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대표작: <지상 쾌락의 동산>


<지상 쾌락의 동산>은 보스의 대표작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미술학자 한스 벨팅은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이 작품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더라도 보스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 더 나아가서 중세의 종교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상 쾌락의 동산 Garden of Earthly Delights> 혹은 <지상 낙원 Earthly Paradise>으로 알려진 세쪽 제단화는 <최후의 심판>과는 달리 인간 본성의 밝은 면을 주로 표현한 작품이다.
보스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알려져 있지 않고 후세에 붙인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도상과는 거리가 먼 상징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보스의 순수 창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스의 상상의 세계는 중앙 패널화에서 매우 폭넓게 펼쳐진다.
오늘날 말로 하면 가상의 세계virtual world인 것이다.
여기에는 천상의 모습도 있지만 지상의 죄가 낱낱히 드러나 있으므로 세쪽 제단화의 형식을 갖추었더라도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렸다기 보다는 제단화의 형식만을 빌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처음으로 제단화의 형식을 빌려 제단화가 아닌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를 미술사에 남기게 된다.
<지상 쾌락의 동산>은 보스가 타계한 지 한 해 후 브뤼셀 나소의 백작 궁정에 장식되었다.
이 사실은 1967년에야 밝혀졌다.
1517년 브뤼셀에 있는 헨드리크 궁을 방문한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데 비티스Antonio de Beatis는 자신이 본 작품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지상 쾌락의 동산>에 관한 내용이었다.
궁정을 방문한 사람들은 유럽의 왕들과 고귀한 신분들이었으며 독일인 화가 뒤러도 이 궁전을 방문하고 오십 명이 한꺼번에 잠을 잘 수 있는 커다란 침대와 아름답게 치장된 건물에 반했으며 보스의 작품도 보았다.
뒤러는 1520년 여행을 목적으로 네덜란드로 향하면서 그해 여름 브뤼셀에서 보스의 작품을 보았지만 보스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그가 보스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뒤러는 플랑드르의 대가 얀 반 에이크를 좋아했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했다.
뒤러가 보스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뒤러는 원근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원근에서 미숙한 보스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고,
또한 “훌륭한 그림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뒤러는에게 “자연을 묘사할 때 어떤 요소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이라도 보태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의 미학적 판단기준에서 보면 환영적인 보스 작품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백작 엔젤브레흐트Engelbrecht는 타계하기 전 자신의 궁정을 엔젤브레흐트 2세와 조카 헨드리크 2세에게 물려주었다.
<지상 쾌락의 동산>은 헨드리크가 보스에게 의뢰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을 나소의 헨드리크 3세가 물려받았다.
상상에 의한 가상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묘사된 이 작품은 보스의 세쪽 제단화 가운데서 가장 보존이 잘 되었다.
특기할 점은 컬러가 매우 선명하며 창백한 색상의 인물들에 대한 그림자가 생략된 것이다.
보스는 자신이 상상한 낙원을 오늘날 놀이공원처럼 즐거움을 추구하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의 낙원에서는 모두 옷을 벗어야 한다.
누드가 가득한 낙원에서 사람들은 과일을 먹거나 꽃을 들고 있고,
잔디 위에서 딩굴며,
동물타기를 즐기고,
무리를 지어 놀이를 하며,
연못에 들어가 헤엄을 치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며,
자신들보다 더 큰 새와 동물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쾌락을 만끽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 부끄러움을 모르고 당당하다.
말, 송아지, 낙타, 새의 머리와 날개를 달고 말의 모습을 한 동물 등 다양한 동물들에 올라탄 남자들은 처녀들이 몰놀이를 하는 동그란 연못 주위를 회전목마처럼 돌고 있다.
하늘에는 날개가 달린 창조물들이 나르면서 또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프랑거Franger는 적었다.
“누드 연인들은 고요한 동산에서 식물 같은 순수함으로 평화롭게 놀고 동식물과 일체가 되며 이들에게 활기를 주는 성적 호감은 순수한 기쁨, 순수한 축복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는 성서에서 말하는 인간과 동물이 평화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져 있고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풍요로운 대지의 생산으로 먹을 것이 넉넉함이 있다.
보스 당시 성적 호감을 주는 오브제들이 있었다.
고고학자 한스 잰센Hans Janssen은 스헤르토겐보스에서 발굴작업을 하다가 얼굴을 붉힐 만한 오브제들을 발견했다.
