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을 심사한 몬드리안
이제 유일하게 페기의 주위를 서성거리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는 마타뿐이었다. 마타는 그녀에게 ‘금세기 예술’ 화랑은 과격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고, 그래서 그녀는 초현실주의 미학을 따르는 미국 미술가들을 찾고 있었다. 제임스 존슨 스위니는 그때 모마의 회화와 조각 부분 책임자였는데 개인적으로 페기를 도우려고 했다. 허버트 매터를 통해 이미 폴록의 그림들을 본 스위니는 1942년에 페기에게 폴록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하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폴록은 흥미있는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밖에도 페기의 귀에 폴록의 이름을 자주 들먹였던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페기의 비서로 근무하고 있던 하워드 풋젤이다.
폴록이 풋젤을 만난 것은 1942년 여름이었는데, 풋젤도 폴록의 천재성을 발견했던 몇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풋젤은 폴록의 그림을 보자마자 천재라는 말을 사용했다. 화랑 ‘금세기 예술’은 35세 미만의 미국 화가들에게 작품을 제출하라고 광고하면서 그것들을 심사하여 40점이나 50점을 전시하겠다고 공고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심사위원들이 선정하기 전에 잘난 척하는 페기가 이미 그림들을 분류했다고 했다. 풋젤은 폴록의 화실로 가 그림을 제출하라고 권하면서 <속기술적 모습 Stenographic Figure>(44)을 포함시키라고 충고했다. 풋젤은 폴록을 도울 속셈으로 페기가 폴록의 그림을 보기 전에 그녀에게 술을 권했지만 페기는 사양했고 폴록의 그림을 보더니 ‘공포적’이라고 말하면서 싫어했다.
선임된 심사위원들 중 몬드리안이 먼저 화랑에 도착했다. 몬드리안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그림들을 하나씩 심사하려고 하자 페기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서두르면서 그림들을 벽에 기대놓고는 한꺼번에 심사하라고 말했다. 몬드리안은 그림 앞을 지나다가 폴록의 그림 앞에 우뚝섰다. 그러자 페기가 그에게 다가가서 “대단한 그림이 아니지 않아요? 이건 그림도 아니지요”라고 말했다. 몬드리안은 아무 말 없이 몇 분 동안 서 있기만 하더니 “난 이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고 합니다. 내가 미국에 온 후로 이렇게 흥미있는 그림을 본 적이 없어요. … 페기, 이 사람을 주의깊게 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에요? 당신 그림과 이 그림은 비교할 수도 없지 않아요?”라고 페기가 말하자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나 생각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몬드리안은 페기의 가까운 친구였고, 택시 안에서 갑자기 몬드리안이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 그녀가 순순히 그의 키스를 받아준 적도 있었다. 몬드리안이 떠나고 다른 심사위원들이 화랑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그들을 한 사람씩 폴록의 그림 앞으로 데리고가서는 “자, 보세요. 여기에 얼마나 대단한 그림이 있는지!”라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풋젤은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싱긋이 웃었다. 몇 년 후 페기는 “잭슨의 그림은 대단했고, 난 단번에 그것들을 좋아할 수 있었다”는 새하얀 거짓말로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전람회에서 마더웰의 콜라주는 85달러에 팔렸고 바지오츠의 그림 두 점은 각각 150달러에 팔렸지만 폴록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전람회에 참여한 예술가들 가운데에는 마크 로드코, 클리포드 스틸, 아돌프 고틀립, 그리고 데이비드 헤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로드코와 스틸은 대학교수였고, 두 사람은 폴록처럼 직관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수준 높은 지성으로 분석한 미학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려는 그림들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