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흄의 미학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취미를 미학의 주요 과제로 제안한 사람은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1672-1719)이었다.
그는 1712년에 발표한 미적 즐거움에 관한 논문 『관객 Spectator』에서 취미를 “상상력의 즐거움 the pleasures of the imagination”을 일으키는 세 특성들로 보고 그것들을 탁월함(혹은 숭고함), 비범함(혹은 진기함), 그리고 미를 단순히 분별하는 능력으로 간주했다.
“상상력은 그 안에 창조와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고 본 그는 상상력의 즐거움을 일으키는 특성들을 지각하는 것이 매우 특이한 종류의 대단한 즐거움에 의해 수반되는 것으로 설명하려고 했으나 충분히 언급하지 못했다.
취미는 흄의 미학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그는 『인간본성론』에서 “미는 우리 본질의 근본적 체질에 의해서나 관습에 의해서 혹은 변덕에 의해서 부분들의 정렬이며 구조로서 영혼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에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에서 즉각적 즐거움이 발생한다고 보았으며, 또한 연합에 의해 이런 즐거움이 전달된다고 보았다.
그는 예를 들어 편의나 유용의 양상이 왜 많은 오브제들이 존중된 아름다운 것들인지를 설명한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보거나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은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없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38-5)
만약 우리가 철학 혹은 상식으로 형성한 미와 추 사이의 상이함을 설명하는 모든 가설들을 고찰한다면, 우리는 자연 본래의 구조, 관습 혹은 변덕에 의해 그처럼 정렬이며 부분들의 구성인 미가 영혼에 즐거움과 만족을 주기에 적당하다는 것을 결정해주는 모든 것들을 발견해야만 할 것이다.
이는 미의 특별한 성질 즉 거북함을 생산하는 자연적 경향으로 미와 추 사이의 모든 상이함을 형성한다.
고통과 즐거움은 그러므로 미와 추의 유일하게 필요한 안내원들은 아니지만 그것들의 진정한 본질을 구성한다.
… 위트와 같이 미는 정의될 수 없지만 오직 취미나 감각에 의해 분별된다.
흄에 의해 미의 즐거움이 편의 혹은 공리로부터 제기되었으며, 공리성과 미에 대한 감각 사이의 관계가 관심사가 되었다.
그가 하나의 규칙으로서의 미를 깨달음으로서 미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대상의 실재 특성들에 의해 미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관람자의 미적 감각과 무관한 공리성으로부터 나타난 것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오직 공감에 의해 관람자에게는 미에 대한 느낌이 생기게 된다.
1757년에 출간한 『네 논술들 Four Dissertations』에서 그는 ‘취미의 표준에 관하여 Of the Standard of Taste’란 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다뤘는데 다음과 같이 적었다.38-6)
미란 사물들 자체들 속에 있는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물들을 심사숙고하는 마음속에 존재할 뿐이며 각 마음은 상이한 미를 지각한다.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지각하는 미를 기형으로 조차 지각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개인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규칙적이 되게 가장함이 없이 자신의 감정에 묵종해야만 한다. 진정한 미나 진정한 기형을 찾는 것은 진정한 유쾌나 진정한 쓰라림을 확인하기를 가장하는 것과 같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조회다.
기관들의 성질에 의하면 동일한 오브제가 유쾌하거나 쓰라린 것일 수 있다;
그 격언은 취미에 관해 논박하는 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으로 정당하게 결정되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우며, 이 자명한 이치를 육체적인 취미와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취미에 확대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기조차 하다;
그러므로 철학과 함께 특히 회의적인 종류의 철학의 변화에서 매우 잦게 생기는 상식이 그 동일한 결정을 선언하는 데 있어 동의하는 최소한의 한 예에서 발견되었다.
… 그러므로 취미의 원리들이 객관적이고, 모든 인간에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또한 거의 동일하더라도 아직은 소수에게 어떠한 미술품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거나 혹은 그들 자신들의 감정을 미의 표준으로 달성하는 자격이 있다.
내적 감각의 기관들은 그것들의 온전한 작동인 그 일반적 원리들을 허락하듯 종종 매우 완전하며, 그런 원리들에 일치하는 느낌을 산출한다.
그것들은 일부 결함 하에서 수고이거나 일부 혼란에 의해 오염되는 것으로 이는 잘못된 것을 선언하는 감정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평론가가 미묘함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그는 어떤 구분도 없이 판단하게 되고, 오직 그 오브제의 조잡하고 좀 더 명백한 특성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훌륭한 솜씨들은 알려지지 않게 되고 무시된다.
그에게 실습에 의한 도움이 없을 때 그의 판단은 혼돈과 우유부단을 수반하게 된다.
흄은 오류의 명백한 경우들이 있듯이 취미에 의해 미적 선호가 정확하거나 그렇지 못할 수 있으므로 취미의 모순을 모색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보았다.
판단의 규칙들이나 규범들은 차분하고 편견 없이 경험하는 가장 자격 있는 지각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미술품들의 특징들에 대한 귀납적 탐구에 의해 성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선호는 사람의 기질, 연령, 문화 등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으므로 객관적인 규칙들이나 규범들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봉착하여 18세기 후반에 미의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또한 미적 특성들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졌다.
‘회화적 picturesque’이란 말까지 등장해서 미적 특성들을 규정하려고 철학자들은 열광적으로 노력했다.
여기서 잠시 영국의 미학을 살펴보면 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샤프츠베리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받아들인 카임스Lord Kaimes를 경유하여 버크와 호가스Hogarth의 피상적인 유물론적 경험주의로, 그리고 독자적인 사상가 베이컨으로부터 흄으로 진전되었다.
영국에서 플라톤주의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의 변천에 반해 프랑스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있었던 것이 특기할 만한 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받아들인 바뙤로부터 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쿠생Cousin으로의 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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