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의 함의

 

 

음양의 함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음은 산의 북쪽이고 양은 산의 남쪽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음양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과 햇빛이 비치는 곳을 가리킨다. 이것이 음양의 원시적인 의미였으며, 그 후 음양의 함의는 점차 확대되어 다음의 몇 가지로 귀납된다.

음양은 일월(日月), 천지(天地), 수화(水火), 혈기(血氣), 혼백(魂魄), 남녀(男女) 등과 같이 상호 상대(相對)하는 두 개의 실체를 가리킨다.

음양은 무형의 이기(二氣)를 가리킨다. 음양은 종종 기와 연용(連用)되었다.

음양은 사물의 대립, 통일하는 속성이다. 노자(老子)는 가장 먼저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고 있다.”고 하여 만물에 모두 음양의 속성이 함축되어 있음을 인식했다. 『관자管子』와 『장자莊子』에서는 진일보하여 음양과 동정(動靜)을 연관시키고 음양 속성의 함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음양 속성의 함의를 완성하고 보편적으로 사용한 것은 『주역周易』에서였다. 『주역周易』에서 음양은 비록 일월(日月), 천지(天地), 건곤(乾坤) 등의 유형의 실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 강유(剛柔), 진퇴(進退), 왕래(往來), 동정(動靜), 합벽(闔闢, 닫고 엶), 한서(寒暑, 차가움과 뜨거움), 신굴(伸屈, 펼침과 구부림), 존비(尊卑), 길흉(吉凶), 귀천(貴賤), 험이(險易, 지형의 험난함과 평탄함), 대소(大小), 득실(得失), 원근(遠近) 등의 상대적인 속성을 가리킨다.

 

 

오향의 함의

오행(五行)은 오재(五材) 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가지의 기본 물질을 가리킨다. 오행에 곡(穀)을 더하여 육부(六府)라고도 한다. 오행은 오성(五性) 즉, 윤하(潤下, 水, 물질을 윤택하게 해서 낮게 흐름), 염상(炎上, 火, 불꽃을 뿜으며 타오름), 곡직(曲直, 木, 굽음과 곧음), 종혁(從革, 金, 자유롭게 변형), 가색(稼穡, 土, 곡식 농사)은 다섯 가지의 기본 기능속성을 가리킨다.

水는 본래 물을 가리켰는데, 후에 철학적 개념이 되어 윤하潤下와 한랭寒冷의 속성이나 기능이 있는 사물 혹은 현상을 가리키게 되었다. 火는 본래 불을 가리켰는데, 후에 철학적 개념이 되어 열기를 띠면서 위로 향하는 속성이나 기능이 있는 사물 혹은 현상을 가리키게 되었다. 木은 본래 나무를 가리켰는데, 후에 철학적 개념이 되어 발생(發生), 조달(條達), 곡직(曲直)의 속성이나 기능이 있는 사물 혹은 현상을 가리키게 되었다. 金은 본래 금속을 가리켰는데, 후에 철학적 개념이 되어 생양(生養)과 화육(化育)의 속성이나 기능이 있는 사물 혹은 현상을 가리키게 되었다.

오행은 오덕(五德)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다섯 가지의 도덕규범을 가리킨다. 신(信) 대신에 성(聖)을 오덕(五德)에 포함시킨 학자도 있었다. 오행은 또한 오류(五類) 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가지의 분류 원칙을 가리킨다. 오행을 분류기준으로 사용함으로써 복잡하고 헤아리기 어려웠던 사물들을 간단명료하게 했다. 오간(五干), 오지(五支), 오계(五季), 오시(五時), 오기(五氣), 오화(五化), 오미(五味), 오장(五臟), 오부(五腑), 오규(五竅), 오체(五體), 오진(五津), 오수(五腧), 오원(五元), 오덕(五德), 오적(五賊), 오마(五魔), 오성(五星), 오음(五音), 오성(五聲), 오방(五方). 오성(五性), 오곡(五穀), 오과(五果), 오축(五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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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동그랗게 생긴 정과형精科形

 

 

