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대표작: <지상 쾌락의 동산>


<지상 쾌락의 동산>은 보스의 대표작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미술학자 한스 벨팅은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이 작품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더라도 보스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 더 나아가서 중세의 종교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상 쾌락의 동산 Garden of Earthly Delights> 혹은 <지상 낙원 Earthly Paradise>으로 알려진 세쪽 제단화는 <최후의 심판>과는 달리 인간 본성의 밝은 면을 주로 표현한 작품이다.
보스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알려져 있지 않고 후세에 붙인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도상과는 거리가 먼 상징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보스의 순수 창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스의 상상의 세계는 중앙 패널화에서 매우 폭넓게 펼쳐진다.
오늘날 말로 하면 가상의 세계virtual world인 것이다.
여기에는 천상의 모습도 있지만 지상의 죄가 낱낱히 드러나 있으므로 세쪽 제단화의 형식을 갖추었더라도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렸다기 보다는 제단화의 형식만을 빌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처음으로 제단화의 형식을 빌려 제단화가 아닌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를 미술사에 남기게 된다.
<지상 쾌락의 동산>은 보스가 타계한 지 한 해 후 브뤼셀 나소의 백작 궁정에 장식되었다.
이 사실은 1967년에야 밝혀졌다.
1517년 브뤼셀에 있는 헨드리크 궁을 방문한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데 비티스Antonio de Beatis는 자신이 본 작품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지상 쾌락의 동산>에 관한 내용이었다.
궁정을 방문한 사람들은 유럽의 왕들과 고귀한 신분들이었으며 독일인 화가 뒤러도 이 궁전을 방문하고 오십 명이 한꺼번에 잠을 잘 수 있는 커다란 침대와 아름답게 치장된 건물에 반했으며 보스의 작품도 보았다.
뒤러는 1520년 여행을 목적으로 네덜란드로 향하면서 그해 여름 브뤼셀에서 보스의 작품을 보았지만 보스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그가 보스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뒤러는 플랑드르의 대가 얀 반 에이크를 좋아했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했다.
뒤러가 보스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뒤러는 원근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원근에서 미숙한 보스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고,
또한 “훌륭한 그림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뒤러는에게 “자연을 묘사할 때 어떤 요소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이라도 보태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의 미학적 판단기준에서 보면 환영적인 보스 작품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백작 엔젤브레흐트Engelbrecht는 타계하기 전 자신의 궁정을 엔젤브레흐트 2세와 조카 헨드리크 2세에게 물려주었다.
<지상 쾌락의 동산>은 헨드리크가 보스에게 의뢰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을 나소의 헨드리크 3세가 물려받았다.
상상에 의한 가상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묘사된 이 작품은 보스의 세쪽 제단화 가운데서 가장 보존이 잘 되었다.
특기할 점은 컬러가 매우 선명하며 창백한 색상의 인물들에 대한 그림자가 생략된 것이다.
보스는 자신이 상상한 낙원을 오늘날 놀이공원처럼 즐거움을 추구하는 곳으로 묘사했다.
그의 낙원에서는 모두 옷을 벗어야 한다.
누드가 가득한 낙원에서 사람들은 과일을 먹거나 꽃을 들고 있고,
잔디 위에서 딩굴며,
동물타기를 즐기고,
무리를 지어 놀이를 하며,
연못에 들어가 헤엄을 치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며,
자신들보다 더 큰 새와 동물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쾌락을 만끽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 부끄러움을 모르고 당당하다.
말, 송아지, 낙타, 새의 머리와 날개를 달고 말의 모습을 한 동물 등 다양한 동물들에 올라탄 남자들은 처녀들이 몰놀이를 하는 동그란 연못 주위를 회전목마처럼 돌고 있다.
하늘에는 날개가 달린 창조물들이 나르면서 또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프랑거Franger는 적었다.
