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그 순간
『아동 미술치료 Child Art Therapy』, 주디스 아론 루빈(2010, 출판사 知와 사랑) 중에서
『아동 미술치료』의 저자 주디스 아론 루빈이 아동 미술 발달을 아홉 가지 단계들로 구별한 것들 가운데 조작manipulating(1-2세)과 형성forming(2-3세)에 이어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명명naming(3-4세)의 단계의 아이들은 자신이 그리거나 만든 대상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이는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만드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아이가 그리거나 만든 것이 무엇인지 어른들이 궁금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대답에 종종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아이들의 대답과 아이들이 만든 작품 사이에 공통점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3세경의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블록이 자동차나 권총을 상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창조물의 겉모양뿐 아니라 그 밖의 여러 특성을 매우 유연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단계는 앞의 형성forming 단계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으며 보통 3세에서 4세까지 나타난다.
아이들은 조작manipulating(1-2세), 형성forming(2-3세), 명명naming(3-4세) 단계를 거쳐 비로소 네 번째 단계인 진정한 의미의 표상representing(4-6세)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가 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는 예전과 다름없는 그림을 그리거나 점토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물의 특징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점토를 만든다는 점에서 예전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아이들이 그린 오징어나 낙지처럼 생긴 사람 그림에는 머리와 몸통을 표현한 형태가 분명 존재한다.
또한 알아보기 힘들지는 모르나 팔과 다리를 의도한 형태와, 눈, 코, 입과 닮은 모양도 찾아볼 수 있다.
표상 단계 초기의 아이가 창조한 그림이나 조각, 구조물은 그 모양이 이상하고 기묘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의도한 대상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이 단계의 아이들이 창조한 결과물이 기괴하거나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그린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어느 정도 옳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그 순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와 닿는 대상의 특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3-5세경의 아이들은 눈에 보이거나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흥미를 끄는 부분에 주목해 대상을 매우 상징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한다.
또한 아이들은 이 시기에 선이나 덩어리를 배치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선 안의 면을 채색하고 경계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은 솜씨를 기르는 것뿐 아니라 내면의 강한 충동을 통제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선 밖으로 삐져나가지 않게 색칠하는 데서 큰 만족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외곽선을 그리고 그 안을 칠하는 행동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다.
스스로 형태를 그리고 색칠하는 행위는 창의성 발달 측면에서나 심리적 면에서 인쇄된 칠하기 그림책에다 색칠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한 방식이다.
표상 단계초기의 아이들은 조작 단계와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행동을 보인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만들며, 말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인 사람 그림을 보면 그들의 탐구 능력이 얼마나 자유롭고 유연한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날개를 활짝 펴고 환경을 탐색하며 능력을 신장해나간다.
표상 단계 초기의 아이들은 정신적, 시각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고하며 발견을 한다. 이는 표상 과정과 다를 바 없다.
표상 단계는 4세에서 6세 사이에 시작된다.
물론 이 단계가 나타나는 시기는 다른 단계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편차가 크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발달의 다른 측면들에서도 그러하듯, 미술 발달에서도 일종의 통합consolidating(6-9세)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다양한 방식을 탐구하고 시험하기보다는 선호하는 방식의 회화적 표현법을 찾아 그것만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선호 도식, 혹은 상징은 단순할 수도 복잡할 수도 있다.
이 시기 아이들의 그림은 생소하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표현법은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아이들 나름의 논리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표현방식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아이들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얼마나 유연한 방식으로 대상을 표현하느냐 또한 아이에 따라 상당히 편차가 크다.
이 단계의 아이들은 채색을 즐기지만, 색채 사용이 현실적이지는 않다.
아이들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점으로 사물과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도식적 상징과, 그 상징들을 관련시키는 방식 또한 변화한다.
발달 단계 초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호하는 그림 주제는 바로 사람의 형상,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이나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면서 아이들은 점차 다른 사람들, 나무, 식물, 집, 자동차 등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인접해 있는 사람이나 장소를 그리는 단계까지 이른다.
문화에 따라 아이들이 자연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주제가 약간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아이의 창의적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그 대상이 가까운 곳에서 점점 확대된다는 점만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동일하다.
통합 단계는 대부분 6세에서 9세 사이에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