그가 발굴한 것들 가운데는 주석으로 만든 배지가 있었다.
그는 수백 개를 한꺼번에 발굴했는데, 중세 축제나 종교적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던 것이다.
그것들 중에는 여성의 음문을 홍합의 형상으로 만든 것도 있으며 다리가 달린 남성의 남근에 왕관을 씌우고 날개를 단 것도 있다.
이것들은 값싼 기념품들로 핀이 달려 있어 사람들이 모자나 겉옷에 장식했다.
그렇지만 보스의 작품에는 성적 호감을 숭배하는 요소가 없으며 광란의 장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상 쾌락의 동산>은 관능적인 인생, 즉 색욕의 죄를 묘사한 작품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단 왼쪽 둥근 거품 속에 있는 한쌍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홍합조개 속에 들어 있는 한쌍은 색욕을 의미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남자와 여자의 변태적인 행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음부를 가리고 물 속에 물구나무를 선 남자, 하단 오른편에 상대방 엉덩이에 꽃을 집어 넣는 젊은이를 볼 수 있다.
그림에 딸기가 보이는데, 어리석음을 암시하는 과일로 시구엔자는 이를 부패한 세계에서의 육체적 쾌락을 가리키는 허망한 속성으로 보고 말했다.
단순히 지나칠 때는 향을 맡을 수 없는 딸기의 순간적인 맛, 헛된 영예.
시구엔자는 보스가 딸기를 도덕적 비판의 요소로 사용했음을 알고 그의 모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상징물로 보았다.
옛 네덜란드 문학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던 네덜란드 역사가 디르크 박스Dirk Bax는 작품에서 보이는 과일, 동물, 원경의 이국적 광물성의 구조물 등 다양한 형태들은 당시 유행가, 속담, 속어에 인용된 성적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상징물들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연인들이 먹거나 들고 있는 다양한 과일은 성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경의 물고기는 네덜란드 속담에서 남자의 성기를 의미한다.
과일을 따는 청년과 군상에서 에로틱한 점을 발견하기란 쉽다.
흥미로운 것은 과일 속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박스는 이를 중세 네덜란드어 schel 혹은 schil로 보고 이 단어는 과일의 껍질 혹은 ‘불화 quarrel’ 혹은 ‘논쟁 controversy’을 의미하기 때문에 schel 속에 있다는 것은 적과 싸우는 데 몰두하는 것이며 좀더 쾌락적인 사랑을 위한 다툼의 의미도 내포된다.
텅 빈 과일껍질의 경우 무가치함을 의미한다.
보스는 갖가지 상징을 다 동원하여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된 작품이 되게 했으며 따라서 그가 도상의 복잡성과 예술적 근거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 요소들에 대한 해석은 학자마다 분분하지만 박스의 해석은 대부분 신빙성 있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박스의 논리는 대부분 네덜란드 민속에 근거한다.
피테르 브뢰겔과 마찬가지로 보스의 작품을 풍속화의 범주에 넣고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상징물들을 거대한 동산을 배경으로 나열했다는 데서 브뢰겔을 포함하여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 모두에 비해서 보스의 창작이 훨씬 깊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동산은 예전이나 현재에도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장소로 은밀한 사랑의 행위를 벌이기 안성마춤의 장소이다.
보스가 동산에서 벌어지는 온갖 쾌락적인 행위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건 아주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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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레싱에 의해 시각예술과 언어예술 간의 차이가


보상케는 『라오콘』에 나타난 레싱의 현안들이 다양한 출처에서 수집된 것들이라면서 “기호로서 언어의 개념을 표시한 것에 대한 기호들의 편리한 관계”는 바움가르텐이 시사한 것이며,
시가 시각적 본체들의 완전한 설명에 적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버크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고,
회화가 오직 한 순간만을 나타낸다고 한 것은 카임스Lord Kaimes의 『비평의 요소들 Elements of Criticism』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지적했으며,
시가 본질적으로 행위를 다룬다는 근원적인 개념은 의심의 여지없이 시에 핵심이 되는 드라마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이에 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스위스의 평론가이면서 시인들 보드머Bodmer와 브라이팅거Breitinger의 언급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질료적 혹은 몸체적 미가 다양한 형태 안에서 순수한 통합으로 구성된다는 개념은 호가드W. Hogarth(1697-1764)와 고전미학과 빙켈만의 우화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반영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레싱 이전의 어느 누구도 이런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논의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28-2)
괴테는 레싱에 의해 “시각예술과 언어예술 간의 차이가 분명해졌다”고 했다.29)
멘델스존은 『고찰 Betrachtungen』(1757)에서 두 종류의 예술은 차이가 있지만 유사성도 있기 때문에 모든 예술을 균일하게 취급하자고 했고, 줄쩌는 『순수예술에 관한 일반이론 Allgemeine Theorie der Schonen Kunste』(1771-74)에서 멘델스존의 주장을 현실화하려고 했다.
