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의 출현, 잭슨 폴록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이제 여러분은 창밖으로 한 시골뜨기가 맨해턴 거리를 서성이는 모습을 볼 것이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두리번거리는 그 자가 바로 추상표현주의의 간판스타 잭슨 폴록이다. 그가 뉴욕에 막 도착했다.
1930년 가을, 열여덟 살의 시골뜨기가 서부에서 뉴욕으로 왔는데 그가 바로 미국이 금세기의 예술가로 자랑하는 폴록이다. 마론 브란도처럼 앞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균형잡힌 몸에 남성답게 생겼으며 아리조나 주의 넓은 광야에서는 굴레 벗은 망아지 같았던 그였지만 그 역시 맨해턴에 도착하여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완공을 서두르고 있는 102층짜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았고 철로 된 왕관을 쓰고 도도한 모습으로 서 있는 크라이슬러 빌딩도 보았다. 그는 맨해턴 여기저기에서 크레인을 사용하여 고층건물들을 짓고 있는 뉴욕의 활기를 놀라와했다.
유명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형 찰스와 함께 뉴욕으로 왔으므로 폴록은 우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으로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마치 카톨릭 신자가 성모상을 바라보듯이 우러러보았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그림도 훗날 대가들의 그림들과 나란히 그곳에 걸릴 날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그는 그 영광을 못 보고 떠났지만 필자는 그곳에서 그의 그림을 보았다). 어쨌든 그때만 해도 예술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평생 가난하고 외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선택이었다.
그해 4월 14일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두주자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한계에 좌절하여 권총으로 심장을 쏘아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추상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자 우울증에 빠졌고,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반 고흐도 같은 나이에 권총자살했는데 그는 동생 테오(Theo)에게 보내려고 썼다가 중단했던 편지에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고백하며 좌절하고 있다. 이처럼 천재들은 위대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경고한 대로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을 체험하면서 죽음으로 뛰어들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예술에 일생을 걸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다면 제발 좌절하지 말기 바란다. 앙드레 브르통은 마야코프스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잡지 『초현실주의자들의 혁명 Revolution Surrealiste』에 그가 세상을 버리기 전에 쓴 시 한 구절을 소개했다. “사랑의 보트는 인생에 대적하며 충돌했다.”
러시아인 칸딘스키는 1910년에 이미 수채화로 완전추상을 성취하여 미술사의 쾌거를 이루었고, 곧이어 카시미르 말레비치가 절대주의(Suprematism)로, 로베르 들로네가 음율주의(Orphism)로, 몬드리안이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로 완전추상에 도달했지만 아직 사람들은 그러한 그림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모더니즘의 대가 피카소는 자신도 거의 완전추상에 다다른 그림들을 그렸으면서 “회화에 있어서 완전추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으며, 그의 위대한 적 마티스도 사물들을 단순하게 추상화하여 그렸지만 완전추상을 부인했다. 그래서 몬드리안은 추상화만 그리다가는 가난을 면치 못할 줄 알고 생계를 위해 정물화와 구상화를 그려 팔면서 가명을 사용했다.
이러한 무지의 완전추상을 추구하려고 폴록의 여인 리 크래스너가 준비를 했고, 폴록이 뉴욕으로 와서 이 길을 찾았으며,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이 길을 따라 전진하게 된다. 여러분을 그 길로 안내하는데, 폴록의 나머지 생을 함께 했던 리 크래스너를 먼저 소개한다.
