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그룹에 속한 뒤샹
마르셀이 시도한 입체주의는 브라크와 피카소의 것들에 비해 과격하지 않았고, 기교면에서 두 사람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자크는 피카소와 우정을 나누었지만 마르셀은 피카소를 만난 적이 없었다.
몽마르트에 있는 브라크의 화실로 그를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입체주의에 관한 지식은 오히려 메쳉제를 통해 구한 것이었다.
메쳉제는 바토 라보아 근처에 살면서 피카소와 자주 만났으며, 처음으로 입체주의에 관해 책을 썼다.
마르셀은 “피카소가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을 때 메쳉제가 입체주의에 관해 설명했다”면서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수년 후에 알게 되었다”고 훗날 말했다.
마르셀에게 입체주의에 관한 구체적인 이해가 생긴 것은 1911년 가을이었다.
가을전을 계기로 자크와 레이몽, 마르셀 뒤샹 삼형제는 메쳉제, 글레이즈, 레제, 그리고 들로네와 자주 만났다.
그들은 일요일 오후에 퓌토의 자크 집에서 주로 모였고, 월요일 저녁에는 교외에 있는 글레이즈의 화실에서 만났으며, 화요일 밤에는 몽마르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등 모임의 횟수를 늘여나갔다.
예술가들이 한 사람씩 가세하면서 그룹의 규모는 자연히 커졌다.
그룹에서 마르셀의 나이가 가장 어렸는데 그는 말을 하지 않고 주로 듣는 편이었다.
잦은 모임을 통해 마르셀이 발견한 것은 미술은 마음으로 행위하는 것이란 점과 사차원에 대한 관심이었다.
퓌토의 예술가들은 사차원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당시 지성인들의 사차원에 관한 관심이 아주 컸다.
마르셀은 브라크와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궁극적으로 개념미술이란 사실을 발견했으며, 피카소가 말한 대로 사물은 “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물이 있음을 아는 것”이란 점을 깨달았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와 미술이 지성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룹의 예술가들이 만나면 미학적인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거듭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사차원이란 말은 20세기의 첫 10년 동안에 자주 사용되었으며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작가들이 이 말을 즐겨 사용했다.
우주에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는 사차원의 세계가 반드시 있다고 지성인들은 믿었으며, 신문이나 잡지, 소설, 만화 등에서 사차원이란 말은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1909년에 「사차원에 관한 가장 쉬운 해설the Best Popular Explanation on the Fourth Dimension」이란 제목으로 전 세계 사람을 대상으로 논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차원에 관한 관심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원리를 발견하고 부터였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400년 이상 도전을 불허했던 뉴턴의 이론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일반상대성원리는 우주환경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해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과 시간 말고도 우주에는 시공간space-time이란 것이 있다면서 시간이란 두 사건의 관계라고 정의했다.
뒤이어 X레이가 발견되었고 무선전화와 비행기가 발명되었으며,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사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르셀도 이에 관해 관심을 많이 두었다.
퓌토 그룹의 예술가들은 사차원의 세계를 수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룹에 속한 아마추어 수학자 모리스 프린스가 수학으로 사차원을 산술해서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채워주었다.
모리스는 수년 동안 피카소의 화실을 들락거리면서 그의 드로잉을 팔기도 했는데 그는 피카소의 모델이자 애인이었던 여자와 결혼했다.
몇 달 후 그녀는 모리스를 버리고 앙드레 드랭과 사랑에 빠졌다.
드랭의 아내는 미인으로 소문났지만 드랭의 바람은 잘 날이 없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메쳉제는 모리스를 데리고 퓌토로 왔고, 그곳 예술가들은 모리스가 수학으로 설명하는 사차원의 세계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사차원을 삼차원보다 훨씬 수준 높은 실제의 세계이며, 가까운 장래에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폴리네르도 1912년 봄에 사차원에 관한 글을 쓰면서 예술의 새 자유는 사차원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에게만 허용된다고 했는데 사차원에 관한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그렇게 주장한 것이었다.
마르셀은 “사차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도 당시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대화했다”고 회상했다.
사차원에 관한 그의 가정은 이러했다. 빛이 삼차원의 사물을 비추어 이차원의 그늘 이미지를 만드는 것처럼 사차원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삼차원의 세계를 만든 것은 아닐까?
이런 사차원에 관한 그의 끊임없는 사고가 결국 1923년에 <큰 유리>를 완성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