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와 성모 마리아 형제회의 정회원 

 

형제회는 1478년 교회 내 아직 공사 중이던 성가대석 북쪽에 부속예배당을 건립하기로 하고 교회 전문 건축가 알라르트 두 하멜Alart du Hamel을 책임자로 선정했는데,
훗날 두 하멜은 보스 양식의 엔그레이빙을 제작했다.
두 하멜은 성 요한 교회를 위해 많은 작업을 했으며 교회 본당 회중석과 성모 마리아 형제회 예배당을 장식하는 일을 했다.
일부 학자는 그가 교회의 창 위의 작은 박공gablet과 부축벽 날개flying buttresses에 식물 잎사귀 무늬를 장식한 것으로 본다.
시문서에 의하면 1504년 시가 그에게 선량공 필리프의 초상을 제작하라고 의뢰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가 이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가 제작한 몇 점의 판화가 보스의 작품과 유사해서 그가 보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보스 가족 대부분 형제회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자연히 이 단체가 집행하는 갖가지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고
종종 연례행사에 사용되는 목조상을 도금하거나 채색하는 일도 했다.
형제회 장로들이 1475~76년에 예배당에 안치할 커다란 크기의 목조 제단 장식물에 관해 논의할 때
보스 아버지 안토니우스 반 아켄이 아들들과 함께 참석한 것으로 봐서
그가 예술고문직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장식물은 1477년에 완성되었다.

1480~81년 형제회 문서에 보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삼대째 형제회의 정회원으로 적혀 있다.
정회원이란 형제회의 모든 규칙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하는 의식을 통해 받아들여졌으며
당시 정회원은 오십 명 남짓했고
그들에게는 성직자cleric의 직위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 직위는 결혼을 금하거나 성직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정화원은 수요일마다 집행되는 미사에 참여하고 형제회가 주최하고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그 밖의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다.

보스는 형제회로부터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그가 1493~94년에 새 예배당의 창문을 위한 착색유리를 디자인했으며
1511~12년에 십자가 처형을 그렸고
이듬해에는 샹들리에를 디자인했으므로 예배당은 일반 전통 예배당에 비해 훨씬 더 장려해졌다.
샹들리에를 디자인한 대가로 받은 돈이 적은 것으로 봐서 거의 헌신적으로 작업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는 형제회가 1512~13년 보스에게 샹들리에를 주문하면서 돈을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다.
샹들리에가 현존하지 않아 어떻게 디자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550~51년의 기록에는 샹들리에 위에 있는 조각상이 부서져 복원하여 샹들리에에 땜으로 붙인 것으로 적혀 있어
보스가 디자인한 것을 황동 제작자가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스가 디자인한 샹들리에는 애르트 반 트리흐트Aert van Tricht가 제작한 것으로 일부 학자들은 추정한다.
부서진 조각상을 복원한 사람은 메헬렌에 작업장을 갖고 있던 황동 제작자 야스파르Jaspar였으며 형제회 기록에는 1554년 6월 그에게 지불한 것으로 적혀 있다.
야스파르는 샹들리에를 청소하고 사라진 부분을 만들어 복원시켰다.
두 번째로 샹들리에를 청소한 것은 1580~81년으로
기록에는 "아주 검게 되었고 더러워졌다"고 적혀 있다.

보스가 활동할 시기에 스헤르토겐보스에는 두 명의 재능 있는 화가가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교회 전문 건축가이기도 한 알라르트 두 하멜과 미히엘 반 게메르트Michiel van Gemert였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엔그레이버였지만 엔그레이빙과 회화가 그들의 주요 직업은 아니었다.
두 하멜은 조각가로도 유명했으며
20년 동안 후기 고딕 건축물인 성 요한 교회를 재건하는 데 몰두했다.
금세공가 반 게메르트는 나이프, 맥주조끼, 쇠로 제작된 오브제에 인그레이브하는 기술에 탁월했다.
두 사람 중 두 하멜이 특히 보스와 가까운 사이였다.

작품에 모노그램미스트monogrammist 'bos with a knife'라고 길게 서명한 사람으로 학자들은 그가 미히엘 반 게메르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모노그램 작품은 내용에 있어서 스헤르토겐보스 사람이 제작한 것이 분명하고 서명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반 게메르트일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타당해보인다.
스헤르토겐보스는 15세기 후반과 16세기에 나이프의 생산지로 유명했으며 나이프를 스페인에까지 수출했다.
따라서 서명자가 스헤르토겐보스 사람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당시 나이프의 손잡이에 장식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이런 장식은 나이프 제작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엔그레이버가 했다.
기록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 형제회가 1509~10년, 1510~11년, 1516~17년에 금세공가 반 게메르트에게 모두 29자루의 나이프에 형제회의 모토를 새겨 넣는 장식 일을 맡긴 것으로 되어 있다.
형제회는 일부 나이프를 자체에서 사용했지만 더러는 선물로 더러는 팔았다.
형제회는 1510~11년 그에게 뚜껑과 손잡이가 달린 큰 맥주 조끼 45개에 엔그레이브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가 제작한 작품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는 보스가 타계한 1516년 8월 7일 그 주에 무게가 거의 2kg이나 되는 커다란 성체 현시대monstrance를 제작할 것을 주문받았는데,
두 하멜이 디자인한 것과 유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생존에 대가로 인정을 받았고 그렇게 불리었다.

보스가 생존한 시기에 활동한 착색유리 제작자들에 관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들의 작품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이 패널화나 캔버스화를 그린 화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없다.
형제회의 기록에 의하면 다양한 착색유리 제작자들이 활동한 건 사실이다.
이들이 교회와 수도원의 창문을 장식했으며,
성 요한 교회 내에 있는 성모 마리아 형제회의 예배당도 장식했는데,
예배당의 장식은 부분적으로 보스가 디자인한 것을 근거로 했다.
형제회는 예배당의 새로운 창문 장식을 위해 착색유리 제작자 빌렘 롬바르트Willem Lombart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스가 스케치한 것을 받아 제작하라'고 했다.
예배당에 관한 17세기 기록에는 '가장 예술적인 창문들 artificiosissima vitra'이라고 적혀 있으며,
주제들이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스도의 할례>, <수태고지>,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수태>였다면서
보스가 리넨에 그린 그림들을 롬바르트가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적혀 있다.

보스는 엠브로이더리를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1511~12년에 제작한 엠브로이더리에 대해 형제회가 지불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떤 것을 디자인했는지는 현존하는 작품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기록에는 십자가를 디자인했다고 적혀 있다.
무명작가가 1460년경에 제작한 제의chasuble를 위한 엠브로이더리에 파란색이 사용되었음을 보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이다.
제의 등에 실크 그리고 금색실과 은색실을 사용하여 십자가를 디자인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보스도 이런 재료를 사용하여 디자인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록에는 보스가 금색 제의에 십자가를 디자인했다고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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