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 냉소주의의 태도 

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중에서


<나무 위에 있는 처녀 Virgin in a Tree>는 그가 1903년 7월에 그린 것으로 도상적으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인물과 유사하지만 매우 위협적인 이미지로 처녀의 자세가 매우 불안정해보이며 기괴한 얼굴이 관람자를 섬뜩하게 한다.
이렇게 묘사한 데 대해 그는 릴리에게 보낸 편지에 “진실을 제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왜곡되게 표현했다”고 적었다.
왜곡은 추상의 한 방법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추상은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이 둘을 명확하게 구별하기는 어렵다.
외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는 왜곡은 심리적인 시점을 제시해주며 그의 추상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무 위에 있는 처녀>에는 근육 묘사가 정확해서 해부학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물로 보인다.
처녀는 죽은 나무의 앙상한 가지 위에 불안정한 자세로 비스듬히 누운 채 오른팔로 머리를 약간 받치고 있다.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처녀를 찬양하는 전통적 관념에 회의를 제기한 비판적인 작품이다.
그의 비판과 해학은 그 해 9월에 그린 드로잉 <서로에게 허리를 굽히는 두 신사, 서로 상대편이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한다>에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비굴한 인간상을 조롱하면서 유머를 삽입해 해학적으로 비판했다. 그의 견유주의 혹은 냉소주의의 태도를 볼 수 있다.

1904년에 제작한 ‘창조’ 연작 중 하나인 에칭 <코미디언 (창조 4)>의 경우 가면 뒤의 진실이 엿보이지만 이 또한 왜곡된 얼굴이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가면 뒤에 고통스러워하는 배우의 얼굴에서 이중적 삶의 고달픔을 느끼지만 배우는 또 다른 가리개로 눈을 가리고 있어 진실은 그 이면에 보이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클레의 말대로 왜곡된 이미지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그의 특유한 방법이다.

클레는 1904년 12월에 <페르세우스 (위트가 슬픔을 누르고 승리했다) (창조 8)>를 그렸다.
그가 주제로 삼은 것을 아크리시오스 왕의 딸 다나에와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지혜로운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이다.
아크리시오스는 사랑하는 딸이 낳게 될 손자에 의해 살해될 것이란 예언을 듣고 청동으로 탑을 만들고 딸을 그 속에 가두었다.
운명을 인간이 피할 수 없다는 그리스인의 메시지가 담긴 신화이다.
탑은 위에서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졌고 하녀들이 음식물을 위에서 아래로 던져주었다.
어느 날 제우스가 아래를 내려다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가 탑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황금비로 변신하여 밤사이에 잠든 다나에를 적셨으며 수태한 다나에는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아크리시오스는 딸과 손자를 바구니에 담아 바다에 띄웠다.
하지만 제우스의 인도로 세리포스 섬에 사는 어부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곳에서 성장한 페르세우스는 그곳 왕의 계략으로 고르곤 가운데 메두사를 죽여야 했다.
고르곤 세 자매 중 스텐노와 에우리알레는 불사신이지만 메두사는 불멸의 존재가 아닌 대신 가장 젊고 아름다웠다.
메두사는 자기가 팔라스 아테나보다 더 아름답다고 떠벌리고 다녀 아테나의 미움을 샀다.
아테나는 고르곤을 지구상의 가장 흉물스러운 존재로 만들면서 메두사를 가장 흉하게 만들었는데, 머리카락은 뱀이고, 얼굴은 잔뜩 부풀어 올랐으며, 몸체는 멧돼지에 엉덩이는 말이었다.
메두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돌이 된다고 아테나가 미리 말해주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가 준 방패에 비친 모습을 보고 헤르메스에게 받은 검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잘랐다.
그는 메두사의 머리를 왕에게 갖다 주기 위해 님프에게서 받은 커다란 자루에 집어넣었다.
클레의 작품에서 페르세우스 뒤 오른편 벽에 걸려 있는 것이 메두사의 머리이다.
흉한 얼굴에 머리카락을 땋아 뒤로 늘어뜨린 것이 뱀의 형상이다.

이듬해에 그린 <늙은 피닉스 (창조 9)>는 12점의 ‘창조’ 연작 중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창조’ 연작에서 보듯 그는 작은 크기로 그리면서 매우 정교하게 작업했다.
이런 작품들은 칸딘스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유겐트슈틸의 한 형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풍자와 냉소의 시각으로 새로운 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클레는 상징주의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이미지들을 창조해냈다.
그의 작품에서 장식적 경향이나 색면의 사용, 아라베스크 무늬 등은 발견되지 않더라도 선을 주로 사용한 데서 유겐트슈틸의 영향이 역력함을 본다.
피닉스phoenix는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불사조로 500년 또는 600년에 한 번씩 스스로 타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영조이다.
클레는 500년 혹은 600년이나 된 늙은 새를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하여 신화에 회의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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