57세의 장씨는 얼굴이 둥글게 생긴 여자로 키도 약간 작으면서 몸매도 보기 좋게 통통하여 첫 인상이 매우 부드러워보였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어요. 원래부터 누어있기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요즘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몸이 무거우면서 도통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소화가 자 안 돼서 그런지 트림도 자주 나오구요. 또 다리랑 무릎도 자구 아파서 저녁이면 뜨거운 물로 찜질을 하고 있거든요.” 장씨처럼 얼굴이 동그라면서 통통한 체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식습관에 문제가 있어 조성태는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럼요. 아프기 전에는 뭘 먹어도 다 꿀맛 같았어요. 석 자 가시를 삼켜도 목구멍에 걸리지 않고 꿀꺽 넘길 정도였죠. 근데 요샌 통 입맛이 없어요. 먹어도 소화도 잘 안 되구요”하고 대답했습니다. 혹시 저녁에 많이 먹지 않느냐고 묻자 “아무래도 아침보다 저녁을 많이 먹게 되요. 아침엔 식구들 챙겨주느라 제대로 식사할 시간이 없거든요. 저녁이면 아이들도 모두 오니까 맛있는 반찬도 하게 되고, 그러니까 과식하는 일도 종종 생기죠” 하고 대답했습니다. 장씨는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없지만 냉면을 무척 즐겨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물은 언제나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찬물을 마신다고 했습니다. 늘 몸속에 열이 있는 것 같아 뜨거운 물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장씨는 형상의학에서 볼 때 전형적인 양명형陽明形이었습니다. 양명형은 체질상 위열胃熱이 많아서 배고픈 걸 잘 참지 못하고 과식하게 되므로 비위가 상하기 쉽습니다. 과식하므로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나고 트림도 자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장육부 중에 비위는 팔다리(사지)를 주관하므로 무릎과 다리가 아픈 것도 비위가 상해서 생겨난 증상입니다. 조성태는 그녀에게 손상된 비위 기능을 보하고 음혈을 돋우기 위해 육군자탕六君子湯에 황기, 산조인을 가해서 처방했습니다. 육군자탕은 만성 위카타르, 위약증胃弱症, 위궤양으로 심장하부心臟下部가 결리고 식욕부진, 피로가 오며, 손발이 차고 빈혈 증세를 보일 때 사용합니다. 또한 병을 앓은 뒤의 식욕부진, 소아허약자의 감기나 신경쇠약에도 사용됩니다. 위카타르catarrh of the stomach는 위점막의 염증성 질환(카타르성 염증)의 총칭으로 위염을 가리킵니다. 카타르catarrh라는 것은 점막의 염증으로서 조직파괴를 일으키지 않는 삼출성渗出性 염증을 의미합니다. 어원은 라틴어의 카타루스catarrhus(아래로 흐른다)에 비롯했습니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의 저자 조성태는 얼굴이 동그랗게 생긴 사람을 정과형精科形으로 분류하는데, 통통하게 살이 찌고 기색이 밝은 것이 특징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일이 별로 없으며 실의에 빠지지도 않는 이유는 성격이 명랑하고 낙천적이며 비위가 좋기 때문입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눕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과형의 사람의 몸이 잘 붓는 이유는 습濕이 많은 체질이라서 그렇습니다. 류머티스 관절염도 오기 쉬우며 허리와 등에서 통증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몸 밖으로 영양분이 빠져나가는 누설이 잘되므로 당뇨로 고생하는 수가 있으므로 늘 조심해야 합니다. 정기를 보해주는 식품으로는 구기자, 산수유, 복분자, 참깨, 부추씨 등이 있습니다. 구기자는 정기를 보하는 데 매우 좋은 식품으로 알약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술에 담가 먹어도 좋습니다.

