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야! 선대왕인 문왕께서는 천명天命을 받으셨다
주周나라 무武왕 시대의 청동 제기祭器인 대풍궤大豊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대풍大豊은 대례大禮의 뜻이 있습니다. 다음의 글에서 천명天命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을해乙亥 날에 왕은 대풍大豊의 예禮를 거행하였다. 왕은 삼방三方의 제후들과 함께 회동하였다. 왕은 천실天室(상제를 모신 사당)에 엎드려 제사하고 천天께서 왕에게 허물을 내리지 않기를 빌었다. 선대의 대왕이신 문文왕께 융성히 제사하고,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
주周나라 강康왕 때의 청동 예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는 천명天命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9월에 왕이 종주宗周(주나라의 도읍지인 호경鎬京)에서 우盂(신하의 이름)에게 명령하였다. ‘우야! 선대왕인 문왕께서는 천명天命을 받으셨다. 무왕께서는 문왕의 뒤를 이어 나라를 세우셨느니라. ... 지금 나는 문왕의 정덕政德을 본받아서 무왕처럼 너희들 두세 명의 장관들에게 명령하노니 ...”
주공周公은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반란을 진압한 뒤 강숙康叔을 은殷나라 유민들의 새 영주에 봉하면서 어린 성왕成王을 대신하여 강숙을 왕명으로 훈계한 내용이 <상서尙書> ‘강고康誥’편에 적혀 있습니다. 기원전 1043년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동생 관숙은 무왕이 죽은 뒤 동생 주공周公 단旦이 섭정이 되자 다른 형제들인 채숙蔡叔, 곽숙霍叔과 함께 은나라의 유민을 이끌던 무경武庚과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때의 반란을 삼감三監의 난亂이라 합니다. 주공은 소공召公 희석姫奭 등의 도움을 받아 3년 만에 반란을 진압했으며, 관숙과 무경武庚은 처형되었습니다. 주공이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강숙을 왕명으로 훈계한 내용에 천명을 준수가 있습니다.
“왕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봉封(강숙康叔의 이름)아, 삼가 행동할 것이로다! 백성의 원성을 사서는 안 되느니라. 온당치 못한 음모나 불법을 써서 백성의 실상을 가려서는 안 되느니라. 민첩하게 덕행으로 나아가거라. 그대의 마음을 평안히 가질 것이며 그대의 덕행을 반성하고 그대의 원칙을 오래 두고 실시하면, 백성은 안녕을 누리게 되고 그대의 (봉토도) 단절되지 않을 것이다.’ 왕께서 말씀하셨다. ‘아, 젊은 청년 봉아! 천명이란 무상한 것이니라. 그대는 유념해야 한다. 우리가 조상의 제사를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대의 천명을 명백히 밝히고 그대의 견문을 넓힘으로써 백성을 평안하게 다스려라.’
왕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가거라, 봉아! 받들어야 할 법도를 깨뜨리지 말 것이며 짐朕이 그대에게 내린 훈계에 귀를 기울여서 은나라 백성과 함께 세세대대世世代代로 제사를 받들어 모셔애 하느니라.’”
주공周公의 성은 희姬, 이름은 단旦으로 주나라를 창건한 무왕武王의 동생입니다. 그는 무왕의 권력 강화를 도왔으며, 무왕이 죽자 직접 왕권을 장악하라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대신 무왕의 어린 아들 성왕成王을 보좌하는 길을 택하여 성왕에게 통치기술을 가르쳤습니다. 주공은 은나라가 통치하던 지역에 대한 은나라의 지배를 완전히 뿌리 뽑고, 정복한 지역에 새로운 행정단위를 설치하여 믿을 만한 주나라의 관리들로 하여금 그 지역을 다스리게 하고 7년 동안 섭정한 후 스스로 물러날 때에는 주의 정치, 사회 제도가 중국 북부 전역에 걸쳐 확고히 수립되었습니다. 주공이 확립한 행정조직은 후대 중국 왕조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공자孔子는 주공을 후세의 중국 황제와 대신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인물로 격찬했습니다. 당시 서주의 왕도는 풍豊이었습니다. 주공은 성왕이 장성하자 대권을 성왕과 소공召公에게 위임했습니다. 소공의 이름은 석奭,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아우입니다. 소공은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초를 만들고 산동 반도의 이족夷族(동이東夷라고도 함)을 정벌하여 동방東方 경로經路의 사업事業을 이룩했습니다. 주공은 먼저 소공을 낙읍洛邑에 보내 새 왕도를 짓게 하고 아래의 글을 지었습니다. 천명을 잃은 것을 강조하는 이 글은 <상서尙書> ‘소고召誥’편에 적혀 있습니다.
“삼가 꿇어 엎드려 머리를 땅에 대고 전하와 소공에게 진언합니다. 많은 은나라 백성과 (주나라의) 관리들에게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아! 저 하늘의 위대한 상제上帝께서는 그의 큰아들[은나라 주紂왕]에게서 그 큰 나라 은나라의 천명을 거둬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하께 천명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는 무궁무진한 행복이며 또한 무궁무진한 걱정거리입니다. 아아, 어찌 삼가 근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은 일단 큰 나라 은의 천명을 거둬갔습니다. 저 은나라의 많은 선대의 성왕들의 (영혼들)은 천상에 있으며 그들 후대의 군왕과 후대의 백성은 그와 같이 그들의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마지막 끝에 이르러 현자들은 숨어버리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관직에) 남았습니다. (백성은) 부녀와 아이들을 등에 지고 팔로 껴안고 손으로 잡고 끌고 가면서 애통하게 상제께 호소했습니다. (도망은) 저지당했으며 도망자는 체포되었습니다. 아아! 상제는 또한 사방의 백성을 애련하게 여기시므로 (왕은) 천명을 돌아보시고 (덕을 베푸는 일에) 힘쓰셔야 합니다. (천명을 받은) 왕은 긴급히 삼가 덕행을 쌓기에 힘쓰셔야 합니다!
옛날 선대의 하夏나라를 살펴보면, 천天은 그들을 사랑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천의 뜻을 어기자 그들은 천명을 잃었습니다. 지금 은나라를 살펴보면 천의 신령이 내리어 그들을 보우했습니다. 천의 뜻을 어기자 그들은 천명을 잃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젊은 나이에 대권을 이어받으셨으니 나이 많은 노인들의 말씀을 흘려버리시면 안 됩니다.
...
우리는 하나라를 거울삼아 보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은나라를 거울삼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그들은 그들의 덕을 삼가 받들어 행하지 못했으므로 일찍이 천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지금 전하께서는 천명을 이어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두 선대 왕조의 천명의 내력을 깊이 생각해야만 구 위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상의 글에서 왕이 천명을 받았더라도 천의 뜻을 어기면 왕위를 빼앗기는 것이 정당하다고 중국의 고대인은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왕위에 오르는 건 천명을 받아야만 가능하지만 왕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늘 천의 뜻을 따라야 하는데, 천의 뜻이란 백성을 공평하게 다스리는 일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란 후세의 사상은 이런 고대인의 생각에서 연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