로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카타브리가는 빈치에 익히 알려진 인물로 1449년과 1453년 사이에 마을 근처에서 도기 굽는 일을 했으며 성 베드로 수도원의 도기 가마공노릇을 했다.
그의 가족은 콤포 제피에 농지를 갖고 있었는데 안토니오 디 리오나르도의 땅과의 경계선에 위치했고 리오나르도는 레오나르도의 할아버지들과 관련이 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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