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이나 욕구를 통제하면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지나치게 내성적이거나 지나치게 활동적인 아동에게는 솔직하고 자유롭게 창조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아이는 내면의 충동이나 욕구를 통제하면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 아이는 혼돈에 사로잡히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놓아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술을 통해 상징적으로 놓아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면 아이는 어느새 훌쩍 성장한다.

퇴행과 공격성은 누구에게든 다루기 힘든 주제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공상 못지않게 공격성을 두려워한다.
정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공격적 행동이나 불결함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리 전문적인 임상 수련을 받은 사람이라 해도 때로 공포나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분석이나 상담을 통해 스스로의 두려운 감정과 욕구를 솔직히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아이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 내면의 파괴적인 기질과 가장 추악한 환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안전하게 타인의 자유를 촉진할 수 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충동은 계획된 행동이 아닌 계획된 틀에 의해서 발생하므로 아이들을 위한 적절한 환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런 환경적 보호 장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전하게 마음을 비울 수 있게 해준다.

환경적 보호 장치를 만들 때 유의해야 할 핵심은 한계를 설정하고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적절한 한계가 없다면 규제되지 않은 무의식의 분출로 겁을 먹거나 당황하게 될 수도 있다.
미술치료사들은 때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전한 틀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아이들의 활동을 통제하려 들기도 한다.
치료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통제보다 더 좋지 못한 행동은 특정 활동을 아예 금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다가는 섣부르게 아이의 세상을 제한하고 옥죄어 아이에게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런 치료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허용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자유/질서 방정식에서 가장 결정적인 심리적 변수가 미술치료사의 심리상태라고 말한다.
치료사가 신뢰를 주는 태도로 대하는지 불신감을 주는 태도로 대하는지, 긍정적 기대를 갖고 상대를 대하는지 부정적 기대를 갖고 대하는지, 상대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 성격인지 반대로 상대와 거리를 두는 성향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성장을 돕고 싶다면, 그 아이를 한 인간으로서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니 내면에 오나성된 인간으로 성장하고 질서를 찾으려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아이에게 잠재력을 스스로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스스로 선택하고, 독립심을 발휘하고, 주도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릴 기회를 제공할 수 없다.

미술이라는 상징적 수단을 통해 아이들을 치료할 때는 시간, 공간, 자아의 경계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설정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술 그 자체는 일종의 보호막이 있는 틀을 제공해준다.
아이들은 미술을 통해 안전하게 자기 자신을 시험해보도, 모험심을 발휘해 자신들의 환상을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은 심리적인 보호벽이 있는 환경에서만 마음 놓고 내면의 불균형, 긴장 등을 표출할 수 있다.
미술은 그런 보호벽을 제공해주는 훌륭한 수단이다.

아이들은 미술이나 놀이를 통해 불가능한 내면의 바람을 이룰 수 있다.
미술이나 놀이는 직접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부정적인 충동이나 긍정적인 희망을 상징적으로 충족할 수 있게 해준다.
아이들은 미술치료를 통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도구와 재료를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현실세계를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미술치료는 과거의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trauma를 상징적으로 불러내 안전한 상태에서 몇 번이고 재현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아이들은 상징적인 트라우마를 안전하게 통제하며 다룸으로써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그 자신감은 현실세계로 이어진다.

어린이들에게는 자유롭고 안정적인 신체적, 심리적 환경을 제공해줄 어른이 필요하다.
어른의 보호 하에서만 아이들은 마음 놓고 스스로의 질서와 통제를 찾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이해해주고,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며, 거울로 비춰줄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어른은 아이들이 감정과 환상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표현에 민감하고 명료하게 대답해주는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신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납득하고 머릿속을 정화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치료사는 아이들이 마음껏 움직이고, 사고하며, 공상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야 한다.
아이들을 의존적으로 만들고, 통제하며, 강요하는 틀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구속복과 다름없다.
그러한 구속복은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다.
테두리를 미리 그어놓은 그림, 단계별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교구에서부터 ‘옳은’ 방식에 대해 이미 정해놓은 규칙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구속은 실로 다양하다.
미술치료에 단 한 가지의 옳은 방식이 있다는 오만한 생각은 미술치료의 기본 바탕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물론 미술치료사는 아이들이 치료 도구를 파괴하거나 위험한 미술 재료를 먹지 않도록 관리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
하지만 미취학 아동이 아직 미숙하다고 해서 수채화 물감만을 사용하고 템페라 물감은 만질 수 없도록 제한하기까지 할 권리는 그들에게 없다.
인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능력이 제한되므로 지속적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만큼은 감독과 제한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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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사는 미술 도구를 갖춰야 한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미술치료사는 미술 도구를 갖춰야 한다.
미술 도구는 다양하다.
연필이나 색연필, 크레용, 파스텔, 마커, 초크, 목탄 같은 드로잉용 도구에서 손가락 그림용 물감, 다양한 크기의 붓, 템페라 물감, 수채화 물감, 아크릴 물감, 유화 물감, 같은 채색용 도구, 찰흙, 나무로 된 도예 용구, 점토 채색 용품, 다양한 콜라주 용품, 가위, 풀 등의 조소용 도구 등이 있다.