“누드 연인들은 고요한 동산에서 식물 같은 순수함으로 평화롭게 놀고 동식물과 일체가 되며 이들에게 활기를 주는 성적 호감은 순수한 기쁨, 순수한 축복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는 성서에서 말하는 인간과 동물이 평화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져 있고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풍요로운 대지의 생산으로 먹을 것이 넉넉함이 있다.
보스 당시 성적 호감을 주는 오브제들이 있었다.
고고학자 한스 잰센Hans Janssen은 스헤르토겐보스에서 발굴작업을 하다가 얼굴을 붉힐 만한 오브제들을 발견했다.
그가 발굴한 것들 가운데는 주석으로 만든 배지가 있었다.
그는 수백 개를 한꺼번에 발굴했는데, 중세 축제나 종교적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던 것이다.
그것들 중에는 여성의 음문을 홍합의 형상으로 만든 것도 있으며 다리가 달린 남성의 남근에 왕관을 씌우고 날개를 단 것도 있다.
이것들은 값싼 기념품들로 핀이 달려 있어 사람들이 모자나 겉옷에 장식했다.
그렇지만 보스의 작품에는 성적 호감을 숭배하는 요소가 없으며 광란의 장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상 쾌락의 동산>은 관능적인 인생, 즉 색욕의 죄를 묘사한 작품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단 왼쪽 둥근 거품 속에 있는 한쌍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홍합조개 속에 들어 있는 한쌍은 색욕을 의미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남자와 여자의 변태적인 행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음부를 가리고 물 속에 물구나무를 선 남자, 하단 오른편에 상대방 엉덩이에 꽃을 집어 넣는 젊은이를 볼 수 있다.
그림에 딸기가 보이는데, 어리석음을 암시하는 과일로 시구엔자는 이를 부패한 세계에서의 육체적 쾌락을 가리키는 허망한 속성으로 보고 말했다.
단순히 지나칠 때는 향을 맡을 수 없는 딸기의 순간적인 맛, 헛된 영예.
시구엔자는 보스가 딸기를 도덕적 비판의 요소로 사용했음을 알고 그의 모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상징물로 보았다.
옛 네덜란드 문학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던 네덜란드 역사가 디르크 박스Dirk Bax는 작품에서 보이는 과일, 동물, 원경의 이국적 광물성의 구조물 등 다양한 형태들은 당시 유행가, 속담, 속어에 인용된 성적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상징물들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연인들이 먹거나 들고 있는 다양한 과일은 성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경의 물고기는 네덜란드 속담에서 남자의 성기를 의미한다.
과일을 따는 청년과 군상에서 에로틱한 점을 발견하기란 쉽다.
흥미로운 것은 과일 속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모습으로 박스는 이를 중세 네덜란드어 schel 혹은 schil로 보고 이 단어는 과일의 껍질 혹은 ‘불화 quarrel’ 혹은 ‘논쟁 controversy’을 의미하기 때문에 schel 속에 있다는 것은 적과 싸우는 데 몰두하는 것이며 좀더 쾌락적인 사랑을 위한 다툼의 의미도 내포된다.
텅 빈 과일껍질의 경우 무가치함을 의미한다.
보스는 갖가지 상징을 다 동원하여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된 작품이 되게 했으며 따라서 그가 도상의 복잡성과 예술적 근거를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 요소들에 대한 해석은 학자마다 분분하지만 박스의 해석은 대부분 신빙성 있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박스의 논리는 대부분 네덜란드 민속에 근거한다.
피테르 브뢰겔과 마찬가지로 보스의 작품을 풍속화의 범주에 넣고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상징물들을 거대한 동산을 배경으로 나열했다는 데서 브뢰겔을 포함하여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 모두에 비해서 보스의 창작이 훨씬 깊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동산은 예전이나 현재에도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장소로 은밀한 사랑의 행위를 벌이기 안성마춤의 장소이다.
보스가 동산에서 벌어지는 온갖 쾌락적인 행위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건 아주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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