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후기 사람들의 우주론적 관념으로서의 자연


분수 아래 둥근 부분에 동그란 구멍이 나 있고 이곳에 올빼미가 앉아 있으며 주변에 새들이 있다.
올빼미가 앉아 있는 곳은 왼쪽 날개 대각선이 모이는 중앙 지점이다.
보스는 올빼미를 모든 악, 어리석음, 그리고 빛에 대한 회피를 상징하는 동물로 사용했다.
천국의 결혼식에서조차 올빼미가 존재하는 건 적개심과 유혹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그는 나중에 이 둘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
주변에 모여든 새들은 올빼미의 유혹을 받는다.
올빼미 자체는 유혹의 상징으로 그 자체 악이 아니지만 자신에게 모여든 새들을 파멸로 이끈다.
어두운 구멍에 들어 있는 올빼미는 덕과 지혜의 빛을 회피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상징한다.
올빼미와 주변에 모여든 새의 모티프는 성적 유혹을 상징하는데, 보스 이후 화가들의 그림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올빼미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것을 예고해주는 동물로 원죄가 이 그림에 나타나 있다.

<대홍수 Flood>와 <지상 쾌락의 동산>에서의 <천국>에 보이는 기린은 보스가 시리아쿠스 안코나Cyriacus d’Ancona의 <이집트 여행 Egyptian Voyage>에 있는 삽화를 보고 그린 것이다.
인문학자 시리아쿠스는 1440년대에 이집트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보낸 편지에 그곳 동물들을 드로잉하여 이국의 동물들을 유럽에 소개했다.
코끼리와 물개는 실재 동물을 보고 그린 것 같다.
보스 당시 실재 코끼리가 스헤르토겐보스에 있었고, 물개는 식용으로 시장에서 고기를 달아 팔았으며, 털도 팔았다.
그리고 종종 시장에서 살아 있는 물개를 통째로 팔았다.
보스는 동물들을 책에서 보고 그렸으며 유니콘은 1485년에 목판화로 제작된 것을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보스는 온갖 실재 사물들을 보고 그렸는데, <지상 쾌락의 동산>에서의 지옥에 보이는 악기들이 그러 하다.
그는 가정용품 나이프, 항아리, 주전자, 접시를 직접 보고 그린 것들을 그림에 삽입했다.
그는 상상의 생물을 창안해냈으며 이런 생물들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 다양하고 매우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생물은 가정용품을 응용한 것들도 있다.
이런 작업을 많은 화가들이 했음을 현존하는 <사다새 플래스크>, <바다 생물>, <바다 유니콘과 바다 수사> 등에서 본다.

중앙 패널화를 바라보는 우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다양한 모티프가 전개되어 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데다 어느 한 부분도 이해가 되게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구성에 있어 파노라마적인 경관을 펼쳤기 때문에 관람자는 특별히 무엇을 보아야 할런지 당혹스럽다.
여기에 자연의 신비함이 식물과 과일들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자연은 인간과는 무관한 것으로 신이 창조할 때부터 이미 자연에 내재된 자연의 산물들이다.
그의 자연은 중세 후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우주론적 관념으로서의 자연이다.

중앙 패널화는 보스 당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일찍이 많은 화가들에 의해 모사되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당대의 이미지 혹은 도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왼쪽 날개의 천국을 묘사한 것도 아니고 세속적인 장면을 묘사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보스는 의도적으로 수수께끼의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것일까?
우선 그림을 바라보면 열려 있는 넓은 들에 아름다운 누드의 젊은이들이 성적 유희로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연 안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대화하고, 서로를 아끼며, 커다란 과일을 먹고, 동물과 식물을 껴안고 있다.
여기에는 늙은이와 어린이는 보이지 않고 젊음의 생기발랄함만 있다.
사랑과 육체적 욕망이 동물과 사람들로 의인화되는 실재이면서 신비적 자연에 대한 묘사는 15세기 태피스트리, 판화, 벽화, 릴리프 등에서도 발견된다.