역삼각형 얼굴을 한 사람을 신과형神科形 혹은 천수형으로, 삼각형 얼굴을 한 사람은 지적형知的形으로 분류합니다. 신과형의 사람은 머리가 좋고 예민합니다. 하지만 신경이 예민하므로 칠정七情에 쉽게 마음이 상하여 병이 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건망증이 있고 신경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리와 다리가 잘 아프며, 가슴 두근거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적형의 남자는 여자 같은 기질을 지녔습니다. 매사에 꼼꼼하고 성실합니다. 너무 꼼꼼한 나머지 소심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얼굴이 세모난 사람들은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이므로 평소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해주는 식품을 먹어야 하는데, 인삼과 연밥Lotus Seed(연실)이 좋습니다. 인삼을 마음을 안정시키고 심기를 잘 통하게 해주며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연밥은 정신을 보양해주므로 오랫동안 먹으면 마음이 즐거워지면서 성내는 것을 멎게 합니다. 연밥은 죽을 쑤어 먹으면 좋습니다.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연꽃은 거의 모든 부분이 식재료가 됩니다. 뿌리줄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데, 태국, 베트남 그리고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줄기와 어린잎을 고급 채소로 칩니다. 늙은 잎은 포장용으로 사용됩니다. 심지어 연꽃의 꽃잎마저 장식용으로 사용하거나 먹기까지 합니다. 연꽃의 씨(연밥) 역시 많은 사랑을 받는데, 때때로 손에 한 움큼 쥐고 날로 먹기도 하지만, 말리면 그 쓸모가 더욱 많아집니다. 베트남에서는 종종 수프와 스튜에 넣습니다. 중국에서는 말린 연밥으로 디저트를 만듭니다.

얼굴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조금씩 넓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달걀처럼 갸름한 형태를 띤 사람을 혈과형血科形으로 분류합니다. 혈허血虛에 의한 두통 증상으로 고생하기도 하고 생리불순이 오기 쉬우며 어혈로 인해 병이 생깁니다. 따라서 산후 조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기병은 주로 낮에 심하고 날이 저물면서 증상들이 점점 가벼워지는데 반해, 혈병은 밤이 되면 심하고 낮에는 가벼워집니다. 혈을 고르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는 식품은 당귀와 부추즙이 대표적입니다. 당귀는 피를 고르게 하고 잘 순환하게 해주며 피를 보충하기도 합니다. 부추즙은 가슴속에 뭉친 어혈을 잘 풀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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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인터넷 표절

 

인터넷 표절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알다시피 인터넷에는 미리 작성된 리포트나 철학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웹사이트가 있다. 그런 사이트의 개설자들은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운영현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단순히 힌트를 얻고자 그런 사이트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표절로 의심받지 않도록 유의하기 바란다. 언제나 자료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안전하다. 에세이 채점자들은 학생들이 복사했거나 의심스런 자료를 찾아내는 아주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동일한 출처의 자료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오려붙이는 작업이 아니다. 과제물을 제출하고 점수를 따는 데만 연연하면, 철학공부의 취지를 완전히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표절, 풀어쓰기, 설명의 다섯 가지 사례
사례 1

만약 회의론자가 옳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떨어져 있다. 우리는 저 밖의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나무, 집, 고양이, 개, 산, 자동차 따위가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을 까닭이 전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할 이유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이 세상과 사람들은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논평

이 글은 스티븐 로의 철학 입문서 『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The Philosophy Files』(London: Orion, 2000, p. 53)의 내용을 아무 말 없이 직접 인용한 것이다. 이 글과 『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의 내용이 서로 다른 점은 원서에는 이 부분 뒤에 두 개의 논평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글은 인용부호를 표기하지 않았고 출처를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명백한 표절이다.

사례 2

회의론자가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외부 세계와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떨어져 있다. 우리는 저 밖의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나무, 집, 고양이, 산 따위가 있다고 믿을 까닭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세상과 사람들이 단지 가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논평

첫 번째 사례와 달리 노골적인 형태의 표절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표절이다. 원서 내용을 슬쩍 풀어쓰고는 있지만, 글의 짜임새, 문장구조, 보기 등이 원서와 흡사하다. 게다가 원서 출처를 밝히지도 않았다. 군데군데 슬쩍 다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표절의 혐의를 피하려는 것은 철학적으로 전혀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다.

