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이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레이몽의 결혼식이 1903년 9월 파리에서 있었다.
그는 예술가 친구 자크 봉의 누이인 젊은 과부 이본느 레베르송 봉을 아내로 맞았다.
그해 마르셀은 리세 코네일 학교 졸업반으로 낙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적이 매우 나빴다.
그러나 드로잉에서는 재능을 나타내어 일등을 수상했고, 최우수상은 친구가 차지했다.
그러나 졸업할 때는 마르셀이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일등상은 그 친구가 수상했다.
1904년 6월에 있었던 졸업식에는 동네의 유일한 학교였으므로 시장이 참석하였다.
시장은 마르셀에게 최우수상을 시상하면서 장차 예술가가 될 것이라 했다.
졸업식에 참석한 사람들 중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르셀이 예술가가 되는 데 아버지의 반대는 없었다.
그는 파리로 가서 큰형 자크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냈다. 파리시 외곽 언덕에 위치한 몽마르트의 좁은 골목에는 가난한 예술가들로 넘쳐났다.
툴루즈 로트렉이 1885년에 이곳으로 이주했고, 고갱도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19살의 스페인 청년 파블로 피카소 역시 1900년에 비탈길 옆에 있는 낡은 집에 세 들어 자크의 이웃이 되었다.
자크는 스페인 청년과 우정을 나누었다.
자크는 주로 삽화를 그리면서 상업미술가로 활약했지만 매년 앙데팡당전에 그림을 출품했다.
앙데팡당전은 국전 심사제도에 불만이 많은 예술가들이 1884년에 창설한 전시회로서 자칭 예술가라면 누구라도 전시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회에 참가 희망자의 수가 매년 늘어 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심사 제도를 두고, 심사를 통해 세 번 전시회에 참가한 예술가들에게는 이후 심사를 받지 않고 임의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마르셀과 자크의 목표는 달랐는데 마르셀은 “형과 나는 매우 달랐다.
형의 목표는 유명해지는 것이었지만 내 목표는 그렇지 않았다.
난 단지 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만 바랐다”고 했다.
당시 예술가가 되려는 사람들은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는 것을 수순으로 생각했다.
마르셀도 1905년 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시험을 쳤지만 낙방했다.
그는 사립학교 줄리앙 아카데미에 입학했는데, 줄리앙은 파리에 네 개의 아틀리에를 가지고 있었고, 전통주의 방법으로 회화를 가르쳤다.
마르셀은 몽마르트 근처에 있는 분교에 입학하여 아침반에 수학했다.
그는 “항상 스케치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스케치북에는 형과 여동생을 그린 그림들이 있고, 자크가 기르던 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또한 장차 그릴 대작 <큰 유리>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어 대작을 일찍부터 구상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스케치북에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수채와 연필로 그려져 있는데 경찰관, 기름파는 사람, 야채상인, 청소부, 장례식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 등을 그렸다.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카페에 가서 당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