중앙 둥근 연못 안에서는 여자들이 미역을 감으면서 말 탄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뒤로 배경에는 유기적인 구조물과 인위적인 구조물이 있고 가운데 연못 위에 분수가 있다.
이 연못의 물은 네 갈래로 흘러가며 네 강줄기가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흑인, 긴 머리의 야만인, 인어 남자, 인어 여자 등이 있다.
중세에 긴 머리를 한 사람은 신화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야만인과 동의어로 사용되다시피 했다.
야만적인 행위는 15세기와 16세기 예술에서 이성 간의 사랑에 종종 등장했다.
원시시대 혹은 신화시대를 의미하는 야만적인 행위가 중세에 아직 남아 있음을 이런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그림에서 흑인은 무어인Moors을 의미하며 아프리카 북서부에 사는 무어인은 8세기에 스페인을 점거한 적이 있다.
중세 네덜란드인은 악마를 닉커nikker라고 불렀는데, 니거niger에서 온 말로 검다black라는 뜻이다.
인어 남자mermen와 인어 여자mermaids는 15세기에 사랑과 관련지워 사용되었다.
인어 여자는 육감적인 유혹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그 자체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간을 부패하게 만들거나 죄를 짓게 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어 여자는 사회 밖에서 성적이며 열정적인 사랑의 행위를 즐기는 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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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흄의 미학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취미를 미학의 주요 과제로 제안한 사람은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1672-1719)이었다.
그는 1712년에 발표한 미적 즐거움에 관한 논문 『관객 Spectator』에서 취미를 “상상력의 즐거움 the pleasures of the imagination”을 일으키는 세 특성들로 보고 그것들을 탁월함(혹은 숭고함), 비범함(혹은 진기함), 그리고 미를 단순히 분별하는 능력으로 간주했다.
“상상력은 그 안에 창조와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고 본 그는 상상력의 즐거움을 일으키는 특성들을 지각하는 것이 매우 특이한 종류의 대단한 즐거움에 의해 수반되는 것으로 설명하려고 했으나 충분히 언급하지 못했다.
취미는 흄의 미학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그는 『인간본성론』에서 “미는 우리 본질의 근본적 체질에 의해서나 관습에 의해서 혹은 변덕에 의해서 부분들의 정렬이며 구조로서 영혼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에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에서 즉각적 즐거움이 발생한다고 보았으며, 또한 연합에 의해 이런 즐거움이 전달된다고 보았다.
그는 예를 들어 편의나 유용의 양상이 왜 많은 오브제들이 존중된 아름다운 것들인지를 설명한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보거나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은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없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38-5)
만약 우리가 철학 혹은 상식으로 형성한 미와 추 사이의 상이함을 설명하는 모든 가설들을 고찰한다면, 우리는 자연 본래의 구조, 관습 혹은 변덕에 의해 그처럼 정렬이며 부분들의 구성인 미가 영혼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에 적당하다는 것을 결정해주는 모든 것들을 발견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미의 특별한 성질 즉 거북함을 생산하는 자연적 경향으로 미와 추 사이의 모든 상이함을 형성한다.
고통과 즐거움은 그러므로 미와 추의 유일하게 필요한 안내원들은 아니지만 그것들의 진정한 본질을 구성한다.
… 위트와 같이 미는 정의될 수 없지만 오직 취미나 감각에 의해 분별된다.
흄에 의해 미의 즐거움이 편의 혹은 공리로부터 제기되었으며, 공리성과 미에 대한 감각 사이의 관계가 관심사가 되었다.
그가 하나의 규칙으로서의 미를 깨달음으로서 미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대상의 실재 특성들에 의해 미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관람자의 미적 감각과 무관한 공리성으로부터 나타난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오직 공감에 의해 관람자에게는 미에 대한 느낌이 생기게 된다.
1757년에 출간한 『네 논술들 Four Dissertations』에서 그는 ‘취미의 표준에 관하여 Of the Standard of Taste’란 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다뤘는데 다음과 같이 적었다.38-6)
미란 사물들 자체들 속에 있는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물들을 심사숙고하는 마음속에 존재할 뿐이며 각 마음은 상이한 미를 지각한다.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지각하는 미를 기형으로 조차 지각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개인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규칙적이 되게 가장함이 없이 자신의 감정에 묵종해야만 한다. 진정한 미나 진정한 기형을 찾는 것은 진정한 유쾌나 진정한 쓰라림을 확인하기를 가장하는 것과 같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조회다.
기관들의 성질에 의하면 동일한 오브제가 유쾌하거나 쓰라린 것일 수 있다;
그 격언은 취미에 관해 논박하는 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으로 정당하게 결정되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우며, 이 자명한 이치를 육체적인 취미와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취미에 확대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기조차 하다;
그러므로 철학과 함께 특히 회의적인 종류의 철학의 변화에서 매우 잦게 생기는 상식이 그 동일한 결정을 선언하는 데 있어 동의하는 최소한의 한 예에서 발견되었다.
… 그러므로 취미의 원리들이 객관적이고, 모든 인간에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또한 거의 동일하더라도 아직은 소수에게 어떠한 미술품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거나 혹은 그들 자신들의 감정을 미의 표준으로 달성하는 자격이 있다.
내적 감각의 기관들은 그것들의 온전한 작동인 그 일반적 원리들을 허락하듯 종종 매우 완전하며, 그런 원리들에 일치하는 느낌을 산출한다.
그것들은 일부 결함 하에서 수고이거나 일부 혼란에 의해 오염되는 것으로 이는 잘못된 것을 선언하는 감정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평론가가 미묘함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그는 어떤 구분도 없이 판단하게 되고, 오직 그 오브제의 조잡하고 좀 더 명백한 특성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훌륭한 솜씨들은 알려지지 않게 되고 무시된다.
그에게 실습에 의한 도움이 없을 때 그의 판단은 혼돈과 우유부단을 수반하게 된다.
흄은 오류의 명백한 경우들이 있듯이 취미에 의해 미적 선호가 정확하거나 그렇지 못할 수 있으므로 취미의 모순을 모색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보았다.
판단의 규칙들이나 규범들은 차분하고 편견 없이 경험하는 가장 자격 있는 지각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미술품들의 특징들에 대한 귀납적 탐구에 의해 성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선호는 사람의 기질, 연령, 문화 등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으므로 객관적인 규칙들이나 규범들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봉착하여 18세기 후반에 미의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또한 미적 특성들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졌다.
‘회화적 picturesque’이란 말까지 등장해서 미적 특성들을 규정하려고 철학자들은 열광적으로 노력했다.
여기서 잠시 영국의 미학을 살펴보면 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샤프츠베리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받아들인 카임스Lord Kaimes를 경유하여 버크와 호가스Hogarth의 피상적인 유물론적 경험주의로, 그리고 독자적인 사상가 베이컨으로부터 흄으로 진전되었다.
영국에서 플라톤주의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의 변천에 반해 프랑스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있었던 것이 특기할 만한 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받아들인 바뙤로부터 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쿠생Cousin으로의 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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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 유로푸스
 

