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신미술가협회를 창립하다
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중에서
칸딘스키는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작곡가 토마스 폰 하르트만(1885-1956)과 교분을 쌓으며 최초의 무대 작품 <다프니스>와 무대 구성 <노란 소리>를 공동으로 작업했다.
1909년 칸딘스키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추상에 이르기 위한 형태와 색채에 매우 고심하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산>52은 두 인물이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평범한 구성이다.
콘 모양의 산을 초록색과 흰색으로 칠하면서 가장자리를 파란색으로 하고 산의 외곽 주변을 붉은색으로 에너지가 발하는 것처럼 활력을 불어넣었다.
두 인물을 사변적으로 생략된 형태로 만들어 수수께끼의 인물로 표현했다.
특정한 인물이나 장소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상적 구성을 위해 단순히 풍경과 인물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산 위에 건축물이 그려져 있는데, 이런 모습의 중세 러시아 건축물은 초기 작품에서 쉽게 발견된다.
칸딘스키는 1909년 1월 22일 야블렌스키, 베레프킨, 뮌터와 함께 뮌헨 신미술가협회Neue K웢stlervereinigung(NKV)를 창립하고 회장직을 맡았다.
협회 규정에는 “독일과 외국에 강연도 함께 하는 전시회를 열며 간행물이나 이에 준하는 발간물을 발행한다”고 적혀 있다.
1909년 12월 탄호이저 현대화랑Moderne Galerie Thannha웧er에서 열린 제1회 신미술가협회 회원전에 여러 화가들의 유화와 목판화가 소개되었다.
칸딘스키는 첫 전시회를 위해 멤버십 카드, 로고, 포스터를 디자인했다.53-55
신미술가협회는 뮌헨에서 세 차례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독일의 다른 도시들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이듬해 가을에 열린 제2회 신미술가협회전은 국제적 성격의 대규모 전시였는데 하르코프 태생의 러시아 미술가 형제 다비트 다비도비치와 블라디미르 다비도비치 부를리우크57, 이미 입체주의로 나아간 야수주의 화가 조르주 루오, 조르주 브라크, 앙드레 드랭, 반 동겐, 모리스 블라맹크의 작품도 소개되었다.
이 전시는 국제적 성격의 새로운 미술 운동을 독일에 처음 소개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이 전시회를 ‘광대들의 카니발’, ‘예술적 조크’, ‘부끄러움을 모르는 허풍쟁이들’, ‘물감 튀기는 집단’ 등의 말로 비난했다.
어느 평론가는 “그들이 가장 불가해한 신비스러운 것들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미술에 관해 수수께끼 같은 글을 적었으며, 그들의 붓질과 펜의 사용은 열병에 걸린 사람이나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한 것과도 같다”라고까지 말했다.
칸딘스키는 이 전시회에 유화 네 점과 목판화 여섯 점을 출품했다.
유화 중 한 점은 무르나우의 풍경을 그린 것이고, 나머지 세 점은 <구성 2>(1909-10), <즉흥 10>, <배를 타고 가다>였다.
<구성 2>는 세로 2미터, 가로 2.75미터로 여태까지 제작한 작품 중 가장 컸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라지고 스케치 몇 점만 남아 있고 유화 스케치60는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 2>와 <즉흥 10>에서 보듯 그의 작품에서는 형태와 색채 외에도 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산과 호수가 있는 풍경화 <배를 타고 가다>는 그가 ‘그래픽 컬러’라고 부른 흰색과 검은색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작품이다.
프란츠 마르크가 이 전시회의 평을 쓰면서 <구성 2>의 색채와 구성이 페르시아의 양탄자를 닮았다고 적었으며, 그의 평을 계기로 칸딘스키와 마르크는 아주 가까워졌다.
부를리우크 형제는 1902년부터 뮌헨에서 공부하면서 칸딘스키를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들 형제는 러시아로 돌아가 곤차로바, 라리오노프와 가깝게 지내면서 두 사람의 화풍과 유사한, 의도적으로 더욱 과장하는 원시주의 양식을 구사했다.
이들 형제는 1911년경 시인 마야코프스키와 그의 동생 니콜라이 마야코프스키와 함께 미래주의를 러시아풍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데 전력을 다했으며 특히 형인 다비트가 그 일에 주력했다.
칸딘스키가 그중에 더 재능이 있다고 평한 동생 블라디미르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