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로 유로푸스Dura Europus는 유프라테스Euphrates 강가에 형성되었던 그리스 문화권의 도시로서 로마 전투부대가 주둔했던 도시로 변모했다.
1930년대에 도시의 일부분이 발굴되었다.
시민들은 256년경 페르시아의 침략의 위협으로 도시를 버렸다.
발굴된 건물들 중에는 교회로 변한 유대인 공화당synagogue이 있다.
이 건물은 256년 이전에 건립된 것이다.
공회당에 장식된 벽화는 3세기 초에 그려진 것인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그림들이다.
예를 들면 언약궤가 있는 성전과 모세를 주제로 한 그림들인데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이 그림에 나타난 형태의 일부가 기독교미술에 유입되었는데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장면으로 두로 공회당의 것과 꼭같지는 않다.
이스라엘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두로 유로푸스 말고도 다른 도시에서 구약성경을 주제로 공회당을 장식했다.
기독교 예술가들은 유대교 전통으로부터 형상을 빌렸지만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변형시켰다. 우리가 사용하는 27권의 신약성경이 정경으로 채택된 것은 2세기 중반이었다.
이는 카타콤이 만들어지기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카타콤의 벽화에서 일정하게 형식화된 그림을 발견하는데 예를 들면 사자들 사이에 있는 다니엘의 모습이다. 두로 유로푸스의 공회당이 교회로 사용되면서 새롭게 장식되었는데 세례를 베푸는 방baptistery의 장식은 230년 혹은 24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례를 베푸는 방의 장식과 카타콤의 벽화는 그러니까 기독교의 최근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례를 베푸는 방에 그려진 벽화들은 선한 목자Good Shepherd, 아담과 이브, 중풍환자의 치유Healing of the Paralytic, 물 위를 걷는 베드로Peter Walking on the Water, 무덤에 있는 세 여인들Three Women at the Sepulcher로서 구원과 관련된 것인데 카타콤의 벽화와 그 형상이 유사하다.
결론으로 말하면 3세기 기독교미술은 부분적으로 일관되었으며 전통주의 양식을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