  두로 유로푸스Dura Europus는 유프라테스Euphrates 강가에 형성되었던 그리스 문화권의 도시로서 로마 전투부대가 주둔했던 도시로 변모했다.
1930년대에 도시의 일부분이 발굴되었다.
시민들은 256년경 페르시아의 침략의 위협으로 도시를 버렸다.
발굴된 건물들 중에는 교회로 변한 유대인 공화당synagogue이 있다.
이 건물은 256년 이전에 건립된 것이다.
공회당에 장식된 벽화는 3세기 초에 그려진 것인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그림들이다.
예를 들면 언약궤가 있는 성전과 모세를 주제로 한 그림들인데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이 그림에 나타난 형태의 일부가 기독교미술에 유입되었는데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장면으로 두로 공회당의 것과 꼭같지는 않다.
이스라엘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두로 유로푸스 말고도 다른 도시에서 구약성경을 주제로 공회당을 장식했다.
기독교 예술가들은 유대교 전통으로부터 형상을 빌렸지만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변형시켰다. 우리가 사용하는 27권의 신약성경이 정경으로 채택된 것은 2세기 중반이었다.
이는 카타콤이 만들어지기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카타콤의 벽화에서 일정하게 형식화된 그림을 발견하는데 예를 들면 사자들 사이에 있는 다니엘의 모습이다. 두로 유로푸스의 공회당이 교회로 사용되면서 새롭게 장식되었는데 세례를 베푸는 방baptistery의 장식은 230년 혹은 24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례를 베푸는 방의 장식과 카타콤의 벽화는 그러니까 기독교의 최근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례를 베푸는 방에 그려진 벽화들은 선한 목자Good Shepherd, 아담과 이브, 중풍환자의 치유Healing of the Paralytic, 물 위를 걷는 베드로Peter Walking on the Water, 무덤에 있는 세 여인들Three Women at the Sepulcher로서 구원과 관련된 것인데 카타콤의 벽화와 그 형상이 유사하다.
결론으로 말하면 3세기 기독교미술은 부분적으로 일관되었으며 전통주의 양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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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생명의 샘>