이 모든 도구를 갖춰야 할 뿐 아니라 마음껏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함께 미술 활동을 하는 치료사가 애정 어리게 돌보아준다면 아이들은 이 도구들을 친구로 여기고 존중하게 될 것이다.
미술 도구 준비와 관련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허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술치료를 할 때는 통일된 단 하나의 방식이나 규칙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다양한 미술 도구를 접하게만 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표현 도구와 방식을 찾아갈 것이다.

다양한 도구들이 갖춰진 환경을 제공받기만 한다면, 창의적인 충동은 어떤 좌절이나 지연도 없이 자연스레 발휘되고 실현된다.
따라서 치료사는 아이의 발달 단계, 근육 조절 능력, 이전의 경험, 흥미, 요구를 고려해 질 좋고, 내구성이 있는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치료 공간은 공간의 넓이뿐 아니라 그 안을 어떻게 꾸미고, 재료를 어떻게 보관하며, 어떻게 뒤처리할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재료와 장비는 늘 지정된 자리에 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들이 원하는 재료를 편안하게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구들을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두어야 함은 기본이다.
그래야 아이들이 도구를 쉽게 선택할 수 있다.
아이들이 도구가 있는 자리를 잘 알고 독립적으로 가져다 사용할 수 있다면 치료사는 과도하게 개입할 필요가 없다.

아동 한 명마다 밝기가 적당하고,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필요하다면 폐쇄된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에서 아이는 꾸지람을 듣거나 눈총을 받을 두려움 없이 마음껏 쏟고 어지르며 미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미술 도구뿐 아니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열린 공간이 좋을지 닫힌 공간이 좋을지,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을지 혼자 하는 것이 좋을지 아이에게 선택권을 줘라.

미술치료 시간은 흥미를 유지하면서 진정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어야 한다.
미술 도구들이 갖춰진 공간에 처음 들어가면 아이들은 낯설어 한다.
미술 도구들과 공간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미술 도구를 친숙하게 느낄 때에만 손을 뻗어 만지고 시험 삼아 사용해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시험 삼아 도구를 이용해본 경험이 쌓여가면서 아이들은 점점 능숙해진다.

어떤 환경에서 미술치료를 시행하든 아이에게 미술치료 시간이 언제 끝나는지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언제쯤 마무리를 하면 좋을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대개 미술치료 시간에 끝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마치고 떠날 시간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주어야 한다.

규칙이란 미술 도구와 치료 공간, 시간을 일관되고 명료하게 정해두는 걸 의미한다.
규칙을 정해놓으면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내면의 질서와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술치료는 아이들에게 매우 평화롭고 안정된 경험을 줄 수 있다.
미술치료를 시행할 때는 물리적 보호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사는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아이에 대한 존중은 미술 활동에 참여할지 참여하지 않을지 선택할 자유를 주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는 관심이 가는 활동들을 조금씩 해보다가 마침내 깊이 열중할 대상을 찾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재료로 어떤 주제에 대한 미술 활동을 할지에 대한 선택도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혼자서 할지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할지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자신의 방식으로 자기 속도에 맞춰 탐색하고 실험하도록 두라.
표현방식도 아이 스스로 찾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줄 수 있다.
선호하는 도구와, 주제, 스타일을 스스로 탐색하도록 하라.

