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사상天命思想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제왕帝王의 통치권을 상제上帝의 권위를 빌어서 절대화하려는 천명론天命論의 흔적은 원시문명의 초기 단계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16-11세기 은殷나라(상商나라라고도 함) 때에 거북뼈龜甲(귀갑)나 짐승뼈牛胛骨(우갑골)로 점을 쳐서 그 위에 점괘占卦를 풀이하여 길흉吉凶을 보는 괘사卦辭인 점사占辭를 기록한 갑골문자甲骨文字에서 상제上帝 혹은 그 밖의 신들은 풍신風神, 우신雨神 등의 존재가 확인됩니다. 괘사란 점괘의 뜻을 풀어서 써 놓은 글을 말하고 갑골문자란 거북뼈나 짐승뼈에 새긴 중국 고대의 상형문자를 말합니다. 점사에는 제사, 정벌, 농사, 수렵, 기후, 수확 등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점사에 나타나는 상제는 천상과 인간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최고 주재자를 말합니다. 상제를 최고 지상의 신으로 보는 전통 관념은 주周나라(서주西周, 기원전 11-9세기) 때의 청동기에 새겨놓은 글인 명문銘文(금문金文이라고도 함)에도 명백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상제上帝 혹은 제帝의 명칭은 주씨周氏 종족 고유의 최고 신인 천天의 명칭과 동일시되어 쓰였으며, 주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왕王은 하늘로부터 지상의 절대통치권인 천명天命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이 하나의 관념으로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 최고最古 역사서인 <상서尙書>(서경書經으로 불림)에서는 천명사상이 더욱 발전되어 나타났으며 천명을 어떤 사물을 빌려 감정이나 사상 따위를 표현하는 인간의 의지적, 도덕적 노력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한대漢代 이전까지는 서書라 불렸는데, 이후 유가사상의 지위가 상승됨에 따라 소중한 경전이라는 뜻을 포함시켜 한대에는 <상서尙書>라 했으며, 송대宋代에 와서 <서경書經>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상서>에는 우虞, 하夏, 상商, 주周 시대의 역사적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상서>는 58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周나라 당시의 원본이 아니라 위진남북조시대에 나온 위작僞作입니다. <상서>는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인해 소실되어 전승과정이 복잡하고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합니다. 판본으로 <금문상서今文尙書>와 <고문상서古文尙書>가 있습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58편의 <상서>는 동진東晉의 매색梅賾이라는 유학자가 조정에 바쳤다는 <금문상서본>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대체로 그의 위작으로 봅니다. 우서虞書 5편, 하서夏書 4편, 상서商書 17편, 주서周書 32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역대로 논쟁이 제기되어왔으며 실제로 그 유래가 불분명한 점이 많으나 오랜 세월 동안 유가의 최고 경전의 하나로서 권위를 지녀왔습니다.

고대 중국인은 천의 맹목적 권위를 점차 부정하면서 천명무상론, 즉 유명불우상唯命不于常을 제기했는데, 기원전 11세기에 주공周公(성은 희姬, 이름은 단旦)은 천명 외에 통치자들의 명덕明德, 경덕敬德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상제의 의지인 천명은 결국 오로지 유덕자唯德子에게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논의를 폈습니다. 주공의 말에서 중국 사상 최초로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지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인문주의 사상의 맹아萌芽를 발견하게 됩니다. 천명에 대한 소박한 비판은 또한 <시詩>(<시경詩經>으로 불림)를 통해 전해오는 당시 민중의 민요들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런 점은 고대인의 자연에 대한 초기 인식인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론에서도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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