사례 3

스티븐 로는 회의론이 옳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나무, 집, 고양이, 개, 산, 자동차 따위가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을 까닭이 전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믿을 까닭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이 세상과 사람들은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논평

인용출처는 밝혔지만 단지 인용문을 잡다하게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어떤 구절에는 인용부호가 있지만, 다른 구절에는 인용부호가 없다. 표절 혐의를 받지는 않겠지만, 원서의 내용을 적절히 요약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저 원서의 주요 개념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 철학 에세이에는 대체로 일정한 분량의 요약과 설명이 포함된다. 하지만 요약은 단순히 종이를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는 작업이 아니다. 원서의 내용을 요약할 때는 어느 정도의 설명이 뒤따라야 하고, 되도록 원서의 사례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사례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사례 4

『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에서 스티븐 로는 회의론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떨어져 있다. 우리는 저 밖의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나아가 그는 회의론자는 타인의 존재를 믿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오해일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입체화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타인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타인의 말을 듣고 냄새를 맡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가상현실기계에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논평

이것은 전혀 표절이 아니다. 우선 스티븐 로가 언급한 개념을 적절히 요약하고 설명한다. 또한 인용출처를 밝혔고, 우리가 가상현실기계에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사례 5

우리는 흔히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 각자의 감각으로 인식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사실상 그렇게 보인다고 확신한다. 회의론자들은 이와 같은 자기만족에 도전한다. 그들은 우리가 벽, 탁자, 의자, 발, 금붕어 같은 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그렇지 않다고 믿을 만한 이유보다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세상 모든 것이 허상일지도 모른다.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회의론자들은 우리가 경험으로 여기는 것이 실제로는 우리를 조종하는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일지 모른다고 여긴다. 단지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매우 정교한 가상현실기계에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요컨대 회의론자의 관점에서는 사물이 겉보기와 동일하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보다 많지 않다.