미술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또한 아이가 결과물이나 미술 활동 과정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줘야 한다.
또한 아이가 자신만의 목표와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했는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아이를 독립적인 예술가로 대접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만든 작품을 대할 때도 조심스런 손길로 만지고, 보존하며, 전시해야 한다.
작품은 아이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정신 장애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특별히 주의 깊은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겁 많고 소심한 아이가 있다면 옆에서 함께 미술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그런 아이들에게는 미술 재료들을 만져도 좋다고 명확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좋다.

넓은 의미에서, 미술치료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표현력 발달을 강화하는 데 적절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사의 주된 역할은 타인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크고 심각한 장애가 있다면, 그 장애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노력은 대상 아동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형태를 달리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를 치료할 때마다 새로운 퍼즐을 푸는 기분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아이에게는 저마다의 개성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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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각기 다른 박자와 속도로 성장한다>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19세기 이래 수많은 미술교육가, 발달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들이 아동의 정상적인 미술 발달 과정을 밝히고자 아동들을 관찰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정리해왔다.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그들의 연구 대상은 주로 도식적 그림 표현에 한정되어왔으며, 현재도 그런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회화와 더불어 점토 등의 조형적 표현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자들이 늘고 있지만, 그 수는 아직 미미하며 그 방식도 중구난방이다.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은 미술치료사로서 미술 행동의 인지적, 정서적 면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또한 미술 활동 과정과 더불어 결과물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미술 발달 단계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발달이 지연되거나 고르지 못한 아동들을 치료하면서 미술 발달의 시작점을 상세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동의 정상적인 미술 발달 단계를 기존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구별한다. 드로잉, 회화, 소조, 조각 등에 모두 적용 가능하면서 발달 초기 단계를 상세하게 다루는 방식이다.
그녀가 고안한 단계는 다음과 같다. 조작manipulating, 형성forming, 명명naming, 표상representing, 내포containing, 시험experimenting, 통합consolidating, 친숙화naturalizing, 개인화personalizing 등이다. 주디스 아론 루빈은 현실에서 이 단계들이 자로 긋듯이 명확히 구별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매 단계는 겹치기도 하고, 어떤 특징은 몇 단계를 넘어가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고 한다. 예컨대 조작manipulating은 미술 재료를 사용할 때면 언제나 나타난다. 단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주된 초점이 다른 특성으로 향할 뿐이다.
각 단계는 각 시기별로 가장 중심적인 발달 양상을 나타낸다. 각 단계별 특징은 복합적이며, 다층적이고, 영속적이다. 따라서 단계 구별은 사실 편의를 위한 인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의 연속과정 중 두드러지는 특성들을 추린 후 시기별로 나눠 기술하고 개념화해놓은 것이다.
아이는 각기 다른 박자와 속도로 성장한다. 운동, 지각, 언어 등 모든 발달이 그러하며, 미술 발달도 마찬가지이다. 발달 속도나 양상은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경우든 정상이라 여길 수 있는 평균 구간은 폭이 매우 넓다. 그래서 다른 관련 변수들을 참조하지 않은 채 그림만으로 발달 단계를 진단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미술 발달의 첫 번째 단계는 재료를 조작manipulating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조작 단계의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물질들을 통해 다양한 감각적 자극을 경험하는 것이다. 물감이나 찰흙이 주는 느낌, 모래나 나무의 질감 등을 통해 감각기관이 발달하게 된다. 감각 발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운동신경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아이는 낙서를 하고, 모양을 만들며, 사물을 뒤섞어놓으면서 손과 팔, 온몸의 운동신경을 발달시켜간다. 찰흙을 주무르거나 크레용으로 낙서하는 유아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근육 및 운동 발달 정도가 미술 활동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찰흙을 찌그러뜨리거나, 종이에 흔적을 남긴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아이는 점점 그 경험의 시각적인 면에 흥미를 보이게 된다. 찰흙의 모양이나 낙서의 색에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만드는 과정이 아닌 자신이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단계의 아이는 아직 완성된 결과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개인별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대개 이 단계는 1세에서 2세까지 지속된다.
지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발달이 진전되면서 아이는 점점 스스로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게 되어간다. 그리고 찰흙이나 크레용을 이용해 점점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특정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손에 쥔 재료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 해당하는 2-3세의 아이는 세로 선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으며, 찰흙을 말고나 판판하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의도에 따라 재료를 솜씨 있게 다루기 시작한다. 물방울무늬를 그리거나, 선을 긋거나, 쾅쾅 두드리거나, 꼭 쥐고 주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을 수만 있었던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제 아이들은 게슈탈트Gestalt, 즉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분리된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단계의 아이들은 표상적인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도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다. 