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제대 후 뒤샹은 다시 파리로 가서

마르셀이 징집 연령에 이르렀을 때 징집에 관한 새로운 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에 의하면 신체 건강한 청년은 누구든지 2년간 복무해야 하지만 장차 의사와 변호사가 될 의대와 법대생 외에 정부에서 인정하는 상업미술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1년만 복무할 수 있었다.
프린트, 판화 등 이와 유사한 직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이 이런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마르셀은 복무기간을 줄이기 위해 줄리앙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1905년 5월에 루엥으로 가서 인쇄소에 일자리를 구했는데, 아버지가 그해 은퇴하고 루엥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인쇄소에서 다섯 달 동안 기술을 배운 마르셀은 자격시험을 쳐서 50점 만점에 49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10월 3일 병무청에 인쇄기술자로 신고하고, 루엥의 제39 보충대에서 보충병으로 복무했으며 1906년 10월에 제대했다.
그의 복무시절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제대 후 그는 다시 파리로 가서 형이 살던 곳에서 불과 몇 집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방을 세 얻어 처음으로 혼자 생활했다.
자크는 그때 세느강 건너 퓌토Puteaux로 이주해 있었다.
자크는 몽마르트의 생활이 싫증나서 그리로 이주한 것이라면서 “친구들이 몰려와서는 파이프를 피워대고, 게다가 여자친구들까지 데려와 난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낮에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야 했고 밤에 작업했는데, 그런 식으로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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