화면 중앙에는 빛이 어둠에서 분리되고 빛에 의해 형성된 구체 안에서 창공 위의 물과 창공 아래의 물이 나눠진다.
보스는 성서의 기록을 충분히 이해하고 묘사했는데, 창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한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나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나님께서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창공을 만들어 창공 아래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을 갈라놓으셨다.
하나님께서 그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이튿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이것은 보스가 보는 자연의 힘이다.
지구를 둥근 디스크 모양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천동설을 상기하게 한다.
둥근 지구본이 처음 만들어진 건 1492년 뉘렘베르크Nuremberg에 의해서였다.
보스는 지구본을 보았을 것이다.
과거에 제작된 세계지도를 보면 서클 안에 세 개의 대륙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가 조망도처럼 그려져 있다.
이런 지도가 사라지고 좀더 새로운 형태의 지도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1500년경부터였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Chrustopher Columbus(1451~1506)가 1492년에 아메리카를 발견했으며 이런 사실이 1500년 이후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세계가 세 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믿었다.
보스는 물 속으로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대지와 위로부터 검은 비구름이 생겨나는 태초의 장면을 묘사했다.
습한 대지에서는 푸른 움이 돋아나고 반은 식물이고 반은 광물처럼 생긴 기이한 생물도 생긴다.
보스는 창조 제3일을 묘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 있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마른 땅이 드러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땅을 뭍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나님께서 “땅에서 푸른 움이 돋아나거라! 땅 위에 낟알을 내는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땅에는 푸른 움이 돋아났다.
낟알을 내는 온갖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돋아났다.
하나님게서 보시니 참 좋았다.
이렇게 사흗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대지와 물이 생긴 후 <에덴 동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린, 코끼리, 유니콘 등 온갖 동물들이 생겨났다.
동산 중앙에 ‘생명의 샘 Fountain of Life‘이 높게 위로 솟는데, 가는 장미빛 구조물은 정교하게 조각된 고딕 양식의 교회처럼 보인다.
이 구조물 뒤로 보이는 들판에 자유롭게 노니는 동물들은 인도를 발견한 후 유럽인이 갖게 된 낙원에 대한 풍경일 것이다.
코끼리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로 인도를 발견한 후 알게 된 동물이다.
이국적인 동물은 예술가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뒤러도 1515년에 목판화로 코뿔소를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1520년에 사자를 드로잉했고, 메디치 별장에는 이국적 동물들이 돌로 제작되어 석굴 속에 장식되어 있었다.
구조물 아래 전경에는 하나님에 의해 아담과 이브가 한쌍이 되는 장면이다.
아담이 잠든 사이 하나님이 그의 갈비뼈 하나를 꺼내 이브를 짝으로 만든 후 잠에서 깨어난 아담에게 건네주는 장면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난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 오시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창세기 2:21~23)

아담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다.
그는 앉은 채 놀라움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창조물 이브를 바라본다.
지상에서의 번성함과 천국의 창조가 하단 아담과 이브의 결혼으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창조주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자신이 흙으로 빚은 아담과 이브를 부부로 살 것을 당부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며 말한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기 1:28)