한 점에서 뻗어나가기 시작해 원래의 점에서 끝나는 선, 즉 울타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는 큰 발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독립된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선이나 형태와 연관 지을 수 있다. 개인별 편차가 크지만 대개 이 단계는 2세에서 3세 사이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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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그 순간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이 아동 미술 발달을 아홉 가지 단계들로 구별한 것들 가운데 조작manipulating(1-2세)과 형성forming(2-3세)에 이어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명명naming(3-4세)의 단계의 아이들은 자신이 그리거나 만든 대상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이는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만드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아이가 그리거나 만든 것이 무엇인지 어른들이 궁금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대답에 종종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의 대답과 아이들이 만든 작품 사이에 공통점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3세경의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블록이 자동차나 권총을 상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창조물의 겉모양뿐 아니라 그 밖의 여러 특성을 매우 유연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단계는 앞의 형성forming 단계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으며 보통 3세에서 4세까지 나타난다.
아이들은 조작manipulating(1-2세), 형성forming(2-3세), 명명naming(3-4세) 단계를 거쳐 비로소 네 번째 단계인 진정한 의미의 표상representing(4-6세)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가 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는 예전과 다름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점토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물의 특징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점토를 만든다는 점에서 예전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아이들이 그린 오징어나 낙지처럼 생긴 사람 그림에는 머리와 몸통을 표현한 형태가 분명 존재한다.
또한 알아보기 힘들지는 모르나 팔과 다리를 의도한 형태와, 눈, 코, 입과 닮은 모양도 찾아볼 수 있다.
표상 단계 초기의 아이가 창조한 그림이나 조각, 구조물은 그 모양이 이상하고 기묘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의도한 대상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이 단계의 아이들이 창조한 결과물이 기괴하거나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그린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어느 정도 옳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그 순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와 닿는 대상의 특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3-5세경의 아이들은 눈에 보이거나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흥미를 끄는 부분에 주목해 대상을 매우 상징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한다.
또한 아이들은 이 시기에 선이나 덩어리를 배치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선 안의 면을 채색하고 경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은 솜씨를 기르는 것뿐 아니라 내면의 강한 충동을 통제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선 밖으로 삐져나가지 않게 색칠하는 데서 큰 만족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외곽선을 그리고 그 안을 칠하는 행동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스스로 형태를 그리고 색칠하는 행위는 창의성 발달 측면에서나 심리적 면에서 인쇄된 칠하기 그림책에다 색칠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한 방식이다.
표상 단계초기의 아이들은 조작 단계와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행동을 보인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만들며, 말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인 사람 그림을 보면 그들의 탐구 능력이 얼마나 자유롭고 유연한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날개를 활짝 펴고 환경을 탐색하며 능력을 신장해나간다.
표상 단계 초기의 아이들은 정신적, 시각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고하며 발견을 한다. 이는 표상 과정과 다를 바 없다.
표상 단계는 4세에서 6세 사이에 시작된다.
물론 이 단계가 나타나는 시기는 다른 단계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편차가 크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발달의 다른 측면들에서도 그러하듯, 미술 발달에서도 일종의 통합consolidating(6-9세)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다양한 방식을 탐구하고 시험하기보다는 선호하는 방식의 회화적 표현법을 찾아 그것만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선호 도식, 혹은 상징은 단순할 수도 복잡할 수도 있다.
이 시기 아이들의 그림은 생소하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표현법은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아이들 나름의 논리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표현방식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아이들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얼마나 유연한 방식으로 대상을 표현하느냐 또한 아이에 따라 상당히 편차가 크다.
이 단계의 아이들은 채색을 즐기지만, 색채 사용이 현실적이지는 않다.
아이들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점으로 사물과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도식적 상징과, 그 상징들을 관련시키는 방식 또한 변화한다.
발달 단계 초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호하는 그림 주제는 바로 사람의 형상,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이나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면서 아이들은 점차 다른 사람들, 나무, 식물, 집, 자동차 등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인접해 있는 사람이나 장소를 그리는 단계까지 이른다.
문화에 따라 아이들이 자연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주제가 약간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아이의 창의적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그 대상이 가까운 곳에서 점점 확대된다는 점만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동일하다.
통합 단계는 대부분 6세에서 9세 사이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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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신미술가협회를 창립하다

