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자들의 새로운 반란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란을 이해하려면 베스트팔렌 질서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학자 찰스 틸리에 따르면,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세상을 바꾸었고 모양새를 새롭게 빚어냈다. 이 조약이 달성한 두 가지 업적으로는 국제관계의 근본 단위로서 주권국가를 확립하고, 각 나라에서 종교적 기반을 분리시켰다는 점을 꼽는데, 그 후 세속적 실체로서의 주권국가들은 종교적 차이를 두고서는 전쟁을 벌일 수 없게 되었다.
1975년에 펴낸 『서유럽에서의 민족국가 형성사The Formation of the National States in Western Europe』에서 틸리는 “향후 30년간 유럽인과 그의 후손은 그 같은 국가제도를 세계에 강요했다” 면서 “최근의 탈식민지 물결은 세계지도를 그 제도에 맞춰 제작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8 바꾸어 말하면, 유럽에 기원을 둔 베스트팔렌 모델에 따라 세속 민족국가들이 세계를 거의 장악했다는 말이다. 일부 무슬림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는 국제적 관계론의 유럽 중심의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처럼 범세계적인 역사적 현실을 뒤엎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9 따라서 그들이 세속 민족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이슬람교의 내전에서 출발한 반란은 범세계적 내전10으로 비화될 것이다. 냉전이 종식될 무렵, 이른 감은 있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설한 “역사의 종말”과는 달리, 이슬람주의자들은 문명의 귀환을 도모했다. “문명”의 귀환이 이슬람주의의 주제이긴 하나,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에는 무지했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슬람주의가 그리는 문명의 충돌은 헌팅턴의 책보다 훨씬 앞서며, 서방세계와 나머지가 아니라 전 세계, 특히 서양을 상대하는 이슬람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토대를 사이드 쿠틉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후계자인 유수프 알카라 다위가 이를 약간 바꾸었다.
옥스퍼드 대학이 낳은 학자 헤들리 불은 민족국가의 세속질서를 거부하려는 행태를 “서방세계에 맞선 반란” 으로 규정했다. 과거의 식민주의 투쟁과는 달리, 오늘날의 반란은 서방세계의 패권에 대항한 소요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서방세계의 가치관에 맞선 반란” 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불은 이를 “이슬람교의 원리주의, 즉 종교의 이슬람주의식 정치화에서 입증될 수 있다” 12고 생각했다. 역사의 귀환과 함께, 세속화와 신성한 종교의 귀환을 도모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베스트팔렌 질서에 기초한, 기존의 세속적인 세계질서13의 기본 토대에 도전하는 것이다.
정치적 모양새를 띤 종교의 귀환이 정치적 윤리에 국한된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이슬람주의는 국가와 세계의 신정질서를 아울러 꿈꾸고 있다. 이 같은 이슬람주의의 근본 특징은 근대사의 주요 현상으로 이를 이해하려면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총체적인 과업을 두 연구팀이 담당했는데, 그들 중 하나가 전 세계와 다양한 종교 공동체에서 선별한 학자로 구성된 미국 예술과학협회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였으며, 원리주의 프로젝트란 표제로 정치 및 사회에서 종교가 감당한 역할을 연구한 것이다. 그 연구 결과는 공동저자가 연이어 펴낸 다섯 권의 『원리주의 프로젝트The Fundamentalism Project』에 담겨 있다.14 하지만 안타깝게도, 팀의 학술적인 신뢰도와 고도의 분석력이 발휘되었음에도 그들의 연구는 이슬람 학계에서 대부분 무시되었다. 또 다른 연구팀으로, 개발・정치연구에 “문화” 를 가미한 문화연구 프로젝트CMRP: Culture Matters Research Project는15 나중에 거론하도록 하겠다.
결국, 두 프로젝트 모두 학술 토론의 장을 조성하는 데는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상의 본질이 애매한 탓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혹자는 “원리주의” 라는 용어가 이슬람교나 비서양 종교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어떤 이는 이슬람주의의 과제를 다룬 『이슬람교의 원리주의al-usuliyya al-Islamiyya』의 저자 하산 알하나피의 주장을 인용하여 이를 반박하기도 했다. 알하나피는 현재 정치적 이슬람교의 중도파로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원리주의를 둘러싼 난제를 밝히고 널리 알린 하나피는 아랍어 문헌을 집필할 때 원리주의를 망설이지 않고 이슬람주의 조직에 적
용했으나, 영어로 글을 쓸 때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슬람세계 및 서방세계의 학자들은 정치적 종교인 이슬람주의의 범상치 않은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종종 정치적인 종교로 간주되기도 했던 세속적 이데올로기인 파시즘과 공산주의와는 달리, 이슬람주의는 실제적인 종교적 신앙과 순수한 신성 개념에 근간을 둔다. 따라서 종교색이 짙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선언은 파시스트들의 그것과는 달리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이슬람주의자들과의 비공식 인터뷰가 수백 건도 넘는 원리주의 프로젝트17에서 내가 밝혀낸 연구 결과 역시 그들에게 종교는 수단이 아니라는 결론을 뒷받침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진정한 신도를 자처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 그들은 진정한 신도인 것이다.
정치적 이슬람교의 연구는 분쟁과 긴장의 연구18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나는 수년간 “이슬람학” 이란 접근법을 구사하여 그것이 기존의 이슬람 연구와 어떻게 다른지 규명해왔다. 이슬람학은 구소련 연구 모델을 모방하여, 세계 분쟁의 원흉인 이슬람주의를 다루었다. 기초적인 논지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가 종교적 구호로 제기되므로 정치의 종교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제2의 냉전에 가담했다는 설도 무리는 아니다. 구소련과 같이 그들도 “세계의 재창조” 를 주장한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이를 가리키는 “이슬람의 세계 혁명(사이드 쿠틉이 주창)” 에 많은 꼬리표가 붙는데, 이를테면 프랑스 학자는 이를 체제유지주의integrisme[혹은 개혁 반대주의]라 하고 다른 이들은 원리주의라 부른다. 이는 모두 샤리아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정치화한다는,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기초적인 쟁점을 일컫는다. 이 이데올로기는 비국가 주동세력으로 구성된 다국적 조직이 도입했다. 행여 이 사실을 무시하여 “급진파 이슬람교” 나 “온건파 이슬람교” 의 쟁점으로 국한한다면, “비폭력 이슬람주의” 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슬람주의의 일반 현상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를 밝히
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들은 폭력을 거부하고 민주정치 게임을 즐기며 기존의 제도 내에서 평화를 누리며 본분을 다하는 듯 싶은 반면, 후자는 그들도 테러와 흡사한 것으로 알고 있는 범세계적인 지하드[성전]를 대놓고 선포한다. 그러나 지하드운동은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비정규 비국가 세력이 벌이는 신개념 분쟁으로 보아야 한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비롯한 지하드 조직은 정당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선출된 의회에서 활약하는 대리자인 지하드 민병대를 거느리며 선거에도 참여하고 있다.
즉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지만 두 가지 모드로 활동한다는 점을 간파하지 못하면 이 같은 동시성이 혼동을 초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