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안내자 피카비아
뒤샹이 피카비아를 만난 것은 1911년 10월 가을전에서였다.
뒤샹은 목욕하는 사람들이 있는 커다란 그림 <기계>를 출품했다.
훗날 비극적 인생을 산 피에르 두몽이 그때 그곳에 있어 그가 피카비아를 뒤샹에게 소개했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의 우정은 평생 지속되었다.
피카비아를 만난 후 전통주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던 뒤샹에게 변화가 생겼다.
뒤샹은 그에 대해 “놀랄 만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회의주의자였다. 항상 ‘그래, 하지만 …’이라고 말하거나 ‘아냐, 그러나 …’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더라도 피카비아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면서 뒤샹은 그것이 그의 게임이라고 했고, 피카비아는 자신이 회의주의자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피카비아는 1911~12년에 매일 밤 아편을 피웠는데 당시 아편은 아주 귀했다.
뒤샹은 말했다.
“그와 함께 아편을 피운 적은 없다.
그는 술을 지독히 마셨다.
그런 것들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사실이었으며 … 물론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내게는 모든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큰 공부가 되었다.”
뒤샹보다 8살 많은 피카비아는 1879년 1월 22일에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1953년 세상을 떠났다.
외할아버지 다반느는 인상주의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을 빌려준 상업사진작가 펠릭스 나다르의 친구로, 다반느 자신도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아버지가 부자 쿠바인이었고 어머니도 부자 프랑스인이었으므로 피카비아는 매우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그가 일곱 살 때 불행히도 어머니를 잃었다.
그가 미술에 관심이 생긴 것은 외삼촌 모리스 다반느를 통해서였는데, 다반느는 열정적인 미술품 수집가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과 희귀본 서적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피카비아는 외삼촌 집에 소장된 미술품들을 보면서 예술가가 될 것을 결심했으며 자신만만해 했다.
성적으로 조숙한 피카비아는 18살 때 학교를 자퇴하고 파리에 익히 알려진 언론인의 애인을 데리고 스위스로 달아났다.
그는 바람둥이였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잘생긴 그가 운전석 창 밖에 왼팔을 올려놓고 상냥한 말을 건네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의 노예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플래이보이로 허송세월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서 5~6년 동안 회화에 몰두하였다.
코르몽은 훌륭한 교사로 빈센트 반 고흐, 에밀 베르나르, 툴루즈 로트렉을 가르쳤으며, 브라크가 그에게서 수학했고, 자크도 한동안 그의 화실을 출입했다.
피카비아는 음악을 전공하던 가브리엘 부페를 만나 1909년에 결혼하여 첫 번째 아내를 맞이했다.
뒤샹은 인상주의로 시작해서 8년 동안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그리고 상징주의를 거쳐 입체주의에 도달했으며, 1911년 말 피카비아를 만날 무렵에는 입체주의를 자신의 독특한 언어로 바꿀 수 있었는데 이는 <체스 두는 사람들>에서 나타났다.
당시 뒤샹은 입체주의 방법을 응용해서 체스 게임을 주제로 여섯 점의 드로잉과 한 점의 유화를 스케치했다.
이런 습작을 거쳐 12월에 <체스 두는 사람들>을 완성했다.
그는 브라크와 피카소의 전례를 따라 부서뜨린 사람들의 모습들을 서로 겹치게 구성했으며, 입체주의의 장점을 살려서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모습들을 병렬했으므로 관람자가 예술가의 관점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밤에 가스램프 불빛 아래서 그림을 그리다가 다양한 색조를 발견했다고 한다.
색조를 조절하면서 브라크와 피카소가 성취한 미묘한 색조에 관한 충분한 이해가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에서 체스 두는 사람들은 체스를 두는 것이 아니라 체스에 관해 생각하는 모습들이다.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인생의 흥을 돋구기 위한 변화를 필요로 했으며, 자신감은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제 그는 브라크와 피카소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망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자신감을 그에게 고취시킨 사람이 바로 피카비아였다. 뒤샹이 회상한 대로 피카비아는 그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했으며, 뒤샹은 그를 따라 새 세계를 탐험하면서 인생의 흥을 느낄 수 있었다.
피카비아는 슬하에 자식이 둘이나 있었지만 자녀를 둔 아비답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아무 때나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했다.
그는 고급 승용차를 몰고 와 뒤샹을 데리고 몽마르트에 있는 단골 카페로 가서 코가 비틀어지도록 술을 마시곤 했으며, 정신을 차릴 때는 보통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