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중에서

칸딘스키는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작곡가 토마스 폰 하르트만(1885-1956)과 교분을 쌓으며 최초의 무대 작품 <다프니스>와 무대 구성 <노란 소리>를 공동으로 작업했다.
1909년 칸딘스키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추상에 이르기 위한 형태와 색채에 매우 고심하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산>52은 두 인물이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평범한 구성이다.
콘 모양의 산을 초록색과 흰색으로 칠하면서 가장자리를 파란색으로 하고 산의 외곽 주변을 붉은색으로 에너지가 발하는 것처럼 활력을 불어넣었다.
두 인물을 사변적으로 생략된 형태로 만들어 수수께끼의 인물로 표현했다.
특정한 인물이나 장소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상적 구성을 위해 단순히 풍경과 인물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산 위에 건축물이 그려져 있는데, 이런 모습의 중세 러시아 건축물은 초기 작품에서 쉽게 발견된다.
칸딘스키는 1909년 1월 22일 야블렌스키, 베레프킨, 뮌터와 함께 뮌헨 신미술가협회Neue K웢stlervereinigung(NKV)를 창립하고 회장직을 맡았다.
협회 규정에는 “독일과 외국에 강연도 함께 하는 전시회를 열며 간행물이나 이에 준하는 발간물을 발행한다”고 적혀 있다.
1909년 12월 탄호이저 현대화랑Moderne Galerie Thannha웧er에서 열린 제1회 신미술가협회 회원전에 여러 화가들의 유화와 목판화가 소개되었다.
칸딘스키는 첫 전시회를 위해 멤버십 카드, 로고, 포스터를 디자인했다.53-55
신미술가협회는 뮌헨에서 세 차례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독일의 다른 도시들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이듬해 가을에 열린 제2회 신미술가협회전은 국제적 성격의 대규모 전시였는데 하르코프 태생의 러시아 미술가 형제 다비트 다비도비치와 블라디미르 다비도비치 부를리우크57, 이미 입체주의로 나아간 야수주의 화가 조르주 루오, 조르주 브라크, 앙드레 드랭, 반 동겐, 모리스 블라맹크의 작품도 소개되었다.
이 전시는 국제적 성격의 새로운 미술 운동을 독일에 처음 소개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이 전시회를 ‘광대들의 카니발’, ‘예술적 조크’, ‘부끄러움을 모르는 허풍쟁이들’, ‘물감 튀기는 집단’ 등의 말로 비난했다.
어느 평론가는 “그들이 가장 불가해한 신비스러운 것들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미술에 관해 수수께끼 같은 글을 적었으며, 그들의 붓질과 펜의 사용은 열병에 걸린 사람이나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한 것과도 같다”라고까지 말했다.
칸딘스키는 이 전시회에 유화 네 점과 목판화 여섯 점을 출품했다.
유화 중 한 점은 무르나우의 풍경을 그린 것이고, 나머지 세 점은 <구성 2>(1909-10), <즉흥 10>, <배를 타고 가다>였다.
<구성 2>는 세로 2미터, 가로 2.75미터로 여태까지 제작한 작품 중 가장 컸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라지고 스케치 몇 점만 남아 있고 유화 스케치60는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 2>와 <즉흥 10>에서 보듯 그의 작품에서는 형태와 색채 외에도 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산과 호수가 있는 풍경화 <배를 타고 가다>는 그가 ‘그래픽 컬러’라고 부른 흰색과 검은색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작품이다.
프란츠 마르크가 이 전시회의 평을 쓰면서 <구성 2>의 색채와 구성이 페르시아의 양탄자를 닮았다고 적었으며, 그의 평을 계기로 칸딘스키와 마르크는 아주 가까워졌다.
부를리우크 형제는 1902년부터 뮌헨에서 공부하면서 칸딘스키를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들 형제는 러시아로 돌아가 곤차로바, 라리오노프와 가깝게 지내면서 두 사람의 화풍과 유사한, 의도적으로 더욱 과장하는 원시주의 양식을 구사했다.
이들 형제는 1911년경 시인 마야코프스키와 그의 동생 니콜라이 마야코프스키와 함께 미래주의를 러시아풍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데 전력을 다했으며 특히 형인 다비트가 그 일에 주력했다.
칸딘스키가 그중에 더 재능이 있다고 평한 동생 블라디미르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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