여기에는 원죄Original Sin가 묘사되어 있지 않다.
이브를 유혹했다는 뱀은 화면 중앙 오른쪽에 조그맣게 보이고 종려나무를 코일처럼 감고 있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할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우주창조에서와 같이 보스는 여기에서도 성서에 충실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왼손으로 이브의 오른팔 손목을 잡고 오른손을 들어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 City of God』에서도 언급한 것으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하나님의 뜻이다.
아담과 이브의 결혼은 성적으로 스스로를 자제하고 자식을 낳기 위해서만 섹스가 허영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모습은 <천지창조>에서의 늙은 모습이 아니라 젊다.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의 몸으로 나타나신 분이라고 주장했는데 말씀과 은총이 충만한 그런 모습이다.
15세기 네덜란드 필사본에는 젊은 신이 주재하는 아담과 이브의 혼례가 종종 등장하며 성서를 근거로 한 삽화이다.
천국의 중앙에는 분수가 보석이 박힌 검은 자갈 위에 솟아 있는데 자연의 ‘끊임없는 창조의 힘 creatio continua’을 나타낸 것이다.
분수는 식물의 형태처럼 보이지만 좌우대칭 모양과 색이 보스의 인위적인 조형물임을 알 수 있다.
산호로 된 인위적인 나무로 보인다.
결혼을 주제로 생식reproduction과 다산fertility을 상징하는 분수가 <천국> 중앙에 구성된 것으로 이 날개의 본질적 이해의 상징물이다.
보스의 자연에 대한 상상의 산물인 이 분수는 당시 금세공가가 제작한 작은 규모의 ‘닫집 달린 감실 tabernacle’이나 ‘성체 현시대 monstramce’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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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개념들의 연합 이론은 데비드 흄David Hume(1711-76)의 『인간본성론 A Treatise of Human Nature』(1739-40)과 심리학자이면서 철학자인 대비드 하틀리David Hartley(1705-57)의 『인간에 관한 관측들 Observations on Man』(1749)에서 체계적인 심리학으로 발전되었다.
비례는 측량되어야 하는 것인 반면 미는 우리가 계산하지 않고 직접 자발적으로 느끼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미는 사물들 자체에서는 아무 특질이 없다.
미란 사물들을 관조하는 정신 속에 존재하며, 각 정신은 서로 다른 미를 지각한다”고 본 흄은 개념들이 상호 조화하는 경향은 유사성과 근접성 혹은 인과적인 관련이 많은 정신적 운동들을 설명하는데 이것이 강력한 원리가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본성론』에서 수많은 인간적 산물들의 미는 그것들이 기여하는 목적에 대한 유용성과 적절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적었다.
연합주의는 18세기 한동안 예술의 즐거움을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술과 미적 경험의 심리적 효과는 두 방향으로 진전되었다.
하나는 아름다운 것, 고상한 것에 대한 어떤 기본 미적 특성들에 대한 설명과 분석에 대한 탐구였으며, 다른 하나는 취미의 문제인 비판적 판단의 본질과 타당성에 관한 탐구였다.
이 둘은 종종 엇갈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18세기 초 취미 혹은 비판적 판단에 관한 문제는 철학자들의 관심거리였다.
네오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철학자들은 미에 대한 우리의 인상의 직접성을 취미로 간주하며 조화를 미와 장점으로 보았고, 우리의 마음의 눈이 미적 그리고 윤리적 형태들 모두에서 조화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18세기에 와서야 취미가 미적 태도로서 고상한 것에 대한 개념을 미와 구별되는 미적 특성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처음으로 미학이 자주적으로 철학적 훈련을 쌓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Hans Georg Gadamer(b. 1900)는 『진리와 방법 I Wahrheit und Methode』(1960)에서 취미 개념을 진전시킨 최초의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1601-1658)을 꼽았다.38-1)
가다머는 “그라시안이 인간의 감각들 가운데 가장 동물적이고 내면적 감각, 즉 감각적 취미der sinnliche Geschmack라도 이미 사물에 대한 정신적인 평가에서 수행되는 식별의 싹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 보았다.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즐기면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인, 취미의 감각적 식별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이미 감각적 본능과 정신적 자유의 중간에 있으며, 감각적 취미 자체는 삶의 가장 긴급한 필요에 속하는 것에 대해서도 선택과 평가의 거리를 갖는데 그 특징이” 있으므로, 가다머는 “그라시안이 취미에서 이미 ‘동물성의 정신화’를 보며, 정신만이 아니라, 취미의 경우에도 형성이 가능하다고 암시한 것은 당연하다”고 보았다.38-2)
가다머는 그라시안의 취미 개념이 사회적 이상을 형성하는 출발로 보고 “그라시안의 교양인의 이상은 교양인, 즉 ‘완전한 지점에 도달한 사람 hombre en su punto’이 인생과 사회의 만사에 대해 거리를 두는 올바른 자유를 획득해서, 의식적이며 탁월하게 식별할 줄 아는 데 있다”고 보았다.38-3)
가다머는 취미를 일종의 인식 방식으로 보고 본질에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사회적 현상으로 보았다.
취미가 단순히 개인적인 특성이 아닌 이유는 취미가 늘 좋은 취미 혹은 확실한 취미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취미는 오히려 감각과 같은 것이다.
취미는 근거로부터 나온 지식을 우선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취미가 어떤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취미는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취미는 가장 큰 확실성을 가지고 그것을 경험한다.
따라서 취미의 확실성은 무취미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판이다.
취미의 판별적 선택에서 우리가 이러한 부정적 현상(무취미)에 특히 민감하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부정적 현상에 대응되는 긍정적 현상은 취미가 풍부한 것이 아니라, 취미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다. 취미가 평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취미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다.
취미의 정의는, 취미가 취미를 거스르는 것에 의해 손상되며, 손상을 줄 위험성이 있는 모든 것을 피하듯이, 취미에 거스르는 것을 피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나쁜 취미’라는 개념은 결코 ‘좋은 취미’에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현상이 아니다.
좋은 취미의 반대는 오히려 ‘취미가 없는 것’이다.
좋은 취미는 이상하게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피하는 감수성이어서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 반응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취미가 고유한 인식 방법을 나타낸다는 것이 바로 취미 개념이 지닌 원래의 폭을 형성한다.
취미는 반성적 판단력의 방식에서 개별자가 포섭되어야 하는 보편자를 개별자에서 파악하는 영역에 속한다.
취미는 판단력과 마찬가지로 개별자를 전체와의 관계에서, 개별자가 모든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지, 또는 ‘적합한지’를 평가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평가를 위해서 ‘감각 Sinn’을 가져야 한다 - 그러나 그것은 논증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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