괴테는 줄쩌의 저서에 대한 서평에서 그토록 다양한 것들을 통일시키자는 견해를 비웃었다.30)
빙켈만J. J. Winckelmann(1717-68)은 미는 규칙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합법칙적 본질이기보다는 “우리가 그것의 작용을 보고 모든 것을 느끼게 되는 자연이 지닌 위대한 신비와 본질 중 하나다. 더욱 보편적이고 더욱 판명한 개념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리 속에 있다”31)고 보았는데,
레싱은 모든 예술이 관련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지만 피상적이고 김을 빼는 유추들에 공격을 가했다.
빙켈만이 고대 전체에 대한 열망 속에서 받아들였던 것 즉 이념적인 위대함을 레싱은 조형미술에 제한하면서 이를 특수한 장르의 원리로 입증했다.
고대의 라오콘 상에 대한 당시의 유명한 논쟁에서 레싱은 빙켈만의 견해에 반대했는데, 빙켈만은 베르길리우스Vergil의 시 속에서 라오콘이 비명을 지를 수도 있었다는 이유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비판하였다.
레싱은 이런 일은 문학적 장르의 영향법칙과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역설했다.
후에 유스티Justi는 그 논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래서 레싱은 고요한 위대함이라는 빙켈만적 이념을 위해 그 이념의 창시자에게는 낯선 기초를 놓으려 한 것이다.
이런 기초를 무조건 요구하는 것은 회화와 조각에 제한되었다.”32)
레싱은 자신의 시에서도 예술과 활동의 과정에 관해 언급했는데 <에밀리아 갈로티 Emilia Galotti> 제1막에서 화가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다.
예술은, 조형적인 자연이 그러하듯이 - 만약 있기만 하다면 - 상을 그려야 한다.
저항하는 소재가 불가피하게 만들어내는 타락도 없이.
그리고 시간이 그에 대항해 싸우는 파멸도 없이.33)
레싱은 회화와 시 자체의 구분되는 매체들 안에서 그것들의 특정적이며 개별적인 가능성들과 가치들을 모색했다.
한 예술의 매체를 그는 ‘부호 Zeichen’로 부르면서 그것이 모방을 위해 사용된다고 했다.
회화와 시의 모방 가능성들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그것들이 과격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회화는 형태와 색을 나란히 일관하는 데서 오브제들과 가시적 특성들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으며, 행위들은 간접적으로 밖에는 시사할 수 없는 반면, 시는 이와 정반대였다.
예술의 두 번째 되는 강력한 것이 으뜸으로 만들어졌을 때는 그것이 최고의 작품일 수 없었다.
문학과 미술에 관한 레싱의 저서들은 미적 경험에 관해 충분한 분석과 비평을 결여했지만 예술가로 하여금 모든 제한된 규정들과 예술적 형식에 구애되는 관습들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해주었다.
레싱 자신은 낭만주의 작가가 아니었지만 그가 추구한 자연적인 느낌들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과 고대에 대한 회고적인 관심이 독일 낭만주의가 형성되는 데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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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순화

 
미술비평의 근거들 중 하나로 순화Sublimation란 것이 있으며 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가 제안한 것이다.
순화는 고상해지기를 바라는 데서 근거하는 것으로 미술품을 통해서 숭고한 느낌을 갖게 됨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미학에 관련된 에세이를 많이 썼는데 특히 <문명과 이에 따른 불만들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에서 순화에 관해 논했다.
인생이 너무 많은 고통, 실망, 불가능한 업무들로 가득하다면서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그는 세 가지를 제안했다.

1. 강력한 관심의 전환으로 우리의 불행에 대한 근심을 덜어준다.
2. 대용이 되는 만족감으로 불행을 던다.
3. 도취하게 만드는 물질들이 우리로 하여금 불행에 둔감하게 해준다.

프로이트는 이런 종류의 것들을 필요불가결하다고 본다.
그는 고통을 더는 데 자신이 창안한 리비도 전치the libido-displacements를 추가 방법으로 제안한다.
