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금세기 예술’의 전속작가가 되다
여러분이 타고 있는 미술관광 버스는 여전히 1942년의 뉴욕을 달리고 있다. 모처럼 도약의 기회를 맞이한 폴록이 그에게 찾아온 호기를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었는지를 관람하는 것도 유익할 듯하다. 그때 폴록은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므로 밤에는 상점에 가서 일했고 리는 직업훈련을 받고 있었다.
6월 중순 풋젤이 폴록의 화실로 찾아왔다. 그는 페기가 곧 그의 화실을 방문할 것임을 알려주면서 페기의 성격에 관하여, 그가 페기를 어떻게 접대하는 것이 효과적인가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고 갔다. 예정했던 대로 6월 26일 토요일 오후 페기가 8번가 46번지 5층에 있는 폴록의 아파트에 당도했다. 그녀는 문을 노크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페기는 다시 노크를 하고 또 했지만 여전히 문이 열리지 않아 몹시 화가 나고 말았다. 그날은 마침 폴록의 친구 피터 부사의 결혼식 날이었다. 폴록은 부사의 베스트 맨(Best Man)으로서 식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폴록과 리는 아침 일찍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부사의 아파트로 갔다. 결혼식은 그의 아파트에서 거행될 예정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폴록은 부사가 준비해둔 술을 한잔한잔 마시기 시작했는데 술을 자제할 줄 모르는 그는 그만 과음하고 말았으며 거실 소파에 얼굴을 축 늘어뜨리고 잠들어버렸다. 리는 할 수 없이 베스트 맨은 고사하고 결혼식에 방해가 될까봐 그를 끌어다 침대에 뉘였는데 그는 식이 끝날 때까지 콜콜 자고 있었다. 리가 시계를 보니 페기가 도착할 시각이 임박해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폴록을 깨웠지만 그는 정신을 못 차렸다. 그녀가 폴록의 귀에 대고 오늘은 네 일생에 가장 중요한 날로서 개인전이 열리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페기에 의해서 판가름나는 날이라고도 말해주었지만 그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리는 그를 끌다시피 데리고가서 커피를 마시게 했고 그러느라고 두 사람이 조금 늦게 아파트에 도착했는데 이미 페기는 잔뜩 화난 얼굴로 아파트를 걸어나오고 있었다.
페기는 폴록을 보자 더욱 성이 나서 “폴록, 어디에 있었나요? 감히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라고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게다가 페기를 더욱 화나게 했던 것은 폴록의 화실에 들어서니 그림마다 L.K.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던 사실이었다. 페기는 “도대체 L.K.는 어떤 작자예요? 난 L.K.의 그림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화를 냈다. 그것들은 물론 리 크래스너의 그림들이었다. 페기는 폴록의 그림들을 둘러본 후에도 별말이 없었고, 그곳을 떠나면서 뒤샹더러 여기에 와 그림들을 보라고 말하겠다고만 했다. 페기가 가고난 후 리는 자기의 그림을 그년이 모독했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페기를 가리켜 ‘시팔년’이라고 말하면서 다시는 그년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라고 펄쩍 뛰었다. 7월 초에 뒤샹이 폴록의 아파트에 나타났고 그림들을 휙 둘러본 후 “나쁘지 않다”는 한마디만 하고 가버렸다. 뒤샹의 “나쁘지 않다”는 소감은 페기가 폴록의 전람회를 열기로 결심하는 데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그만큼 페기는 뒤샹의 안목을 신뢰하고 있었다.
페기는 폴록을 가리켜 “결코 와이오밍 주를 떠나지 못한 덫에 갇힌 동물”이라고 묘사하면서 “잭슨은 상대하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술을 너무 마셨고 사람을 기분 나쁘게 대했으며 악마 같은 데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게다가 그녀는 그의 그림들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렇지만 페기는 폴록이 그녀의 하룻밤 섹스 상대가 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페기의 생각은 더디더라도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페기는 스위니에게 자기가 폴록의 그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의 그림들이 “조금 거친 데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면서 그의 그림을 어디에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스위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폴록의 전람회를 열어주라고 말했다. 페기는 이번에는 풋젤의 의견을 물었는데 그는 당연히 폴록의 전람회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 술 더 떠서 지금 폴록이 잡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으므로 그에게 매달 돈을 지불하여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7월에 페기는 폴록에게 11월에 있을 전람회를 위해 그림을 충분히 그려두라고 연락했다. 또한 그녀의 아파트에 벽화를 그려줄 것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녀는 폴록에게 1년 동안 매달 150달러를 지불하고 전체 금액 1,800달러를 앞으로 팔릴 그의 그림값에서 제하기로 계약했다. 이러한 조건은 1년 동안 2,700달러의 그림을 이상 팔 수 있을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서 만일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만한 금액에 해당하는 폴록의 그림을 그녀가 소유할 수 있고, 팔리는 그림들에 대한 수수료 1/3은 늘 그녀의 몫이라는 전제를 단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이만한 조건이란 예술가에게 유리했던 계약으로서 폴록은 계약서에 쾌히 서명했다. 그는 미래가 아주 밝게 열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형 찰스에게서, 그리고 학교에서 함께 수학한 친구 예술가들에게서 드로잉할 줄 모른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호프만은 그의 회화기교를 회의했으며,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그가 세련되지 않은 미국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폴록의 고용주 바로네스 힐라 레베이(Baroness Hilla Revay)는 감히 그의 드로잉을 두 조각으로 찢은 적도 있었다. 폴록은 1943년 7월 21일 바로네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보냈다. 이 편지는 그가 그녀에게 통보하는 사직서이기도 했다.
친애하는 바로네스 양, 내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시기에 나의 그림을 두 조각 비평으로 만들어 내게 주었던 것에 감사를 표하오. ‘금세기 예술’은 나와 계약을 맺었고 오는 11월에 나의 개인전을 열 계획이므로 난 전람회 준비를 해야 하오. 잭슨 폴록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