논평

스티븐 로가 책에서 제시한 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지만, 굳이 그의 책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작성자가 스티븐 로의 견해를 확실히 이해하고 완벽히 소화한 점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원래의 출처를 언급하는 편이 안전하고, 그래야 표절로 인해 처벌받는 일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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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자들의 새로운 반란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란을 이해하려면 베스트팔렌 질서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학자 찰스 틸리에 따르면,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세상을 바꾸었고 모양새를 새롭게 빚어냈다. 이 조약이 달성한 두 가지 업적으로는 국제관계의 근본 단위로서 주권국가를 확립하고, 각 나라에서 종교적 기반을 분리시켰다는 점을 꼽는데, 그 후 세속적 실체로서의 주권국가들은 종교적 차이를 두고서는 전쟁을 벌일 수 없게 되었다.
1975년에 펴낸 『서유럽에서의 민족국가 형성사The Formation of the National States in Western Europe』에서 틸리는 “향후 30년간 유럽인과 그의 후손은 그 같은 국가제도를 세계에 강요했다” 면서 “최근의 탈식민지 물결은 세계지도를 그 제도에 맞춰 제작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8 바꾸어 말하면, 유럽에 기원을 둔 베스트팔렌 모델에 따라 세속 민족국가들이 세계를 거의 장악했다는 말이다. 일부 무슬림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는 국제적 관계론의 유럽 중심의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처럼 범세계적인 역사적 현실을 뒤엎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9 따라서 그들이 세속 민족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이슬람교의 내전에서 출발한 반란은 범세계적 내전10으로 비화될 것이다. 냉전이 종식될 무렵, 이른 감은 있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설한 “역사의 종말”과는 달리, 이슬람주의자들은 문명의 귀환을 도모했다. “문명”의 귀환이 이슬람주의의 주제이긴 하나,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에는 무지했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슬람주의가 그리는 문명의 충돌은 헌팅턴의 책보다 훨씬 앞서며, 서방세계와 나머지가 아니라 전 세계, 특히 서양을 상대하는 이슬람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토대를 사이드 쿠틉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후계자인 유수프 알카라 다위가 이를 약간 바꾸었다.
옥스퍼드 대학이 낳은 학자 헤들리 불은 민족국가의 세속질서를 거부하려는 행태를 “서방세계에 맞선 반란” 으로 규정했다. 과거의 식민주의 투쟁과는 달리, 오늘날의 반란은 서방세계의 패권에 대항한 소요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서방세계의 가치관에 맞선 반란” 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불은 이를 “이슬람교의 원리주의, 즉 종교의 이슬람주의식 정치화에서 입증될 수 있다” 12고 생각했다. 역사의 귀환과 함께, 세속화와 신성한 종교의 귀환을 도모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베스트팔렌 질서에 기초한, 기존의 세속적인 세계질서13의 기본 토대에 도전하는 것이다.
정치적 모양새를 띤 종교의 귀환이 정치적 윤리에 국한된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이슬람주의는 국가와 세계의 신정질서를 아울러 꿈꾸고 있다. 이 같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은 근대사의 주요 현상으로 이를 이해하려면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총체적인 과업을 두 연구팀이 담당했는데, 그들 중 하나가 전 세계와 다양한 종교 공동체에서 선별한 학자로 구성된 미국 예술과학협회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였으며, 원리주의 프로젝트란 표제로 정치 및 사회에서 종교가 감당한 역할을 연구한 것이다. 그 연구 결과는 공동저자가 연이어 펴낸 다섯 권의 『원리주의 프로젝트The Fundamentalism Project』에 담겨 있다.14 하지만 안타깝게도, 팀의 학술적인 신뢰도와 고도의 분석력이 발휘되었음에도 그들의 연구는 이슬람 학계에서 대부분 무시되었다. 또 다른 연구팀으로, 개발・정치연구에 “문화” 를 가미한 문화연구 프로젝트CMRP: Culture Matters Research Project는15 나중에 거론하도록 하겠다.
결국, 두 프로젝트 모두 학술 토론의 장을 조성하는 데는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상의 본질이 애매한 탓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혹자는 “원리주의” 라는 용어가 이슬람교나 비서양 종교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어떤 이는 이슬람주의의 과제를 다룬 『이슬람교의 원리주의al-usuliyya al-Islamiyya』의 저자 하산 알하나피의 주장을 인용하여 이를 반박하기도 했다. 알하나피는 현재 정치적 이슬람교의 중도파로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원리주의를 둘러싼 난제를 밝히고 널리 알린 하나피는 아랍어 문헌을 집필할 때 원리주의를 망설이지 않고 이슬람주의 조직에 적
용했으나, 영어로 글을 쓸 때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슬람세계 및 서방세계의 학자들은 정치적 종교인 이슬람주의의 범상치 않은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종종 정치적인 종교로 간주되기도 했던 세속적 이데올로기인 파시즘과 공산주의와는 달리, 이슬람주의는 실제적인 종교적 신앙과 순수한 신성 개념에 근간을 둔다. 따라서 종교색이 짙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선언은 파시스트들의 그것과는 달리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이슬람주의자들과의 비공식 인터뷰가 수백 건도 넘는 원리주의 프로젝트17에서 내가 밝혀낸 연구 결과 역시 그들에게 종교는 수단이 아니라는 결론을 뒷받침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진정한 신도를 자처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 그들은 진정한 신도인 것이다.
정치적 이슬람교의 연구는 분쟁과 긴장의 연구18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나는 수년간 “이슬람학” 이란 접근법을 구사하여 그것이 기존의 이슬람 연구와 어떻게 다른지 규명해왔다. 이슬람학은 구소련 연구 모델을 모방하여, 세계 분쟁의 원흉인 이슬람주의를 다루었다. 기초적인 논지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가 종교적 구호로 제기되므로 정치의 종교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제2의 냉전에 가담했다는 설도 무리는 아니다. 구소련과 같이 그들도 “세계의 재창조” 를 주장한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이를 가리키는 “이슬람의 세계 혁명(사이드 쿠틉이 주창)” 에 많은 꼬리표가 붙는데, 이를테면 프랑스 학자는 이를 체제유지주의integrisme[혹은 개혁 반대주의]라 하고 다른 이들은 원리주의라 부른다. 이는 모두 샤리아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정치화한다는,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기초적인 쟁점을 일컫는다. 이 이데올로기는 비국가 주동세력으로 구성된 다국적 조직이 도입했다. 행여 이 사실을 무시하여 “급진파 이슬람교” 나 “온건파 이슬람교” 의 쟁점으로 국한한다면, “비폭력 이슬람주의” 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슬람주의의 일반 현상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를 밝히
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들은 폭력을 거부하고 민주정치 게임을 즐기며 기존의 제도 내에서 평화를 누리며 본분을 다하는 듯 싶은 반면, 후자는 그들도 테러와 흡사한 것으로 알고 있는 범세계적인 지하드[성전]를 대놓고 선포한다. 그러나 지하드운동은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비정규 비국가 세력이 벌이는 신개념 분쟁으로 보아야 한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비롯한 지하드 조직은 정당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선출된 의회에서 활약하는 대리자인 지하드 민병대를 거느리며 선거에도 참여하고 있다.
즉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만 두 가지 모드로 활동한다는 점을 간파하지 못하면 이 같은 동시성이 혼동을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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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환생