이는 우리의 정신적 장치가 허락하는 것으로 이것에 의해 많은 적응력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리비도 전치가 본능적인 목적들을 외부세계에 의해 좌절되지 않게 해준다고 믿는다.
본능의 순화가 이런 문제에 조력을 제공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것의 성공은 사람이 정신적 그리고 지성적 업무로부터 쾌를 획득하기 위해 어떻게 자기의 능력을 충분히 증가시킬 수 있는지를 알 때 엄청나다.
이때 숙명은 그에게 조금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런 류의 만족은 자기의 환상을 구현하는 창작에서 예술가가 갖는 기쁨 혹은 과학자가 문제를 풀거나 진리를 발견하는 것과도 같이 우리가 언젠가 분명히 초심리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특별한 성질을 지녔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더욱 고상하고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지만 전체의 원시적 본능들을 만족시키는 것과 비교해서 그것의 강도는 완화되고 흐트러진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우리를 압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 방법의 취약한 부분은 일반적으로 적용할 만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충분한 정도에서 매우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특별한 타고난 재능과 성질들을 미리 가정한다.
그리고 이런 소수에게조차 그것은 고통에 대항해서 완전한 보호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숙명의 화살들에 대항해 이겨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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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운에 흥을 돋구는 화가, 손장섭

  다음은 손장섭 화가의 부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손장섭은 작년에 이중섭 상을 수상하신 분으로 그림을 그린 지 43년이나 되는 분입니다.
11월 5일 오후 5시 금호미술관에 오시면 작품과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참석해야겠지요.
제목은 '자연의 기운에 흥을 돋구는 화가, 손장섭'

자연은 숨을 쉰다.
고래로 현인들은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연의 숨결에 자신의 호흡을 맞추면 평온해지는데 절로 생기는 자연과의 이런 일체감은 인위적 자만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자연은 보호되어야 하고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고향인 것이다.
우리는 산과 들, 바다로 가야 한다.
가다가 이름 모를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하늘을 우러러 아주 먼 곳을 응시해야 한다.
바다로 가서 지면 아래 펼쳐진 창공을 바라보면서 수면 위에 넘실대는 태양을 가슴에 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자연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손장섭의 신작 풍경화 한 점 한 점에서는 자연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가 자연의 기운에 흥을 돋구었기 때문이다.
산의 자태에 위엄이 있고 들은 자연의 피부처럼 느껴지며 이름 모를 들꽃이 그의 장단에 맞춰 자연의 비밀을 속삭이는 것 같다.
신비로운 시각에 일어나 그는 수면 위에 넘실대는 태양을 가슴에 품었다.
자연에 더 가까이 귀를 기울이려고 험준한 길을 오르다가 떨어져 자연에 두려움이 생겼는데 이 또한 자연에 대한 마땅한 인간의 태도이다.
결국 그는 정상에 다달아 자연의 호흡을 우뚝우뚝 솟은 비봉과 오봉의 붓자락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거친 호흡은 수채물감을 물에 타지 않은 채 칼로 각지고 거친 채색이 되게 표현했다.
들에서의 들릴 듯 말 듯 여린 소리는 짧은 여운같은 색으로, 바람에 실려오는 떨림은 붓을 길게 끌어 채색했다.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에는 신명이 나서 거친 붓자국으로 신기를 표현했는데 하늘을 진한 파란색으로 쓱쓱 문지르다 만 것과 적송에 느닷없이 흰색을 칠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손장섭이 자주 오르는 산은 북한산이다.
산이 우리 가까이서 병풍을 친 나라는 드물다.
아니 산을 이렇게 가까이 하는 민족도 드물다.
외국을 두루 다녀본 사람이라면 북한산이 얼마나 고마운 산인지 알 것이다.
자연을 바로 이웃에 두고 사는 나라가 지구상에 그리 많지 않다.
전철종점에서 버스종점에서 곧바로 산으로 갈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
산에 오르는 멋을 아는 화가가 손장섭이다.
신작들 가운데 북한산을 주제로 한 것이 가장 많다.
빼어난 비봉과 오봉의 모습을 우리 눈 가까이 옮겨 놓았다.
북한산의 기운이 비봉으로 오봉으로 고저장단을 이루는 것을 화면의 오선지에 멜로디로 흥을 돋군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병등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땅히 자연의 병풍이 되어 경관으로 굽이굽이 펼쳐져야 할 금병산이 파괴에 의해 일그러진 것을 보고 그는 병풍의 병산이 아니라 병이 든 병산이라고 한탄하며 화면으로 남겨 자연에 대한 인간의 모진 행위에 반성을 촉구한다.