미래의 아내 리 크래스너
뉴욕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 가운데 홍일점인 리 크래스너(Lee Krasner 1908~84)는 드센 성격에 팔자가 세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날씬한 몸매와 큰 가슴을 가졌으므로 사내들은 그녀가 성적으로 매력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리는 미술학교 아트 스튜던츠 리그(The Art Students’ League)에서 모델로 일한 적이 있었으며, 그리니치 빌리지의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할 때에는 단골손님 작가들로부터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스 호프만의 미술학교에서 함께 수학했던 릴리언 올린시(Lillan Olinsey)는 “리는 매력이 있었지만 동시에 혐오감을 주었으며, 아주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리는 폴록보다 4년 연상으로 1908년 10월 27일 뉴욕 브루클린의 셴크 애비뉴(Schenck Avenue, Brooklyn)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러시아에서 이민 온 전통주의 유태인들로서 어머니가 먼저 뉴욕으로 왔으며 아버지는 1908년 초에 와서 어머니와 재회했다. 그녀의 본명은 르노어 크래스너(Lenore Krassner, 크래스너에 s가 둘임)였는데 대개는 ‘레나(Lena)’라고 불렸다. 그녀의 아버지 요셉(Joseph Krassner)이 어머니 안나 와이스(Anna Weiss)를 아내로 맞이했을 때 안나는 겨우 열한 살에 불과했다. 요셉은 러시아의 오데사 근처 작은 동네에서 랍비(Rabbi : 성서학자)를 위해 일하다가 처남을 따라 뉴욕으로 왔는데 이때 그의 아내 안나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요셉은 생선과 야채를 파는 상점을 경영했는데 상점 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종교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정도로 종교에 넋이 빠진 사내였다. 안나는 상점을 걷어치우고 블레익 스트릿 시장(Blake Street Market) 안에 조그만 생선 파는 장소를 임대하여 맨해턴에서 브루클린까지 마차로 생선을 실어나르면서 새벽부터 밤 늦도록 소처럼 억척스레 일했다. 경제적으로 무심한 아버지와 인내심이 부족하여 곧잘 화를 내는 어머니, 미국의 청교도 문화를 못마땅해하는 부모 아래서 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리는 어려서부터 토요일이면 어머니를 따라서 유태인들의 공회당에 갔다. 두 사람은 2층에 마련된 좌석에 앉았으며, 잘난 사내들은 아래층 좌석에 앉았다. 그러나 리는 새로운 종교를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술이었다. 그녀의 언니 루스(Ruth)는 리가 어릴 적에 잡지와 신문을 보고 화려한 의상을 한 여인들을 드로잉했는데 어찌나 잘 그렸던지 놀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므로 리는 열네 살 때인 1922년 쿠퍼 유니온(Cooper Union)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1925년까지 그곳에 재학한 후 1928년에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수학했으며, 이듬해 다시 쿠퍼 유니온에 적을 두었다가 졸업하였다. 1929년에 다시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The National Academy of Design)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일리아 볼로토브스키와 미래의 남편 이고 팬투호프를 만났다. 리는 이 학교에 입학한 지 넉 달 만에 정학 처분을 받았다. 담임교사의 말에 의하면 “항상 말썽을 부렸다”는 것이며 그해 12월에 그녀는 아예 퇴학당했는데 “허락도 없이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학교 기록부에 적혀 있는 이유였다.
1929년 10월 말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이라고 불리는 그날 월 스트리트(Wall Street)의 증권시장에서 주식가격이 폭락하면서 경제공황이 시작되었다. 경제공황은 세계 전역을 휩쓸었고 이렇게 시작된 1930년대는 춥고 배고픈 세월이었으므로 여러분에게도 그 시대를 산 예술가들에게 동정심을 표하는 아량이 있기를 바란다. 어쨌든 스물두 살의 리는 공황이 시작되던 그해 여름 내내 자화상을 그리느라고 분주했는데 당시를 그녀는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나는 롱 아일랜드의 헌팅턴(Huntington, Long Island)에서 온여름을 보냈으며, 나무에 못을 치고 거울을 단 후 자화상을 그렸다. 그 그림을 가을에 아카데미 위원회에 제출한 후 인정받아 실제 모델을 그리는 반에 편입될 수 있었다”(2).
이 시기에 그녀는 이고 팬투호프와 자주 만났다. 이고는 리의 몸매를 사람들에게 더욱 자랑하기 위해서 그녀에게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도록 간섭했으며, 직접 화장법까지 만들어 리의 눈화장과 얼굴 치장에까지도 그의 이기심을 관철하려고 했다. 한마디로 그는 여간 좀스러운 사내가 아니었다. 이고가 1932년에 그린 리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원했던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글래머였던가를 알 수 있다. 제사에는 마음이 없고 제물에만 마음이 있었던 그는 정작 신앙으로 섬겨야 할 회화보다는 모델을 더 사랑했으므로 예술가로서는 턱없이 모자라는 사내였으며, 따라서 자랑스런 뉴욕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의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다. 게다가 그는 나중에 성(性)에 혼란이 일어나서 이성과 동성 모두를 사랑하는 괴짜 인간이 되었다.
훗날 리가 폴록의 아내가 되었을 때 이고가 두 사람의 집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는데 어느 사내가 아내의 전 남편에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폴록은 질투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를 잡으러 다녔으며 이고는 도망쳐야 했는데 그때의 일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