 

 

 

과거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미래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현재에 대한 집착도 버려라.
그런 다음 저 니르바나를 향해 나아가라.
그리하여 그대 마음이 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대는 이제 이 탄생과 죽음의 윤회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붓다

 

우리의 마음속 어두운 뒷골목에는 괴물이 숨어 있다. 괴물은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의 모든 면에서 우리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언제나 괴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괴물이 나타날 수 있는 곳을 예상하며 계획하고, 붙잡고, 집착하고, 도망가는 데 여념이 없다. 이 어둠의 괴물 때문에 우리는 결코 행복하거나 온전히 쉴 수 없다.
이 괴물이 죽음이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다. 죽음은 개인의 영역이다. 즉 우리의 죽음이 있고, 나의 죽음이 있다. 죽음이라는 괴물과 맞서기 전까지 우리는 걱정과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 ● 앎의 지혜
위대한 영적 지도자의 죽음, 환생, 전생 퇴행 요법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봄으로써 죽음에 대해 알아보자.

 

영적 지도자는 어떻게 죽는가
‘영혼의 땅’이란 뜻의 마나슬루가 바라보이는 네팔 누브리 계곡에서 태어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Yongey Mingyur Rinpoche는 티베트 밖에서 교육을 받은 티베트 불교의 떠오르는 별이다. 그는 1998년부터 세계를 여행하면서 마음의 문제로 번민하는 이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는 동시에 달라이 라마와 함께 마음생명협회를 이끌어 왔다. 그는 1981년에 타계한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16대 카르마파Karmapa의 죽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카르마파는 지독한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한 번도 그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병원 직원들은 카르마파를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내뿜는 평온한 기운을 느끼려고 그를 자주 찾아왔는데, 카르마파는 자신보다는 오히려 병원 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에 더 신경을 썼다.
카르마파는 침상에 앉은 채 명상하는 자세로 죽었다. 현대 병원으로서는 들어주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추종자들의 부탁으로 카르마파는3 일간 그대로 침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체는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았고 기이하게도 심장 근처는 거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따뜻했다. 20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사체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 있다.
수쉴라 블랙맨(Sushila Blackman, 2005)은 16대 카르마파의 사례와 유사한 많은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블랙맨의 이런 작업이 아니라 바로 블랙맨 그녀였다. 블랙맨은 책을 준비하면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책을 완성한 뒤 겨우 한 달 보름 만에 사망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환생 이야기
1950년 4월, 자이나교 집안의 니르말Nirmal이라는 10살 소년이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코시 칼란 마을에서 천연두로 숨을 거뒀다(Stevenson 1974). 죽기 전 혼수상태에서 소년은 어머니에게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진짜 엄마를 찾아갈 거라고 말했다. 소년은 도시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차타라는 조그만 도시 쪽을 가리켰다. 그러고 나서 소년은 곧 죽었다.
1년 몇 개월 후에 차타의 바르시나이 집안에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프라카시Prakash라고 이름 지었다. 네 살 반이 된 프라카시는 한밤중에 일어나서 집 밖으로 뛰쳐나가 자신은 코시 칼란에 살았으며 이름은 니르말이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프라카시는 니르말의 아버지, 누이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친구들의 이름을 정확히 말했다.
모두가 이것을 환생으로 믿지 않겠지만, 달리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프라카시(니르말)와 같은 몇몇 사례는 아주 철저히 체계적으로 연구되기도 했다.

 

전생 퇴행 요법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Brian Weiss, 1988)는 캐서린이란 여성이 최면 상태에서 과거로 퇴행하여 전생의 기억을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 전생의 기억들은 현재의 여러 증상들을 고치는 데 효과가 있었다. 와이스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으나 점차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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