이밖에도 자연을 파괴한 장면을 기록처럼 남긴 작품이 있는데 육십을 넘은 나이지만 아직 불의와 부조리에 반발하는 젊은 혈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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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탐욕'


보스는 <일곱 가지 죽을 죄와 네 종말이 있는 테이블 커버> 가운데 하나의 모티프 세속적인 소유에 대한 욕망, 즉 ‘탐욕 Avarice’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미덕과 악덕에 대한 옛 교훈서에서처럼 탐욕에 부수되는 죄는 주변 인물상에서 구체화된다.
로렌트 갈루스Laurent Gallus는 1279년에 출간한 『왕의 꿈 King’s Dream』에서 탐욕이 불화, 폭력, 심지어 살인을 부른다고 경고했다.
이런 경고가 건초 수레 앞 넓은 공간에 묘사되어 있다.
황제와 고위 성직자는 이런 소동과 동떨어져 만족해 하는 모습으로 수레를 따르고 있는데, 그들은 건초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만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탐욕은 또한 사람들을 사기와 기만으로 이끈다.
왼편 하단 높은 모자를 쓰고 아이와 함께 있는 남자는 드길비유의 『인생의 순례』에서 탐욕의 보호를 받는 자와 같이 가짜 걸인으로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면 <마술사>에 등장하는 이리저리 떠도는 야바이꾼일 것이다.
그 옆에 두 여자가 서 있으며 오른편 집시가 여인의 손금을 봐주는 동안 여인의 자식이 어머니의 드레스를 잡아당기고 있다.
하단 중앙의 돌팔이 의사는 테이블에 목록과 약병을 전시하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한다.
그는 여자 환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그가 허리에 찬 건초로 채워진 지갑은 부정하게 취한 이윤을 시사한다.
그 옆 수녀는 악마가 들고 있는 백파이프를 함께 갖고 놀자고 보채는데, 백파이프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그녀 뒤로 수녀들이 커다란 푸대에 건초를 넣고 있으며 수도사가 의자에 앉아 작업을 감독하고 있다.
수도사의 탐욕은 뚱뚱한 허리에서 알 수 있다.
이들 위 화면 중앙에는 사람을 바닥에 눕히고 칼로 살인하는 장면과 주먹으로 구타하는 장면이 있다.
건초더미 위에는 덤불이 자라고 덤불 속에서 입을 맞추며 색욕을 즐기는 한쌍이 있고 그들의 행위를 덤불 속에 몸을 숨긴 채 몰래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덤불 앞에는 화려한 의상을 하고 악보를 따라 류트를 연주하며 노래부르는 젊은이들이 앉아 있다.
이들 양편에는 동일한 사실주의 방법으로 묘사된 천사와 악마가 대칭을 이룬다.
왼편 천사는 무릎을 땅에 대고 경건한 자세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으며 오른편 파란색의 마귀는 플루트-낙수 송풍기flute-snout(또는 trompe)를 불고 있는데,
trompen이란 동사는 ‘속이다’라는 뜻이며 이 악기를 부는 사람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특히 젊은이들이 유혹에 빠진다.
음악가 마귀는 파란색인데 이 색은 신앙이 깊은 체 하는 것과 속임수 또는 교활함을 상징하며 브뢰겔의 속담 패널화 <파란 외투 Blue Cloak>는 교활함을 상징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음악가 마귀 위 나뭇가지 위에 올빼미가 앉아 있고 올빼미는 주변의 새들을 유혹한다.
가지에는 새 잡는 끈끈이birdlime가 발라져 있어 새가 가지에 앉게 되면 잡히고 만다.
이는 유혹을 표현한 것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쇄가 된다.
올빼미가 작은 새들을 유혹하여 잡는 것은 종종 사랑과 관능과 관련이 있으며 이 작품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건초 위 한쌍의 남녀는 부패한 인간상을 상징한다.
마귀는 종종 들새 사냥꾼fowler에 비유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특히 그러하며 속임수는 건초이다.
건초는 16세기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반적인 모티프로 사용되었으며 기본적인 의미는 ‘하찮음 insignificance’ 그리고 ’평범한 것 triviality‘이지만, 종교적·도덕적 전통에서 건초는 덧없고 무상하다는 의미로 ’속세적인 것들 worldly things‘을 상징했다.
문학에서도 건초는 세속적인 것들 혹은 세속적인 행위를 상징했다.
인간은 소유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육체적 쾌락을 누리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한줌의 건초를 움켜쥐려고 한다고 종교와 문학에서 비유적으로 어리석음으로 묘사했다.
이에 대한 인간이 치러야 할 댓가는 엄청난데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색욕은 죽을 죄에 속하고 과도하게 음악을 즐기는 것도 죄가 되는데, 음악에 취하면 올바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초 수레 자체가 은유적인 기능을 의미한다.
16세기에 건초는 거짓과 기만을 의미했으며 “건초 수레를 몬다”는 말은 속이거나 조롱한다는 뜻이다.
1563년의 카니발에서 건초 수레에 탄 악마를 ‘기만’으로 불렀고 프라도 소재 작품에서 수레 위에서 연주하는 악사 마귀가 전통적으로 위선을 나타내는 색인 푸른색으로 칠해진 걸 보면 보스가 건초더미에 내포시킨 의미는 분명해진다.
건초는 사탄과 그의 무리가 인간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데 사용하는 미끼인 것이다.
왼쪽 날개 <천국>에는 원죄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또한 반역한 천사들이 추방되고 있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추방되면서 지상에는 악마가 존재하게 되었다.
루시퍼는 지상에 죄와 죽음을 가져 왔다.
사탄이 된 루시퍼는 뱀의 꼬리를 하고 나무 위에 올라 앉아 아담과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종용한다.
보스는 루시퍼를 여성으로 묘사했다.
보스보다 나이가 많은 휴고 반 데르 고스는 <인간의 몰락 Fall of Man>에서 사탄을 금발에 뱀의 꼬리를 한 소녀로 묘사했다.
날개 <지옥>에는 기중기로 상판을 들어올리고 흰 모자를 쓴 사람이 벽돌을 쌓아 탑을 완성시키는 장면이 보인다.
중세의 지옥도에서는 악마들이 포획물을 획득하는 데 정신이 팔려 탑을 건축할 여유가 없지만 보스 작품에서는 특이하게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악마들에게도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성 그레고리는 지상에서 자선이나 적선행위를 할 때마다 황금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게 되며 이는 선한 자의 영혼을 받아들이기 위한 천국의 집이라고 했다.
보스는 그레고리가 말한 집과 반대되는 탐욕으로 지어지는 지옥의 집을 묘사하려고 한 것 같다.
1605년 호세 데 시구엔자Jose de Siguenza(1544년경~1606)는 <건초 수레>에 관해 기술하는 가운데 탑은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며 돌은 “저주받은 비참한 자의 영혼”이라고 했다.
탑 아래에서는 지옥에 떨어진 자들에 대한 고문이 벌어진다.
소 등에 올라 앉은 자를 마귀들이 괴롭히고 있다.
벌거벗은 몸으로 창에 찔린 자는 보스가 『툰데일의 지옥 환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툰데일은 지옥을 여행하는 중 이웃의 소를 훔친 벌로 소를 끌고 좁은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는 다리 위에서 교회를 약탈하고 성물 절도죄를 지은 자들을 만났는데, 보스 그림에서 이 인물이 성찬배를 쥐고 있어 툰데일 이야기와 일치함을 본다.
하단 오른쪽에는 사냥개에 공격을 받는 저주받은 영혼이 있다.
앞서 본 대로 14세기 『알렉산더의 로맨스 Romance of Alexander』에는 토끼가 인간을 사냥하여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이야기가 삽화와 함께 있다.
이런 우화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스 작품에는 우화도 많이 응용되었으며 우화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퍽 친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두꺼비에게 성기를 물린 채 누워 있는 누드 남자는 호색가였던 것 같다.
화면 하단에는 탐욕의 죄를 범한 자가 물고기 모양의 괴물에게 상응하는 벌을 받고 있다.
바로 위 왼편에는 사냥꾼차림의 악마가 뿔나팔을 불고 있으며 사냥감의 인간은 토끼처럼 내장이 제거된 채 막대기에 거꾸로 매달린 포획물이 되었다.
사냥개들은 사냥꾼보다 앞서 달려가 다리 아래의 남자를 공격한다.
이 장면이 무엇에 대한 벌인지 알 수 없지만 중세 문학에는 지옥개가 등장한다.
14세기 영국 필사본에는 사탄이 영혼의 사냥꾼으로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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